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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주 “영혼까지 털어서 캐스팅했다”, <대한민국에서 건물주 되는 법> 임필성 감독

무명의 더쿠 | 14:21 | 조회 수 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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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랜만의 작품이자 첫 드라마 연출이다. 12화 드라마를 연출한 건 어떤 경험이었나.


= 모든 경험이 새로웠다. 매일매일 시간에 쫓기니 직관에 맡겨야 하는 부분도 있고, 배우와 현장에서 조율해야 할 일도 생긴다. 열차가 떠나면 못 찍으니 한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더라. 영화 현장이 우아한 것이었구나 깨달았다. (웃음)


- <대한민국에서 건물주 되는 법>은 부동산 욕망이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이야기다. 주택청약을 위해 아이를 입양하는 단편 <보금자리>(2017)부터 이런 세속의 욕망을 다루고 있는데.


= 그전까지는 대체로 세속적인 모티브와는 떨어져 있는 영화를 만들었다. 어느 시점부터 시대정신을 정확히 보여주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 그 무렵 윤신애 스튜디오329 대표가 이 작품을 제안했다. 7부까지 나온 각본을 읽고, 다음날 바로 하겠다고 했다. 소시민적 욕망이 스노볼처럼 커지다 와르르 무너지며 아수라장이 되는 이야기, 흥미롭지 않나. 스릴러에 블랙코미디를 가미해 풀어보면 재미있겠다 싶더라. 영화광적 DNA를 쏟아부으며 찍었다.


- 실험적인 순문학만 쓰던 오한기 작가의 드라마 데뷔작이다. 이전에 쓰던 작품들과 완전히 다른, 장르의 문법에 충실한 이야기라 더 놀라웠다.


오한기 작가와 함께 작업하기로 하고 그의 책을 사서 읽어봤다. 대중적이지 않더라. 순문학을 하시는 분도 이렇게 타락하고 싶은 DNA가 있구나 싶었다. (웃음) 농담이고, 문학을 쓰시던 분이기에 동시대의 문제와 인간 내면의 어둠을 더 잘 볼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 감독님 작품은 캐스팅이 늘 화려한데, 이번 드라마가 그 정점이다. 드라마에 19년 만에 얼굴을 비춘 배우 하정우부터, 임수정정수정김준한심은경, 카메오로 김남길박병은주지훈까지. 캐스팅의 비결이 뭔가? 역시 인덕?


= 배우 복이 있는 편이다. 영혼까지 털어서 캐스팅했다. (웃음) 비결이 있다면, 배우들에게 새롭고 도전적인 역할을 제안해서가 아닐까? 이를테면 ‘요나’ 역할에 배우 심은경을 캐스팅한 것처럼. 원래 대본에선 남자 캐릭터였다. 윤신애 대표님이 여자로 바꿔보자고 제안하면서 심은경 배우에게 이 역할을 제안해보자는 이야기가 나왔다. 한번도 악역을 해본 적 없고 아이 같은 면이 있는 배우라 흥미롭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은경 배우와 촬영 들어가기 전에 대여섯번 만나 이야기를 길게 나누고 아이디어를 공유했다. 그도 영화광에 대중문화 마니아라 레퍼런스가 많다. 영화 <시계태엽 오렌지>를 모티브로 한 눈알 셔츠 커프스뿐 아니라 문신 테스트도 해봤는데 심의 때문에 실행하지는 못했다.


- ‘요나’가 원안대로 남자 캐릭터였다면 익히 봐온 모습이었을 것이다. 신의 한수다.


= 은경 배우가 캐스팅되고 대본도 조금씩 수정했다. 중성적이고 알 수 없고 순수한 면이 있는 캐릭터로 잡아가다가, 그냥 “너답게 하는 게 좋겠다”고 결론지었다. 배우 본연의 순수함에서 출발하자. 여기에 직업의식이 있는 캐릭터로 풀어보자는 건 은경 배우의 아이디어였다. 현장에선 신나서 하는 게 느껴졌다. 액션을 그렇게 잘하는 줄은 또 몰랐다. 처음 무술 훈련받으러 갈 때 괜찮겠냐고 물었더니 되게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보더라니…. 자신이 있었던 거다. (웃음) 후반부에 은경 배우가 큰 역할을 하는데, 정말 예상치 못한 연기였다. 말 그대로 칼춤을 췄다. 하정우 배우와 붙는 신이 많은데 그도 은경 배우의 에너지에 매번 놀랐다.


- 적수로서 하정우와 심은경, 신선한 조합이다. 완전히 다른 둘이 붙을 때 발생하는 팽팽한 에너지가 있더라.


= 테스트로 투숏을 잡을 땐 체격 차이가 너무 많이 나서 걱정이 되기도 했다. 제일 센 빌런인데 괜찮을까. 그런데 막상 찍기 시작하니 불이 확 붙더라. 하정우 배우가 은경 배우에게 좋은 자극을 많이 받았고, 현장에서도 많이 아꼈다.


- 그외에도 여성 캐릭터들이 다채롭다. 가정을 지키려는 아내처럼 보였지만 불륜을 해온 ‘선’, 각성이 기대되는 ‘이경’, 유일하게 정의를 좇는 ‘주란’, 부동산 부자 ‘전양자’까지. 입체적이고 재미있는 여자들이다.


하정우 배우가 주로 남자배우들과 연기하다 여자배우들의 저력을 제대로 확인한 계기였지. (웃음) ‘수종’이라는 아저씨의 욕망으로 시작하지만, 마초적 이야기로 흘러가지 않도록 최선을 다했다. 그런 이야기는 어디서 본 듯한 이야기가 될 테니까. 여성의 욕망, 어두움, 악함에 대해서도 최대한 입체적으로 그리려 했다.


- ‘선’을 연기한 배우 임수정의 연기가 극의 중심을 안정감 있게 잡아준다.


= 배우 임수정과 하정우의 연기 경력을 합치면 도합 50년이다. 임수정 배우는 나도, 하정우 배우도 오랫동안 함께하고 싶었던 배우 1순위였다. 드디어 만나게 된 거지. 임수정 배우는 씩 웃는 리액션 하나도 온전히 납득이 되고 체화되어야 하는, 한컷도 허투루 넘어가지 않는 배우다. 시간에 쫓기는 와중에도 충분히 준비해오고, 매신 매컷 공을 들이는 모습이 든든했다.


- ‘수종’이 납치극에 끼어들 때까지는 왜 저러나 싶으면서도 잘 풀리길 바랐는데, 세입자까지 죽게 만든 지금으로서는 그의 악행이 빨리 밝혀지고 합당한 벌을 받길 바라게 된다. 주인공을 이렇게 선 넘는 모습으로 그려내는 건 꽤 리스크가 있지 않나.


= 의도한 바다. (웃음) 선과 악의 경계가 모호한 인물이길 바랐다. 주인공을 응원해야 할지 말지, 카오스의 상태에서 시청해주시길 바란다. 또한 윤리적 딜레마에 처한 주인공이 선을 넘었을 때, 새롭게 몰입할 수 있는 인물이 바통터치를 기다리고 있다.


- 납치극의 피해자인 ‘이경’? 이제 나는 ‘이경’의 복수와 경찰 ‘주란’의 정의 구현만을 바란다.


= 맞다. 이경의 폭주다. 이제부터 피카레스크 극이 시작될 거다. 주란은 윤리적으로 무결점인 인간인데 무모하고 답답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세상엔 이런 존재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 총 12화, 지금 6회차 방영했으니 절반 왔다.


= 온갖 사건이 다 벌어지니 이렇게까지 ‘플렉스’하면 남은 6부를 어떻게 끌고 가려고 그러냐는 반응도 있더라. 하지만 기대하셔도 좋다. ‘활성’이 깨어나고, 더 큰일이 생긴다.


- 그간 긴 시간 여러 장르를 오가며 작업했다. 감독님이 생각하는 좋은 이야기란 무엇인가.


= 세상은 요지경으로 돌아간다. 그런 세상 속에서 독야청청 아름다움에 대해 말하는 이야기도 필요하겠지만, 나는 그런 것보다 어둡고 뒤틀린 이면의 이야기에 더 끌린다. 그를 통해 세상사를 말하고 싶다. 감동이 있는 이야기라도 영화 <엘리펀트 맨> 같은 방식으로 푸는 데 관심이 있다. 선한 사람이 승리한다거나, 펑펑 울리는 건 내가 잘할 수 없는 이야기 같다.


- 한국영화 르네상스 시절부터 활동한 감독으로서 한국영화의 위기라는 말은 너무 익숙한 이야기일 것도 같다. 다변화한 산업 환경을 어떻게 바라보나.


= 그간 영화계가 보수화된 면이 있다고 생각한다. 도전적으로 성장해온 산업인데, 어느 순간부터 흥행 공식이 생기고 그게 더는 먹히지 않으면서 혼란에 빠진 데다 팬데믹이란 악재까지 닥쳤다. 고여 있는 부분도 있었다. 뛰어난 후배 감독들이 분명 존재하는데 각자도생에만 빠져 있었다는 반성도 든다. 이제 더는 영화와 드라마와 시리즈 사이의 우위를 논할 수 없는 시대다. 직업 감독으로서, 앞으로 내게 남은 시간 동안 플랫폼이나 매체를 가릴 일은 없을 것이다.


- 일할 수 있는 남은 시간에 대해 생각한다는 것, 인상적이다.


= 내가 좋아하는 허영만 선생님의 말이 있다. 계속해서 하는 자가 살아남는다. 우아하게 내가 좋아하는 얘기만 하겠다는 건 사치다. 나는 영화 연출을 하지 않을 때도 제작부터 아이돌 다큐멘터리, B팀 감독까지 쉬지 않고 일했다. 한편 창작에도 총량이라는 게 있다면 각본부터 연출까지 여러 편을 찍어온 사람으로서 꽤 많은 양을 썼을 거다. 이젠 좋은 작가님의 작품, 제작사의 제안을 더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함께 만들어갈 준비가 되어 있다. 좋은 때를 기다리기보다, 그냥 오늘 열심히 하는 게 중요하다. 난 그런 태도를 믿는다.


https://naver.me/xwo6YYj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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