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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적 허용’은 어디까지?…‘맨 끝줄 소년’의 위험한 글쓰기

무명의 더쿠 | 17:06 | 조회 수 299



열패감 사로잡힌 교수의 집착·광기
진실과 허구를 파고드는 서스펜스
예술 윤리 vs 창작에 대한 불편한 질문



넷플릭스 ‘맨 끝줄 소년’ [넷플릭스 제공]


※ 넷플릭스 시리즈 ‘맨 끝줄 소년’에 대한 일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헤럴드경제=손미정 기자] 허문오(최민식 분)는 해묵은 열등감과 첫사랑에 대한 그리움을 애써 숨기고 살아가는 국문학과 꼰대 노교수다. 사소한 바람에도 불안하게 일렁이는 그의 마음은 어느 날 문득, 맨 끝줄에 앉은 한 학생 이강(최현욱 분)이 쓴 한 편의 글에 사정없이 요동친다. 이강의 펜은 관음과 관찰의 아슬아슬한 경계에서 문오를 빨아들이고, 이윽고 문오의 열패감과 엉키며 걷잡을 수 없는 파국의 길을 열어젖힌다. 배우들의 밀도 있는 연기와 글, 대사만으로 빚어낸 서스펜스가 모든 감각들을 모조리 깨워 휘감는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맨 끝줄 소년’이다.지난 26일 공개된 최민식·최현욱 주연의 ‘맨 끝줄 소년’은 스페인 극작가 후안 마요르가의 동명 희곡(El chico de la última fila)을 원작으로 한다. 프랑스를 대표하는 감독 중 한 명인 프랑수아 오종 감독이 ‘교실 안에서’(Dans la maison)란 제목으로 영화화하기도 했다. 이번 작품은 넷플릭스 시리즈 ‘트렁크’,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 ‘괜찮아, 사랑이야’ 등 인물 심리 중심의 섬세한 연출을 보여온 김규태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넷플릭스 ‘맨 끝줄 소년’은 학생이 쓴 에세이를 읽고, 그 이야기에 점점 빠져들게 된다는 설정과 이야기 속에 또 다른 이야기가 펼쳐지는 원작의 메타픽션적 구조를 가져와 재구성한다. 이강이 써 내려간 글이 서사의 또 다른 축이 되고, 그 글을 읽는 허문오가 점점 그 이야기에 빠져들면서 ‘현실’과 ‘허구’ 사이의 늪에서 결국에는 길을 잃어버리는 것이 극의 큰 줄기다. ‘어디까지가 현실이고, 어디부터가 소설인가.’ 불현듯 떠오른 이 질문은 마지막 엔딩까지 떨쳐내기 힘들고, 이는 온전히 시청자가 짊어져야 할 몫이다.

넷플릭스 ‘맨 끝줄 소년’ [넷플릭스 제공]


대학에서 교편을 잡고 있는 허문오에게 따라다니는 또 다른 수식은 실패한 작가다. 학생들의 형편없는 글을 ‘쓰레기’라 부르는 데 주저함이 없는 그는, 정작 대학 동문이자 성공한 작가인 김수훈(허준호 분)이 자신을 형편없는 작가 취급했던 독설은 잊지 못한 채 살아간다. “너 문장 공부부터 다시 해야겠더라.” 자신을 주저앉힌 친구의 말을 평생 곱씹고 사는 그에게 남은 것이라곤 꺼내놓기도 민망한 열등감과 패배감. 정작 그에게 필요한 창작의 욕망은 꺼져버린 지 오래다.

그런 그의 앞에 강의실 맨 끝줄에 앉아 수업을 듣는 이강이 나타난다. 이강은 현실에 대한 부정이 쌓아 올린 허문오의 자기 확신을 깨부수고 들어오더니, 이윽고 과제로 제출한 글로 허문오의 마음을 뒤흔든다. 흙 속 진주를 발견한 허문오는 이강에게 따로 자신에게 문학 수업을 들을 것을 제안한다. 이미 그의 상상 속에는 작가로 성공한 이강이 시상식에서 ‘스승’인 자신에게 공을 돌리는 미래가 펼쳐진다. 허문오는 못다 이룬 꿈을 이강에게 투영하며 그를 제자로 만들기 위해 집착한다. 태어나 처음으로, 넘지 말아야 할 선까지 넘으면서.

허문오를 빨아들인 이강의 글은 관찰기에 가깝다. 생계형 아르바이트를 하며 공부하는 이강은 함께 강의를 듣는 김세윤(이진우 분)을 통해 그의 가족이 꾸리고 있는 이상적인 중산층 가정을 마주한다. 그는 친구의 가족을 더 가까이서 지켜보기 위해 세윤에게 의도적으로 다가간다. 그의 글에는 세윤의 아빠와 엄마, 세윤과 누나, 가정부까지 이강의 눈으로 관찰한 남의 집 일상이 고스란히 기록된다.

넷플릭스 ‘맨 끝줄 소년’ [넷플릭스 제공]


세윤의 가족 속으로 들어가는 이강의 불투명한 의도, 관음과 관찰의 경계를 오가는 윤리적 불편함은 허문오를 찝찝하게 한다. 하지만 이강의 이야기가 가진 힘은 이 모든 의문을 덮어버리고는 허문오의 갈증을 더욱 자극한다. 어느 날, 허문오는 김세윤이 자신이 그토록 ‘이기고 싶은’ 김수훈의 아들이었음을 알아챈다. 이강의 글을 통해 훔쳐본 가정이 김수훈의 집이고, 따뜻하고 아름다운 세윤의 엄마는 자신이 그토록 사랑했던 첫사랑 안은주(김윤진 분)였음을 말이다.

미처 몰랐던 사실은 이강이 쓴 글의 마지막 조각이 돼, 허문오의 머릿속에 겨우 남아 있던 진실과 허구의 경계마저도 완전히 무너뜨려 버린다. 허문오는 성공한 작가, 자상한 중산층 가정의 아버지라는 ‘가면’을 쓴 김수훈의 민낯이 이강의 글을 통해 까발려지길 바란다. 그 과정에서 그는 타인의 삶을 침범하고 조작하는 행위마저도 주저하지 않는다. 상처 난 양심은 ‘글을 쓰기 위한 것’, ‘진실을 말하기 위한 것’이란 허울뿐인 변명으로 정당화된다. 이강은 걷잡을 수 없이 흘러가는 이 이야기를 마무리할 수 있을까. 그리고 허문오의 광기 어린 폭주의 결말은 어디일까.

‘맨 끝줄 소년’이란 작품 자체를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단어는 중 하나는 노련함일 테다. 최민식을 필두로 최현욱, 허준호, 김윤진, 진경 등 모든 출연진의 연기에서 빈틈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 한 줄의 대사에, 문장 한 줄에 담긴 미묘한 뉘앙스와 의미 혹은 감정들은 온전히 배우들의 연기 안에 자연스레 녹아든다.

특히나 ‘베테랑’ 최민식과 ‘신예’ 최현욱의 연기 차력쇼가 뜨겁고 짜릿하다. 주체하지 못하는 열등감에서부터 대놓고 제 할 말을 못 하는 찌질함, 끓어오르는 흥분과 광기, 희열과 절망, 균열이 모두 최민식 안에 있다. 직감적으로 ‘진실’의 부재를 느끼게 만드는 최현욱의 텅 비어버린 눈동자와 표정은 극의 개연성 그 자체다. 마치 새장을 벗어난 듯 짜릿함과 흥분 속을 날아다니는 1부 엔딩 부분에서 최민식이 선보인 연기는 도저히 한계를 알 수 없는 베테랑의 품격을 느끼게 한다.

넷플릭스 ‘맨 끝줄 소년’ [넷플릭스 제공]


극의 처음과 끝을 단단하게 이으며 긴장을 놓을 수 없게 만드는 서사와 연출도 눈길을 끈다. 감독은 액자식 구성의 딱딱함을 완전히 풀어헤치고, 캐릭터와 시청자 모두 무엇이 진실인지 알 수 없는 경계에서 헤엄치게 만든다. 색소폰부터 클라리넷, 기타, 첼로 등 다양한 악기를 활용해 만든 사운드의 강약 조절도 자칫 느슨해질 수 있는 몰입감을 단단히 붙들어 맨다.

김규태 감독은 “이야기 속에 이야기가 겹쳐 있기 때문에 이 경계가 느슨해야 시청자들이 더 빠져들어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면서 “‘이강’의 글에 빠져들 수 있도록 이야기의 진행, 속도감, 배우들의 연기 등 다방면에서 신경을 썼다”고 밝혔다.

극 초반부 허문오는 김수훈을 만나 그가 ‘대중영합적’ 작가란 자신의 비판을 에둘러 전한다. 이에 김수훈은 이렇게 답한다. “작가하고 독자가 서로 뜻이 맞다는데, 이보다 신나는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이는 허문오와 이강의 관계성에서 정확히 구현된다. 작가 이강은 그것을 읽는 독자 허문오의 목마름을 정확히 파고들고, 허문오는 자신이 비판하게 마지않았던 대중영합적 글에 사로잡혀 집착한다. 그 과정에서 독자가 원하는 글을 쓰기 위해 타인의 삶을 침범하는 행위는 불편하기 짝이 없다. 창작을 빙자한 현실 왜곡과 관음. 한순간도 눈을 뗄 수 없는 서스펜스 속에 자리한 것은 창작과 윤리, 욕망과 예술의 관계를 파고드는 묵직한 질문이다. 15세 이상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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