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가 빌런인 ‘언더커버 미쓰홍’, 복고의 향수와 시대 깨는 사이다의 결합

[엔터미디어=정덕현의 네모난 세상] 일상적으로 쓰이는 ‘여직원’이라는 표현부터, 커피 심부름을 바로 그 ‘여직원들’의 주 업무로 여기는 시절의 회사. tvN 토일드라마 <언더커버 미쓰홍>은 지금 보면 시대착오적인 1990년대 말의 회사 풍경을 펼쳐놨다. 그래서 보는 내내 귀가 거슬리고 눈이 불편하다.
어딘가 뒤가 구리고 뒷거래가 오가는 당대의 회사 분위기는 남성중심적인 사회와 맞닿아 있다. 회계사 시험 1등을 한 홍금보(박신혜)가 당시 애인이었던 신정우(고경표)와 함께 한 회계법인에 들어갔지만 결국 홍금보만 그 조직에서 버텨내지 못한 것도 그 남성들의 카르텔(?) 때문이다. VIP 고객이라며 비리를 숨기고 동조하는 일에 그들은 입을 맞췄지만 홍금보는 이를 거부했다.

“계산을 맞추면 안 되죠. 재무제표 뻥튀기, 회계 보고서 숫자 장난, 감사보고서 말장난. 안 되죠.” 홍금보는 그렇게 버텼지만 신정우마저 보고서에 도장을 찍었다. 그 일로 검찰 조사 받던 회계사가 투신자살을 했지만, 저들의 ‘짜고 치는 게임’은 계속됐다. 그로부터 9년이 지나 홍금보가 일하고 있는 증권감독원이라고 다르지 않다. 그곳에서도 룸싸롱에서 뇌물 받고 비리를 눈감아주는 일들이 계속 벌어지고 있으니 말이다.
<언더커버 미쓰홍>은 그 90년대라는 시대가 빌런인 세상에 던져진 돈키호테 같은 인물 홍금보의 활약을 보여준다. 고졸과 대졸을 차별하고, 남성과 여성을 차별하며, ‘여직원’을 마치 쓰다 버리는 소모품 취급하는 빌런 같은 시대에 날리는 홍금보의 이단옆차기 사이다가 이 드라마의 관전포인트다.
90년대는 종종 복고의 시대적 배경으로 등장하곤 했다. <언더커버 미쓰홍> 역시 그 복고적 코드가 없는 게 아니다. 당대의 배꼽티나 엄정화의 노래 같은 유행가, 록카페 같은 추억을 자극하는 요소들이 들어가 있다. 하지만 그 복고 코드 속에 현재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뒷목을 잡게 만드는 시대착오적 일터의 분위기가 더해진다.
복고와 시대착오적 비리를 깨는 사이다가 엮여있는 건 저 90년대를 배경으로 했던 <삼진그룹 영어토익반> 같은 영화를 떠올리게 하는 면이 있다. ‘커리어 우먼’이 되는 게 꿈이었지만 막상 입사해서 아침마다 루틴으로 커피 타는 일을 하던 시대의 풍경이 그려졌던 영화 말이다. 마찬가지로 <언더커버 미쓰홍>에도 커피를 타고 도시락을 주문 배달하는 일들을 전담하는 고졸 여성 직원들이 등장하고, 또 언제든 사장이 바뀌면 잘려 나가는 비서들도 등장한다.

‘여직원 예절 강화교육’이라는 걸 하고, 유니폼 착용을 의무화하며, 기숙사에도 통금을 만들던 시절, 회사 내에서 머리를 툭툭 치고 “어이 미스홍 오늘은 다방영업 안 하나?” 같은 차별적이고 폭력적인 말들을 던지는 상사들은 심지어 선 넘는 말들도 무시로 던진다. “비서실 미스고 알지? 서른이 코 앞인 노처녀. 아니 새 대표가 왔는데 어떻게 생명연장을 했겠냐? 크.. 여자들은 참 살기 편해. 뭐 미인계, 육탄전 이런 거 부릴 시대가 아닌데 그렇지?”
그러니 이 시대가 빌런 짓을 하면 할수록 홍금보가 그들의 뒤통수를 제대로 얼얼하게 때려주길 기대하게 된다. 그래서 증권감독원 10년 차 베테랑이지만 언더커버로 한민증권에 고졸 사원으로 입사해 들어와 저들의 비리를 하나하나 깨나가는 과정은 사이다 그 자체가 아닐 수 없다. 주가조작으로 비자금을 만들려던 것이 홍금보에 의해 탄로 나자 오히려 그녀를 희생양으로 세우는 회사와 맞서 이를 뒤집는 이야기가 보는 이들의 마음을 시원하게 만든다.

그 빌런 같은 시대는 송주란 비서실장(박미현) 같은 여성이지만 남성들 편에 서서 여성들에게 빌런 짓을 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지금은 이른바 ‘명예남성(남성 사회에 편입되어 오히려 여성들을 핍박하는 일을 하는 여성 상사)’이라 불리며 비판받지만, 당대에는 그런 문제의식조차 없던 시절이었다. 그저 살아남기 위해 남성 사회에 고개를 숙이고 적응했던 고복희(하윤경) 같은 여성들의 변화는 그래서 마음을 잡아끈다. 그들 역시 홍금보의 등장으로 인해 조금씩 변화하고 하나의 연대를 만들어 시대와 싸워나가는 사이다가 펼쳐진다.
추억을 자극하는 복고 콘셉트와 뒷목 잡게 만드는 시대의 빌런들을 때려잡는 사이다 전개의 결합은 너무 무겁지 않은 드라마의 톤 앤 매너와 이를 캐릭터로 구현해낸 배우들의 연기에 의해 가능해졌다. 홍금보 역할의 박신혜는 어두운 시대적 상황 속에서도 발랄하고 통통 튀는 이야기가 가능한 캐릭터 연기를 보여준다. 캐릭터성이 강한 과장된 톤의 연기도 자유자재로 풀어내는 박신혜표 톡 쏘는 맛이 더해져, 홍금보라는 캐릭터는 제아무리 핍박해도 결코 무너지거나 타협하지 않는 모습으로 보는 이들을 시종일관 웃고 울고 시원하게 만들어준다.

시대극은 최근 들어 영웅들이 아닌 소시민들의 이야기를 담기 시작했다. 그래서인지 시대가 빌런이 되는 서사가 등장하게 됐다. <폭싹 속았수다>가 바로 그 사례다. 마찬가지로 <언더커버 미쓰홍> 역시 차별이 일상이던 시절을 가져와 그 핍박 속에서도 버티고 살아내는 평범한 여성들의 이야기를 펼쳐내고 있다. 복고의 차원을 넘어서는 시대극의 새로운 변주가 생겨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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