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출자의 작품·연출관은 창작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영화, 드라마, 예능 모두 마찬가지죠. 알아두면 이해와 선택에 도움이 되는 연출자의 작품 세계. 자, 지금부터 ‘디렉토리’가 힌트를 드릴게요. <편집자주>
[MBN스타 김노을 기자] 치밀한 신선함이 안방극장에 스며들었다. 퓨전 사극 ‘옥탑방 왕세자’를 시작으로 장르물 ‘미세스 캅’ ‘비밀의 숲’에 걸쳐 다양한 주제를 능수능란하게 다뤄온 안길호 PD가 이번엔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으로 드라마의 지평을 넓혔다.
◇ 장르의 경계를 허물고 자유롭게
‘장르’는 편리하면서도 보수적인 단어다. 간편한 선택의 기준이 되어주지만 한편으론 굳이 없어도 될 경계선을 만든다. 안길호 PD는 솜씨 좋게 이 벽을 허물고, 그 사이를 자유로이 오갔다.
안길호 PD는 드라마 ‘옥탑방 왕세자’ ‘미세스 캅’을 유인식 PD와 공동연출하며 기본기를 다졌고, ‘원더풀 마마’ ‘사랑만 할래’ ‘내 사위의 여자’ 등을 통해 기복 없는 연출력을 입증했다.
그의 작품 목록 중 단연 눈에 띄는 건 ‘미세스 캅’ 그리고 ‘비밀의 숲’이다. ‘미세스 캅’은 경찰인 워킹맘의 현실 고충을 장르적 쾌감, 휴머니즘으로 녹여냈다. 이질적으로 느껴지는 액션과 모성애를 안정적인 호흡으로 표현해 두 가지를 분리하지 않고도 한 인간의 농도 짙은 감정을 오롯이 담아냈다.
‘비밀의 숲’은 감정을 못 느끼는 외톨이 검사 황시목(조승우 분)과 정의롭고 따뜻한 형사 한여진(배두나 분)이 함께 진실을 파헤치는 내부 비밀 추적극으로, 안길호 PD의 첫 장르물이다. 주로 일일드라마를 맡아왔던 그는 ‘비밀의 숲’으로 성공적인 장르물 연출 신고식을 치렀다.
추적극 특성상 과한 연출이 수반되기 쉽지만 안길호 PD는 간결하고 효율적인 연출을 택했다. 시청자의 감정보다 드라마가 먼저 치고 나가는 감정 과잉을 경계했기 때문이다. 덕분에 종영까지 높은 몰입도를 유지할 수 있었다.
◇ 영화와 드라마의 경계를 허물다
안길호 PD는 tvN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으로 매 주말 안방극장에 신선함을 불어넣고 있다. 종영까지 단 2회 만을 남긴 시점이지만 여전히 예측 불가 전개로 시청자들을 사로잡는 중이다.
그는 국내 최초로 시도된 AR 게임 소재를 감각적이고 간결한 영상으로 구현했다. 허구이기 때문에 실제 증강현실 기술보다 과장해 표현한 부분들도 있지만 사실적인 묘사와 어우러지기에 낯설지 않다.
아울러 영화에서나 볼 수 있었던 1인칭 시점 전개와 현실과 가상을 오가는 서스펜스가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비밀의 숲’에서도 영화와 드라마의 경계는 허물어졌다. 안길호 PD를 주축으로 모인 스태프들은 영화 현장과 드라마 현장을 고루 경험한 이들이 많았고, 이는 자연스럽게 경계선을 지우는 데 도움이 됐다.
‘비밀의 숲’ 특유의 서늘한 느낌과 튀지 않는 화면 톤도 이 드라마가 영화처럼 느껴지는 이유 중 하나다. 또한 드라마에서는 잘 쓰이지 않는 촬영기법 핸드헬드를 통해 긴장감과 현장감을 높였다.
◇ 드라마 지평의 확장,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을 본 일부 시청자들은 ‘이해가 어렵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러한 인식은 이내 ‘궁금하다’로 바뀌었고, 극중 판타지와 미스터리에 대한 관심으로 확장됐다.
증강현실이라는 참신한 소재도 시청자들의 흥미를 붙들기에 충분했다. 증강현실과 현실, 이 두 가지 플롯은 각자의 길을 가다가 일순간 합쳐지며 뻔하지 않은 전개를 보인다. 시청자들은 두 플롯 사이에 존재하는 ‘틈’을 직접 발견하고 채우며 극중 인물과 함께 퀘스트를 진행하는 듯한 기분을 맛보게 된다.
최근 한국 드라마는 이전에 없던 다양한 시도들로 가득하다.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은 그 중심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시도를 두려워하지 않는 안길호 PD의 도전정신은 드라마의 지평을 확장하고 새로운 길을 제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