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서 시작된 두 사람의 관계는
같은 공간에서 피어났지만
출발점부터 방향이 달랐다.
지혁에게 제주도는 현실의 연장선이었다.
일을 성사시키기 위해 내려왔고
그런 과정 속에서 우연히 다림이를 만났다.
하지만 그 만남은 우연을 넘어 운명이 되었다.
일이 어그러져도 신경 쓸 겨를 없이 다림이에게 마음이 쏠려버렸고
서울로 돌아와서도 그 감정은 꿈이 아니라 이어지는 현실로 남아 있었다.
그래서 다시 다림이를 만났을 때
그 마음은 더 단단해지고, 더 커지고 있다.
반면 다림이에게 제주도는 도피의 연장선이었다.
원해서 온 것도, 즐기기 위해 온 것도 아니었다.
현실이 너무 버거워 등 떠밀리듯 도착한 낯선 공간에서
지혁이라는 사람을 만나 잠시나마 꿈 같은 시간을 보냈다.
마치 현실과 단절된 채 머물 수 있는 안전한 공간 같았던 시간.
절대 깨고 싶지 않은 꿈이었지만,
선우에게서 “엄마가 쓰러졌다”는 소식을 듣는 순간
그 꿈은 산산이 깨져버렸다.
그녀는 다시 냉정한 현실 속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이 지점에서 둘의 차이가 만들어진다.
지혁에게는 사랑이 계속되고 있다.
현실에서 자라난 마음이기 때문에
공간이 바껴도 상황이 바껴도
그의 감정은 흔들리지 않는다.
하지만 다림이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 사람이다.
제주에서 느낀 설렘은 여전히 가슴 깊은 곳에 남아 있지만
그 감정은 현실에 눌렸고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수많은 문제들 속에서
감정을 키울 여유조차 나지 않는다.
그래서 다시 재회한 지금
두 사람의 감정 온도는 다를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