린네아의 가장 오래된 기억은 아버지의 커다란 손과, 귓가에 울리던 파도 소리였다. 그때의 그녀는 아직 아주 어려서, 자기 이름조차 또박또박 말하지 못했지만 이미 여러 종류의 물고기와 새를 구분할 줄 알았다. 그것은 지칠 줄 모르는 아버지의 가르침 덕분일 수도 있고, 혹은 그녀가 타고난 남다른 재능 덕분일 수도 있다.
수많은 아침, 아버지는 그녀를 번쩍 안아 올려 자신의 어깨 위에 태우고 함께 바닷가로 나가 떠오르는 해를 보았다. 바닷바람이 그녀의 부드러운 머리카락을 어루만졌고, 떠오르는 햇살은 바다를 황금빛으로 물들였다. 어린 그녀의 눈에 비친 세상은 한없이 넓고, 또 한없이 따뜻했다.
「보렴, 우리 린네아. 저건 서리 범고래란다」
아버지는 금빛으로 반짝이는 바다 저편을 가리켰다.
「저 녀석들은 배랑 경주하는 걸 좋아해서, 물 밖으로 뛰어오르면 아주아주 큰 물보라를 일으키지」
「큰 물보라!」
린네아는 신이 나서 외치며 작은 손으로 먼 바다를 가리켰다.
「저건 긴 깃 따오기야」
아버지는 다시 다른 방향을 가리켰다.
「목에 볼록한 부분이 보이니? 저건 목주머니라서 먹이를 많이 담을 수 있지. 다람쥐가 나무 구멍에 견과류를 숨겨 두는 것처럼 말이야. 아빠가 해준 다람쥐 얘기 기억나니?」
린네아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모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의 그녀는 이 평범한 대화가 사실 아버지가 자신만의 방식으로 이 세상을 가르쳐주는 것이란 걸 몰랐다.
어머니는 아버지처럼 말이 많은 편은 아니었지만, 그 대신 모든 사소한 부분에서 사랑을 보여 줬다. 어린 린네아의 옷은 언제나 깨끗하고 단정했으며, 양말에 난 구멍은 늘 정성스럽게 꿰매져 있었다. 식탁 위에는 린네아가 가장 좋아하는 꿀 케이크가 자주 놓여 있었다.
삐죽삐죽 튀어나오는 「머리카락」 두 가닥 때문에 고민하던 어느 날, 어머니가 린네아의 그 작은 마음을 알아챘다. 그리고 다음 날, 어머니는 정성껏 만든 작은 모자를 꺼내 주셨다.
「여자아이니까, 외모에 신경 쓰는 건 당연하지. 우리 린네아, 마음에 드는지 한 번 써 볼래?」
부드러운 천에 귀여운 무늬. 모자의 양옆은 딱 알맞게 린네아의 잔머리를 가려 주었다.
거울 속의 작은 소녀는 예쁜 모자를 쓰고 있었고, 다른 아이들과 똑같아 보였다.
「응, 마음에 들어! 이걸 쓰면 다른 친구들이 날 안 놀릴 거야!」
린네아의 튀어나온 두 가닥의 머리카락은 결국 작은 날개가 되었고, 피부 위에는 빛을 받으면 은은하게 반짝이는 미세한 결정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때때로 어디에선가 희미한 노래가 들려오는 것 같기도 했다.
「가거라, 요정의 아이야. 마을과 도시로 가서, 인간 친구의 손을 잡거라. 요정의 세계는 네가 모르는 슬픔으로 가득하단다…」
이 모든 것은 그녀에게 오래된 책 속 「체인질링」의 전설을 떠올리게 했다. 어쩌면 자신은 요정이 남겨 둔, 인간 아이를 대신하기 위한 존재가 아닐까?
「내가… 정말 요정인 걸까? 엄마 아빠는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날 쫓아내면 어떡하지…」
두려움은 들판의 잡초처럼 걷잡을 수 없이 자라났다. 린네아는 언제나 모자를 눌러 쓰고, 긴 소매 옷을 입으며 인간이 아니란 흔적을 숨기려 했다. 하지만 이런 비밀이 언제까지 이어질 수 있을까?
며칠 동안 고민한 끝에 그녀는 결국 입을 열기로 결심했다.
린네아는 떨리는 손으로 모자를 벗고, 부모님 앞에 그 작은 날개를 드러냈다. 그리고 「체인질링」에 대한 잔혹한 추측을 조심스럽게 꺼냈다. 쫓겨날 준비도, 심판을 기다릴 각오도 이미 끝낸 채, 그녀는 눈을 꼭 감았다.
그러나 예상했던 꾸중도, 포옹도 돌아오지 않았다. 그 자리에 남은 것은 그저 어쩔 줄 몰라하는 아주 긴 침묵뿐이었다.
그날 이후, 스위치라도 눌린 듯 집 안에는 이상한 변화가 찾아왔다.
부모님은 그날 밤의 일을 입에 올리지 않았고, 대신 더욱 일에 몰두하며 아침 일찍 나가 밤 늦게 돌아왔다. 겉으로는 여전히 엄마 아빠라 불렀지만, 린네아는 알고 있었다. 이제 그들은 친부모가 아닌 양부모가 되었고, 당연하게 느껴지던 친밀함은 서서히 식어 가고 있다는 것을. 그 자리를 대신한 것은 조심스러우면서도 어딘가 거리감이 느껴지는 「배려」였다.
그녀 또한 눈치를 보는 법을 배웠다. 대화 속 미묘한 억양의 변화, 문을 닫을 때 힘의 차이, 점점 길어지는 식탁 위 침묵의 시간. 린네아는 그 모든 감정을 읽어 내기 시작했다. 그녀는 여전히 이 집의 딸이었지만, 어딘가에 잘 모셔 둬야 하는 「손님」에 더 가까웠다. 변함없어 보이는 일상은 조용한 무너짐 속에서 흘러가고 있었다.
그리고 이 위태롭던 균형은 오래가지 못했다.
얼마 후, 양어머니가 큰 병에 걸렸다. 생사의 경계를 오가는 시간 속에서, 친자식에 대한 그리움은 모든 것을 압도했다. 병이 나은 뒤, 양어머니는 말수가 눈에 띄게 적어졌고, 점점 쇠약해지는 아내를 바라보던 양아버지는 결국 결정을 내렸다.
어느 아침, 양아버지는 묵직한 모라 주머니를 린네아의 손에 건네주었다. 그것은 그들이 내놓을 수 있는 전 재산이자, 「죄책감」이라는 이름의 무거운 대가였다.
「엄마는 이제 회복했지만, 그동안 우리는 오래 고민했다. 엄마 아빠도 이제 나이가 들었고, 요즘은 몸도 예전 같지 않아서…」
「미안하다, 린네아… 남은 시간 동안, 북쪽으로 가서 우리 진짜 딸을 찾아보고 싶구나」
「…이건 급할 때 쓰렴. 스페란자 주인에게는 이미 말해 두었다. 거기 아이들이 널 도와줄 거야」
더 이상의 긴말도, 붙잡는 손길도 없이, 그날 아침 양부모님은 떠나갔다. 그들이 린네아를 사랑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다만 혈연의 부름과 삶의 무게 앞에서, 그 사랑이 너무나도 나약했을 뿐이다.
린네아는 고개를 숙인 채, 손에 남은 돈주머니와 어머니가 남겨 준 모자를 바라보았다.
그날 이후로, 린네아에게는 더 이상 「집」이 없었다
---------------------------------------------------------------------------------
인간부모가 린네아를 엄청 아끼면서 키웠고 자연에 대해 잘 설명해주던 아버지 영향으로 린네아가 박식한 동식물학자가 된건데
린네아한테 날개가 자라면서 린네아가 친딸이 아니고 요정이며 친딸이랑 바꿔치기되었다는걸 알게 됨.
그때부터 부부가 친자식 보고싶다는 마음이 커져서 린네아와 전재산을 지인(스페란자)에게 맡기고 친자식 찾으러 스네즈나야로 떠남.
원신은 양자도 친자이상으로 아끼고 잘 키운 케이스가 워낙 많았어서 더 독특해보이는 케이스이긴 한데 (물론 키니치 아빠라는 최악의 케이스가 있지만)
어떻게 보면 애초에 양자로 데려온게 아니라 친자인줄 알고 키운게 뻐꾸기마냥 우리집 딸을 데려간 요정의 딸 <- 이게 크긴 한듯... ㅠㅠ
아니 애를 바꿀거면 사정을 좀 말하고 바꿔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