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영화 제작 단계에서 있었던 일이다. 제작사 대표와 감독, 투자 팀장이 한자리에 모여 이 영화의 주연으로 누가 가장 적합한지 각자 이름을 적었다. 네 사람이 모두 같은 이름을 써냈다. 신혜선이었다. 지금 대중에게 “요즘 가장 연기를 잘하는 배우가 누구냐”고 묻는다면, 비슷한 답이 나올지도 모른다. <레이디 두아>에 이어 <은밀한 감사>까지, 신혜선은 단 한 장면도 허투루 흘려보내지 않는다. 모든 장면이 살아 있고, 그 자체로 흥미롭다.

넷플릭스 시리즈 <레이디 두아>는 제목 그대로 ‘두아’라는 인물을 중심에 둔다. 그런데 이 인물, 끝까지 정체를 단정하기가 어렵다. 사기꾼인가 싶다가도, 단순한 악인으로 규정하기엔 결이 다르다. 그는 거짓말을 한다. 하지만 동시에 자신이 하는 말을 진심으로 믿는다. 그 믿음은 상대에게까지 전이된다. 그래서 그의 인생이 무너지는 순간에도, 두아는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수치심 대신 묘한 당당함이 남는다. “거짓 없이 사는 사람이 과연 있느냐”는 식의, 낯설지만 설득력 있는 태도.
우리가 흔히 말하는 ‘선과 악을 오간다’는 표현은 이 캐릭터 앞에서 비로소 입체를 얻는다. 두아는 그 경계를 넘나드는 수준이 아니라, 아예 그 위를 활보한다. 이 비현실적인 인물을 현실로 끌어오는 힘, 그것이 바로 신혜선의 연기다. 그는 판타지를 사실처럼 보이게 만드는 데 능하다. 그 결과 관객은 허구를 의심하기보다, 오히려 믿게 된다.
<은밀한 감사>는 또 다른 결의 작품이다. 치열한 OTT 경쟁 속에서 비교적 조용히 출발했지만, 그 안에서 신혜선은 다시 한 번 존재감을 증명한다. 밝고 경쾌한 톤을 지향했다는 그의 말처럼, 이 작품에서 그는 코미디 리듬을 자연스럽게 살려낸다. 몸을 쓰는 방식도, 대사를 다루는 호흡도 유연하다. 그러나 그 바탕에는 여전히 ‘현실감’이 있다. 웃음을 유도하면서도 인물을 붕 뜨게 만들지 않는다. 저음에 가까운 음성, 평범한 인물을 연기해도 위화감 없는 외모. 그러나 작품에서 비중이 커질수록 점점 더 잘 들리고 점점 더 빼어나 보이는 게 데뷔 이후 신혜선이 해온 일이다.

주인아라는 캐릭터 역시 처음에는 다소 괴짜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인물은 점점 입체를 얻고, 결국 매력적인 존재로 자리 잡는다. 그 변화의 중심에는 신혜선의 연기가 있다. 흔히 배우가 인물을 사랑하기 때문에 좋은 연기가 나온다고 말하지만, 여기에는 중요한 전제가 빠져 있다. 신혜선은 인물을 아끼는 동시에 철저하게 거리 두기를 한다. 감정에 과하게 기대지 않고, 그렇다고 건조하게 밀어내지도 않는다. 그 인물이 ‘정확히 그렇게 했을 법한’ 지점에 연기를 놓는다. 그 정밀함이 주는 쾌감, 그것이 신혜선의 힘이다.
그래서 신혜선은 늘 새롭다. 이미 잘하는 배우라는 사실을 모두가 알고 있음에도, 작품이 바뀔 때마다 다른 얼굴을 보여준다. 더불어 그의 진가는 상대 배우와의 호흡에서도 드러난다. 짧게 등장하는 조연들과도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며, 장면 전체의 밀도를 끌어올린다. 조연과 단역을 거쳐 차근차근 필모그래피를 쌓아온 시간, 그 축적된 내공이 지금의 신혜선을 만든다. 앞서 한 배우를 네 사람이 동시에 이름을 적어낸 영화는 <타겟>이었다. 그리고 점점 더 많은 이들이 그의 이름을 적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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