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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21] 송경원 기자의 '호프' 비평

무명의 더쿠 | 22:28 | 조회 수 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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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해술(임현식)은 외계인을 셋 봤다고 말한다. 그러곤 손가락을 네개 편다. 농담인가. 나홍진 영화에서 말은 미묘하게 어긋나고 실체는 항상 목격의 순간에 깃든다. <호프>는 이 우스꽝스럽고 사소한 장면에 자신의 정체를 무심코 흘려놓는다. 중요한 건 이야기가 아니야. 당신이 두 눈으로 목격하는 것들을 놓치지 말고 봐. 동시에 사람들은 말한다. 해술이 아저씨가 말했다면, 그럼 맞아. 목격의 정확성이 아니라 발화의 권위가 사실을 결정짓는 세계. 이 영화에서 유일하게 플래시백으로 처리되는 해술 아저씨의 기억은 말(증언)과 몸(손가락)과 재현(플래시백)이 모두 미묘하게 어긋난다.


철학자 해리 프랭크퍼트는 거짓말쟁이와 헛소리하는 자를 구분했다. “거짓말쟁이는 진실을 알기에 그것을 피해간다. 그는 최소한 진실의 위치를 의식한다. 더 위험한 자는 진실 자체에 무관심한 자다. 그에게 사실이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지점으로 청중을 데려다줄 도구일 뿐이다.” 이 구분을 빌려 말하자면, 나홍진은 의미나 진실에 무관심하다. 영화적 세계를 재현하고 창조하는 행위, 그 자체에 몰두할 따름이다. 입과 눈이 부딪쳐 어긋날 때 (영화적) 진실은 대체로 눈에 맺히는 쪽으로 기운다. 적어도 나홍진은 그렇게 믿는 사람처럼 보인다. 때문에 나홍진은 보여주는 것- 장면의 세부를 극한까지 끌어올리는 데 혼신의 힘을 쏟는다. 그리하여 영화는 하나의 질문으로 귀결된다. 지금 당신이 목격한 것은 무엇인가. 그걸 (감히 누가) 설명할 수 있는가.


나홍진은 늘 말이 있는 곳에 덫을 놓아왔다. 말은, 대사는, 설명은 거짓과 현혹의 세계다. 반면 보이는 것은 그걸로 존재한다. 그렇다고 보이는 것이 곧 진실이라는 단순한 이분법의 문제는 아니다. 말했다시피 <호프>에는 진실을 향한 방향성이 없다. 그저 재현의 극한을 추구하는 에너지가 있을 뿐이다. 애초에 영화언어가 현실의 변형을 전제로 한 또 다른 물질 경험의 창조라고 봤을 때, 감독 나홍진이 수행하는 작업은 단순명료하다. 과장과 과잉의 허락을 받은 영화적 세계의 창조. 나홍진은 일련의 작업에서 가장 섬세하면서도 격정적인 장인이다. 그렇게 대체로 보이는 게 전부인 영화지만 뜻밖에 <호프>는 변명처럼 툭 튀어나온 말이 종종 진실의 파편을 담기도 한다. 인물들이 불쑥 내뱉어 스크린 바깥까지 튀어나가버린 말들. <헨젤과 그레텔>의 빵부스러기처럼 함정인 줄 알면서도 기꺼이 홀려서 따라가보고 싶은 대사들.



여러 번 끝나지만 끝내 마침표를 찍지 못하는 분절의 영화, “이렇게 끝났네요”


첫 번째 외계인을 우여곡절 끝에 물리치고 성애(정호연)는 말한다. “이렇게 끝났네요.” 듣자마자 모두가 아는 클리셰의 말. 당연히 아직 끝나지 않았다. 러닝타임이 한참 남았으니까. 하지만 실은 이 대사가 진실을 담고 있다. 첫 번째 외계인이 죽으면서 사실 하나의 단편영화는 끝났다고 봐도 무방하다. <호프>는 세 개의 짧은 영화가 옴니버스처럼 붙어 있는 구성이고, 적어도 인간 시점의 이야기는 한번 갈무리된다. <호프>의 정체와 목적은 실상 이때 전부 드러난다. 이것은 경이로운 재현이다. GV에 참여한 이창동 감독의 표현을 빌리면 “모든 요소가 한계치를 넘는 장면들”의 합. 그리고 끝. 이후 이어지는 것은 상황의 유예와 반복, 그리고 장대한 소진뿐이다.


가상의 항구 호포(號浦)는 강력한 실감의 증거를 남긴다. 제작진은 세트를 짓는 대신 마을 하나를 통째로 과거로 되돌렸다. 전남 해남의 실제 마을, 실제로 영업 중인 상점의 전면과 간판을 하나하나 1970~80년대풍으로 갈아 끼우고, 골목마다 반공 푯말을 박고, 출장소 앞에는 스텔라 경찰차를 세웠다. 미술의 동사는 ‘짓다’가 아니라 ‘되돌리다’였던 셈이다. 지어 올린 세트는 아무리 정교해도 시간의 두께가 없다. 반면 되돌려진 마을에는 수십년 동안 사람이 살았던 흔적, 그러니까 벽에 밴 얼룩과 골목의 때와 시멘트의 균열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카메라가 담아낸 흙먼지의 밀도는 그러니까 미술이 아니라 거의 고고학이다. 흥미로운 것은 감독의 태도다. 출장소에 태극기를 걸어놓은 건 실수였다고, 자기는 여기가 지구라고 말한 적이 없다고 능청을 부린다. 완벽하게 재현하되 시공간을 특정하지 않겠다는 것. 재현의 극한과 좌표의 말소를 동시에 밀어붙이는 이 이중의 태도야말로 <호프>의 방법론이다.


여기에 홍경표의 카메라가 밤을 단 한 장면도 허용하지 않고 자연광의 대낮으로 일관한다. 숨을 곳을 스스로 봉쇄하는 이 과감한 재현은 야심만만하다. 크리처 영화가 어둠에 기대는 것은 관례이자 도피다. 어둠은 CG의 결함을 가려주고 상상력에 잔업을 떠넘긴다. <호프>는 그 도피처를 제 손으로 허문다. 아무것도 감춰주지 않는 백주 아래, 모든 세부가 발가벗겨진 채 관객의 검증대에 오른다. 한낮의 풀숏 롱테이크에 담긴 다소 겉도는 CG 캐릭터의 조악함 너머 감지되는 것은 무시무시한 집념과 자신감이다. (뭉개져서 잘 들리지 않는 대사도 같은 맥락이다. 그런 건 중요한 게 아니란 듯한 태도.) <호프> 속 물리적 시공간 재현의 핵심은 곧 질량의 재현이다. 부서지는 것들의 리액션, 그 무게감이 곧바로 실감으로 연결되는 것이다. 사운드도 한몫한다. 그것이 저기에 있다는 실감. 소리, 아니 울림으로 감각되는 정보들의 조합. <호프>를 본다는 것은 어떤 이야기를 따라가는 일이 아니라 질량의 파도를 연달아 얻어맞는 일에 가깝다.


다만 이 완벽한 재현들은 적어도 서너 조각으로 잘라져 있다. 서사적 분절과 시각적 쾌감의 반복. 대개의 영화는 이 조각들을 서사와 캐릭터, 개연성으로 꿰매지만 나홍진의 영화는 이 부분이 늘 취약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관심이 없다. 이유는 뒤에서 다시 밝히겠다. 각 조각은 전체 서사를 따라오지 않아도 이미 충분히 독립적이다. 관절이 나뉜 벌레처럼, 잘라내도 각 마디가 따로 꿈틀거린다. 몇개의 액션 시퀀스를 이어 붙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끊어져 있다는 사실이 중요치 않다. 개별 장면들이 이미 압도하니까.


재미있는 건 이 단절의 속성이다. 얼핏 긴 이야기를 필요로 하지 않는 짧은 영상 플랫폼에 특화된 건가 싶지만, 그건 또 아니다. 각 시퀀스의 완결성이 애초에 극장의 물리적 조건 위에 세워져 있기 때문이다. 스크린의 크기, 사운드의 압력, 좌석까지 밀려오는 진동. 스마트폰 화면으로 옮기는 순간 이 조각들은 질량을 잃고 그저 잘 만든 클립으로 쪼그라들 것이다. 조각난 몸이면서 오직 극장에서만 온전히 살아나는 몸. 파편의 형식과 극장의 신체가 서로를 요구하는 이 아이러니 속에서 <호프>의 호포항, 숲, 도로의 세 가지 시퀀스는 짜릿하고, 경이롭고, 끝내 헛되다.



방향을 잃고 상황을 맴도는 운동, “일단 달려”


“일단 달려.” “그다음엔요?” “나도 잘 모르겠어. 머릿속이 정리가 안돼.” 범석(황정민)의 이 대답은 영화의 상태를 고스란히 대변한다. 인물들은 어디를 향해 가는가. 무엇을 목적으로 움직이는가.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출장소장 범석과 마을 사람들은 괴물을 향해 맹렬히 달려든다. 흔적만 봐도 도저히 감당이 안될 게 뻔한데, 훈련받은 특수부대 요원처럼 흔들림 없이 돌진한다. 왜? 인류애 때문에? 직업적 책임감? 공동체의식? 모두 짐작의 영역일 뿐이다. 대신 단 하나의 뚜렷한 명령이 있다. 캐릭터들은 괴물을 쫓아야 한다는 것. 그리하여 공포를 모르는, 심지어 공포를 극복하고 투쟁하는 전투 민족 같은 공동체가 탄생한다.


여기엔 정해진 기능이 있을 뿐 인물들의 개별 욕망이 보이지 않는다. <호프>의 핵심 이미지는 뒷모습이다. 오프닝부터 뒷모습으로 출발해, 어딘가를 향해 쫓아가는 등들의 행렬이 이어진다. 얼굴은 욕망을 드러내지만 등은 방향만을 드러낸다. 우리는 그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모른 채, 그들이 어디로 향하는지만을 본다. 두 번째로 자주 나오는 이미지는 자동차, 그것도 유턴하는 자동차다. 지나쳐온 인물들은 반드시 어딘가로, 사건의 한복판으로 되돌아간다. 도망치던 차가 마치 어떤 중력에 붙잡힌 것처럼 급하게 핸들을 꺾어 아수라장 한복판으로 되돌아갈 때, 그 운동은 서사의 논리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그 중력의 정체는 아마도 인물의 것이 아니라 영화의, 카메라의, 감독의 욕망이다. 난리가 난 곳으로 가야 한다는 욕망. 스펙터클이 있는 곳으로, 부서지고 무너지는 곳으로, 렌즈가 담을 것이 가장 많은 곳으로. 인물은 그 욕망을 대신 수행하는 운반체에 가깝다. 그리하여 <호프>의 카메라는 서사와 사건의 방향이 아니라 인물, 상태, 상황으로 수렴한다. 이야기의 마침표를 향해 직진하는 대신 (폭력적) 상황 주변을 맴돈다.



이미지의 서커스. 물리적 실감과 CG의 충돌,“거길 건너가라고?”


“거기로 건너가라고? 미친 소리 하고 있네.” 외계인을 피해 말 위에서 달리는 성기(조인성)에게 차에 탄 범석 일행은 뛰어서 건너오라고 말한다. 애초에 차가 더 빠르고 안전한가는 논외로 하고 갑자기 벌어지는 이 서커스 같은 장면은 무모한 짓거리이기에 신기한 볼거리다. 이때 내뱉는 성기의 항변은 인물이 인물에게 하는 말이라기보다 카메라 너머의 감독에게 내지르는 말처럼 들린다. 물론, 그는 건넌다. 그걸 보여주는 것이야말로 이 영화의 목적이자 본질이기 때문이다. 불가능해 보이는 물리적 과제를 실제 몸으로 수행하는 것. 버스터 키턴의 슬랩스틱이 그러했듯, 여기서 스펙터클은 편집의 마술이 아니라 몸의 노동으로 성립한다. 문제는 나홍진이 그것을 너무 잘 만들었다는 데 있다. 껍데기가 어마어마해져서, 어느 순간 관객을 물리적으로 때리기 시작한다. 물리성이야말로 이 영화의 본체인 셈이다.


문제는 여기부터다. 이것은 보는 것의 경이에 관한 영화이고, 우리는 두 가지를 본다. 하나는 호포항을 비롯한 완벽한 재현의 공간. 다른 하나는 끝내 이질적인 외계인의 CG. 아무것도 가려주지 않는 대낮 아래에서 디지털 이미지들은 종종 화면 위로 붕 뜬다. 이 둘은 같은 프레임 안에서 끝내 화해하지 않는다. 그런데 기이한 역전이 일어난다. 외계인들은 죽은 다음, 시체의 모습을 할 때 비로소 정교한 물리적 재현의 세계로 넘어온다. 살아 움직일 때 그들은 데이터이고 픽셀이지만, 부검대에 눕는 순간 무게를 얻는다. 축 늘어진 사지, 점액질의 체액, 칼날이 파고들 때의 저항감. 죽어야 실재가 된다는 역설. 이 영화에서 가장 살아 있는 것은 죽은 것들이다.


이어지는 두 번째 역전. 이 충돌 덕분에 완벽하다고 느꼈던 호포항의 그 느낌마저 실은 재현된 시청각을 다르게 보여주는 장르 문법의 연장이었음을 우리는 뒤늦게 깨닫는다. 이질적인 CG와 완벽한 마을은 처음부터 같은 층위의 환영이었던 것이다. <추격자>에서는 위협과 긴장이, <황해>에서는 저돌적인 에너지가, <곡성>에서는 미로의 이야기와 현혹의 빈칸이 그 환영을 가려주었다. 그런데 <호프>는 아날로그와 디지털 두 세계를 정면 충돌하는 까닭에 환영의 실체를 남김없이 드러난다. 한없이 실제에 가까워지다 마침내 실재를 넘어서버린 영화적 재현, 그 기술적 경이로움이 모든 것을 압도한다. 한마디로, 와 저걸 어떻게 찍었지? 저기에 있는 무언가. 그것이 무엇인지는 끝내 말할 수 없지만, 있다는 것만은 몸이 먼저 안다.


<호프>는 처음부터 이야기가 희박하다거나 개연성이 부족하다는 비판을 들을 운명에 처해 있다. 그러나 이 압도적인 재현 앞에서 지루함은 허용되지 않는다. 그보다는 공허한 쪽에 가깝다. 공허의 정체는 단단한 껍질들, 곧 기표다. 장면의 의미가 아니라 장면의 상태. 내용 없는 기표들의 집적. 영화적 재현, 오락, 스펙터클, 신기한 구경거리. 무엇으로 불러도 좋다. 하지만 껍질이 본체라면? 그걸로 충분하다면? 싶을 만큼 물리적 실체를 띠는 장면들이 눈앞에 있다. 빈칸과 오인의 서사로 가려졌던 <곡성>과 달리 이번에는 SF의 외피와 CG를 두르고서, 훨씬 노골적으로 껍데기를 드러낸다. 아니, 한층 본격적으로 탐닉한다. 어마어마하게 시끄럽고 거대하지만, 믿을 수 없을 만큼 얇게 비어 있는 내부. 애초에 알맹이는 없다. 기의 없는 기표, 거대한 (악)취미, 껍질들의 놀이다.



목적 없는 소진, 또는 소진이 목적인 극상의 오락


처음으로 돌아가자. 갑자기 M16을 들고 나타난 성애에게 범석이 묻는다. “이거 어디서 났어?” 성애가 답한다. “지금 중요한 게 그게 아니잖아요!” 그럼 무엇이 중요할까. 이 영화는 말이 되는 세계에 관심이 없다. 나홍진은 늘 다른 방식의 설득을 추구해왔다. 때론 빈칸의 미로를 만들어 관객을 함정에 빠뜨렸고, 때론 직진으로 내달리는 무시무시한 에너지로 시선을 빼앗았다. 진실이란 옳고 그름의 기준점이 아니다. 차라리 (작가의) 방향이다. 어디로 향하고자 하는 의지의 발현이라 해도 좋겠다. 나홍진의 영화에는 특정한 방향이 부재하지만 웬일인지 의지는 가득하다. 방향이 부여되지 않은 의지는 탐닉할 대상을 찾아 맴돈다.


다시 묻는다.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나홍진은 진실과 의미에 무관심하다. 대신 그가 매료되어 탐닉하는 대상은 분명해 보인다. 두 극단의 이미지가 있다. 하나는 광각으로 잡아내어 아주 멀리 있는 풍경까지 선명해지는 풍경의 세계다. 멈출 줄 모르는 에너지로 부딪치고 깨지고 찌르고 부수며 내달리는 물리 운동의 영화적 재현. 카메라는 이 운동의 한복판에 스스로 몸을 던져, 속도와 충돌을 관객의 신경에 직접 이식한다. 다른 하나는 그 정반대편, 완전한 정지 상태의 시체들이다. 아니 인형들. 아니, 한때 생명이었던 것들의 완전한 정지. 최대 속도와 완전 정지. 이 영화의 심장은 그 두 극단 사이에서만 뛰고 그 사이에 있어야 할 것들, 그러니까 머뭇거림과 침묵과 일상의 미지근한 시간들은 통째로 증발해 있다. <호프>가 156분 동안 매달리는 건 재현의 극단에서 도달한 일종의 도착(倒錯) 상태다. 다른 말로, 오락. 누가 즐기고 있는 건지 주체가 헷갈리는 극상의 쾌감.


내용에도, 방향에도, 진실에도 관심이 없는 이 페티시는 종종 위험해 보인다. 동시에 구현 가능한 물리적 실체의 거의 한계점까지 도달해버린 까닭에, 때때로 실체를 띤 것마냥 생생하여 거의 아름답다. 강조하건대 이 두 명제는 인과가 아니다. 동시에 존재하는 긴장이다. 위험해서 아름다운 것도, 아름다워서 위험한 것도 아니다. 위험하고, 그리고 아름답다. 매료될 수는 있지만 헷갈려서는 안된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허상이다. 그러니 애초에 의미로부터 분리해놓아야 한다. 의미를 부여하고 해석하려는 순간부터 길을 잃고 독을 품는다. 보는 내내 참 잘 만든 장면과 탁월한 사운드, 재현의 결과물에 감탄할 수는 있다. 하지만 한편의 완결된 영화가 주는 감동에서는 저만치 떨어져 있음을 부정하기 어렵다. 결과물이 극상일수록 기술적 성취와 기교, 혹은 집념에 감탄은 할지언정 감동은 없다.


극장을 나서며 관객의 입에 맺히는 말들이 있을 것 같다. 압도적인 것에 넋 나간 성애처럼 “내가 뭘 본 거지”, 아니면 길 잃고 터덜터덜 달리는 범석처럼 “아니, 그냥 마음이. 마음이 xx 이상해서 그래”. 셋을 봤다고 말하며 네 손가락을 펴 보이던 해술처럼 우리는 여전히 보이는 것을 먼저 믿을 수밖에 없다. 굉장한 것을 보았다. 하지만 의미와 차단된, 꽉 찬 감각을 설명할 길이 없어 끝내 기분이 이상해진다. 어쩌면 비평이 할 수 있는 일이란 세 개라는 말과 네 개의 손가락, 말하는 것과 보여주는 것 사이에서 끝내 셈이 맞지 않는 하나를 마지막까지 머릿속에 그려보는 일뿐인지도 모른다. <곡성>을 보고 나는 나홍진이 거짓말쟁이라고 생각했다. 틀렸다. 그는 진실을 숨기는 자가 아니라 진실 자체에 무관심한 자다. 헛소리쟁이는 의도에만 부합하면 진실이든 거짓이든 상관하지 않는다. 헛소리의 본질은 “그것이 거짓이라는 데 있는 게 아니라 가짜(phony)라는 데 있다”. 창작자 나홍진은 자신을 과시한 장면과 행위들에 인과를 부여하고, 상황을 이해하고, 의미를 설명하여, 마침내 공감하려는 자들을 농락한다. 이번에도 여지없이 공간의 물성을 한계까지 담아낸 <호프>의 시청각적 성취는 경이롭다. 그리고 비어 있다. 이 두 문장은 반드시 나란히 놓여야 한다.



https://cine21.com/news/view/?mag_id=1103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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