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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퀘어 비숲 드라마 속 죽음에 관한 위근우 기자 글 (스압, 당연스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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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22 2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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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의 숲], 그들의 죽음을 기억하라
여기 네 사람의 죽음이 있다. 첫 번째 사망자 박무성. 사업가에 검찰과의 로비로 수많은 이득을 챙겼지만, 사업에 실패한 뒤 자신이 가진 정보로 검찰을 협박하려다가 살해당했다. 두 번째 사망자 강진섭. 전과가 있는 케이블 기사로 박무성 살인사건의 용의자로 잡힌 뒤 살인죄로 복역하게 되자 억울함을 호소하며 자살을 선택했다. 세 번째 영은수. 전 법무부장관인 영일재의 딸이자 검사로서 박무성 살인사건 및 영일재의 뇌물 수수 사건의 진실을 쫓다가 살해당했다. 마지막은 이창준. 전 서부지검 검사장이자 현 청와대 수석비서관. 대기업 한조그룹의 오너 이윤범의 사위로서 수많은 부정에 연루된 그는 그 모든 비리를 폭로하는 자료를 남기고 자살한다. 죽음은 생과 삶의 종결이다. 여기에는 애도가 필요하다.
하지만, 애도란 무엇인가? 충분히 슬퍼하고 고인의 사람됨을 칭송한 뒤 모든 은원을 땅 속에 묻고 산 자들의 일상을 재건하는 것? 그것으로 충분한가? [비밀의 숲]은 그런 종결로서의 애도 대신, 망자의 죽음 안에서 산 자들의 책무를 끊임없이 환기하는 방식으로의 애도를 선택한다.

박무성의 죽음으로부터 모든 것은 시작된다. 그에게 검찰 비리에 대한 정보를 얻으려 집을 찾은 황시목은 시체가 된 박무성을 발견하고 그 죽음에 대한 진실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더 큰 불의의 흔적을 발견한다. 황시목에게 박무성은 서동재를 비롯해 자신의 검찰 동료들을 타락시킨 장본인이다. 단지 증인으로서의 가치만 있을 뿐이다. 하지만 박무성의 죽음이라는 사건은, 그에게 도구적 관계 이상의 책임감을 부여한다. 강진섭의 자살 이후 여론에 의해 악덕 검사로 낙인찍힌 영은수를 도우려는 의도도 있었겠지만, 황시목은 자기 기준에선 악의 축에 가까웠던 박무성의 살인에 대한 진실을 밝혀내겠다는 것을 국민 앞에 천명한다. 결코 무고하지 않은 자의 죽음은 오히려 역설적으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를 죽여선 안 된다는 정언명법을 더 선명히 드러낸다.
박무성이 더러운 로비스트였다 해도, 강진섭이 시신 앞에서 패물부터 주워 달아나는 말종이라 해도, 세상에 억울한 죽음이 있어서는 안 된다. 여기서 누가 왜 죽였는가, 라는 추리장르의 질문은 그대로 윤리적 책임 영역으로 넘어간다. 특임에서 할 만큼 하지 않았느냐는(사실 정말로 그들은 많은 것을 했다) 검사장에게 황시목은 박무성 살인사건 범인을 잡겠단 국민과의 약속을 언급한다. “제가 기억하니까요.”

기억하는 것, 잊지 않는 것. 이것은 그 자체로 타자를 대하는 삶의 윤리다. 황시목을 단지 감정 일부가 제거된 덕에 인맥이나 의리 같은 것에 휘둘리지 않을 수 있는 묵묵한 직업윤리의 화신처럼 말하는 평자들에겐 그래서 동의하기 어렵다. 차라리 황시목은 “법관의 짝사랑이자 궁극의 이데아”로서의 정의가 만약 실제로 존재한다면 이런 모습이 아닐까, 라는 일종의 사고 실험에 가까워 보인다. 그는 이윤범의 비리가 담긴 파일을 가진 영일재에게 자신은 싸울 수 있다고 말한다. 놀라울 정도로 황시목 본인과 한 때 타협하지 않던 법관이던 영일재, 이창준은 황시목이 타락하지 않을 거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여기엔 어떤 초월성이 있다. 그것은 모든 것을 알거나 예상하는 신적인 초월성이 아니라(흥미롭게도 이 역할을 최종회의 이창준이 맡는다) 정의로운 인간이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모든 것을 다 고려해내는 것으로서의 초월성이다. 법학자 로널드 드워킨은 법을 통해 정의를 구현하는 이상을 포기하지 않는 가상의 존재로서 헤라클레스 판사라는 개념을 도입한 바 있는데, 황시목은 말하자면 헤라클레스 검사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비밀의 숲]이 16화 동안 촘촘한 서사적 밀도를 가져갈 수 있는 건, 진실을 찾아내기 위해 모든 가능성을 검토하는 황시목의 시선으로 세상을 훑어내기 때문이다. 많은 추리물의 경우 머리 좋은 주인공의 시선을 거치며 복잡했던 세상이 단순명쾌해지는 것과 달리, 황시목의 눈으로 세상을 보며 우리는 모든 인물을 의심하고 모든 인물의 알리바이를 확인하며 어느 것도 명쾌할 수 없다는 것을 경험했다. 세상은 각각의 비밀로 뒤덮인 숲이다. 그 숲 어딘가에 진실이 있을 것이며, 진실 앞에서 법은 정의를 구현할 수 있을 것이다. 헤라클레스 검사, 타락하지 않는 황시목이라면.

하지만, 이렇게 쉽게 희망해도 되는 걸까. 황시목과 특임팀의 활약이 최고조에 이르고, 박무성 사건의 범인이 누구인지 시청자들에게 공개되며 희망의 분위기가 만들어지는 시점에 드라마는 또 하나의 죽음을 남긴다. 아마 영은수의 죽음은 근 몇 년 동안 나온 드라마들을 통틀어 가장 먹먹한 순간일 것이다. 확증편향에 빠져 이윤범과 이창준의 범죄를 확신하고, 사적인 복수심과 정의 구현을 혼동하며, 흔들리고 또 흔들리지만 결코 자신의 감정 때문에 원칙을 어기지 않고 법의 도덕적 힘을 의심하지 않던 이 약하면서도 고결한 캐릭터의 죽음은 그 자체로 시청자들에게 커다란 상실로 경험됐다.
이것은 주인공의 각성을 위한 도구적 장치가 아닌 불가해한 사건 자체, 어떤 서사적 해피엔딩으로도 채워질 수 없는 상실이다. 12화까지 과연 범인이 누구일 것인지 예측할 수 없었던 박무성 살인사건과 달리, 영은수의 살인범은 적어도 시청자 입장에선 꽤 쉽게 유추할 수 있었다. 하지만 영은수를 살해한 게 우실장이라는 걸 짐작한다고 해서 그 죽음이 이해되는 것은 아니다. 영은수가 가진 USB를 차지하기 위해 죽였을 거라는 것도 쉽게 예측할 수 있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이 죽음엔 왜, 라는 질문이 따라온다. 왜. 이 무고하고 선하고 진실을 찾기 위해 애썼던 사람이 죽어야 하는가? 그것은 누구도 대답해줄 수 없다. 모든 동기와 가설을 검토하고 가장 논리적 해답을 찾아내는 황시목조차도. 영은수와에게 잘해주지 못한 것을 후회하는 듯한 황시목의 회상 장면은 죽음의 불가역성을 보여준다. 황시목은 쓰러졌으며, 특임팀은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얻었고, 시청자들 역시 깊은 슬픔을 느꼈다. 이것은 사건 해결을 통해 박무성과 강진섭의 죽음 역시 해결될 것처럼 생각했던 인물들과 시청자들에게 내리는 징벌처럼도 느껴진다.
영은수의 죽음 앞에서 김정본은 말한다. “범인이 잡혀도 이 상처는 치유되지 않겠죠?” 물론이다. 그리고 사실, 박무성의 어머니와 아들, 강진섭의 아내와 아기 역시 그러할 것이다. 죽음을 기억하고 애도한다는 건 상처를 안고 살겠다는 다짐이다. 자신이 기억하니까, 박무성 사건의 범인을 잡기 위해 열흘만 더 달라던 황시목조차 그 무게를 다 알지는 못했다.

다시 말해 [비밀의 숲]은 박무성 살인사건의 전모와 범인이 누구인지 밝혀내는 크라임 스릴러로서의 서사적 쾌감이 박무성과 강진섭의 죽음의 무게를 지워버리는 지점에서, 즉 이야기 스스로 자신의 메시지를 배반하는 지점에서 이것이 죽음이고 이것이 상실이라는 것을 환기시키며 다시 한 번 죽음에 대한 윤리적 접근을 요구한다. 영은수의 죽음을 서사적 장치로 환원할 수는 없지만, 그의 죽음을 통해 특임팀과 시청자는 윤세원의 딱한 사정과 또 하나의 숨겨진 죽음에 대해 인간적 연민을 느낄지언정 그의 살인 동기에 동의하지 않을 심리적 저항선을 구축하게 된다. 그리고 여기서 마지막 죽음을 만난다. 박무성의 죽음이 무고하진 않은 이의 죽음을, 영은수의 죽음이 무고한 이의 불가해한 죽음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그리고 그 둘을 동등하지 않게 다루는 것이 온당한지) 질문한다면, 이창준의 죽음은 참회하는 이의 죽음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 질문한다.
다수의 사람들이 지적한 것처럼 이창준의 자살은 너무 영웅적으로 연출된 감이 없지 않다. 유서를 통해 자신이 “재벌 회장의 그늘 아래 호의호식한 충직한 개“ 역할을 맡을 테니 그 개에게서 증거를 뺏은 정의로운 검찰(정확히는 황시목)이 모든 걸 바로잡아달라는 이창준은 얼핏 다크나이트의 길을 선택한 하비 덴트처럼 보이지만, 사실 타락한 투페이스 하비에 더 가까운 인물이다. 황시목을 각성시키겠다는 의도로 윤세원을 사주해 박무성을 죽이고 김가영을 중태에 빠뜨린 것은 어떤 의도로도 정당화할 수 없다. 그의 유서에 적힌 장광설이 그 비장함 때문에 더 기만적으로 느껴지는 건 그래서다. 대신 황시목은 그 죽음의 유지는 받들되 이창준이 갖고자 했던 숭고한 희생의 이미지를 지워버린다. 그는 다크나이트 이창준의 희생을 통해 백기사가 될 기회를 차버린다. 정의로운 검찰의 능력을 과시하는 대신 이창준이라는 괴물을 키웠던 이 조직의 폐부를 공개한다. 이창준이 저승에서도 저 새끼 끝까지 말 안 듣네, 라고 할 이 상황은 하지만 어떤 면에선 진정한 의미로 이창준의 유지를 받드는 행위다. 이창준이 유서로서 자신의 잘못을 참회했다면, 검찰 역시 참회해야 한다. 이것이 그의 죽음을 도구로써 이용하지 않고 그의 죽음의 무게와 의미를 온전히 계승하고 책임지는 것이다. 황시목은 가장 윤리적인 방식으로 자신이 한 때 존경했던 이창준의 죽음을 애도했다.

다시, 여기 네 사람의 죽음이 있다. 이것은 결코 해피엔딩일 수 없다. 정의로운 검찰이 한조 그룹을 일망타진하는 통쾌한 엔딩이 나오지 않는 건 그것이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라는 문제의식 때문일 수도 있지만, 무엇보다 돌이킬 수 없는 네 개의 비극을 남기고 통쾌한 엔딩으로 넘어가는 건 분명 기만적인 면이 있다. 그리고 [비밀의 숲]은 그 ‘쉬운 길’을 선택하지 않았다. 대신 세상이 크게 변하지 않은 만큼 여전히 변하지 않은 황시목의 모습을 비추며 서사적 전망의 여백을 남긴다. 그 담백한 여백에서 희망의 단서를 발견할 수도, 시즌 2에 대한 암시를 읽어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이 여백으로부터 죽은 네 사람의 이름을 잠시 떠올려도 좋지 않을까. 박무성, 강진섭, 영은수, 이창준. 살아있는 자의 책무가 황시목과 검찰에만 부여되는 게 아니라면, 어쨌든, 나도 기억하니까.


https://www.facebook.com/permalink.php?story_fbid=1617751798297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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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수 죽음에 관해서 얘기 나오길래 내가 읽으면서 공감했던 글을 퍼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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