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월 6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소비자가전전시회) 기조연설 무대. 리드 헤이스팅스 넷플릭스 당시 최고경영자(CEO)가 "오늘 넷플릭스는 글로벌 TV 네트워크의 탄생을 알린다"며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 130개국 서비스 동시 런칭을 선언한다"고 말했다.
당시만 해도 국내 미디어 업계의 반응은 반신반의였다. 토종 플랫폼의 아성이 견고했던 한국 시장에서 '구독형 OTT'라는 낯선 모델이 성공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구심이 지배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정확히 10년이 지난 현재는 어떨까? 2026년 1월 6일 넷플릭스는 한국인의 일상을 지배하는 미디어 플랫폼이자 K콘텐츠를 전 세계 안방극장으로 실어 나르는 가장 강력한 '디지털 실크로드'가 됐다.
넷플릭스 코리아는 이날 서비스 런칭 10주년을 맞아 그간의 발자취와 기록을 담은 기념 메시지를 발표했다. 지난 10년은 단순한 플랫폼의 성장을 넘어 한국 콘텐츠 산업의 체질을 바꾸고 글로벌 위상을 재정립한 격변의 시간으로 평가받는다.
좀비물 불모지에서 피어난 킹덤, 오징어 게임 신화로 이어지다
넷플릭스의 지난 10년은 한국 콘텐츠가 로컬의 한계를 벗어던지고 글로벌 스탠다드로 도약하는 과정과 궤를 같이한다.
초창기 라이선스 수급에 주력하던 넷플릭스는 2018년 스탠드업 코미디 <유병재: 블랙코미디>를 시작으로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에 시동을 걸었다. 결정적인 변곡점은 2019년 1월 공개된 <킹덤>이었다. 당시만 해도 국내 드라마 시장에서 금기시되던 '좀비' 소재와 사극의 결합은 지상파 방송사들이 편성을 꺼리던 모험적인 시도였으나 넷플릭스의 과감한 투자는 이를 전 세계적인 'K-좀비' 신드롬으로 바꾸어 놓았다.
성공 방정식은 2021년 <오징어 게임>에서 정점을 찍었다. 비영어권 드라마 최초이자 역대 시청 시간 1위라는 기록을 세운 이 작품은 한국 콘텐츠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와 대등하게 경쟁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특히 넷플릭스가 글로벌 Top 10 집계를 시작한 2021년 6월 이후 불과 5년 만에 총 210편 이상의 한국 작품이 순위권에 이름을 올렸다는 사실은 K콘텐츠의 저력이 일시적 유행이 아닌 지속 가능한 경쟁력임을 시사한다.
지난해인 2025년 공개된 <오징어 게임> 시즌3가 전 세계적인 화제를 모으며 시리즈의 건재함을 과시한 것 역시 이러한 흐름의 연장선상에 있다. 일본에서는 <사랑의 불시착>이 72주 연속 Top 10을 지켰고 지구 반대편 볼리비아에서는 <꽃보다 남자>가 49주 연속 순위권에 머무는 등 한국 콘텐츠는 언어와 문화의 장벽을 넘어 보편적인 정서를 자극하는 매체로 자리 잡았다.
'1인치의 장벽'을 넘어서… 자막과 더빙이 만든 새로운 시청 문법
넷플릭스가 가져온 변화는 콘텐츠의 내용을 넘어 시청 환경과 제작 인프라 전반으로 확산됐다. 봉준호 감독이 언급했던 "자막이라는 1인치의 장벽"을 허물기 위해 넷플릭스는 현지화 작업에 막대한 공을 들였다. 지난해 공개된 대작들의 경우 제작 단계에서부터 30개 이상의 언어로 자막과 더빙이 동시 제작됐다.
국내 시청자들의 습관마저 바꿔놓았다. 과거 외화 시청 시에나 필요하다고 여겨졌던 자막이 이제는 한국 콘텐츠를 볼 때도 자연스러운 옵션이 됐다. 정확한 대사 전달을 선호하는 젊은 층을 중심으로 '자막 켜고 보기'가 새로운 시청 표준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넷플릭스 측은 이를 두고 "지난 10년간 파트너사들과 함께 구축한 현지화 시스템이 국경과 언어의 장벽을 낮추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자평했다.
나아가 '본방 사수'라는 개념을 허물고 전 회차를 한꺼번에 공개하는 '빈지 워칭(Binge-watching·몰아보기)' 문화를 정착시킨 것도 넷플릭스가 주도한 미디어 혁명 중 하나다. 이는 쪽대본과 밤샘 촬영으로 점철됐던 한국 드라마 제작 환경을 사전 제작 시스템으로 전환하는 촉매제가 되기도 했다.
한편 주목할 만한 점은 10년 전 서비스 첫날 가입한 '개국 공신'들이 여전히 플랫폼을 지키고 있다는 사실이다. 넷플릭스 코리아는 2016년 1월 7일(한국 시간 기준) 가입해 현재까지 멤버십을 유지하고 있는 장기 구독자들에게 특별한 감사를 표했다. 이는 치열해진 OTT 경쟁 속에서도 넷플릭스가 제공하는 오리지널 콘텐츠의 품질과 사용자 경험(UX)이 여전히 경쟁력을 갖고 있음을 보여주는 지표다.
구독자들의 시청 패턴을 분석한 데이터인 '찜하기'와 '알림 받기' 순위에서도 한국 콘텐츠의 위상은 압도적이다. <오징어 게임>을 필두로 <더 글로리> <스위트홈> 등 장르물들이 글로벌 회원들의 '원픽'을 받았다. 이는 로맨틱 코미디에 편중됐던 한류 드라마의 장르가 스릴러, 크리처물, 미스터리 등으로 다양화되었음을 의미한다. 스크린 밖에서도 한국 유저들은 '풋볼 매니저 모바일' 등 게임 콘텐츠를 적극적으로 소비하며 플랫폼 체류 시간을 늘리고 있다.
미래 10년, 단순 플랫폼을 넘어 '창작 생태계'의 동반자로
넷플릭스의 지난 10년이 한국 시장에 안착하고 K콘텐츠를 발굴하는 시기였다면 향후 10년은 국내 창작 생태계와의 공생을 모색하는 시기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망 사용료 논란과 창작자 보상 문제 등 해결해야 할 과제가 남아있지만 넷플릭스는 한국을 아시아를 넘어선 글로벌 콘텐츠 전진기지로 삼겠다는 전략을 분명히 하고 있다.
넷플릭스 관계자는 "지난 10년은 한국 창작자들과 함께 전 세계에 놀라움을 선사한 시간이었다"며 "앞으로도 한국의 독창적인 이야기(Storytelling)가 국경을 넘어 더 많은 시청자와 만날 수 있도록 기술적·물적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밝혔다.
단순한 스트리밍 서비스를 넘어 한국 대중문화의 제작 문법과 소비 방식을 송두리째 바꾼 넷플릭스. 강산이 한 번 변한다는 10년의 세월 동안 그들이 한국 사회에 던진 '메기 효과'는 이제 거스를 수 없는 거대한 흐름이 되어 미디어 산업의 새로운 10년을 예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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