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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 함무라비 14화 리뷰 그 비슷한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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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29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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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화 씨실과 날실의 빛깔


잿빛 먹빛 구름

14화부터 결말까지는 이른바 떡밥 회수란 것이 넘쳐났지. 점조직으로 지나간 줄 알았던 인물과 사건이 마치 씨실과 날실이 엮이는 것처럼 다시 등장하더라구. 이전에 등장해서 구축해놓은 작은 서사들이 14화 서사의 구성요소로 엮이면서 극의 개연성과 생동감을 더 높여준 거야. 좋은 역할을 한 작은 요소들인데 그렇다고 보기 좋은 모습을 그려준 건 아니었어. 보왕의 표현을 빌자면 '저 구름위에서 도대체 뭔 작당모의를 하고 있는 건지' 같은 모습만 보여줘. 점조직이 씨실, 날실로 얽혀 그려내는 건 잿구름 먹구름 잔뜩 낀 우중충한 하늘이야.

그 우중충한 작당모의의 발단은 NJ일가의 비극이라 할 수 있지. 오름이 주심판사로 유죄를 선고한 세진대학병원 교수 주형민과 그의 아내인 병원 이사장 겸 NJ 장녀 민주희가 연달아 자살 시도를 하며 매스컴을 떠들썩하게 해. 그 뒤, 신문과 TV와 인터넷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여 한가지 흐름을 만들어내는데... 이 과정에서 바른이 스카웃 거부한 로펌 대표, 지하철 성추행 사건과 고오환 교수, 김명국 의원, 강요한 의원, 미니스커트 출근 등 지나간 작은 요소들이 얽히면서 드라마 내에서의 극사실주의를 구현해내는 느낌이었어. 동시에 드라마 너머의 우리네 극사실주의와 맞물리면 소오름이 돋기도 하고. 방영시점과 비슷하게 일어난 어느 실장의 투신과 현재 특검 진행중인 댓글 조작의 생생한 현장과 일반인 상대로 한 몰카와 답없는 악플들. (일반인 몰카는 오름의 미니스커트 출근 및 지하철 첫출근 사진을 뜻함.)

이렇게 현실감 넘치는 흐름은 주형민이 무고하단 점보다는 튀는 판사, 여판사, 젊은 판사에 초점을 맞추고, 갈수록 사건의 본질보다 오름이 온갖 화젯거리가 될 뿐이야. 바른이 짚은 맥락대로, 만만한 박판사를 마녀로 만들어서 NJ그룹 사위는 억울한 희생자로 빠져나가겠다는 흐름이지. 그리고 단순히 여론의 흐름을 유도하는 것을 넘어 실제 힘을 행사하기도 해. 항소심에서 부를 바꿔 성공충에게 재배당된 거야, 하필. 잊을 만하면 한번씩 등장한 성공충의 서사, 오름에게 악의가 가득하다고 할 수 있는 인물이지. 하필 그 서사를 잘 이용하는 그럴만한 힘, 그 힘이 누구인지는 간접적으로 보여주었어. 어느일보의 손자가 세진대학에 부정입학했다, 어느 의원이 NJ 사외이사를 했다더라, 화딱질나게 보고 덮는 신문의 전면광고, 세계로 웅비하는 NJ그룹과 그 아래 계열사 중 하나인 세진대학병원. (5화에서 용준이 세진대 병원을 인수하고 누나가 이사장 맡았다고 한 것 역시 떡밥이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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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접적이지만 너무도 선명한 그 일가의 작당모의는 오름을 향해 있지만 그 사회에 속해있는 모두가 영향을 받아. 하늘이 잿빛 먹빛이면 그 아래 사람은 다 우중충할 수밖에. 뭐, 그렇게라도 자신들의 비극을 애도해달라는 하늘같은 장난질인 양.

우중충하게 영향받은 첫번째 인물은 보왕과 도연. 이 둘은 올이 풀린 스웨터의 씨실 한가닥처럼 잠시 캐릭터 실종이 된 인물이었지, 둘만의 연애에 빠져서 말야. 다시 제자리를 찾아온 그들이 너무 반가웠던 건 그 자리가 비어서 그동안 많이 서운했다는 의미겠지. 그런 서운함을 채우고자 그들은 실종이 아닌 연애를 통한 캐릭터 업그레이드를 보여줬어. 먼저, 여유를 겸비한 버터왕자 보왕은 작당모의의 흐름을 바른과 함께 지켜보며 배후를 캐내기도 해. 그 과정에서 점점 비이성적으로 변해 과격한 반응을 보이는 바른에게 정신 차리라고, 너답지 않다는 충고를 전했어. 하지만 나다운 게 뭐냐는 바른의 반응에는 더 이상 대꾸를 못하지. 흐름이 이미 비이성적인 상황으로 치닫는데 다소 거친 바른만을 탓할 수 없잖아. 한편 도연은 부드러움이 한겹 내려앉은 모습으로 컴백했어. 주형민뉴스 때문에 모두가 우왕좌왕할 때 오름을 진정시키고 각자의 일을 인지시켜주는 카리스마는 여전한데, 힘겨운 오름에게 밀크티와 함께 따뜻한 마음을 잠시 전했어. 직장에선 곤란하다는 언니란 호칭을 허한 거지. 상황이 상황인지라 그저 밀크티 한 잔만큼의 따뜻함과 부드러움의 잠시를.

그다음 인물은 수석부장과 배곤대. 이들은 NJ일가 비극으로 인해 법원으로 공격이 들어올 거란 예상, 일을 자꾸 키우는 흐름, 항소심에서 피해자의 진술 번복까지 모든 상황을 예의주시해. 그리곤 사법부 자체가 분노의 대상이 되어선 안 된다는 명목아래 오름의 징계를 다시 검토하자는 결론을 내렸지. 난 이들의 반응이 제일 마음에 들지 않았어. 어찌 보면 NJ일가와 그나마 힘겨루기가 가능한 위치에 있잖아. 1심 재판기록은 문제없다, 피해자의 진술 번복일 뿐이다는 입장 밝히는 것으로도 사법부의 존엄을 지킬 수 있을 텐데, 조직관리자란 입장을 내세워서는 힘의 장난질에 기꺼이 놀아나주는 걸로 밖에 안 보였어. 우리집 말썽꾸러기 녀석이 밖에서 맞고 다니는 꼴은 못 보겠다는 배곤대의 표현을 꼬아서 보자면, 그 녀석을 집안에서도 패자는 꼴밖에 더 되냐고!

다음은 우리 부장님, 세상. 처음에는 제일 이성적이고 흔들림 없는 반응이었어. 오름을 따로 불러서 업무에만 집중하라 격려하고, 식판에 머리 박고 있으면서도 주변의 공기 흐름과 그에 촉발하려는 바른을 다 꿰뚫고 저지하지, 임판사 밥 먹어, 박판사 재판 준비 잘하라며. 이런 게 바로 연륜이고 내공임을 줄곧 보여주던 세상이 대폿집에서 혼자 술을 마시고 지나가던 행인과 시비 붙으며 흐트러졌어. 엉성한 시비 끝에서는 박판사 미안하다는 넋두리를 흘러내었고. 재판 얘기밖에 해줄 게 없는 무능력함, 도와줄 위치와 인맥이 안 되는 출.포.판의 미안함이었지. 나아가 15화로 이어지는 세상의 고민을 보았을 때 무능력한 조직에 대한 미안함 같기도 했어, 수석부장이 어떤 결정을 내릴지는 미리 짐작하고서 말야. 그 조직의 무능력함에 대한 심정이 수석부장은 빌어먹을 거라면 세상은 자신의 배석을 향한 미안함이지, 배곤대에게 우리집 말성꾸러기라면 세상에겐 법원 사는 내 새끼같은 존재일 것 같아서, 더욱 가슴 아프게 다가온 넋두리였어.


이제 가장 격정적인 반응을 보여준 바른. 오름에 대한 걱정으로 시작해서 심각해지는 상황만큼이나 흥분, 화, 분노, 거친 욕설까지 서슴지 않았어. 이런 격한 반응이 단순히 오름에 대한 감정 때문은 아니라고 봐. 일단, 그럴만한 힘이 벌이는 비상식적인 흐름에 대한 반발, 즉 원칙을 짓밟은 불의에 대한 분노가 기본으로 깔려있어. 그리고 그 불의가 일으키는 오름의 판결에 대한 의혹은 자신을 향한 것이기도 해, 분명 바른도 유죄라고 합의한 사건이므로. 성공충의 공평무사하게 재판할 것이란 한마디가 판사의 자존심을 긁어 화를 일으키기 충분하다고. 거기에 오름에 대한 원초적인 댓글들이 좋아하는 감정을 자극하면 개*끼들이란 욕설이 튀어나오고, 바른이 있어 감당하고 있었다는 오름의 고백을 떠올리면 뭘 어떻게 하든 이 새끼들 싹 다...이성을 놓고 소리치다 보왕에게 한 소리 듣기도 하는 거야. 이런, 이제껏 본 모습 중 가장 비이성으로 정돈되지 않은 모습을 보여준 바른을 이해할 수 있었, 아니, 이해를 넘어 동화되었다고 할까. 

바른에게 느낀 동화의 심정은 생동감 넘치는 극사실주의에 대한 염증 반응 같은 것이었어. 오름을 향한 일사불란한 공격이 드라마로만 봐도 충분히 뒷목 뻣뻣하게 열받는데 나의 현실에서도 오래 보아온 것들이라 아주 넌더리났다고 해야하나. 그런 현실에 대한 염증이 바른의 반응과 맥을 같이 하더라고. 바른이 심각하면 나도 그렇고, 화를 낼 때면 나 역시 짜증이 치솟는 순간이었으며, 욕 한마디가 속시원하고, 보왕이 너답지 않다고 할 땐 바른보다 먼저 뱉은 내 마음의 소리가 바르니다운 게 뭐냐였으니...정말 어느 정도 동화된 상태였어. 그래서, 우글우글 피어오른 염증이 극에 달한 순간, 바른이 이 새끼들 싹 다를 외친 순간, 캐붕이 돼서 내용이 산으로 가든 말든 바른이 갑자기 망토 두르고 나타나서 정의의 이름으로 개새들 다 쓸어버렸음 좋겠단 생각까지 들었고. 근데 나도 오름이 걱정돼서 그랬어, 정말 현실같은 공격을 받은 것 같아서 말야. 그렇게 걱정할 만큼 어느새 오름을 아끼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고. 그래서...이제 아껴서 맘이 아프겠지만 오름이 이야기할 차례...


오름은 생각보다 담담했어, 바른과 반응이 바뀌었단 말이 나올 정도로. 하지만 겉으로만 그리 보였을 뿐, 실은 안으로 무너져 내리는 중이었어, 14화 내내. 오름은 주형민의 뉴스를 보자마자 내가 틀린 거면 어떡하냐며 거의 혼비백산하는 모습이야. 그 후 바른과의 대화에서, 객관적으로 믿지 못할 사람의 기억을 증거로 삼아 판단하는 자신의 일에 대한 괴로움을 털어놨어, 모래 위에 지은 집이 무너져내리는 것 같다며. 이전의 판사 괜히 됐다는 좌절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 판단자로서의 기본 토대가 흔들린 거야. 그렇게 뿌리부터 흔들리고 나니 지나간 사건을 다 되살펴보는 광기 아닌 광기도 보이게 되고. 그래서 바른처럼 반응할 순 없었던 것 같아, 스스로가 자신을 믿지 못하고 흔들리고 있어서. 만약 내 판결은 문제없다는 확신이 있었다면 여느 때처럼 화를 내고 분노하며, 어쩌면 인터뷰를 자청했을지도 모를 정도로 당당했을 텐데. 그저 세상이 다독이며 숙제처럼 내주는 재판준비를 담담히 하고, 재수는 없지만 실력은 괜찮은 놈도 유죄가 맞다는 바른의 다독임에 그제야 한번 웃어볼 뿐이야.

세상과 바른의 다독임이 있어 버티던 중이었던 듯, 항소심에서 피해자가 말을 바꾸는 모습을 본 후에는 죽을 것 같은 심정이 하염없이 눈물로 흘러내렸어, 먹구름이 뿌려대는 비와 같이. 그리고 장난질친 여론때문에 새 사건이 국민재판으로 신청되었음을 통보받으면서는, 결국 뿌리부터 무너져내리고 말았어. 오름 역시 여론의 눈치를 볼까봐 믿지 못하겠다는 의미였으니까. 바른의 독백대로라면, 신뢰를 잃으며 판단자로서의 존립 근거도 잃은 오름은 세상에게 사직서가 담긴 봉투를 내밀었어. 잔다르크로 비유하자면, NJ일가가 자신들의 비극을 애도하기 위한 제물로 화형시킨 한 판단자의 뿌리같은 기본 토대, 그 존립 근거의 잿빛 무덤이지. 지금 뭐하자는 거냐고 세상이 아무리 화를 내봤자 막을 수 없는 잿빛 흐름, 그 무덤을 더 버티지 못한 오름이 전하는 단정히 허리 굽힌 인사가 14화 엔딩이었어.

(정말 모래성처럼 무너지는 상황이었는데도 오름은 주심 변경 없이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고자 했고, 힘겨운 눈물을 쏟아낸 후에도 자신을 비꼬며 탓하는 동료에게 미안하다고 고개를 숙였어. 내 일 아니라고 회피하거나 힘들다고 칭얼대는 법은 없었지, 그만큼 정신적인 소양이 한 단계 높은 인격체라는 인상을 받았어. 그런 오름의 반만 닮았어도 그딴 비극으로 그딴 짓들 안 꾸며도 됐을 텐데, NJ일가놈들..부들부들..)




흑빛 금빛 연정

오름을 사이에 둔 바른과 용준은 요란하게 그린다며 그럴 수 있는 관계야, 재벌 3세와 판사라는 사회적 위치와 오름에 대한 감정을 전면으로 내세운다면. 근데 삼각관계는 맞나 싶을 정도로 미미한 느낌을 준 건 서로의 위치와 감정을 의식하는 신경전 수준에 머물렀기 때문이지. 남녀의 애정이라기엔 미미한 붉은 색이었달까. 그랬던 관계가 14화의 어느 지점에선 전면으로 한번 부딪혀서, 그들의 위치와 감정이 또 하나의 씨실과 날실처럼 얽히는데...이번엔 제대로 된 붉은 연정의 빛을 발할 수 있을까?

일단 용준. 오름의 향한 작당모의가 NJ 작품인 건 명확하고 그 중심에서 실행한 것도 용준이었어. 김명국 의원은 마땅찮은데 강요한 의원은 미온적 태도란 보고를 받은 용준은 어디론가 전화를 하고, 그후 항소심이 성공충에게 재배당되지. 그러니까, 집안의 비극을 수습하는 여러 방안 중 가장 빠르고 효과적인 오름에 대한 공격을 일사불란하게 자행한 거야. 오름에게 어떤 마음이 있다기엔 너무 속 시커먼 장사꾼 같은데...그래도 책상 한 켠에 오름과의 사진이 자리하고 있으니 그 속마음은 아린 검붉은 연정쯤은 되겠지.

바른은 줄곧 격한 반응을 보인 것과 달리 용준에게 찾아간 순간엔 이성적이고 침착했어. 그 이유 중 하나는 이미 신경전을 통한 탐색은 마쳤다는 거지. 바른의 집안 형편을 뒷조사했음은 별로 놀랍지 않을 정도로 용준이 바른을 의식하는 건 선명했는데, 바른 역시 마찬가지였나봐. 그래서 수시로 들이대는 용준을 일일이 만난 것 같아, 탐색의 과정으로. 그 결과 말이 늘 통하는 사이, 감정적으로는 연적이며 각자의 위치에서 연적으로 얽힐 수 있임을 서로 알고 있는 관계지. 어렴풋이 예상했던 일이라 침착했고, 다른 이유는 바른 또한 오름처럼 정신적 소양이 높다는 거야. 원색적인 욕설은 순간이고, 나같이 흔한 원칙주의보단 새로운 답의 가능성이 법원에 꼭 있어야한다는 깊은 성찰이 결과야. 연정이 이성의 영역에서 명확히 자리잡고 빛나는 거지. 붉지만 고매하게 빛나는 연정이랄까.

말이 통하는 사이라 대화가 술술 흘러가며, 박판사 곁에서 물러나겠다, 법복까지 벗겠다는 바른의 어려운 결정까지 다다랐어. 뒷조사한 법관직에 대한 애착을 넘어서는 결정도 놀라운데, 오름은 법원에 꼭 있어야 될 사람이란 이유에는 용준의 표정이 일그러져. 오름을 생각하는 마음이 깊어서 기분이 더더욱 안 좋다고 할 정도로. 차라리 내 여자 건들지 말라 식의 격정적인 태도였다면, 용준도 내 사람 다치게 만드는 내 속도 앓고 있다는 치정으로 맞붙어보았을 것을. 이성과 논리로 차분히 흐르는 연정을 두고는 그저, 저 연정을 굴복시켜보겠다, 내 힘 아래 무릎 꿇는 모습으로 기분 풀어내겠다는 태도일 뿐이야. 바른의 심성을 훤히 아는 관계에서 굴복시키겠다는 건 원칙주의자의 영혼을 요구하는 거래와 다를 바 없고, 익숙해지면 편하다는 건 수시로 영혼 털어가는 짓하겠다는 의미겠지. 그런데도 뿔 달린 악마는 아니라 주장한다면 뿔 안 달린 악마는 충분히 본 것 같다고 할까. 이 과정에서 오름에 대한 용준의 마음은 대체 어떤 상태인지 내보일 틈이 없었어, 어쩌면 고매한 바른에게 악마짓하느라 잘못 휘말린 거로도 보이고.


바른이 정말 무릎을 꿇었다면 어땠을까. 속상하고 속상하고 또 속상하겠지만 오름의 향한 마음이 그렇게 커서라고 받아들였을 것 같아, 법복까지 벗을 각오로 찾아간 걸음이니. 하지만 무릎이 곧 닿을 것 같은 순간이 흔히 말하는 현실 자각 타임이 되어, 두 무릎을 지켜낼 수 있었지. 법원에서 오름을 지키고자 함은 자신의 믿음을 투영한 연정인데, 장난질 치는 힘에 굴복하며 믿음을 지킨다는 건 모순일 테니까. 용준처럼, 빠르고 효과적인 방법으로 찾아온 것이지 오름을 지키는 유일한 길은 아니니까 말야. 느리고 어렵더라도 자신의 신념대로 지켜내고자 함을 되돌려주는 입바른 소리로 전해, 언젠가 법앞에 무릎 꿇리고 말겠다, 그 또한 익숙해진다고. 살짝 깔아 하찮게 내려보는 시선을 끝으로 전하며.

연정을 이성 너머 신념의 위치까지 끌어올려 빛낸 바른과 그 빛에 휘말려 연정을 품고도 검붉은 빛 하나 못내는 용준이었지. 너무 빛나고 너무 어두워, 연정보다는 선악의 대비 같았던 관계. 선악이라고 해서 착한놈 나쁜놈의 고전적 위치가 아니고 지켜보는 내 입장에서 그랬어. 온갖 염증을 일으킨 암적인 존재 같은 용준과 그 힘에, 지금껏 당당하고 견고했던 바른이 굴복하려는 순간은, 절대 안 돼!!!!!를 절규하게 만드는 선악이고도 남았어. 내 절규가 전해진 듯 다시 꼿꼿이 무릎을 펴는 바른을 보며 안도의 숨을 길게 내쉬고, 당당히 뒤돌아나가는 모습을 향해 조금은 오글대는 소망을 전해보았어. 이 드라마에선 넌 내 자존심 같은 존재니까, 금쪽같은 무릎 계속 지켜달라고. 그건 바른을 향한 금빛같은 내 연정이라고 우겨도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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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빛 은빛 융단

어디 드라마의 진짜 인공지능은 울면 안아주는 게 원칙이라던데, 우리네 유사 인공지능이 눈물 한번 감싸주기까지는 무려 14화가 걸렸어!! 적당히 울면 적당히 안아주는 드라마의 통념이 아니라, 눈물 하나만으로도 촘촘히 엮이는 서사가 완성되는 시간이었지. 첫만남에서 바른의 읊은 시 구절이 떠올라, 은빛 은빛으로 흘러내린 융단 같기도 하고. 그러면 일단 그 시부터 한번...

금빛 은빛 무늬든
하늘의 수놓은 융단이
밤과 낮의 어스름의
푸르고 침침하고 검은 융단이 내게 있다면
그대의 발밑에 깔아드리련만
내 가난하여 오직 꿈만을 가졌기에
그대 발밑에 내 꿈을 깔았으니
사뿐히 걸으소서, 그대 밟는 것은 내 꿈이오니.

14화 초반부터 오름이 울었지, 미세먼지 때문에 인공눈물로. 그에 반응하는 바른은 약간 호들갑스러워, 왜 그러냐며 자신이 짐작하는 이유를 줄줄 읊어대며. 이런 모습은 오름의 고백을 너무 신경써서가 아닐까 해. 알듯 말듯 했던 오름의 마음이 자기 때문에 감당하고 살아가고 있었다니 신경쓰이는 것도 당연해 보이고. 그런 오름이 온갖 공격과 비난을 받으며 스스로도 흔들리는 상태라 평정심을 찾기가 쉽지 않지. 그리고 나는 오름을 아끼는 마음이 한 축이 되어 바른에게 동화되어 있어서, 바른이 뭐라도 해야한다고 생각했어. 그렇게 평정을 잃고 화라도 내야한다고, 오름을 대신하여. 그러다 오름이 진짜 죽을 것 같다며 눈물을 후드둑 떨구는 순간에야 정신이 들었어. 누가 대신할 것이 아닌 오름이 감당해야 하고, 이미 죽을 것 같은 심정을 겪고 있음을 깨달은 거지. 그러면 누가 뭘 어떻게 해야하나 싶을 때, 그 비슷한 마음을 뭘 어떻게든...이라고 바른이 전할 때, 오름은 잠깐만 거기 있어달라는 게 전부야. 그리곤 부탁대로 거기에 가만있는 바른을 향해 한발 두발 천천히...눈물의 걸음을 옮겨가.

오름의 한 걸음 한 걸음에 이제껏 함께한 눈물의 서사가 차곡히 떠올랐어. 자식 잃은 어미가 제정신이면 정상이냐고 따지고 들어 불편했던 처음의 눈물, 세상에게 호되게 혼난 뒤 쏟아지는 눈물에 자리를 피해준 어색했던 관계, 힘든 사람한테 괜히 고백해서 흐르던 눈물을 지켜보며 차오른 눈물을 삼키던 순간, 어느새..울었냐고 넌지시 아는 척해도 부담스럽지 않게 된 관계, 절대 잊혀지지 않는다는 위로에 흐르는 눈물을 감싸던 기타 선율, 걱정하는 마음으로 짚어오는 손길에 기댄 투정과 좌절의 눈물, 때론 한발 떨어져 지켜봐주던 상처받은 치유자의 눈물, 한번은 혼자 흘린 눈물을 무릎 위에 두고 쓰담던 위로의 손길, 그리고 마음을 고백하며 반짝이는 눈물에 답하던 환한 미소.

지금까지 자신들의 서사만큼이나 느린 걸음으로 다가온 오름은 또다시 느리고 조심스럽게 바른의 어깨에 기대어 눈물을 흘려. 그리곤 오름만큼이나 조심스러운 바른의 손길에는 눈물이 울음소리로 변해갔어, 죽을 것 같은 심정을 알려주듯. 그래, 무엇도 할 수 없을 땐 죽을 것처럼 울기라도 해야하는 거야, 어떻게 해도 해줄 일이 없을 땐 그냥 곁에 있어주면 되는 거야, 기대어 울 수 있는 어깨와 손길이면 되나 봐. 어쩌면, 바른이 용준에게 굴복했다면, 자칫 거기 있어주는 것도 못할 뻔했네. 그렇게 본다면 바른이 힘들게 지켜낸 신념, 그 꿈 한자락에서 흘리는 오름의 눈물이기도 해. 그대 밟는 것은 내 꿈이란 시 구절에 맞춰, 그대 그 품에서..서러이..원없이..편안히..울고 있으면 된 것 아닐까..?


이 눈물 이후에 오름이 사직서를 낼 정도로 아무것도 해결할 순 없었어. 하지만 그 순간이 14화의 유일한 위안으로 다가온 건 이들의 서사가 느렸기 때문이야. 급박한 상황에서 느림이 주는 카타르시스같이. 느린 만큼 차곡히 쌓인 서사 끝에서 이제야 한번 다가서는 순간, 오름의 느린 걸음걸음을 숨죽여 지켜보며 소중했고, 연정을 신념처럼 품어 그 자리를 지켜낸 바른이 또 소중했어. 잿빛 먹빛이 작당해낸 눈물이지만 이들의 서사에선 은빛 은빛으로 소중하게 맺히고 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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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끝난 드라마 부여잡고 뭐하냐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거의 다왔어!
이제 휴가라 여유 생겼으니 이번주안에 꼭 끝낼 거라고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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