EP.15 대학교 서클의 전설
서울 H동에 자리잡은 K대학교 학생회관 산악부 방에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회원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야, 너 그게 정말이야?”
“임마, 그렇다니까. 우리 부장하고 신입생 혜진이하고 사랑하는 사이래.”
“그럼, 큰일 아냐.”
선배들의 대화를 듣고 있던 신입생들은 어리둥절해서 물어 보았다.
“선배님, 우리 산악부에 사랑하는 커플이 탄생했으면 당연히 기뻐해야지, 왜 큰일이라고 걱정들을 하십니까?”
“자식아, 너희들은 신입생이라 아직 몰라. 우리 산악부에 얼마나 끔찍한 전설이 내려오고 있는지를.”
“전설이라니요?”
“우리 산악부원들 사이에서 서로 사랑하는 남녀가 생기게 되면 둘 중 하나는 반드시 죽게 되는데, 그것도 정각 밤 12시에 죽게 된다는 거야. 게다가 더욱 끔찍한 것은 또, 죽은 자가 자신의 애인을 저승으로 데리고 가려고 죽은 후 정확히 24시간이 지나서 귀신으로 나타난다는 거야.”
“참, 선배님도, 요즘 세상에 그런 얘기를 누가 믿어요.”
그러던 중, 여름방학을 맞아 산악부는 정기 등산을 가게 되었다. 모든 부원들은 저녁 7시까지 서울역에 모여 밤 기차를 타기로 되어 있었다. 그런데 혜진이는 약속 장소에 늦어서 다음 기차를 타고 산장에 도착했다. 캄캄한 밤이라 부원들 몇이서 마중을 나와 있었다. 이상하게도 부원들의 얼굴이 밝지 않았다. 혜진이는 무슨 일인가 물어 보려고 했으나, 오랜 시간 기차를 타고 오느라 지쳐서 그러겠지 생각하고, 부원들과 산장에 들어섰다. 모두들 걱정했다고 하면서 혜진이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혜진이는 사랑하는 부장의 얼굴을 찾았다. 그렇지만 산장 어디에서도 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불길한 생각이 든 혜진은 부원들에게 물어보았다.
“부장님은 어디에 갔어?”
부원들은 저마다 눈치를 볼 뿐 아무도 선뜻 말을 꺼내지 못했다. 얼마간의 어색한 침묵이 흐른 후, 선배 하나가 입을 열었다.
“혜진아, 너무 놀라지 마. 사실은 오다가 부장이 사고를 당했어. 기차에서 그만 떨어졌어.”
“그래서 어떻게 됐어? 빨리 얘기해 봐. 설마…….”
“그는 이제 이 세상 사람이 아니야.”
혜진은 순간적으로 정신을 잃고 말았다.
얼마 후, 의식을 회복한 혜진이는 정신없이 흐느끼기만 했다.
“헤진아, 그는 갔어. 이제는 네 걱정을 해. 그가 사고를 당한 시간이 바로 자정이었어. 너도 부장에게 들었지? 우리 산악부의 전설을.”
혜진은 까맣게 잊고 있었던, 그리고 믿지도 않았던 전설이 현실로 다가오자 겁에 질리기 시작했다. 부원들은 초조해 하는 혜진이를 안정시키기 위해 그녀를 간이침대에 누이고 순번을 정해서 돌보기로 했다.
드디어 다음 날 자정이 되었다. 갑자기 심한 비바람이 몰아치는 가운데 희미한 사람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혜진아, 혜진아~”
부장의 목소리가 분명했다.
전설은 미신이 아니라 사실이었다. 산장 안은 일순간 공포로 가득 찼다. 혜진이를 찾는 부장의 애타는 목소리는 점점 가깝게 들려오고 있었다. 당사자인 혜진이보다 부원들이 더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혜진은 굳게 결심했다.
‘설사 귀신이라도 어떠랴. 그래도 내가 사랑한 사람인데.’
그녀는 침대를 박차고 일어났다.
“안 돼! 나가면 안 돼! 너는 죽어. 그는 사람이 아니란 말이야.”
부원들은 일제히 소리치면서 혜진을 붙잡았다. 그러나 혜진은 완강히 뿌리치고 문 밖으로 나갔다. 밖에는 정말로 부장이 세찬 비바람을 맞으며 서 있었다.
“혜진아, 나야. 무사히 도착했구나. 네가 늦어서 얼마나 걱정했다고.”
혜진은 너무 놀라 입이 벌어지지 않았다.
“야, 나 처음 봐? 왜 그리 놀라?”
“자, 빨리 나를 저승으로 데리고 가요.”
“무슨 소리야? 저승이라니?”
“그럼 귀신이 아니란 말이에요?”
“하하, 내가 귀신이라고? 누가 그래?”
혜진은 어리둥절했다.
“오다가 기차 사고가 나서 모두 죽고 나만 간산히 살았어. 병원에 들러 오느라고 이렇게 늦었어.”
그 순간, 혜진은 머리털이 쭈뼛 서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녀는 재빨리 산장 문을 열고 안을 들여다보았다.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사고로 죽은 부원들이 혜진이를 데려가려고 그녀에게 나타났던 것인데, 사랑하는 사람이 그녀를 구한 것이다.
※출처: https://blog.naver.com/2ndsnow/222567303168
EP.16 웃고 있는 과대표
S대학교 국문과 1학년 학생들은 대학교에 들어와서 처음 가게 되는 MT에 모두들 들떠 있었다. 과대표를 맡은 정원이는 한 달 전부터 이번 MT를 준비하느라고 하루하루를 정신없이 보내고 있었다. 장소는 지리산, 일정은 2박 3일.
드디어 학생들이 고대하던 출발의 날이 되었다. 기차를 타고 학생들은 무사히 목적지에 도착하여 재미있게 이틀 밤을 보냈다. 마지막 날 아침, 학생들은 아침을 지어 먹고 산장을 출발하여 하산을 하기 시작했다. 도중에 라면으로 간단히 점심을 해결했지만, 산에서 먹는 라면이라 더없이 맛있게 느껴졌다. 그런데 지도와 나침반을 보면서 앞장을 섰던 정원이가 황급히 소리쳤다.
“얘들아, 어떡하지? 아무래도 길을 잃은 것 같아.”
학생들은 술렁이기 시작했다.
“지도를 자세히 살펴봐. 환한 대낮에 길을 잃을 리가 있나.”
“정말이야. 현재 우리가 있는 곳을 지도에서 찾을 수가 없어.”
“걱정마. 가다 보면 등산객들을 만나거나 그 사람들이 표시해 놓은 이정표를 발견할 수 있을 거야.”
한 여학생의 말이 용기를 주었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산에도 땅거미가 지기 시작해서 금세 어두워졌다. 하지만 일행은 내려가는 길을 찾을 수가 없었다. 등산객이나 이정표도 눈에 띄지 않았다. 하늘에는 먹구름이 잔뜩 끼어 달도 보이지 않았다. 더구나 음식은 모조리 바닥이 나서 일행은 모두 허기가 졌고, 오래 걸어서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점점 바람이 거세지더니 후두둑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학생들은 산 속에 완전히 고립되어 배고픔과 어둠의 공포에 몸을 떨고 있었다. 그 때였다.
“야! 불빛이다.”
앞서 가던 정원이의 들뜬 목소리가 들렸다. 일행은 불빛을 향해 걸음을 재촉했다. 불빛은 조그만 산간 마을의 것이었다. 거기에는 앙상한 초가집 서너 채가 있을 뿐이었다. 정원이는 첫번째 집 앞에서 주인을 불렀으나 기척이 없어 불이 켜진 방 안으로 들어갔다.
“얘들아, 빨리들 와봐. 음식이야!”
배고픔에 지친 학생들은 후다닥 방으로 뛰어 들어갔다. 방 안은 향 냄새로 가득했는데, 분명 누구의 제삿상인 것 같았다. 상 위에는 한 할머니의 초상화가 놓여 있었다. 그들은 제삿상이라는 것에는 신경을 쓰지 않고 오로지 먹는 데에만 열중했다. 일행이 모두 먹고 난 순간, 한 여학생이 놀란 목소리로 소리쳤다.
“이것 봐! 접시 바닥에 글씨가 쓰여 있어.”
학생들은 일제히 접시를 주시했다. 거기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의 글이 붉은 피로 적혀 있었다.
“먹은 자는 먹은 만큼 먹히리라.”
학생들은 소스라치게 놀라서 급히 방을 빠져 나왔다.
그리고 다시 길을 찾으려고 하는데, 정원이가 보이지 않았다. 방금 그 집에서 너무 급히 나오느라고 과대표가 나왔는지를 확인하지 못했던 것이다. 학생들은 무서웠지만 정원이가 걱정돼서 다시 그 집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방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옆집으로 향했다. 이 집에도 역시 불이 켜진 방이 하나 있었다. 학생들은 방문을 열고 안을 들여다 본 후, 모두 정신을 잃고 말았다. 그 방 안에도 역시 제삿상이 하나 놓여 있었는데, 향 연기 사이로 씨ㅡ익 웃고 있는 정원이의 사진이 놓여 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곳은 산에서 죽은 아들의 시체를 찾아 나섰던 한 노파가 발을 헛디뎌 추락했다는 지점이었다.
※출처: https://blog.naver.com/2ndsnow/2225740781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