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이 남긴 숫자는 여전히 냉혹하다. 극장 관객 1억520만명, 한국영화 점유율 41.2%. 천만 영화는 단 한편도 배출하지 못했다. 563만명을 동원한 <좀비딸>이 한국영화 최고 흥행작이라는 현실 앞에서 한국영화계는 전략을 재정비 중이다. <씨네21>이 정리한 2026년 신작 영화 라인업을 보면 독립영화를 포함해 약 80편이 개봉작 물망에 올랐다. 전통적인 주요 배급사 작품은 약 23편. CJ ENM 4편(<국제시장2>(가제) <실낙원> <타짜: 벨제붑의 노래>(가제), <당신이 영화를 그만두면 안 되는 30가지 이유>, 롯데엔터테인먼트 6편 (<경주기행> <부활남> <와일드 씽> <정가네 목장> <하트맨> <행복의 나라로>), 쇼박스 5편(<왕과 사는 남자>, <군체> <살목지>(가제) <폭설> <만약에 우리>), NEW 1편(<휴민트>),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7편(<호프> <몽유도원도> <열대야> <미스터김, 영화관에 가다> <랜드> <피그 빌리지> <프로젝트 Y>)이다.

올해의 기둥
여름 성수기를 겨냥한 나홍진 감독의 <호프>가 가장 먼저 시선을 사로잡는다. <곡성> 이후 10년 만의 신작이자 제작비 500억원대가 투입된 SF 스릴러로 황정민과 조인성, 정호연에 더해 마이클 패스벤더, 테일러 러셀, 알리시아 비칸데르 등 할리우드 배우들까지 합류한 초국적 캐스팅으로 일찍이 주목받았다. 비무장지대 인근 고립된 마을 호포항에 정체불명의 외계 생명체가 출현하면서 벌어지는 사건을 다룬다. 올해 칸 레드카펫을 먼저 밟을 가능성이 높다. 이창동 감독은 8년 만에 신작 <가능한 사랑>으로 첫 넷플릭스 영화를 공개한다. 극과 극의 삶을 살아온 두 부부의 만남이 그리는 일상의 균열, 그리고 사랑에 관한 영화다. <길복순>에 이어 네 번째 만남을 이어가는 배우 전도연, 설경구와 더불어 이창동 감독 영화의 첫 손님인 조여정, 조인성의 합류가 눈길을 끈다. 올해 칸 대신 베니스를 노크할 것으로 보인다.

역사의 힘과 깊이로
실화를 소재로 한 역사극도 주목해볼 만하다. 허진호 감독의 <암살자(들)>는 1974년 8월15일 광복절 기념식장 저격 사건을 목격자와 조사자의 시선으로 재구성한다. <서울의 봄> 신드롬을 일으켰던 제작사 하이브미디어코프와 이모개 촬영감독이 함께해 근현대사 배경의 흥행작 계보를 이어갈 수 있을지 기대된다. 장항준 감독의 <왕과 사는 남자>는 계유정난으로 폐위되어 영월 청령포에 유배된 어린 단종(박지훈)과 마을 촌장(유해진)의 이야기다. 가까운 시대를 다른 각도로 조명하는 작품도 있다. 장훈 감독의 <몽유도원도>에선 김남길이 왕위를 향한 야심을 품은 수양대군을, 박보검이 예술가이자 이상주의자인 안평대군을 연기한다. 천만 영화의 속편으로는 윤제균 감독의 <국제시장2>(가제)가 대기 중이다. 전편의 덕수와 함께 파독 광부로 일했던 성민(이성민) 부부가 유학 중인 아들 세주(강하늘)를 만나러간 미국에서 LA 시위에 휘말리는 1990년대로 넘어왔다.

장르의 스펙트럼, 더 넓게
설 연휴 극장가를 여는 류승완 감독의 <휴민트>는 <모가디슈> <밀수> <베테랑2>로 이어진 감독의 흥행 필모그래피에 또 하나의 이정표를 새길지 관심을 모은다. 블라디보스토크를 배경으로 한 남북 첩보 액션으로 국정원 요원(조인성)과 보위성 조장(박정민)이 충돌한다. 연상호 감독은 올해 좀비 아포칼립스물 <군체>와 5억원 규모로 밝힌 저예산영화 <실낙원>을 차례로 내놓을 예정이다. 2억원으로 100만 관객을 돌파한 <얼굴>의 제작 방식을 토대로 한 <실낙원>은 캠핑 스쿨 버스 실종 사건으로 아이를 잃은 엄마(김현주)에게 훌쩍 커버린 아들(배현성)이 9년 만에 돌아오는 미스터리 스릴러다. 중급 영화들도 각자의 색을 선명하게 드러낸다. 연초에 자리잡은 이환 감독의 <프로젝트 Y>는 묵직한 여성 누아르를, 기대주 김혜윤을 선택한 이상민 감독의 <살목지>(가제)는 로드뷰 호러라는 독특한 도전에 나섰다. 배우 강동원, 엄태구, 박지현이 한물간 혼성 댄스 그룹 멤버로 등장하는 손재곤 감독의 <와일드 씽>은 코미디가 주목받는 요즘 틈새 흥행을 이끌어갈 투수다. 멜로드라마로는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첫선을 보인 임선애 감독의 <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일곱 시 조찬모임>이 있다. 리메이크작 중에서는 로버트 드니로와 앤 해서웨이 주연의 할리우드영화를 한소희, 최민식 주연의 영화로 탈바꿈시킨 김도영 감독의 <인턴>이 다양한 세대를 아우르는 영화가 될 것으로 보인다.
그들의 두 번째 영화, 국경 너머의 도약
<남매의 여름밤>으로 독립영화의 저력을 새긴 윤단비 감독은 두 번째 장편영화 <첫 세계>(가제)로 돌아온다. 10대 섬마을 소녀의 첫사랑과 욕망, 마을 공동체와의 교류를 생동감 넘치게 그린다. <갈매기>의 김미조 감독은 배우 이정은, 공효진, 박소담, 이연 주연으로 탄탄한 캐스팅을 자랑하는 모녀 복수극 <경주기행>을 선보인다. 카지노가 들어선 폐광촌의 세 여성이 강도로 변신하는 염정아, 차주영, 김혜윤 주연의 <랜드>(한동욱 감독) 역시 앙상블이 기대된다. 유은정 감독의 <두 번째 아이>(가제)는 배우 임수정이 직접 제작에 나서 <장화, 홍련>을 잇는 한국형 호러의 탄생을 기다리게 만든다.
후반작업 중인 정주리 감독의 <도라>는 일본 배우 안도 사쿠라의 첫 한국영화 출연작으로 신예 김도연과 만난다. 프로이트가 도라라고 이름붙인 18살 여성 환자의 치료 사례에 영감을 받아 한국, 프랑스, 룩셈부르크 3국 공동제작 영화로 완성했다. 저스틴 H. 민 주연작인 김진유 감독의 <흐르는 여정>, 2025년 서울독립영화제 우수작품상을 수상한 도쿄 배경의 <레이의 겨울방학>도 올해 개봉한다.
2026년엔 오랜 기다림을 안겼던 <행복의 나라로> <왕을 찾아서> <비광> <폭설> <정가네 목장> 등도 공개될 전망이다. 2026년의 배우는 명실상부 구교환과 조인성이다. 조인성은 <휴민트> <호프> <가능한 사랑>까지 주요 화제작에 모두 이름을 올렸다. 구교환은 <만약에 우리> <군체>를 시작으로 <왕을 찾아서> <부활남>, 이옥섭 감독과 공동 연출 및 출연을 겸한 <너의 나라>(가제)로도 관객과 만난다. 한편 한국영화 사상 최고 제작비, 심해어 주제의 야심작으로 알려진 봉준호 감독의 애니메이션 <더 밸리>는 2027년 개봉을 목표로 제작 중이다. 극장이라는 공간의 의미가 다시 질문되는 지금, 한국영화는 숫자로는 줄었지만 밀도는 높아진 결과를 증명해야 할 과제 앞에 서 있다. 2026년은 선택과 집중이라는 생존 전략 속에서 새로운 좌표를 그리는 한해가 될 것이다.
★ 제작·배급사 요청 등으로 미표기된 작품이 있으며 개봉 일정은 변경될 수 있습니다.
https://naver.me/xOdnEnAW
https://naver.me/FTMZJwPZ
https://naver.me/5JGkMl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