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뻔한 그 '좀비'가 아니다. 전 세계에 독창적인 한국 좀비 장르의 탄생을 알린 '부산행' 이후 10년, 연상호 감독의 신작 '군체'가 또 한 번 좀비 영화의 신세계를 연다.
서울 도심의 초고층 빌딩에서 정체불명의 집단 감염사태가 발생한다. 인류를 다음 단계로 도약시키려는 생물학자, 서영철(구교환 분)의 비틀린 신념으로, 정체불명의 바이러스가 퍼진다. 그는 감염자들을 새로운 인류의 탄생이라 믿는다.
건물은 순식간에 봉쇄되고, 그 안에 있던 사람들은 그대로 고립된다. 감염자들은 물어뜯는 본능만 남은 좀비가 아니다. 처음에는 짐승처럼 기어 다니던 감염자들은 점점 진화하며 두 발로 걷기 시작하고, 사람을 식별하며 무리를 지어 생존자들을 공격한다.
생명공학자 권세정(전지현 분)의 필두로 한 생존자들은 자신의 몸에 백신을 주입했다고 미리 신고한 '서영철'을 찾아 구조대가 기다리는 옥상으로 향하려 한다. 하지만 서영철은 감염자들을 앞세워 생존자들의 앞을 막아선다.
'군체'의 진짜 주인공은 역시 좀비다.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좀비와 같은 선상에서 출발하지만, 이들의 행동은 쉽게 예측할 수 없다. 집단 지성을 가진 감염자들이 서로 학습하고 진화한다는 설정은 생존자들은 물론 관객들까지 손에 땀을 쥐게 만든다.
점액질로 뒤덮인 얼굴과 기괴하게 뒤틀린 사지, 그리고 새로운 능력을 공유하는 순간 터져 나오는 좀비들의 울부짖음은 단순한 강렬함을 넘어 오싹한 공포를 선사한다. "이렇게까지 할 수 있다고?"라는 생각이 들며 나도 모르게 입을 틀어막게 될지도 모른다.
군체로 11년 만에 스크린에 복귀한 전지현은 생존자 무리를 이끄는 인물로 극의 중심을 단단히 잡는다. 감염자들의 행동 패턴을 읽어내는 그의 냉철한 이성과 판단력 덕분에 관객들 역시 좀비들의 특성을 보다 쉽게 파악하며 이야기에 몰입하게 된다.
생존자 무리의 중심에 전지현이 있다면, 그 반대편에는 구교환이 있다. 잘못된 신념 속 확신에서 비롯된 광기. 서영철은 구교환이라는 배우를 만나 한층 입체적인 빌런으로 완성된다. 예측할 수 없는 표정과 눈빛, 얼굴 근육을 활용한 '페이스 액션'까지. 심지어 눈이 가려진 상태에서도 섬뜩한 미소는 압도적인 존재감을 드러낸다.
다만, 극을 이끄는 두 인물의 서사가 깊게 쌓이지 않아 감정적으로 몰입할 틈이나 클라이맥스에서 터지는 결정적인 '한 방'은 다소 아쉽게 느껴진다. 인물의 내면을 충분히 축적하기보다 빠르게 전개되는 사건과 설정 설명에 집중하면서, 캐릭터가 지닌 감정의 무게감 역시 상대적으로 옅어진다.
전작인 '부산행'에서 아쉬운 점으로 꼽혔던 신파는 싹 사라진 '군체'지만, 크고 작은 용석(김의성 분)은 늘어난 느낌이다. 생존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에서 강렬한 인상을 남기거나 극의 흐름을 뒤흔들 만한 인물이 부재하다는 점 또한 아쉬움으로 남는다.
그런 의미에서 눈에 띄는 것은 남매인 현석(지창욱 분)과 현희(김신록 분)의 관계성이다. '가족을 지키고 싶다'는 보편적인 감정을 바탕으로, 뒤돌아보지 않고 내달리며 싸우는 이들의 '핏빛 용기'는 긴 여운을 남긴다. 지창욱과 김신록의 절절하고도 섬세한 연기도 큰 몫을 차지한다.
이렇듯 익숙한 좀비의 공포를 넘어, 인간다움과 개별성에 대한 질문까지 던지는 '군체'는 한국형 좀비 장르의 또 다른 가능성을 보여준다. 완성도 높은 '좀비 영화'를 원하는 관객이라면, '군체'는 충분히 만족스러운 선택이 될 만하다.
21일 개봉. 러닝타임 122분. 15세 이상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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