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지다! 임지연
<멋진 신세계>의 중심축인 임지연은 이번 주에도 이른바 '미친 연기력'으로 시청자들을 단숨에 사로잡았다. 조선 시대 궁중 암투를 몸소 겪어낸 강단심/신서리는 사극 콘셉트 CF 모델 자리를 두고 경쟁하던 톱스타 윤지효(이세희 분)와의 맞따귀 대결(3회)에서도 결코 밀리지 않는다.
막장 드라마의 클리셰를 대놓고 차용한 이 장면에서, 맞은 만큼 돌려주는 임지연의 통쾌한 한 방은 강단심이 온갖 음모가 도사리던 궁궐 안에서 어떻게 살아남았는지를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특히 이 과정에서 <더 글로리>를 연상시키는 패러디까지 자연스럽게 삽입되며 웃음을 극대화한다.
<여인천하>를 시청하던 강단심이 박수를 치며 "멋지다!"를 연호하는 장면(4회)은 압권이다. 4년 전 "멋지다 박연진"이라는 대사를 유행시켰던 <더 글로리>의 기억을 절묘하게 소환한 덕분에 드라마는 어느새 시청자들로부터 '패러디 맛집'이라는 별칭까지 얻고 있다.
현대극과 사극, 정극과 코미디를 수시로 넘나드는 작품 특성상 감정선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기란 쉽지 않다. 그럼에도 임지연은 광기 어린 눈빛과 또렷한 발성, 과감한 완급 조절로 매 장면을 설득력 있게 끌고 간다. 이제는 박연진보다 강단심/신서리를 그의 새로운 인생 캐릭터로 언급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정도다. <멋진 신세계>는 임지연이라는 배우의 또 다른 대표작 탄생을 예고하고 있다.
허당미와 차가움 공존하는 허남준
<멋진 신세계>의 상승세를 이끄는 또 한 명의 주역은 차세계 역을 맡은 배우 허남준이다. "난 당신을 하한가에 사서 최고 상한가에 팔아먹을 거야"라고 호기롭게 선언했던 차세계지만, 정작 뺨을 맞고 볼이 퉁퉁 부은 서리를 걱정하고 동물 알레르기도 참아가며 유기견까지 품에 안는다.
늘 시큰둥하게 신서리를 대하면서도 어느새 그녀에게 동화되어 가는 입체적인 재벌 3세 캐릭터는 허남준의 정교한 연기를 통해 비로소 설득력을 확보한다. 오해와 착각이 유쾌하게 교차한 4회에선 신서리가 한문으로 작성한 편지를 읽기 위해 일일이 글자를 필사하고 뜻을 찾고자 고군분투하는 모습으로 폭소를 자아냈다.
글자를 잘못 읽은 뒤 "이 여자 나 좋아하네"라며 혼자 확신에 빠지는 장면에서는 능청스러운 허당미를 드러내고, 엔딩 직전 "오해가 아니라면?"이라는 대사와 함께 서리를 품으로 끌어당기는 순간에는 로맨스 주인공다운 매력을 폭발시킨다. <유어 아너>와 <백번의 추억>을 거치며 무서운 성장세를 보여준 허남준의 등장은 이 드라마가 거둔 가장 값진 수확이라 부를 만하다.
탄탄한 연출과 극본의 힘
자칫 뻔한 방향으로 흘러갈 수 있는 타임슬립 사극과 현대극의 균형을 단단히 붙잡아주는 건 의외로 매회 탄탄함을 잃지 않는 연출과 극본의 힘 덕분이다. 자칫 중구난방으로 갈피를 잡지 못할 수 있는 위험 요소들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지만, 매회 안정적인 이야기로 재미와 웃음, 궁금증을 유발한다.
이번 3~4회를 통해 <모래시계> <야인시대> <여인천하>를 정주행하며 현대 문물을 속성으로 공부한 강단심은 급기야 <야인시대> 속 김두한에 빙의하여 할머니를 위협하는 용역 폭력배들을 맨몸으로 때려눕히는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이때 화면 비율을 과거 브라운관 TV 시절의 4:3 화면으로 바꾸고, 좌측 상단에 '서리시대'라는 자막 로고까지 삽입하는 기상천외한 감각을 보여준다.
이 작품이 요즘 시청자가 원하는 방향을 정확히 잡어내고 있다는 점 또한 주목해볼 만 하다. 자칫 식상할 수 있는 타임슬립과 빙의라는 소재를 빠른 전개와 유쾌한 코미디, 그리고 배후 속 음모를 추적하는 스릴러 요소까지 하나의 그릇에 매끄럽게 녹여내고 있기 때문이다.
분명 익숙한 재료만으로 차린 밥상 같지만 여기엔 제법 신선하면서도 중독성 강한 맛이 담겨 있다. 뻔해 보이는 외관 뒤에 체계적인 설계를 숨겨둔 것, 그것이 경쟁작의 거센 기세 앞에서도 〈멋진 신세계〉가 흔들리지 않은 진짜 이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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