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단심이 와 있다.
세계가 반가운 기색으로 엷게 미소 짓는데, 단심이 어두운 표정으로 세계를 응시한다.
세계는 살짝 당황해 한다.
"너 그냥 이사 가자. 방범창도 없고, 보안도 제로고. 내가 불안해서 안되겠어."
"나는 이 집이 마음에 든다. 너나 소란 피우지 말고 그만 가라."
"너도 배우야. 그냥 엑스트라 아니고 이제 진짜 연예인이라고. 그, 사방 탁 트인 데서 일상생활이 가능할 거라고 생각해?"
"사방이 탁 트여 좋은 거다. 좁고 캄캄한 데는 숨쉬기도 힘이 드니."
단심이 세계를 보지도 않고 있다.
"알았어. 넓은 데로 얻으라고 내가 소속사에다가 말할 테니까 바로 이사 준비해. 괜히 사람 걱정하게 만들지 말고."
"누가 내 걱정 해주라 했냐? 내가 탁 트인 데 살건 좁아터진 데 살건 내 신경 끄란 말이다."
"너 오늘따라 왜 이렇게 삐딱해? 뭐, 촬영장에서 잘 안 풀렸어? 아니면 누가 텃세 부렸나? 다 말해봐, 내가 들어보고 고쳐줄..."
"하지 마라. 그냥 나한테 아무것도 하지 마."
단심은 세계와 마주 서서 눈을 맞춘다.
"난 더 이상 널 방패 삼고 싶지 않다. 내 걱정 하는 것도 싫어. 이곳에서 나는 그저 내 한 몸 지키는 것도 버거워. 가볍게 살고 싶어.
누가 날 마음에 담는다 생각하면, 무거워 견딜 수가 없다.
그러니 이제 그만해라. 나도 너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 없으니."
굳은 얼굴의 세계가 화를 꾹 참는 듯 말없이 여기저기로 시선을 던진다.
단심은 아랫입술을 잘근 깨문다.
세계가 허탈한 얼굴로 눈시울을 붉히는가 싶더니 우연히 뭔가를 발견하고 멈칫한다.
세계의 표정이 결연해진다.
마음아픈 기색의 단심을 지나쳐 세계가 평상으로 가서 뭔가를 주워든다.
제주도에서 단심이 가져온 조약돌이다.
"그럼 이건 뭔데?"
단심이 젖은 눈으로 조약돌을 본다.
"누가 널 마음에 담는 건 그렇게 싫다면서 이건 왜 주워 온 건데?"
"그건 그냥 기억의 증표..."
단심은 아차 싶어 한다.
지난 밤.
'좋은 기억은 쉬이 잊히지 않도록 이리 증표를 모아두는 것이다.'
현재.
단심이 세계에게서 시선을 거둔다.
"너 다 기억하네. 근데 연기까지 한 거야? 기억 안 나는 척, 아무 일도 없었던 척."
"그래, 그랬다. 너랑 복잡하게 더 얽히기 싫어서 꾸며냈다."
"부정도 안하네. 너 진짜..."
세계는 쉽게 입이 떨어지지 않는지 침을 꿀꺽 삼키며 망설인다.
결국 세계가 하기 싫은 듯한 얘기를 힘겹게 뱉는다.
"내가 그렇게 아니야?"
"그래, 너는 아니다. 나는 하늘 아래 나 하나면 충분하고 혹여 사내가 필요하다 하더라도, 너는 절대 아니다."
세계가 고개를 끄덕인다.
"절대씩이나?"
"기별 없이 오는 것도 하지 마라. 상대하기도 귀찮으니."
단심은 충격받은 얼굴의 세계를 지나친다.
그런 뒤 옥탑방으로 들어가 버린다.
뒤따라가서 문을 두드리려던 세계가 멈칫 단심의 말을 떠올린다.
'너는 절대 아니다.'
"하.. 상처 주네, 신서리."
옥탑방 안.
단심이 문 앞에 서서 마음 아파 하는데 자리를 뜨는 세계의 발소리가 들린다.
'아무도 담지 않으면 부서질 일 따위 없어. 가만히 고여 있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
단심은 문을 잠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