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하트맨’은 거짓말이 가진 선악의 경계에 서있는 작품이다. 록밴드 보컬 출신으로 현재 악기점을 운영 중인 ‘승민’(권상우) 앞에 첫사랑 ‘보나’(문채원)가 나타난다. 서로에 대한 호감이 확실하지만 승민에겐 말 못할 비밀이 있다. 바로 전처 사이에 낳은 딸 ‘소영’(김서현)의 존재다. “노 키즈”를 외치며 아이라면 치를 떠는 보나와 사랑을 이루기 위해 승민은 소영의 존재를 숨기기 위한 눈물 겨운 노력을 펼친다.
‘하트맨’은 코미디 영화다. 그런데 편히 웃을 수 없다. 승민의 거짓말이 선을 넘기 때문이다. 유머로 승화하기엔 승민의 저의가 불순하고, 만들어 가는 상황이 불쾌하다. 보나를 향한 아이 없는 돌싱 행세는 일종의 사기에 가깝다. 또한 소영을 친구 집에 대피시키고, 결국 딸까지 거짓말에 동참하게 만드는 상황은 아동학대와 같다. 상처받을 아이를 생각한다면 웃음보다는 눈물이 나오는 게 인지상정이다.
물론 딸과 여자친구 사이에서 좌충우돌하는 승민의 모습은 우스꽝스럽다. 하지만 그조차 한숨이 먼저 나온다. 누구를 위한 거짓말인지 모르겠기에 그 처지를 동정할 수도 없다. 진실을 숨겨야 하는 승민도 답답할 것이고, 속고 있는 보나는 안쓰럽다. 나아가 존재 자체를 부정당한 소영의 아픔은 감히 헤아릴 길이 없다. 더불어 승민의 거짓말을 위해 존재하는 ‘원대’(박지환)와 ‘승민’(표지훈)이라는 캐릭터는 기능적으로 소비될 뿐이다.
‘하트맨’에서 느껴지는 정서적 이질감은 문화권의 차이에서 기인한다. 원작인 ‘노키즈’는 2015년 개봉했던 아르헨티나 영화다. 남미의 자유분방한 문화를 감안한다면 승민의 행동도, ‘하트맨’이 추구하고자 했던 웃음의 방향도 어느 정도 수긍이 간다. 다만 남미에서 통했을 유머코드가 우리 관객에도 유효할지가 미지수다.
하여 영화의 서사 및 갈등, 해결 과정에서 올드스쿨의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권상우를 앞세워 전설의 명대사 “사랑은 돌아오는 거야”를 열심히 외쳐봐도 웃음보다 ‘방영한 지 12년이 된 드라마 속 대사’라는 생각이 먼저 파고드는 이유다.
하지만 웃음이란 아재개그처럼 개인의 호불호가 갈리는 영역이다. ‘하트맨’의 웃음벨 역시 어디선가 크게 울릴지도 모를 일이다.
출처 : 아이즈(ize)(https://www.iz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