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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담/미스테리 펌) 마지막 인사 (감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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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8.20 1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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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내가 사는 도시는 하루 종일 비가 내렸어. 이 비에 만개했던 벚꽃들은 다 질것 같군. 

자연이란 참 신기한 힘이 있는가 봐. 철이 바뀌거나 새로운 어떤 것들이 시작되려면 꼭 비가 오잖아. 

늦가을 비가 내린 후에는 기온이 뚝 떨어지면서 초겨울로 접어들고 늦겨울에는 가벼운 봄비가 내리면서 봄이 찾아들고... 

장대비가 쏟아지면서 여름이 시작되고.. 캬... 감수성 돋는구먼. ㅋㅋㅋㅋ 



이렇게 주룩주룩 내리는 비를 보고 있자니 한참 장마철에 돌아가신 왕 할아버지 생각이 나데. 

그래서 오늘은 왕 할아버지 이야기를 들려줄게. 무섭기보다는, 과학적인 견해로 해석할 수 없는... 

알쏭달쏭 한 그런 이야기이니까 임산부나 노약자도 이리이리 모여서 다들 정독해도 상관없음. 



우리 가족은 내가 어려서는 농사를 짓고 내가 조금 더 커서는 읍내로 이사를 나와 장사를 시작했고 

내가 대학에 입학할 때쯤엔 옆 동네로 주거지를 옮겨서 장사를 더욱 크게 확장했지. 

어렸을 때는 정말 집이 똥꼬가 찢어지게 가난했다고 해. 

정확히 몇 살 때인지는 모르겠지만 일주일 내내 밀가루 죽만 먹어서 

엄마한테 밥 좀 달라고 울고 떼쓰던 기억이 남아있는 걸 보면 말도 못하게 가난했었을 거야. 

그런데 장사를 시작하면서부터 살림이 점점 피더니 이젠 동네에서 제법 돈 좀 있다는 소리를 듣는 축에 끼게 되었어. 

그만큼 부모님이 성실하고 부지런히 일을 하셨기 때문이지. 


  
지금에야 이렇게 웃으며 글을 쓰지만 이사 온 동네 주민들의 텃세가 너무 심해서 부모님이 꽤나 고생하셨어. 

원래 시골이고, 지역사회일수록 토박이를 우대하는 습성? 그런 게 강해서 

아무리 고작 옆 동네 사람이라도 이주민은 무리에 끼워주질 않거든. 

암튼 개업하고 한 2년 동안은 상가 주민들이랑도 서먹서먹하고 

알 수 없는 따돌림에 마음고생을 했으나 역시.. 시간이 친구를 만들어 주더라고. 

시간이 흐르니까 자연스럽게 마을 사람들과 어우러지면서 

처음부터 그곳에 있던 사람들처럼 사이좋은 이웃으로 자리매김을 하게 되었지. 

흠흠. 왕할아버지를 만나게 된 건 우리가 겨우겨우 자리를 잡아가던.. 그쯤의 일이야. 

(우리 부모님 업종이 조금 특수해서 정확히 어떤 가게인지는 밝히지 못하는 점, 양해 부탁해 ㅜ ㅜ) 



우리 가게는 어린이부터 학생 아가씨 청년 중년 할아버지 할머니 등등 

전 연령층을 아우르는 모든 고객을 상대하는 업종이야. 한마디로 고객의 폭이 많이 넓지. 

어느 날, 가게에 웬 할아버지 한 분이 오셔서 필요한 물건을 찾으셨는데 마침 우리 매장에는 없었다는 거야. 

그래서 주문을 하시겠냐고 물었더니 알겠다고 꼭 가져다 달라고 주문을 하시더래. 

그런데 보통의 할아버지완 다르게 할아버지의 성품이 정말 보통 이상으로 점잖으시고 

행색도 뛰어난 멋쟁이에다가 음.. 뭐랄까 멋쟁이 프랑스 할아버지? ㅋㅋㅋ 좀 배운 신 지식인 양반? 같은 ㅋㅋㅋ 기품이 느껴지더래 

그래서 엄마가 "영감님~ 영감님은 보기 드문 멋쟁이 신 거 같아요~ 어디서 그렇게 멋진 옷을 사입으셨데용~" 하면서 칭찬을 해드린 거지. 
  
그랬더니 할아버지께서 엄청 좋아하시면서도 쑥스러우셨는지 그 길로 내빼시더래 ㅋㅋㅋㅋ 
  


그 후로, 엄마의 작은 칭찬이 활력이 되었는지 할아버지는 자주자주 가게 들리셨고 우리 집의 단골 손님이 되신거야. 
  
물론, 우리 엄마 뿐만 아니라 우리 아빠까지도 그 할아버지와 일상적인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좋은 이웃이 되었어. 
  


나는 그 당시에 대학엘 다니느라 집에 잘 내려가지 않았거든. 

그런데 내가 집에 전화를 걸 때마다 엄마는 그 할아버지 이야기를 해주면서 아무런 연고가 없던 동네에서 하루하루가 심심했었는데 

그 할아버지 덕분에 말동무도 하고 사람 사는 거 같다며 할아버지의 고마움을 막 말씀하시더라고. 
  


그러다 주말을 맞아서 집에 내려가 가게를 보는데 그 할아버지를 뵙게 되었지. 

정말 말로 듣던 대로 멋쟁이시더라고. 

위아래, 하얀 모시 한복을 갖춰 입고 하얀 중절모에 하얀색 구두를 신고.. (정말 광 번쩍번쩍 나는 백구두) 

잘 정돈된 하얀 백발머리에 눈썹조차도 하얀.. 

와.. 진심 가게 문을 열고 들어오는데 간달프가 강림하는 줄 알았음. ㅋㅋㅋㅋ 
  
  

어색해서 쭈뼛쭈뼛 거리며 '안녕하세용' 인사를 했더니 나를 아주 그냥 원래 알고 지냈던 손녀처럼 

"오오옹. 학교 다니다 올라왔구먼" 하시면서 지갑에 있는 지폐 몇 장을 손에 덥석 쥐어주는 거 아니겠어. 

이걸 받아야 할지 어째야 할지 몰라서 얼음이 되어 있자 엄마는 그냥 받으라고 막 그래서 받았지. 

그게 왕 할아버지와의 첫 만남이었어. 



그날 밤 엄마랑 자려고 누워서 이리 뒹굴 저리 뒹굴뒹굴하다가 엄마에게 왕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자세히 듣게 되었지. 

왕 할아버지한테는 자식도 3명이나 있고 그 자식들을 다 잘 가리켜서 다들 내로라하는 대기업에 다니고 있대. 

물론, 할아버지 연세가 많으시니까 그 자식 분들도 중년이 훨씬 넘은 어른들이겠지. 



할머니와 동네에서 소문난 닭살 커플로 지내셨는데 몇 해 전에 할머니께서 지병으로 돌아가시게 되어 혼자되셨다는 거야. 

그런데 하나둘 나이가 먹어가다 보니 할아버지가 적적하기도 하고 외로웠던 거지. 

돌아가면서 1년씩이라도 자식들하고 함께 살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더니 

그 다음부터는 자식들이 약속이나 한 듯 명절에 아무도 내려오지 않더라는 거야. 



그래서 송장처럼 집구석에 누워지내느니 읍내나 돌아다니면서 쇼핑하며 지내는 게 삶의 낙이 된 거래. 

그러다 어쩌다 우리 가게에 들러서 엄마 아빠와 친해지게 된 거고. 

그 친해진다는 게 별다를 것도 없어. 항상 정해진 시간에 가게에 들르신다는 거야. 

날마다 오전 11시 정도가 되면 자전거를 타고 짠~ 하고 오신대. 

그럼 그때 시간 맞춰서 엄마 아빠랑 같이 커피도 마시고 어쩔 때는 다과도 같이 하고 

또 어쩔 때는 숟가락 한 개 더 얹어서 밥도 먹고 말이야. 


  
시간이 점점 흘러가자 할아버지는 가게에 머물다 가는 시간이 점점 늘어갔고 

더 많은 대화를 할수록 할아버지와 우리 식구들은 가까워졌지. 

어느 정도였냐면 으레 토요일 점심은 할아버지가 우리 집에 오셔서 함께 식사를 하시거나 

내가 시골에 내려가는 주말에는 가족들이 삼겹살을 사서 할아버지네 마당에서 고기 구워 먹던가 하는. 

정말, 이웃은 또 하나의 가족이라는 말을 실감하며 재미있게 지냈던 것 같아. 
  


사실, 우리 아빠는 유복자로 태어나셨거든. 

우리 아빠가 6남매 중의 막내인데 할머니가 아빠를 임신 중이셨을 때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거든. 

그래서 우리 아빠는 아버지의 정을 모르고 자란 터라 마치 그 할아버지가 아버지인 것처럼 정말 정말 잘 모셨고 

또 그 할아버지도 어른으로 빈틈없이 아빠랑 엄마께 잘하셨다고 생각해. 

그런데 그렇게 사이좋은 이웃 생활이 길어지자 어디선가 시기하는 무리들이 나타났지. 



그 무리는 바로! 할아버지의 자식들이었어.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명절날 코빼기도 안 비추던 작자들이 

어디서 무슨 이야기를 들었는지 날을 잡고 가게에 찾아왔더라는 거야. 

마치 우리 엄마랑 아빠가 계획적으로 할아버지한테 접근해서 뭔가를 빼돌릴 수작을 부리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을 품고. 

아들 둘, 딸 하나가 가게에 와서는 하는 말이 

"아니, 자식이 멀쩡히 셋이나 있는데 왜 댁들이 자식 노릇 딸 노릇이냐. 왜 가만히 있는 사람 동네에서 욕을 먹이냐고" 

하면서 다시는 할아버지랑 엮이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나중에 안 사실인데, 그 아들들 중 며느리 하나가 할아버지랑 같은 동네 사람인지라 

할아버지가 매일같이 우리 식구들이랑 어울리고 같이 밥 먹고 놀러댕기고 이렇다는 걸 친정을 통해서 들었나 보더라고. 
  


참. 우리 부모님은 기가 막혔지. 

물론, 할아버지가 알게 모르게 우리 집으로 뭔가를 끊임없이 날라주셨다는 건 인정! 

예를 들면 이번 주에는 쌀 두 가마니. 그다음에는 사과 한 박스. 그다음다음에는 포도즙 한 박스. 

그 다다다음에는 고춧가룻 몇 포대 이런 식으로. 꼭 자식새끼 챙기는 부모마냥. 


  
그런데 문제는, 우리 부모님도 그걸 그대로 받기만 한 분들이 아니라는 거지. 
  
할아버지 모시고 가서 겨울 패딩 사드리고, 할아버지네 겨울 동안 쓰실 기름 세 통 넣어드리고, 따뜻하시라고 옥장판 넣어드리고, 

눈이 잘 안 보이신다고 하니까 안경점에 가셔서 돋보기 새로 맞춰드리고 전화가 잘 안 터진다 하니까 전화기 바꿔드리고 

내가 보기엔 정말 주거니 받거니 전래동화에 나올 만큼 사이좋게 잘 지냈던 것 뿐인데 말야. 
  


우리 엄마는 그날 아랫목에 드러누워서 밤새 끙끙 앓더라고. 

난데없이 들이닥쳐서 사람을 꽃뱀+사기꾼 취급을 하며 그것도 3명에게 둘러싸인 채로 그 막말을 들었으니. 

제대로 된 해명을 하지도 못했거든. 
  


그 이후로 한동안 왕할아버지는 걸음이 뜸하셨다고 해. 

같은 동네분들께 들리는 말로는 화병으로 앓아누웠다고도 하고 감기로 오래 아팠다고도 하더래. 
  
아빠는 걱정이 되어서 들여다보려고 했는데 엄마가 소스라치게 놀라면서 그러지 말라고, 

괜히 남의 집 가정사에 우리가 끼어서 더는 오해받는 일 없게끔 하자고 ㅜㅜ 
  
정말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한 날들이 갔던 거지. 



그 이야기를 들은 나는 마음이 안 좋더라고. 

그래서 시골에 내려가는 주말을 이용해서 엄마 아빠에게 말도 없이 왕 할아버지 집에 몰래 찾아갔어. 

갔더니 정말 2주 정도 되는 사이에 뭔 일이 있었는지 몰라도 완전 5년은 더 늙어버린 거 있지. 

완전 깔끔하시고 멋쟁이던 분이 자기를 돌볼 겨를도 없었는지 머리는 산발에, 옷은 땀내가 풀풀 나고 

밥은 대충 물에 말아 드시는지 냉장고에 반찬은 다 말라있는 거야. 
  


할아버지께서 정말 힘겹게 일어나서 하시는 말씀이. 

너희를 다시 볼 면목이 없다고. 자식들이 다 커버려서 혼을 내도 듣는 나이가 아닌지라 어떻게 가르칠 방법도 없다는 거여. 
  
할아버지께서 젊은 시절 마도로스 셨데. 그래서 돈은 무지무지 많이 벌어서 집안은 윤택했는데 

자식들과 오랜 세월 떨어져 살다 보니 아버지로서의 정은 거의 없어서 자식들이 커가면서도 데면데면했다는 거야. 
  
생각해보니 자식들 입장에서는 그런 아버지가 이제 와서 가까이 가족처럼 살자는 것이 부담스러울 수도 있겠더라고. 
  


암튼 할아버지는 지금 당장 현금은 얼마 없고 산이랑, 밭이랑, 논이랑, 집이랑 이런 것들이 좀 있는데 

혹시 그걸 야금야금 팔아서 우리 집에 갔다 바치는 줄 알고 자식들이 파르르 분노해서 그 난리굿을 친 거더라고. 

그래서 할아버지께서 오히려 너희들한테 받은 것보다 글쓴이네 아범한테 얻어먹고 입은 게 곱절은 많다고 막.. 

고래고래 화내시고 그러셔서 자식들이 오해를 풀고 다시 올라가셨다고는 하는데 

실제로 어떤 대화가 오갔는지는 내가 모를 일이었지 


  
할아버지 집엘 다녀와서 부모님께 할아버지가 몸져 누워계시더란 말을 드리자 

아빠는 놀래서 차로 달려가서 할아버지를 모시고 병원에 입원시켰어. 
  
그리고 다시 예전처럼 자주는 아니지만 우리는 여전히 주말에 같이 밥을 먹고 종종 커피타임을 가지고 

또는 할아버지네 비닐하우스를 빌려서 주말농장도 짓고 재미나게 보냈지. 
  


그런 세월이 한 해가 가고 두 해가 가자 우리를 이상 야리꾸리하게 생각하던 자식들의 오해가 풀렸는지 

큰아들이라는 남자가 명절에 찾아와서 전에는 정말 미안했다며 과일상자를 들고 왔더라고. 
  
그 때 내가 옆에 있었는데 우리 아빠가  "우리는 식구라고 해봤자 우리 부부랑 글쓴이 밖에 없다. 

아버지는 예전에 돌아가시고 어머니도 몇 해 전에 돌아가셔서 이웃을 사귄다는 게 참 좋다. 

실제로 아버님이라고 생각한다면 오바겠지만 나보다 어른이 있다는 게 늙어갈수록 좋은 거더라. 

앞으로 자주자주 연락하자" 뭐 이렇게 말씀하시더라고. 
  
ㅜㅜ 어휴 부연 설명이 길었네. 



  
그렇게 오해도 다 풀리고 하루하루가 행복한 날들이 흘렀어. 

그런데 있잖아. 사람이 마냥 행복할 수는 없는가봐. 그날도 주말이었거든. 

원래는 주말이면 할아버지가 우리 집에 오시던가 우리가 할아버지네 집으로 놀러를 가던가 하는데 

하필 그 주가 우리 외할머니 생신이셨어. 



그래서 외갓집 식구들이 모두 모여 1박 2일로 놀러를 갔단 말이여. 

물론, 왕할아버지껜 우리 놀러 다녀오니까 오늘은 목욕 다녀오셔서 이발하시고 그냥 집에 계시라고 일러두었지. 
  
우리 가족은 남해 어딘가 펜션을 잡아서 하루 죙일 지지고 볶고 먹고 마시며 놀다 보니 곧 밤이 되었지. 



엄마 아빠는 일찍 주무시고, 잠이 오지 않던 나는 뒹굴뒹굴 거리며 엄마 옆에서 테레비를 보고 있었어. 

잠을 곤히 자던 엄마가 벌떡, 강시가 일어나듯이 말 그대로 벌떡 일어나더니 "야! 글쓴이! 핸드폰 내놔봐 핸드폰!" 하시는 거야. 
  
갑자기 웬 핸드폰 타령인가 싶어서 "엄마, 꿈꿨떵?" 하고 배시시 웃었더니 
  
내 머리통을 주먹으로 완전 세게 후려치면서 "아 진짜, 휴대폰 달라고 이년아!" 하는 거야. 
  
그래서 아 뭐지? 자다 말고 이게 뭐 하는 짓인가 나는 정말 억울했지만 ㅜ ㅜ 한 대 더 맞기 전에 얌전히 휴대폰을 찾아 드렸지. 
  


엄마는 어딘가로 막 전화를 거시더라고. 아마도 상대가 안 받는 모양. 

그래도 연달아 두 번, 세 번, 네 번 차례까지 거시더니 갑자기 어딘가로 전화를 걸어서 
  
"응~ xx엄마, 나야. 혹시 xx동네 이장님 누군지 알아? 그 동네 이장님 번호 알면 나 좀 가르쳐줘" 
  
xx동네는 왕할아버지 동네거든. 



나는 갑자기 싸~한 느낌에 사로잡혀서 엄마, 대체 왜 그래? 응? 왜 그래? 물었어. 
  
엄마는 손을 후들후들 떨면서 굉장히 흥분된 사람처럼 진정을 못하시더라고. 
  
전화번호를 받아 적더니 동네 이장이라는 분께 전화를 하는 거야. 
  
"네. 안녕하세요. 이장님이시죠. 늦은 시간에 정말로 죄송한데요.  왕할아버님 댁에 한 번만 가보시면 안 될까요. 

제가 멀리 나와있는데. 아무래도 이상해서요. 전화도 안 받으시고요. 제발 부탁드립니다" 이러는 거야. 
  


나는 그제서야 짐작이 되면서 가슴이 철렁 내려 앉더라고. 

단지, 엄마가 나쁜꿈을 꾸었을 거야. 그냥 걱정이 돼서 그랬을 거야. 

안 좋은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이윽고 다시 걸려온 전화에 우리는 부랴부랴 짐을 챙겨서 집으로 다시 가야만 했어. 
  


이장님이 할아버지 댁에 찾아갔더니 집이 훤하게 불이 켜져 있더란다. 마치 누군가 찾아올 것처럼. 
  
그래서 웬걸~ 안에 계시나 보네~ 싶어서 초인종을 눌렀는데 대답이 없더래. 

대문을 슬쩍 열어봤더니 그냥 열리더래. 마찬가지로 현관문도 잠가두질 않아서 그냥 열리더래. 

집에 들어가 봤더니 하얀색 두루마기에 모자까지 쓴 채로 쇼파에 앉아 돌아가셨더래. 
  


처음엔, 할아버지가 그렇게 앉아 계신 채로 테레비를 보고 계신 건 아닌지 생각했는데 

불러도 기척이 없고 흔들어도 미동이 없어서 피부를 만져봤더니 ......  살아있는 사람이 아니었다지. 
  
그렇게 왕할아버지는 돌아가시게 되었어.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데 정말 기다렸다는 듯이 비가 퍼풋더라고. 



정신없이 부랴부랴 할아버지의 장례를 치르게 되었고 우리는 틈 나는 대로 장례식장을 오가며 일손을 도왔지. 
  
그런데 탈상을 하루 앞둔 새벽. 

할아버지 자식 분들이랑 우리 엄마 아빠랑 술잔을 주거니 받거니 하며 할아버지와의 추억을 곱씹고 있던 중. 
  
큰아들 되는 분이 엄마에게 묻더라고. 그런데 그 시간에 아버지 돌아가신거 어떻게 알았냐고. 

모두들 엄마 이야기를 듣고 싶다는 눈치더라고. 사실 나도 궁금했는걸. 
  
모두가 궁금해하자 엄마가 차분히 말씀을 해주시더라. 
  


내 짐작처럼 엄마는 꿈을 꿨대. 
  
꿈속에서 할아버지가 평소에 아껴 입던 하얀 모시옷을  입으시더래. 그러고는 활짝 웃더란다. 

그리고는 한지(종이)로 된 종이 신발을 조심조심 신으시더니 어디선가 나타난 흰 소, 하얀 소 등에 올라타셨다는 거야. 

왠지 그 모습이 불길해서 "아버지! 내리세요! 내려요!" 하고 흰 소 등에 올라탄 할아버지를 끌어내리려고 했는데 

할아버지가 "괜찮어. 나는 이제 가. 너는 삼십 년 후에나 온나." 하시고는 흰소를 채찍으로 내려쳐서 터벅터벅 안개 사이로 사라졌다는 거야. 


  
엄마는 그대로는 보낼 수가 없어서 짙은 안갯속을 계속 계속 달렸대. 

한치 앞도 안 보였지만 왠지 계속 달리면 할아버지를 따라잡을 수 있을 것만 같더라는 거야. 
  
그런데 정말로 숨이 턱밑까지 차오를 만큼 달렸더니 안갯속에서 앞서가는 흰 소 궁둥이며 꼬리가 보이더래. 

손을 뻗어서 앞서 달리는 흰 소 꼬리를 붙잡았더니 할아버지가 정말 생전 본 적 없이 성난 얼굴로 뒤돌아보며 

"땡땡 어멈! 네가 정녕 나를 따라 오려고 그래? 어서 그 손 치우지 못하겠어!" 하면서 채찍으로 손목을 사정없이 내려쳤다는 거야. 
  
그 고통이 얼마나 심했는지 사실 아파서 잠에서 깼는데 깨고 보니 보통 꿈이 아니었다는 거지.. 


  
그 이야기를 하자 옆에서 술을 드시고 계시던 동네 왕할아버지 친구분들께서 

"너는 그 꼬리 붙잡고 계속 달렸으면 왕할배랑 같이 저 세상 간 거여. 정 떼고 갈라고 그랬는 갑다."고 하시더라. 
  
어쨌든 저쨌든 그렇게 왕할배는 우리의 곁은 떠났고. 한동안 우리 부모님은 많이 슬퍼하셨어. 나역시. 
  


그리고 한두 달이 흘렀나, 할아버지 집을 처분하겠다고 

자식들이 이것저것 짐을 정리하다 발견했다며 우리 부모님께 통장 한 개를 내밀더라고. 

보니까 할아버지가 고추 팔고, 마늘 팔고 할 때마다 차곡차곡 모았는지 통장에 오만 원, 십오만 원, 많을 땐 삼십씩. 

푼돈을 조금씩 모아서 5백만원을 모으셨더라고. 



그 통장을 왜 우릴 주냐고 했더니 통장 맨 앞 칸에 삐뚤빼뚤한 글씨로 '땡땡 어멈 신혼여행' 이렇게 적혀있는 거야.. 
  
언젠가 우리끼리 놀 때 엄마가 신세 한탄 반, 농담 반으로 나는 여즉껏 신혼 여행도 못 가보고 살았다고.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었대. 
  
왕할아버지는 우리 엄마를 친딸로 생각했는지 그걸 기억하고 있다가.. 돈을 모으셨던 거였어. 
  
자식 분들이 그건 꼭 우리 엄마께 드려야겠다며 내미는 걸 엄마는 한사코 거절했어. 정말 그럴 의도가 아니었다고.. 
  
그러자 자식분들께서 이제는 본인들도 오해였다는 걸 다 안다고 아버님 집 정리하다 보니 땡땡 엄마 손 안 탄 곳이 없더라면서.. 
  
그래서 그 통장을 엄마는 받게 되었고. 정말, 그날 우리 엄마는 가게 화장실에 쭈그려 앉아서 눈물 콧물이 범벅이 되도록 우셨어. 
  


그리고 작년에. 엄청난 폭우로 산사태가 나고, 지반이 내려앉고 그랬잖아. 

왕할아버지 무덤이 좀 비탈진 곳에 있었는데 비가 계속 오면서 무덤이 허물어졌거든. 

다행히 관까지 밀려나가고 그런 건 아니라서 다행이었는데 엄마가 너무 걱정이 된다고 그래서.. 
  
그 돈으로 포크레인 불러다가 주변 정리 다시 깔끔하게 하고 

잔디 새로 깔고  비석 대따시 큰걸로 떡하니 올려놓고 묘송 사다가 예쁘게 박아놨다. 
  
동네 사람들이 뭐 그렇게까지 하냐고 뭐라고 했지만 

우리 엄마는 나중에 죽어서 할아버지 만나면 칭찬 많이 받을 거라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엄청 뿌듯해하셨어. 
  
  

오늘 이야기는 뭐 정말 무섭지도 않고 별거 아닌 이야기다 그치. 

근데 나에겐 사연이 있는 이야기인지라 쓰면서 몇 번 울컥울컥했어. 
  
엄마랑 둘이 자려고 누울 때 왕할아버지 이야기 자주 하거든. 

엄마 생각엔 할아버지가 옷을 다 갖춰 입고 쇼파에 앉아 있던 게 아직도 마음에 걸린다고 하셔. 
  


그날, 아무래도 우리가 일찍 돌아와서 집에 들를 거라 생각하신 건 아니었나 싶다고. 

그래도 꿈에서라도 그렇게 인사하고 가셔서 참 고맙다고.. 


출처 : 네이트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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