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송을 쓸 때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팬들을 타깃으로 쓰되 연인사이에도 걸맞은 이야기를 쓰는 게 가장 이상적이라는 점이다.
지금부터 그 팬송의 세계를 소개하겠다.
뜻밖의 글로벌 가수, 엑소
요즘 인터넷에서 유행하는 '뜻밖의~' 시리즈를 재밌게 봤다. 예상치 못한 결과물로 당혹스럽지만 나쁘지 않은 어떤 일을 겪는 것을 일명 '뜻밖의 시리즈'라고 하더라.
나에게도 뜻밖의 일이 하나 있었으니, 바로 데뷔하자마자 내가 생각한 사이즈보다 훨씬 큰 가수가 돼버린 한 그룹의 이야기다.
SM에서 '남자 신인팀'이라는 정보만 달린 데모가 들어왔다. 밝고 건강하고 풋풋한 곡이었다. 왠지 SM이 야침차게 내놓는 신인팀의 '타이틀곡'일 것 같진 않다는 예감이 들었다. 하지만 이런 사랑스러운 느낌의 곡은 팬송으로 만들어지면 나름의 가치를 가질 수 있게 된다.
팬송의 방향성은 크게 두 가지가 있다. 노골적으로 팬들에게만 한정하는 가사, 혹은 대중들에겐 연애 이야기로 비치지만 팬들은 이게 팬송이라는 걸 알 수밖에 없는 가사, 둘 다 각자의 매력이 있지만, 난 왠지 후자가 더 설레는 것 같아서 더 선호하는 방식이다. 물론 대중성까지 잡고 싶다는 욕심도 있는 거고.
팬송 가사를 쓸 때 가장 많이 떠올려야 하는 그림은 바로 콘서트장이다. (보이그룹이라면 더더욱!) 콘서트 말미에서 이 노래를 부르며 팬들과 교감하고 감사해하고 기뻐하는 그 때를 상상해보라. 가수들이 마음껏 예쁜 짓을 해도 되는, 있는 대로 행복해해도 뭐랄 사람이 없는 현장의 분위기를.
이런 가사를 쓸 때에는 마음이 유독 말랑말랑해진다. 온 대중보다는 완전히 그들을 사랑해주는 팬들을 타깃으로 놓고 쓸 때의 그 안도감이란!
나는 LUCKY 가사를 쓰고 '으르렁' 앨범이 발표될 때까지 내가 쓴 그 가사의 주인공이 엑소라는 사실을 몰랐다. 으르렁이 발표된 후 '와 정말 굉장한 곡이며 팀이다'라고 생각할 무렵, 각종 SNS로 엑소 멤버의 사진을 프로필 사진으로 내건 팬들이 내게 감사의 인사를 하기 시작할 때도 나는 반신반의했다. (모든 곡이 발표될 때마다 회사에서 연락이 오진 않는다.) 검색해보고서야 알았다. 아, 내가 1년 전쯤 썼던 그 가사를 엑소가 불렀구나!
그러고 나서야 내가 실수 아닌 실수를 했다는 걸 깨달았다. 이렇게 크게 터질 팀일 줄 모르고, "같은 나라에 태어나서, 같은 언어로 말을 해서" 라는 표현을 써서 팬들을 '한국인'으로만 한정했으니, 살다 살다 그런 일은 또 처음이었다. 지금도 웃음이 나온다. 이 책을 보는 독자 중 엑소 팬이 있다면, 이 자리를 빌려 사과한다.
그래도 한국에서의 팬덤이 기반이 되어야 해외 팬덤도 있게 마련이니, 본의 아니게 '우리끼리'송이 되어버린 게 그닥 아쉽지만은 않다.
어쨌든 나름대로 SM의 신인 보이그룹이니만큼 데뷔와 동시에 큰 인기를 얻을 거라 예상해서 나온 설정임에도 불구하고 (해외를 염두에 두지 않았을 때 '한국'이라는 공통분모는 얼마나 큰 것인가) 작은 '교집합' 같은 설정이 되어버렸으니, 운명이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이 가사의 후렴구의 일부를 제외하고는, 전부 팬들을 향한 마음을 묘사한 것이다. 나를 좋아해줘서 고맙다고, 우리가 이렇게 만나게 돼서 세상만사에 감사하다고 노래하는 사랑스러운 캐릭터를 표현하고 싶었다. 오죽 행복했으면 '내가 착하게 살아서 그런가보다'라고 스스로를 칭찬하기까지 했을까.
나름의 의미심장한 순정파 요소는 가사의 말미에 있다. "나의 처음이 너라서 이 노래 주인공이 너라서"라는 파트는 엑소의 입장에서는 팬들이 '첫 팬'이지만 팬들의 입장에선 소위 '갈아타서 온 팬'일 수도 있음을 고려한 디테일이랄까.
이 가사를 쓸 때 이 노래를 부를 그룹의 멤버 수도, 나이도, 얼굴도 모르는 상태에서 막연히 상상하던 시간이 떠오른다. 그들이 이 노래를 수 많은 팬들과 부르는 순간이 온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했고, 그 생각은 내 예상의 수백 배로 이루어졌으니 행복하다. 모쪼록 이 노래가 오래도록 팬들과 엑소의 초심으로 기억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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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나의 작사법이라는 책을 읽다가 같나같은 럭키 얘기가 나와서 타이핑 해봤어!!! ㅎㅎㅎㅎ좋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