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얘기 할까요
보통 이럴 땐 거창한 이야기 말고 좋아하는 게 뭐냐 취미가 뭐냐 뭐 이런 거 얘기 하는 게 좋은데 앵커님은 둘 다 없으시니까 앵커님은 원래 꿈이 앵커 되는 거였어요? 어릴 때부터?
아주 어릴 때는 어머니처럼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어요 그런데 영 소질이 없어서 포기했어요 그리고 철들 무렵부터는 기자가 되고 싶었고요
꿈을 이루신 거네요 그럼 기자가 된 이유는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아니오 그렇게 거창한 건 아니고 음 화가 나서요 사람들이 너무 쉽게 말을 바꾸고 거짓을 얘기하고 그리고는 죄책감조차 갖지 않는 게 너무 화가 나서요 그렇다고 그런 사람들한테 화풀이하려고 기자가 된 건 아니고요 적어도 진실이 뭔지는 얘기하고 싶었어요
앵커님한테는 잘 보이겠어요 사람들이 얼마나 이기적이고 거짓투성이인지 그래서 괴롭겠어요
하진 씨는 좋아하는 게 뭐예요
아 저요? 음 사진 찍는 거 좋아한다는 얘기는 지난번에 했었고 운동하는 것도 좋아하고 쇼핑하는 것도 좋아하고요 그리고 음악 듣는 것도 좋아하고 영화 보는 것도 좋아하고 그리고 책도 조금 좋아하고 먹는 거를 제일 좋아하고 왜 웃어요?
아니 질문을 잘못했다 싶어서 밤새 안끝날 것 같아서
그럴지도 몰라요 좋아하는 게 많아서 좋네요 앵커님 웃는 것도 지금 이 상황에서 되게 안 어울리는 감정인 거 아는 데 이 시간이 좋아요 앵커님이랑 이렇게 둘이 이야기하는 시간
정훈아 이 세상 사람 전부가 몰라도 넌 알 거야 이 상자가 엄마의 보물 상자라는 걸 이 상자가 가득하고도 넘칠 만큼 넌 나에게 보물 같은 순간들을 선물해 주었어 그러니 정훈아 한 치도 의심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엄만 정훈이 니가 엄마 아들이어서 정말 정말 행복했어 정훈아 엄마한테 약속해줄래 소중한 것이 생기면 망설이지 않고 꼭 잡겠다고 부디 니가 행복해졌으면 좋겠어 다른 사람을 위해서가 아니고 너 자신을 위해서
불안해서요 이게 마지막일까 봐 애초에 나 혼자 좋아해서 시작한 거였잖아요 그러다가 스토커가 나타났고 앵커님은 저 걱정돼서 혹시 잘 못될까봐 챙겨준 거 였잖아요 그런데 이제 잡혔으니까 이제 진짜 끝이니까 마지막까지 잘해주고 그때처럼 작별 인사 할까 봐서요 혹시 그런 거예요?
안 해요 작별 인사 이제 작별 인사 같은 거 안 할 거예요
왜요?
옆에 있고 싶어졌으니까 그러니까 불안해하지 않아도 돼요
말 바꾸기 없어요 약속한거예요
약속해요 생일축하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