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Q(큐) 이남경 기자]
*이 리뷰는 넷플릭스 시리즈 ‘맨 끝줄 소년’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소년은 왜 맨 끝줄에 앉아 있었을까. 눈에 띄지 않으면서도 다소 거리감이 있는 자리면서 교실 전체를 바라볼 수도 있는 곳. 어쩌면 그의 위치 자체가 이 작품의 힌트일지도 모른다.
맨 끝줄 소년은 실패한 작가이자 국문학과 교수 허문오가 강의실 맨 끝줄 소년 이강의 천재성을 발견하고 그의 글에 집착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서스펜스 드라마다. 연기 최강 조합 최민식과 최현욱의 출연으로 기대를 한 몸에 받은 작품이다.
이미 연기로 정평 난 장인과 신흥 천재의 만남이다.
최민식은 역시 최민식이다.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흡입력 있는 연기로 시청자를 맨 끝줄 소년 세계 속 독자로 끌어들인다. 여기에 밀리지 않는 신흥 연기 천재 최현욱이 기다린다. 의뭉스럽지만 어딘지 측은한 이강을 섬세하게 그려내며 허문오와 함께 시청자를 허구와 사실의 경계에 세운다.
“다음에 계속.”
이강의 대사다. 평범한 말이다. 그러나 가장 흥미로운 순간에 이 말을 듣는다면 어떨까. 다음에는 어떤 이야기가 이어질지 궁금하면서도 빨리 보고 싶다는 마음이 생기는 게 당연지사. 욕망에 누군가를 미워하던 감정마저 정당화할 힘이 붙는다면, 당장이라도 다음 이야기가 보고 싶어질 것이다.
단 다섯글자의 대사는 맨 끝줄 소년의 매력이 되는 동시에 허문오의 열등감을 자극하는 대사기도 하다. 맨 끝줄에 앉아 있던 이강이 허문오 교수의 앞으로 올 수 있었던 이유기도 하다.
단 한 권의 소설을 집필한 후 후속작을 내놓고 있지 못한 채 실패한 허문오는 교수로 살아간다. 김수훈(허준호 분) 작가를 향한 열등감, 패배감은 뒤틀린 형태로 표출돼 학생들에게 비수처럼 꽂힌다.
그런 그를 자극한 학생이 이강이다. 그는 허문오의 작문 과제를 뒤늦게 제출하며 눈길을 끈다. 일기처럼 써 내려간 소설로 김세윤(이진우 분)과 친구가 된 이유, 그의 가족과의 만남을 흡입력 있게 쓰며 허문오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소설에 매료된 허문오는 다음 편을 보기 위해 작문 과외를 제안하고 이에 집중할 수 있게 돕고자 선 넘는 행동을 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점차 이강은 관찰보다는 관음에 가까운 방식으로 글을 이어 간다. 허문오는 이강의 행동에 선을 그으려 하지만, 김세윤의 부친이 김수훈 작가라는 사실을 알게 되며 오히려 고장 난 브레이크를 단 자동차처럼 걷잡을 수 없이 질주한다.
최민식은 감정적으로 행동하던 중에도 이성적인 판단을 잃고 열등감에 잠식된 허문오를 완벽히 그려냈다. “다음에 계속”이라는 말에 현혹돼 김수훈 작가의 이면을 폭로할 희열에 빠지고 점점 깊이 빠져들게 되는 집요하고도 지질한 감정을 섬세하게 풀었다.
현실은 뒤로 한 채 이강의 소설에 중독된 것만 같은 폐인 같은 모습, 파멸로 향하는 허문오의 감정과 행동을 극대화하며 극의 긴장감을 끌어 올렸다. 시청자 역시 사실과 허구의 경계에 놓여 혼란에 빠지게 하며 비로소 진실을 마주했을 때의 허무함과 수치심을 충격적으로 보여줬다.
‘올드보이’의 오대수(최민식 분)가 혀 때문에 복수를 당했다면, 맨 끝줄 소년의 허문오는 글 때문에 무너진다. 특히 흥미로운 글에 집착하며 더 깊이 파고들 때의 희열은 열등감의 감정을 복수로 표출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가 되고 자신의 것으로 만들려는 욕망으로 변해가는 최민식의 눈빛 연기는 일품이다. ‘역시 최민식’이라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눈빛만으로 열등감에 잠식된 허문오의 감정 변화를 모두 느낄 수 있다. 제동을 걸지 못한 채 질주만 하는 그가 충분히 멈출 기회마저 놓치는 과정에서 시청자들도 다음 이야기를 기다리게 한다.
최현욱의 활약도 못지않다. 호기심을 자극하던 소설이지만 점차 자극적인 내용이 담기며 이강은 사실을 말하는 것일지 의문이 들게 한다. 최현욱은 의뭉스러운 눈빛과 차분하게 설득력 있는 어조로 시청자들마저 허문오와 함께 허구와 사실의 경계에 세운다. 혼란에 빠지는 순간에도 이강이 과연 사실을 말하고 있는 것인지 착각이 들 정도. 관찰이 관음으로 변질된 순간 희열에 찬 듯 말할 때는 음흉하면서도 섬뜩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그가 맨 끝줄 소년인 이유를 생각하게 한다. 고독하게 한 발 떨어져 전체를 관찰하며 이야기를 풀어내는 존재. 관찰자이자 이야기의 화자가 되는 인물로서 극의 상징성 그 자체가 되는 순간, 얼얼함이 남는다.
최민식과 최현욱의 조합은 정말 옳았다. 최민식을 궁지에 몰아넣는 최현욱의 존재만으로도 맨 끝줄 소년의 연기 카타르시스가 느껴진다. 팽팽한 연기 대결이다. 몰입도에 몰입도가 더해진다. 적절한 긴장감과 블랙 코미디적 요소가 더해져 마냥 무겁게 보는 작품은 아니다. 그러나 클라이맥스를 향할 때는 서스펜스 요소가 극대화되며 손에 땀을 쥐는 긴장감을 선사한다. 모든 게 터지고 난 뒤에는 탄식과 허무, 씁쓸함과 인간의 지질한 욕망의 결말을 마주한다.
허준호, 진경, 조한철, 김윤진, 문정희, 김종태, 한지은, 이진우, 정이서 등도 힘을 발휘한다. 허문오를 둘러싼 이들도 혼란스럽게 만드는 몰입도 높은 연기를 펼친다. 더불어 극의 분위기를 극대화하는 음악과 고요함 속 폭풍이 몰아칠 것만 같은 연출, 섬세한 미술 요소 등이 고르게 어우러져 한 편의 연극을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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