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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21] 제79회 칸영화제 심사위원장 박찬욱 인터뷰

무명의 더쿠 | 11:21 | 조회 수 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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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최초로 경쟁부문 심사위원장에 오른 박찬욱 감독은 클로이 자오, 데미 무어, 스텔란 스카스가드, 루스 네가, 이삭 드 번콜, 로라 완델, 디에고 세스페데스, 폴 래버티 등 8인의 심사위원과 함께 2026년 칸영화제의 수상작을 가렸고 황금종려상은 <피오르>(크리스티안 문주)에 돌아갔다. <올드보이>(2004)로 심사위원대상, <박쥐>(2009)로 심사위원상, <헤어질 결심>(2022)으로 감독상을 받은 박찬욱은 한국 영화인 중 칸 본상 최다 수상자로서 오래전부터 '깐느 박'으로 불려왔다. 감금과 복수, 탐문을 거친 사랑의 이야기로 레드카펫의 플래시 세례를 받았던 감독이 올해는 22편의 경쟁작이 상영되는 뤼미에르 대극장의 어둠 속에 오래 머물렀다. 영화제 개막일에 그를 만나 심사위원장으로서의 소회를 물었다.



- 앞서 2월26일 심사위원장 공식 발표와 함께 공개된 수락 소감에서 "영화를 보기 위해 극장에 갇히고, 심사위원들과 토론하기 위해 다시 한번 갇히는, 이 자발적인 이중의 구속은 내가 큰 기대를 가지고 기다려온 일"이라고 짚었다. 부담이 큰 자리이긴 하지만 시네필리아로서의 기쁨이 선명하게 느껴지는 소감이었다. 올해 영화제의 경험으로 무엇을 가장 기대했나.
= 주체성이 중요하고 뭐든지 나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게 좋다고 생각하는 시대이지만 영화 관람만큼은 극장에 감금돼서 꼼짝 못하고 영화가 시키는 대로, 끝까지 보도록 강요된 상태가 내게는 정말 소중하다. 거의 죄책감을 느끼다시피 하는 부분도 있는데 내가 너무 옛날 영화만 좋아하는 것 같다. 현대 영화를 많이 공부하자고 반성하곤 한다. 그래서 이전에도 심사를 할 기회가 있으면 시간이 허락하는 한 해보려고 했다. 실제로 정말 좋다. 당대 미학의 최전선에 있는 영화들을 집중적으로 일별하는 일이 정신을 신선하게 만든다. 이번에도 그런 기대를 갖고 왔다. 물론 심사라는 게 결과적으로 영화의 우열을 판정하는 성격이 있으므로 특히나 필름메이커인 심사위원으로서는 어려운 일이다. 거기 너무 큰 의미를 부여하기 보다 심사위원 아홉사람의 취향을 반영해 '이 작품에 주목해 주십시오'라고 하나의 제안을 만드는 일이라면 해볼 만하지 않을까. 영화제의 심사란 것이 그 자체로 가치 있고 불가피하게 필요한 점도 맞다. 영화 역사에 어떤 모멘트를 만들기도 하고 그동안 빛을 보지 못했던 영화가 두드러지도록 발견하니까.



- 심사위원장 역시 쉽게 취향을 꺾지 않고 보겠다는 뜻이기도 할까.
= 그렇긴 한데 애초에 심사위원장도 9명 중 한 표일 뿐이다. 중요한 건 논쟁을 통해서 설득시키고 설득당하는 과정이다. 사실 영화 만드는 일이라는 게 동료들, 배우들, 프로듀서, 그리고 스튜디오들과 토론하는 시간의 연속이다. 치열한 대화 과정 속에서 모두가 만족하는 새로운 아이디어가 나오기도 한다. 그러니 각자의 취향이 충돌하거나 서로를 납득시키는 과정이 필요하대도 전혀 낯선 일은 아니다.



- 어느 영화제나 심사위원장의 성향과 운용 방식이 따라 매년 심사 풍경이 천차만별이라고 한다.
= 구성원들의 상태를 보면서 최선의 절충안을 찾고 싶다. 내가 영화 만드는 방식이 그런 것처럼. 초창기에는 회의를 너무 많이 하지 않는 게 좋겠다는 생각은 있다. 그렇게 되면 심사위원들이 힘들어한다는 봉준호, 송강호 씨의 조언도 있었다. (웃음) 또 너무 띄엄띄엄하게 되면 영화들이 뒤섞여버릴 것 같아서 우려스럽다. 차츰차츰 간격을 좁혀가면서 하려고 한다. 3~4편씩 묶어서 보면 좋지 않을까 싶다.



- 심사위원으로서는 2017년에 이미 한 차례 칸을 경험했다. 위원장직에 별도로 체감하는 역할이 있다면.
= 세월이 흐른 다음에 사람들이 '2026년 칸에서 어떤 영화가 상을 받았어'라고 역사를 복기할 때 주로 그 해 심사위원장의 이름을 본다. 그러니까 '아니, 어떻게 이런 영화에 상을 줄 수가 있나' 싶어진다면 내가 욕을 먹을 테니까 더 신경이 쓰일 수밖에.



- 2004년에 쿠엔틴 타란티노 심사위원장은 <올드보이>에 황금종려상을 주고싶어했다고 알려진다. 이번에 출국을 앞두고 최초에 칸을 찾은 시절을 회고해보기도 했나.
= 감독으로 온 첫 해도 중요한 경험이었지만 사실 더 소중한 추억이 있다. 첫 영화(<달은... 해가 꾸는 꿈>)를 만들고 두번째 영화를 준비할 시절에 영화 프로듀서 윤명오 선생이 내게 칸에 같이 가지 않겠냐고 제안했다. 당시에 외화 수입사들의 부탁을 받고 칸에서 좋은 작품을 선별해주는 일종의 큐레이션 자문을 도맡아했던 분이다. 내가 거길 왜 가냐고 했더니 그냥 자기하고 같이 방 쓰면서 영화 구경이나 하자고 했다. 나는 그해 칸영화제 선수인 윤 선생을 따라 온갖 뒷문, 식당 주방 이런 데를 통과해서 팔레 드 페스티벌 건물 안을 누비곤 했다. 좋은 구경을 많이 했는데 그러면서도 남의 세상 얘기처럼 보였다. 그때 그분이 "당신도 언젠가는 경쟁에 당신 영화를 가지고 올 거니까 미리 봐두세요"라고 하는 거다. 뭔 말도 안 되는 소리인가 하고 콧방귀를 뀌었는데, 그 후에 여러 작품이 칸에서 상을 받았고 그 분이 돌아가신 후에 이제 심사위원장이 되고 나니… 그리운 마음이 든다. (<가위손> <바베트의 만찬> 등을 수입해 단관 시절 외화 붐을 일으켰고 화천공사, 하명중 영화사 등에 몸 담았던 윤명오 프로듀서는 2023년 타계했다 - 편집자주)



- 그에 앞서 감독님은 한때 영화 비평을 생업으로 삼은 적 있다. 평론가의 경험이 영화감독의 작업과 어떤 식으로든 영향 혹은 긴장 관계를 이룬 바가 있다고 보나. 칸영화제는 베를린, 베니스와 비교해서도 일반 관객이 극히 드물고, 기자와 평론가, 영화 관계자들이 우선 거쳐가는 곳이다.
= 없다. 겪어보니 상관이 없는 일이더라. 내 영화를 만들고 싶은데, 먹고살려고 남의 영화를 보고 분석하면서 시간을 보내야 했기 때문에 과거에도 굉장히 어렵고 내키지 않는 일이었다. 사실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밥벌이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나. 그러니까 감수하면서 즐겁게 일을 하려고 했다. '언젠가 내가 영화를 만들 때도 도움이 될 것이다'라는 생각도 없진 않았는데, 결론적으로 별로 도움이 안 된다. 별개의 일임을 깨달았다. 덕분에 비평, 또는 리뷰어의 일에 대해서 더 존중하는 마음도 갖게 됐다.



-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국제영화제의 책임감도 부각된다. 정치적으로 엄혹한 상황에서 예술의 필요와 역할이 제기되는 것이다. 여기에 지난해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심사위원단이 내분되는 등 심사의 문제는 조금 더 첨예하다. 정치적으로 긴급한 작품과 미학적 성취 사이에서 심사위원단의 의견이 엇갈리고 결정을 내려야한다면, 어떻게 하겠나.
= 언론은 당연히 그런 부분에 초점을 두고 보도할 수 있고 관객도 각자의 정치적인 입장에 따라서 특정 영화를 더 지지하거나 비판할 수 있다. 모두 다 자연스러운 일인데 심사위원의 일은 조금 달라야하겠다. 예술과 정치가 대립항이 아니라는 점이 중요하다. 정치는 예술의 적이 절대로 아니다. 그러므로 심사위원장 뿐만 아니라 모든 심사위원들 각자가 자신의 양심과 순수성을 토대로 편견없이 임해야 한다. 원론적인 이야기지만 그렇게 할 수 밖에 없다. 이럴 때 늘 제기되는 레니 리펜슈탈(나치 시절 독일에서 히틀러 정부를 찬양하는 프로파간다 다큐멘터리를 대단히 탐미주의적으로 찍었다 - 편집자주)처럼 예술적으로 아무리 탁월하더라도 결코 동의할 수 없는 작품이 있고, 반대로 정치적 주장이 올바르다는 이유만으로 어떤 영화를 우대할 수는 없다.



- 신상옥, 임권택 감독 등 한국영화가 칸에 진출한 선례가 있지만 한국영화의 뉴웨이브가 국제 무대에서 인정받기 시작한 출발점엔 <올드보이>가 있었다. 그로부터 20년 이상이 지난 지금, 외신을 접하면 한국영화에 대한 인식이 어떻게 변화하고 있다고 느끼나.
= 전에는 한국영화를 묶은 질문들이 많았다. 한 덩어리로 보는 거다. '한국 영화는 왜 이렇게 폭력적이냐'라든가 '한국 영화는 왜 이런 면이 있느냐' 한바구니에 쓸어담는 식이다. 이제는 감독들의 개성을 구별하고 '당신은 왜 그러냐'는 질문으로 바뀌었다. 당연한 일인데 바뀌기까지 시간이 걸렸다.



- 올해 경쟁부문에 한국영화 최대 제작비가 든 장르영화 <호프>가 있다. 한국 영화 산업의 차원에서 어떻게 보나.
= 티에리 프레모 집행위원장이 <올드보이>를 언급하면서 칸영화제 경쟁 부문에 장르영화가 오르는 경우들이 역사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고 말하곤 했는데, <호프> 역시 그렇다고 생각한다. 한국영화계의 경사일 뿐만 아니라 흔히 영화제에 기대하는 아트하우스 영화의 틀을 확장하므로 칸영화제의 현명한 선택이다.



- 올해 칸 마켓에선 심사위원장이 아닌 서부극 <래틀크릭의 강도들>의 감독 박찬욱에 대한 관심이 뜨거웠다. 할리우드에서 그동안 부지런히 작업해 온 정정훈 촬영감독과 재회할까.
= 그렇다. 아직 작품에 대해 자세히 말할 순 없지만 정정훈 촬영감독과 함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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