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늘 회차의 은수원의 행동과 말이 소위 독자들이 원하는 "사이다"라고 생각 돼
그간 은수원은 부조리에 끌려다니고, 폭언에 미소를 꾸며내고, 무논리에 뒤흔들리며 모든걸 견뎌내는 "고구마" 행동으로 계속 보이다가, 결국 다들 원하는 "사이다"의 결과로 이어졌지. 그래서 금빛은행이 바뀌는 듯 했잖아? 하지만 결과는 다시 "고구마"로 돌아가지. 악의 축은 돌아오고, 여전히 은수원은 잠을 못 이루고 과로에 시달리고 그러다가 삼도천에 발 잠깐 담궜다가 빼고
마찬가지로 작가의 다른 작품 어바등의 박무현도 그래. 그간 불호평을 여럿 봤는데, 그중 적지않은 사유가 "박무현 답답하다" 이거 였어.
그러다가 은수원이 전두엽이 갈라지지. 그렇게 되니 소위 말해 "사이다" 행동을 하는 거 같지 않아?
억지논리에 끌려다니지 않고, 타인의 생떼에 단호하게 일갈하고, 귀찮은 일은 떠넘기고, 자신의 물품이 손상되자 타인의 물건을 서슴없이 가져와 사용하지.
자신을 향한 불의에 대한 거침없는 시원한 행보를 보여주잖아
잠깐 처음 돌아가서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을 꿈꾸는가?"를 말하고 싶어. 이 소설은 한없이 인간에 가까운 안드로이드를 폐기하는 화자의 고뇌를 그려내는 작품라고 생각해. 결론은 그 행위는 타당하다, 였어. 왜냐면 안드로이드는 결국 인간성을 모방하여 인간을 흉내내나, 결코 인간일 수 없는 것들이거든.
작품에서 안드로이드와 인간의 결정적인 차이점인 공감능력이였어
타인이 불행을 겪으면 그 사람에 대한 걱정이 아니라, 그 불행히 자신에게 벌어질지도 모른다는 걱정을 하는거지. 결국 모든 관심은 스스로에게만 수렴해.
그러니까 왜 이런 이야기를 하냐면, 뭔가 비슷하지 않아? 무엇보다도 자신을 우선한 판단과 행동. 전두엽이 갈린 은수원이 보여주는 말과 행동들에서 나는 안드로이드를 떠올렸어.
그러니까, 만약에 정말로 저 작품이 모티브가 맞다면, 작가가 혹시 물어보는 게 아닐까?
"그러니까 소위말해 독자들이 그렇게 원하는 "사이다" 행동을 보여줬는데 어떤가요?"
이 모든 부조리극이 어떻게 느껴져 다들? 불의를 참지 않고, 부조리에 대항하고, 자신을 우선시하는, 그러니까 인내하지 않고, 미소를 꾸며내지 않고, 타인을 배려하지 않는 은수원이 어때?
하지만 반대로 위 작품을 떠올리면 이런 질문도 떠올라
"그래서, 그 사이다 행동은 비판되야 마땅한가?(안드로이드는 폐기되야 마땅한가?)"
우리는 참고 견뎌야 하는거야, 아니면 대항하고 분노해야 하는거야?
내가 말이 장황해서, 조리있게 내 말을 전달하지 못해서 진짜 아쉬워.. 그래도 읽어줘서 고마워! 은용꾸 아..... 진짜 존나 재밋다 진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