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경호가 한태주고, 한태주가 정경호였다. 정경호는 지난 5일 종영한 케이블채널 OCN 새 토일 미니시리즈 ‘라이프 온 마스’(극본 이대일, 연출 이정효)를 성공으로 이끌었다.
지난 6월 9일 첫 방송한 ‘라이프 온 마스’는 동명의 영국 BBC 드라마를 원작으로 한다. 원칙주의자인 형사 한태주(정경호 분)가 사고를 당한 후 1988년 눈을 뜨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았다. 어린 시절 자신과 마주한 한태주는 2018년 미제 사건의 실마리를 찾고 동료들과 함께 이를 해결해 나간다. 기적적으로 2018년으로 돌아오지만 한태주는 자신이 행복했던 1988년을 선택한다. 특히 최종회는 닐슨코리아 유료플랫폼 전국 가구 기준 5.9% 시청률을 기록, 역대 OCN 드라마 2위를 차지하며 유종의 미를 거뒀다.
◇처연함부터 설렘까지…팔색조 연기
‘혼란’은 한태주를 설명하는 중요 키워드다. 2018년 교통사고 이후 느닷없이 1988년에서 눈을 뜬다. 끊임없는 이명과 환청에 시달린다. 캐릭터 특유의 예민함이 느껴지는 섬세한 연기로 한태주의 혼란을 표현했다.
고통스럽기 때문에 지웠던 부친(전석호 분)의 사망 현장도 다시 목격한다. 반복되는 죽음을 대하는 그의 눈빛은 그때마다 다르다. 형사 한태주에서 어린 한태주로 변하는 모습은 놀랍기까지 하다. 극의 전개와 함께 조금씩 야위어 가는 정경호의 모습은 설득력을 더해줬다.
그럼에도 풍성한 캐릭터였다. 미스터리, 액션, 드라마 등 여러 장르를 한 캐릭터로 소화했다. 강동철(박성웅 분) 계장과 호흡할 땐 코미디라면, 윤나영(고아성 분)과 함께 할 땐 풋풋한 로맨스로 분위기를 전환시켰다. 2004년 KBS2 ‘미안하다, 사랑한다’로 주목 받은 이후 성실하게 필모그래피를 채워온 그의 내공이 빛나는 순간이었다.
◇압도적인 분량…“B팀도 없었다”
정경호의 분량은 압도적이었다. 연기는 물론 체력적인 부담부터 상당했다고. “대본의 모든 장면에 나올 정도로 힘들고 어렵다”는 이정효 PD의 제작발표회 발언대로다. 오죽하면 캐스팅 이유로 “정경호를 괴롭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너스레를 떨 정도였다.
실제 정경호의 출연신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촬영 B팀도 없었다. 야외신이 많음에도 폭염과 장마 등으로 촬영에 난항을 겪었고, 지난 6월에는 취객 난동 사건도 있었다. 한 드라마 관계자는 “최종회 촬영이 당일 오후3시에 끝났다. 방송 사고가 없었던 것이 천만다행”이라고 귀띔했다.
그럼에도 현장에서 정경호의 리더십은 남달랐다는 후문이다. ‘라이프 온 마스’ 스태프라고 밝힌 한 네티즌은 SNS를 통해 정경호에 대해 “같이 자고 같이 일하는, 스태프와 한 마음인 배우였다”고 극찬했다.
당초 정경호는 연기력 논란과 거리가 먼 배우였다. 2003년 KBS 공채 탤런트 20기로 데뷔해 JTBC ‘무정도시’(2013), ‘순정에 반하다’(2015), tvN ‘슬기로운 감빵생활’(2017) 등에 출연했다. 그럼에도 지난해 MBC ‘미씽나인’ 종영 인터뷰에서 스스로 “데뷔 16년 차이지만 매 작품 마다 ‘재발견’이란 소리를 듣는다”(는 냉철한 판단을 하기도 했다. 그런 의미에서 완성도와 시청률 두 마리 토끼를 잡은 ‘라이프 온 마스’는 다시 만난 ‘정경호의 인생 드라마’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