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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유학 실패담

무명의 더쿠 | 11-16 | 조회 수 4269
저 밑에 누가 인터넷에는 성공한 사람들만 글 쓴다고 하길래 어차피 익명이니까 내 실패담 풀려고. 물론 자표는 최대한 자제해서...

나덬은 부모님이 어려서부터 나랑 동생이 부모님과 같은 직업을 택하길 기대하심. 어렸을 때의 난 멋도 모르고 그러겠다고 했음. 그래서 공부 진로도 이쪽으로 생각하고 자람.

대학교 때 미국으로 유학옴. 전공은 부모님 하시는 일과 관련이 약간 있지만 좀더 general한 쪽으로 했고 (대학원부터 본격적으로 진행할 생각이었음) 관련 수업을 신청함.

첫 수업부터 깨달았음. 이건 내 길이 아니다. 내가 생각했던 것과 다르다. 결국 학부 전공을 더 파면서 여기서 좀 마이너한 길을 택함. 이건 박사공부까지 필요한 길이었음.

부모님은 실망했지만 4년 동안 떨어져 살면서 서로 사이도 안 좋아지고 해서 나는 가차없이 내가 원하는 쪽으로 다른 주에 있는 대학원에 진학함. 석박사 통합 과정이었는데, 석사는 금방 따고 박사를 따기 위해 계속 노력함.

이 과정에서 건강에 이상이 옴. 정신적으로도 신체적으로도 힘든 시기가 계속됨. 연구는 진척이 없고 절망에 빠짐. 여기에 부모님은 내가 부모님의 기대를 저버려서 벌 받는 거라는 식으로 말씀하심. 이때 진짜 연을 끊고 싶었다.

한편, 동생은 학부부터 착실히 부모님이 원하시는 길을 감. 내가 보기엔 동생의 적성에도 딱 맞지 않는 것 같은데 동생은 그래도 잘 버텨서 졸업하고 대학원도 그쪽으로 가서 착착 부모님의 인맥 도움 받으며 자리를 잡아나감.

나는 학교 안에서 연구 말고 다른 일거리도 찾아보다가 내 적성에 더 맞는 일을 찾아냄. 결국 건강상의 이유로 휴학하고 새로 찾은 일을 하다가 복학할 기간을 넘겨서 학업은 포기하고 그냥 아예 새 길로 나감.

결국 지금 사는 곳은 대학원 때문에 오게 되었지만 cost of living이 나쁘지 않고 그동안 살면서 정붙인 사람들이 있어서 나한테 제2의 고향이 되었음. 페이스북에서 박사학위 받고 교수나 연구원으로 일하는 친구들 보면 약간의 아쉬움이 있기도 함. 내 이십대를 바쳤는데 아무것도 못 이루고 결국 다른 일을 하고 있으니까... 하지만 대학원생일 때보다 돈은 많이 벌어서 좋고, 솔직히 내 유리멘탈로 연구 성과 꾸준히 내고 제멋대로인 학생들의 수업을 이끄는 생활을 할 수 있었을 것 같지 않음. 특히 요즘 같은 상황에서는 더욱...

그냥 자기합리화일 수도 있지만, 그래도 박사공부한다고 삽질했던 경험이 지금의 나를 만들어준 거니까 지금 새로 찾은 일도 잘할 수 있는 거라 믿음.

건강은 많이 회복되었음. 부모님하고 거의 연락을 끊은 게 가장 도움이 된 것 같음.

그렇게 바득바득 부모님 뜻을 거역하며 했던 공부를 마치지 못했다는 생각을 하면 아직도 속이 쓰림. 하지만 사실은 지금 하도 바쁘게 살아서 우울할 새가 별로 없음.

나중에 더 늙으면 더 후회하게 될지는 모르겠음. 지금은 그냥 먹고살기 바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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