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드라마는
‘의심’에 대한 이야기
‘진실을 의심해야 진실에 다가간다’
- 말콤 글래드웰, <타인의 해석> 中 -
우리는 타인을 얼마나 정확하게 해석할 수 있을까?
내가 ‘안다’고 생각했던 그 사람의 모습은 과연 진짜일까?
마스크로 무장한 채 서로의 표정조차
볼 수 없게 된 코로나 시기를 거치며
우리는 더더욱 타인을 해석할 수 없게 됐다.
마스크가 편해진 만큼 서로에 대한 무관심도 커져 버렸다.
바로 옆집에서 보험금을 노린 아동학대가 일어나도
비극이 일어난 뒤에야 비로소 기사로 알게 될 뿐이다.
사람 목숨을 돈으로 바꾸려는
인간들이 세상을 얼어붙게 만들 때,
‘의심’이라는 불씨가 만들어낸 ‘관심’이
그 얼음을 깨트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가냘픈 희망에서 이 이야기는 시작되었다.
여기, 한 여자를 집요하게 의심하는 남자가 있다.
보험조사관이 된 이후 인간에 대한
불신을 넘어 혐오까지 느끼는 남자다.
누구보다 보험사기를 증오하는 그가
강력한 보험살인 용의자인 한 여자를 만나
의심하고, 의심하고 또 의심한다.
그 끝에서 그가 마주하게 되는 것은 무엇일까?
한 가지 확실한 건 그의 ‘의심’이
‘진실’을 찾아낼 거란 사실이다.
그리고 '상처'에 대한 이야기
누구나 상처를 안고 살아가지만
대부분이 그 사실을 숨기거나 부정한다.
상처란 부끄러운 것, 수치스러운 약점이라 생각하기에.
이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여자는 부모님의 목숨값으로 살아남은 과거를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했고,
남자는 동생의 죽음을 막지 못했다는
서글픈 죄책감에 자신을 용서하지 못했다.
잔인한 학대로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입은
누군가는 스스로 괴물이 되길 선택했다.
누구에게나 상처는 있지만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극복하느냐에 따라 이후의 삶은 달라진다.
오히려 상처를 통해 더 성숙하고
단단한 사람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상처란 생의 또 다른 선물이기도 하니까.
상처에 갇혀 살 것이냐, 아픔을 극복하고 성장할 것이냐.
그 길목에서 망설이고 있는 모두에게 말해주고 싶다.
상처는 빛이 당신에게로 들어오는 통로라고.
그리하여 결국 ‘사랑’을 묻는 이야기
한 사람을 알아간다는 건 또 하나의
세계를 받아들이는 것과 같다.
사랑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그의 세계를 이해하고 존중하며 인정하는 것.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상대를 내 세상에
가둬두고픈 욕망을 사랑으로 착각한다.
그래서 누군가의 잘못된 사랑은
상대의 영혼을 망가트리고 생을
지옥으로 밀어 넣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리도록 차가운
이 세상에서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어주는 것,
우리의 영혼을 구원하는 유일한 길 또한 ‘사랑’ 뿐이라 믿는다.
치열하게 의심해 진실을 찾아내고,
상처를 드러내 서로를 구원한 두 사람과
잘못된 집착으로 괴물이 된 누군가의 초상을 통해
우리가 추구해야 할 진정한 ‘사랑’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 생각해 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