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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21] 데뷔 30주년을 맞은 남나영 편집감독 인터뷰

무명의 더쿠 | 20:58 | 조회 수 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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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반 형사 5인조가 중간책을 쫓는 <극한직업>의 오프닝 시퀀스. 떨어지고, 달리고, 구르다 다중 추돌사고로 이어지는 7분간의 소동은 코미디영화로서의 정체성을 단번에 드러낸다. 만약 여기서 호흡이 조금만 더 느리거나 빨랐다면, 혹은 다른 컷이 들어갔다면 지금처럼 관객을 단숨에 끌어들일 수 있었을까. 편집은 그렇게 장르의 성격과 연출자의 의도를 선명히 한다. 남나영 편집감독은 천만 영화 <극한직업>뿐 아니라 한국영화의 역사와 함께해온 인물이다. 1996년 박곡지 편집기사의 편집실에서 <넘버 3> <접속> <쉬리> 등의 네거편집을 하며 일을 시작했고, 2002년 <몽정기>로 데뷔한 뒤 강형철, 김지운, 류승완, 이병헌, 조성희, 허진호, 황동혁 감독 등 굵직한 이름들의 작품을 편집해왔다. <오징어 게임>으로 비영어권 드라마 최초로 에미상 편집부문 후보에 올랐으며 청룡영화상 등에서 편집상을 수차례 수상했다.


31주년 창간 개편호를 맞은 <씨네21>이 데뷔 30주년을 맞은 남나영 편집감독을 만나기 위해 고양시에 위치한 콘텐츠 제작 그룹 웨스트월드를 찾았다. 현재 웨스트월드 소속인 그는 이곳에서 박지은 팀장, 윤우진 팀원, 영업실장 반려묘 베리와 함께 ‘모리 편집실’을 운영하고 있다. 이곳에서의 대화는 편집이라는 일을 다시 보게 했다. 편집자는 혼자 화면 앞에 앉아 작업하는 사람이 아닌 수많은 사람의 의견을 조율하며 영화를 완성해가는 존재에 가까웠다. 이어지는 인터뷰가 독자에게도 생각의 전환을 가져다줄 것이다.



- 3월 초 국내에서 열린 세계 AI 영화제 ‘WAIFF Seoul 2026’에서 심사위원을 맡았습니다. AI 영화를 평가하는 경험은 어땠나요.
= 더 다듬어야 하는 작품이 많았으나 자극도 되고 재밌었습니다. 이 영화제의 본선이 프랑스 칸에서 열리는데 거기 심사도 맡았습니다. 4월 개최니 곧 비행기를 타겠네요. AI 영화 편집은 지난해에도 해봤습니다. 회사(웨스트월드) AI 창작연구소에서 제작한 단편애니메이션 <프렌즈>인데요. 일본, 호주 등 국제영화제에서 상을 꽤 받았습니다. 만든 분들이 처음에는 쓱 봐달라고 가져왔는데 그럴 수가 없더라고요. 왜 이 컷 다음에 이 컷이 붙으면 안되는지. 어떤 컷들이 필요한지 처음부터 끝까지 짚었습니다. 그동안 ‘AI 발달이 고도화되면 뭐 먹고살지’라는 고민이 있었는데 이후 몇편 더 맡아 해본 뒤 생각이 바뀌었어요. 편집하면서 AI한테 필요한 컷들을 직접 요구하다 보니 제가 감독 역할도 하게 되더라고요. 앞으로 건강만 하면 두 가지 일을 다 하겠는데 싶었습니다.



- 경성대학교 연극영화학과에 91학번으로 입학했습니다. 당시 연출을 꿈꾸고 있었다고요.
= 재수해서 들어갔는데 입학하자마자 휴학했고, 나중에 한번 더 했습니다. 등록금을 벌어야 했거든요. 부모님이 연영과를 너무 반대하셔서 시험을 몰래 쳤고 합격 소식을 알린 뒤 집이 뒤집어졌습니다. 입학금만 내주면 그다음부터는 다 알아서 하겠다고 싹싹 빌어 들어갔습니다. 한 2년은 돈만 벌었던 것 같아요. 포스터 붙이기 같은 연영과스러운 일뿐만 아니라 커피숍 서빙, 식당 주방, 바텐더 등 별의별 아르바이트를 다 했습니다. 그러니 학교 활동에 소홀할 수밖에 없었죠. 지식을 얻지도, 연줄을 쌓지도 못했습니다. 졸업 작품 찍을 돈이 부족해 논문으로 대체했고요. 늦게나마 졸업했을 때가 26살이었습니다. 남은 건 ‘어쨌든 연출은 하고 싶다’는 마음뿐이었습니다.



- 그런데 박곡지 편집실에 들어갔습니다. 그사이 편집에 관심이 생긴 건가요.
= 아니요. 먹고살아야 했으니까요. 스크립터에 지원했다가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떨어진 뒤 박곡지 기사님 편집실에서 사람 구한다는 얘길 듣고 찾아갔습니다. 당시 편집실은 업계 전반에서 선생님을 필요로 해 일손이 부족한 상황이었어요. 그래서 당연히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면접에서 떨어졌습니다. 6개월을 좌절한 채로 남자 선배들 자취방에서 밥하고 빨래하면서 버텼죠. 상황은 더 나빠질 수도 있었습니다. 케이블 채널이 성행하던 때라 FD 준비를 했는데, 제 라인의 PD가 잘리는 바람에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가 됐거든요. 그때 편집실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퍼스트가 말도 없이 그만두는 바람에 난감한 상황에서 선생님이 제가 떠올랐다고 하더라고요. 안 할 이유가 있나요. 냉큼 들어갔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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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게 3년간 일하다 나와 1999년에 이수연 편집기사와 LN편집실을 차렸습니다. 퇴사를 꽤 빨리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 그 안에서 많이 배웠지만 생활고는 여전했으니까요. 좋은 한국영화가 물밀 듯 나오던 시기였지만 스태프가 돈을 벌 수 있는 구조와 환경은 아니었습니다. 도제식 시스템의 버거움도 컸고요. 그래서 편집실에 들어갈 때부터 3년 안에 나와 제 사업을 하겠다는 목표를 세웠습니다. 큰 그림 그리길 좋아하는 계획형 인간답죠. LN편집실은 틈새시장을 노린 전략적 선택이었습니다. 이때가 디지털화가 시작되던 무렵이라 컴퓨터만 다룰 줄 알아도 편집이 가능했지만 최종편집은 여전히 원본 필름(네거필름)을 잘라 붙여야 했습니다. 디지털편집은 해도 오리지널 편집은 못하는 사람들이 생길 거라고 판단했고, 네거편집만 전문으로 하는 회사를 차리면 승산이 있겠다고 봤습니다. 예상은 들어맞았죠. 다들 필름을 들고 우리를 찾아왔고 회사가 알려지면서 <씨네21>에서도 취재를 왔던 기억이 납니다. 이때 김성수 감독님의 <무사>를 편집했는데 이 작업이 제게 무척 중요했습니다.



- 어떤 이유에서 그랬나요.
= <무사> 후반작업을 호주에서 했습니다. 당시 호주가 후반작업을 잘했거든요. 문제는 단가였습니다. 거긴 한컷 붙이는 데 5만원이라더군요. 저희는 영화 한편에 300만원을 받았는데 말이죠. 거기다가 <무사>는 3천컷이 넘었습니다. 담당이었던 김현 기사님 편집실에서 곡소리가 나올 만한 분량이었죠. 그때 내부에서 ‘커팅녀’를 불러오자는 이야기가 나왔다고 합니다. 저희에게 의뢰가 들어온 거죠. 호주로 날아가 보름 동안 밤낮없이 일했습니다. 영화가 필름 릴 6개에 나뉘어 담겨 있었는데, 김현 기사님 편집실에서 온 친구가 1번부터 3번을, 제가 4번부터 6번까지를 작업했죠. 문제는 첫 시사를 하는 날 생겼습니다. 2번 릴에서 처음 실수가 나왔고 전체 검사 명령이 떨어졌습니다. 그 친구 작업본에서는 실수가 계속 나오는 반면 제 것은 무결했죠. 재작업하느라 호주에 57일이나 있었고, 한국에 돌아오니 애인은 떠나갔지만 저는 김성수 감독님에게 큰 신뢰를 얻었어요. “나영이가 <무사> 때 얼마나 잘했냐”면서 다음 작품인 <영어완전정복>(2003)의 편집을 신인인 제게 맡기셨습니다. 결과에 만족하셔서 편집 크레딧도 뒤쪽이 아니라 앞쪽, 세 번째 정도로 올려주셨고요. 그렇게 한 작품씩 하다 보니 여기까지 왔습니다.



- ‘편집 남나영’ 크레딧이 처음 올라간 데뷔작은 <몽정기>(2002)였죠.
= 네. 원래 <몽정기>는 박곡지 기사님에게 들어온 작품이었는데 제게 넘어왔습니다. 데뷔가 절실했는데 운이 좋았죠. 작업의 디테일은 잘 기억나지 않습니다. 48시간 안에 끝내야 하는 일정이어서 정초신 감독님과 이틀 밤을 샜거든요. 초짜인 제가 답답해 혼자 많이 울었습니다. 그래도 그때 일시불로 받은 편집료 2500만원으로 편집감독으로서 첫 편집실을 차렸습니다. 논현동 분리형 원룸에 중고로 장비를 들었죠. 이때는 편집실 이름이 따로 없었고, 2004년쯤 양재동으로 이전하면서 ‘모리’(Mori)라고 붙였습니다.



- 현재는 어떻게 일하나요. 막내 팀원에게 보통 평일 오전 10시에 출근해 오후 7시에 퇴근하고, 휴일엔 쉰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 그런 근무제가 팀원이 생기면 반드시 하겠다고 마음먹은 것 중 하나였어요. 나를 힘들게 했던 시스템은 내 손으로 바꾸겠다는 것도요. 처음에는 감독과 다른 파트 스태프들의 반발이 컸죠. 편집에 주말이 어딨냐고요. 그런데 우리가 일하는 방식이 소문나면서 다른 편집실도 영향을 받았고 환경이 전보다 나아진 걸로 압니다. 저는 보통 작업실처럼 꾸민 집에서 혼자 일하다가 감독과 논의가 필요할 때 작업실에 나옵니다.



- 한 작품의 전체 편집 과정은 어떻게 진행되나요.

= 최소 2주, 규모가 있는 작품은 한달 동안 혼자서 첫 번째 전체 편집본을 만듭니다. 시리즈인 <오징어 게임>의 경우 “아무도 나를 찾지도, 건들지도 말라”고 선언하고 들어갔죠. 이 기간이 제일 중요해요. 기본적으로 시나리오에 맞추되 이 컷 저 컷 다 붙여보면서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시도를 해봅니다. 최종본을 시사한 뒤부터 감독과의 시간을 갖습니다. 이때도 하루 작업 분량과 시간을 정해요. 오늘은 몇신부터 몇신까지, 아침 일찍 만나 각자 점심 먹고 다시 모여 한 6시까지 일합니다. 저녁에는 각자 약속 가고 그래야죠.



- 같이 작업할 때는 어떤가요. 의견을 많이 내는 편인지 궁금합니다.
= 그런 편이긴 하나 감독 성향에 따라 저도 바뀝니다. 자기 주관이 확고하고 의사 표현이 분명한 분에겐 맞추는 편이고 결정을 잘 못 내리는 성격이면 가지치기를 도우면서 한길을 냅니다. 신인감독에겐 신경이 더 쓰이죠. 주변 입김에 상처받는 일이 다반사라 그 마음도 헤아리려고 합니다.



- 그럼에도 절대 포기 못하겠는 상황에서 무엇까지 해봤나요.
= 가위바위보요. (웃음) 양쪽 다 양보 없는 순간에는 별별 일이 다 있죠. 천원짜리 한장 쓱 내밀면서 “한컷만 바꿔줘~”라고 말하는 감독의 너스레에 제가 진 적이 있고요. 일단 당구 한 게임 치고 오라고 내보낸 적도 있습니다. 그사이에 수정해서 보여주면, 그 이후로는 때 되면 알아서 나가는 분도 생겼죠. 그렇지만 마지막까지 제 의견이 맞다고 한 적은 없습니다. 결국 영화는 감독의 것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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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들을수록 편집감독의 모습이 골방에 혼자 있는 데서 사람들 한가운데로 옮겨갑니다.

= 후반팀 중에서 사람을 가장 많이 만나는 사람이 편집자일 거예요. 처음 고독의 시간을 지나면 편집실을 찾아오는 수많은 감독, 배우, 투자배급사 관계자의 의견을 듣습니다. 각자의 주장과 사정에 맞춰 제 스탠스도 달라지죠. 편집은 정답이 없어서 피드백을 많이 받을수록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요. 그중 스트립터와 조감독의 솔직한 의견이 그렇습니다.



- 편집 파트는 자기 스타일을 갖기 어렵다는 말이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나요.
= 저도 잘 모르겠어요. 각 작품의 장르와 컨셉, 의도에 맞춰 편집하다 보니 내 스타일이라는 게 있을 수 있나 싶다가도 종종 지인들한테 이런 연락을 받아요. 어떤 영화를 보면서 네가 편집한 것 같았는데 정말 너였다고요. 저도 같은 연락을 동료들에게 하기도 하고요.



- 작업 중인 작품에 대해 들어볼 수 있을까요.
= 4월 말에 개봉하는 정우 감독의 <짱구> 편집을 하고 있습니다. 정우 감독이 피드백에 아주 열려 있고 솔직해서 서로 의견을 내는 데 주저함이 없어요. 누나, 동생 하면서 재밌게 작업하고 있습니다. 5월에는 <범죄도시5>에 들어가고, 강형철 감독 신작도 준비되면 들어가야죠. 앞서 말한 <프렌즈> 2편도 있고요. 앞으로의 협업에 대한 기대도 큽니다. <좀비딸>은 편집뿐 아니라 CG, DI까지 웨스트월드 소속 팀원들이 전담했는데, 한곳에서 이뤄지다 보니 의사를 바로바로 전달할 수 있어서 좋더라고요. 더 완성도 높은 작품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건강해서 오래 일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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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과의 작업 방식



강형철 감독 - <써니> <타짜-신의 손> <스윙키즈> <하이파이브> <과속스캔들>


“강형철 감독과는 그의 데뷔작인 <과속스캔들>의 고통을 나누며 친해졌어요. 잘 통하는 사람과 손발이 척척 맞을 때의 쾌감을 아시죠? <하이파이브>때 그게 최고조에 올라 일하는 내내 즐거웠어요. 강형철 감독은 음악을 많이 쓰는데 시나리오에 어떤 곡을 쓸지 항상 적혀 있고, 바뀌는 일이 없죠. 그래서 해당 음악을 틀어놓고 작업합니다. 보통 편집할 땐 대사 위주로 작업하면서 사운드를 최대한 배제하는데, 예외적인 경우죠.”



황동혁 감독 - <오징어 게임> <남한산성> <수상한 그녀>


“황동혁 감독과는 또 다른 식의 파트너십이 있어요. 동갑인데 서로 말을 놓지 않고 깍듯하게 대합니다. 감독님은 <오징어 게임>을 오락적으로만 가고 싶지 않다, 사람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했어요. 저도 거기에 초점을 맞췄고요. 시청자가 시리즈의 긴 호흡을 놓치지 않도록 중간중간 흐름을 짚었습니다.”



이병헌 감독 - <닭강정> <드림> <극한직업> <멜로가 체질> <스물>


“말의 필터가 없는 편한 사이입니다. 이병헌 감독은 제게 온전히 맡겨요. 그만큼 믿어주는데, <극한직업> 기술시사 때 전체적으로 루스한 것 같아 3일만 달라고 하고 처음부터 끝까지 고쳤죠. 그 단계에서 편집을 다시 하는 경우는 거의 없는데, 그만큼 절박했습니다.”



https://naver.me/xQJxUM7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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