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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21] 이병현 평론가의 '호프' 비평

무명의 더쿠 | 07-24 | 조회 수 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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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사에서 대표적인 반종결 서사로 꼽히는 마르코복음의 결말은 다음과 같다. “그들은 무덤에서 나와 달아났고, … 두려워서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가장 오래된 그리스어 사본에서 마르코복음은 16장8절, 빈 무덤을 발견한 여자들이 달아나는 장면에서 끝난다. 그 뒤에 붙은 ‘결말’은 학계에서 대체로 원문이 아닌 후대의 보충으로 여겨진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전승이 결말이 남긴 공백을 그대로 두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후대에 붙은 짧은 결말은 여자가 소식을 전했다고 보충하고, 긴 결말은 부활한 예수의 출현과 파송, 승천까지 이어 붙인다. 종결을 거부하는 결말이 독자에게는 보완해야 할 미완결 서사로 경험된 셈이다.


정확히 말해 16장8절에서 유예된 것은 부활이 아니라 부활 소식 전달과 약속된 재회다. 7절의 복권 약속과 8절의 공포 어린 침묵이 맞부딪히며 마르코복음은 ‘약속과 실패’를 함께 남긴다. <호프>의 마지막도 이 중단을 닮았다. 두 외계인은 죽은 아이를 되살릴 가능성을 말하고, 심장을 꺼내 들고, 남은 시간(‘3몰리’)을 헤아리며 행동을 결심한다. 그러나 나홍진은 그 결과도, 인간과 외계인이 각각 어떤 선택을 하는지도 보여주지 않는다. 차이라면 마르코복음은 완료된 부활을 선언한 뒤 증언과 재회를 유예하지만, <호프>는 부활의 성패와 수행, 곧 벌어질 충돌까지 함께 유예한다는 것이다. 마르코복음의 희망은 약속으로 보증되지만 <호프>의 희망은 아직 검증되지 않은 계획과 제목으로 앞질러 명명된다.


즉 <호프>에는 물리적 종료 지점은 있지만 플롯이 풍기는 종결감은 약하다. 이 중단을 서사적 종결 없이 주제적 종결에 도달한 ‘반종결’로 볼 것인가, 아니면 새 이야기를 다음 편으로 넘긴 ‘지연된 종결’로 볼 것인가? 이 판단은 영화가 관객의 오인을 어떤 방식으로 설계하고 교정하는지 살펴볼 때 더 선명해진다.


도입부 액션이 마무리되고 해술(임현식)은 순경인 성애(정호연)에게 외계인과 처음 마주친 순간을 진술한다. 해술은 손가락 네개를 펴고 “세 마리였다”고 말한 뒤, 성애가 되묻자 하나를 접는다. 카메라가 왼쪽으로 돌아 과거로 넘어가면 우리는 관습적으로 해당 이미지가 해술의 회상이라고 받아들인다. 그런데 이상하다. 정작 회상 화면에는 네 마리가 나타난다. 더구나 넷 모두 도입부 머리 긴 괴물과 똑같이 생겼지만, 후반부 등장하는 세 성인 외계인은 서로 전혀 다른 외형이다. 다시 말해 이 장면은 해술이 본 것을 그대로 복원한 것이 아니다.


몇 가지 가설. 이는 해술의 회상이 아닌 성애의 상상으로, 성애가 앞서 본 괴물 외형을 멋대로 덧씌운 것일 수 있다. 아니면 가장 최근 본 머리 긴 괴물에게 받은 충격으로 왜곡된 해술의 기억일 수도 있다. 둘 중 어느 쪽도 회상/상상 장면 속 괴물이 네 마리인 이유는 설명하지 못하는데, 누구에게도 귀속되지 않는 이미지라면 이는 아직 외계인을 개별자로 식별하지 못하는 인간과 관객의 무지를 시각화한 셈이다. 어느 쪽이든 나홍진은 과거를 복원하기보다 현재의 오인으로 과거를 다시 그린다. 그렇다고 이 장면이 <곡성>과 같은 기망 전략을 펴는 건 아니다. <곡성>은 누가복음 속 부활 장면으로 시작해 보이는 몸을 증거로 내세우면서도, 일광과 외지인의 굿판 교차편집처럼 관객의 오인을 유도한 뒤 사후적으로 취소하는 전략을 반복한다. 반면 <호프>는 함정에서 빠져나갈 구멍을 미리 열어둔다. 범석(황정민)이 도망치는 ‘괴물’과 눈이 마주치자 차마 쏘지 못할 때 관객도 이상함을 느낄 수 있다. <곡성>이 파국 뒤 해석을 흩트린다면, <호프>는 해석의 방향을 정리한 뒤 사건을 멈춘다. 흥미롭게도 괴물 쏘길 망설이는 범석은 사람을 괴물로 오인해 쏘고도 뻔뻔하게 굴며, 외계인을 죽인 양배(음문석)에게는 ‘네가 인간이냐’며 격분하는 태도를 보인다. 양배 역시 외계인 아이는 사냥감으로 죽였으면서 고양이를 피하려 운전대를 틀다 사람에게 해를 입힌다. 둘은 어떤 몸을 소중한 생명으로 식별할지 자의적으로, 또 본능적으로 가르는 인물이다. 특히 범석은 늘 한발 늦고, 잘못 보고, 거짓과 사실을 구분치 못하는 ‘굼뜬’ 사람인 주제에 행동이 앞서는 ‘얼빠진’ 인물로, 이 영화에서 비극은 그가 하는 오해 자체보다 오해한 채로도 행동할 수 있는 권력에서 생긴다. 범석의 마지막 대사, “잘 모르겠어. 머릿속이 도대체 정리가 안돼. 그리고 그냥 마음이 이상해”는 윤리적 각성이라기보다 측은지심에서 양심으로 나아가기 시작하며 발생한 지연에 가깝다. 영화가 완결했다고 주장할 수 있는 것은 이 ‘이상한 마음’이 만드는 주인공/관객의 관점 변화다. <호프>는 미지의 존재를 곰, 호랑이, 괴물, 외계인으로 거듭 분류한다. 진정한 전환은 외계인이 가족관계, 이름과 언어, 목적을 가진 주체가 되는 순간 찾아온다. 영화는 인간에게서 외계인에게 주인공 자리를 넘기는 데 거의 전 러닝타임을 쓴다. 사람들이 괴물이라 부르던 존재가 다른 이야기의 주인공이었다는 점을 관객이 알아차리며 인식적·정동적 이동은 완료된다. 부활하는 아기 외계인을 보여주지 않는 것도 ‘희망’을 결과가 아닌 가능성으로 보존한다는 점에서 일관된다. <호프>의 중단에는 분명 반종결을 향한 야심이 있다.


그러나 마르코복음과 비교하면 공백의 성격이 다르다. 16장8절 이후는 결국 7절이 그 방향을 제한한다. 갈릴리, 제자와 베드로, 재회라는 좌표가 이미 주어져 있다. <호프>는 마지막에야 외계인 대사를 번역하고, 추락하는 함선을 보여줘 새로운 위계를 투입한다. 외계인이 주인공이 되며 새 목표와 제한 시간이 설정된다. 평범한 영화라면 1막 말미에 놓일 출발점이 마지막에 배치된 셈이다.


더구나 생략된 것은 단순 후일담이 아니다. 인간이 먼저 아이를 죽였다는 사실은 피해자와 가해자의 위치를 뒤집지만, 그 상실이 무관한 인간에 대한 살육을 어디까지 정당화하는지, 인간은 어떤 책임을 져야 하는지, 보복과 정의는 어디에서 갈라지는지, 두 집단은 공존할 수 있는지 등의 질문을 남긴다. 영화는 관객을 외계인 편으로 옮기는 데 성공하지만 편이 바뀐 뒤 무엇을 해야 하는지는 말하지 않는다. 윤리적 전향은 끝났지만 그 이후 펼칠 정치는 물음표로 남았다. 그런데 이것이야말로 영화가 제기한 질문의 진실성을 시험할 본론이 아니던가.


그래서 ‘희망’은 해답이면서 편리한 알리바이가 된다. 부활의 결과를 보여주지 않기에 희망이 남는다는 논리는 그럴듯하나 불확정성이 곧 희망은 아니라는 점을 간과한다. 비워진 미래에는 부활과 화해뿐 아니라 복수와 전쟁, 더 큰 파국도 들어갈 수 있다. 마르코복음이 부활을 확정하고 증언을 유예한다면, <호프>는 부활과 증언과 정치 모두를 유예한다. 영화는 쓰지 않은 결론의 빈자리를 믿음으로 먼저 점유한다.


그렇다면 <호프>는 끝나지 않고도 완결될 수 있는가. 인식이 전도되는 서사만을 기준으로 한다면 그렇다. 하지만 행동과 책임의 서사까지 포함한다면 답은 달라진다. <호프>는 반종결을 지향하지만, 실제로는 새로운 주인공을 소개하며 중단한 지연된 종결에 더 가깝다. 마르코복음의 후대 전승이 새 결말을 덧붙였다는 사실은 복음 속 공백이 남긴 약속과 실패의 긴장을 독자가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는 점을 알린다. 하물며 <호프>의 공백은 다음 사건을 속편에 맡긴다는 인상을 떨치기 어렵다. 괴물이 말하는 순간 사냥은 끝났다. 이제 정치가 시작되어야 한다. 영화는 바로 그 문턱에서 끝난다. 나는 그 문턱을 넘어서는 나홍진을 보고 싶다.



https://cine21.com/news/view/?mag_id=1103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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