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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퀘어 [리뷰] 뉴욕에서 본 '하얼빈', 감상평 물으니 동포가 건넨 말 : 오늘의 우리들을 떠올리게 만든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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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1.14 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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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일(현지 시각) 고등학생인 딸이 손꼽아 기다리던 영화 <하얼빈>을 봤다. 맨해튼까지 나가지 않아도 한인이 많이 거주하는 퀸즈에는 한국 영화를 종종 상영하는 영화관이 한 곳 있다. 안중근 의사를 존경하는 딸은 연말 방학 내내 영화 상영을 기다렸다.

그런데 개봉하자마자 표가 매진돼 주말 아침 표를 겨우 예매할 수 있었다. 그만큼 <하얼빈>은 미국에 거주하는 한인 동포들의 뜨거운 관심을 받고있다.

 

영화를 보러 간 날은 밤새 눈이 내렸다. 계속된 한파와 맞물려 매서운 추위를 느낀 탓인지 얼음으로 덮인 땅 위에서 전투를 벌이는 <하얼빈> 속 독립군의 처절한 모습이 실감 나게 다가왔다. 여기저기서 코를 훌쩍이는 소리가 들렸다. 우리와 다를 바 없는 '보통 사람들의 사투'로 그려진 신아산 전투 장면에 영화 초반부터 객석이 숙연해졌다.

 

영화 속 독립운동가들은 '독립'이라는 하나의 목표를 향해 함께 나아갔지만, 결정의 순간마다 서로 이견을 가지고 팽팽히 맞선다. 안중근이 의심을 받고, 수세에 몰리기도 한다. 한 사람의 카리스마 있는 영웅이 독자적으로 거사를 결정하고, 끌어가고, 해결하는 것보다 훨씬 현실감 있게 와 닿았다.

 

영화 속 안중근은 스스로 영웅처럼 굴지 않는다. 처음에는 대사를 가만가만 읊조리는 안중근(현빈)이 낯설었다. 굳은 결심으로 대의를 이루려는 뭔가 그럴싸한 '멋짐'이 느껴지지 않아서였다. 그런데 가공하지 않은 그 담담함 덕분에 한 사람으로서의 안중근을 만날 수 있었다.

독립군과 광복군을 계승한 국군의 정통성을 생각할 때 암살범이 아닌 '대한의군 참모 중장'으로 안중근의 정체성을 세우고, 이토 히로부미 저격을 적군 수장의 '척결'이라고 또렷하게 각인시킨 점도 좋았다.

영화가 끝나고, 옆자리에 계신 어르신께 영화가 어땠냐고 물었다. "뭐 좀 착잡하네요. 요즘 좀 그렇잖아요"라며 말을 아낀다. 나라 걱정이 아닐까 추측해 봤다.

 

상영관을 나오며 한 여성 관객 한 분과 복도에서 마주쳤다. 딸을 유심히 보더니 "눈이… (울어서 붉어졌네) 뭔가 울림이 있었나 보다"라며 사탕 몇 개를 손에 쥐어 줬다. 이 여성 관객에게 <하얼빈> 감상을 물었다.

그는 "첫 장면부터 강렬했다"며 "혹한 가운데 나라를 지키느라 싸우신 분들도 있는데, 겨우 이 정도 추위에 영화를 보러 올까 말까 고민했던 마음이 부끄러웠다"고 했다. 중학교 교사인 조카 생각도 났단다. 역사 교사인 조카가 보았다면 더 풍성한 가르침을 줄 수 있을 텐데 한국 영화를 보기 힘든 지역에 살고 있어 안타깝다는 말이었다. 한인 2세, 3세에게 역사를 전하고 싶은 마음은 똑같구나 싶었다.

 

그러면서 제작사에 자막과 관련해 아쉬운 점이 있다고 했다. 미국에서 상영되는 영화라 화면 아래쪽에 영어 자막이 나온다. 영화 속 러시아어와 일본어 대사가 나올 때도 영어 자막이 스크린에 올라왔다. 그는 "영화를 보러 오는 어르신들도 많은데, 빠르게 지나가는 영어 자막을 읽기는 힘드시지 않을까 싶다"며 "어떤 내용일지 짐작은 하겠지만 영화를 명확하게 이해하려면 일어와 러시아어가 나오는 장면에서는 '한글 자막'도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주말 교통 체증으로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한 시간 가까이 걸렸다. 고속도로 위에서 꼼짝 없이 갇혀 허기가 졌는데, 아까 받은 사탕이 생각났다. 딸과 함께 사탕을 나눠 먹으며 '하얼빈으로 향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나누었다. 롱아일랜드에 있는 안중근 의사의 조카딸이자 김구 주석의 큰며느리인 안미생 지사 묘소에도 조만간 또 들르기로 했다.

 

영화관에서 감상평을 나누며, 사탕을 전해준 여성에게 '정체길에 사탕 덕을 봤다'고 감사 메일을 보냈더니 다음 날 답장이 왔다. 그분의 단정한 글을 옮겨 본다.

"고작 사탕 4개에 예쁜 말씀을 주시니 부끄럽습니다. 팔순 노모에게 영화를 보여 드리기로 하고 내심 속으로 '난 착한 딸이니까' 하며 형제들에게 은근 생색을 내고 있었지요. 그런데 정작 어머니의 외출은 덤이었고, 오히려 저한테 더 귀한 시간이었어요.

구태의연하지만, 감사함, 분노, 통한, 죄책감, 경외, 수치심, 숙연함 등 그 모든 감정이 교차했습니다. <하얼빈> 영화를 보신 분들이라면 다들 비슷하게 느끼셨으리라 믿어요.

내란수괴의 체포와 법적 집행까지 나라 걱정과 울화로 계속 잠을 설치시는 제 어머니는 '영화 재미있으셨냐'는 언니의 물음에 '그 영화가 어떻게 재미가 있을 수 있냐'고 지청구를 날리셨어요. 중차대한 통한의 역사에 어찌 재미를 논하냐는 말씀이셨겠죠.

제게는 찌질하고 이기적인 소시민이 어떤 형태로 (사회에) 참여하는 삶을 살 수 있을지, 어떻게 살 것인지에 대한 화두를 다시 일깨워준 영화였습니다. 마침, 최근에 본 명언이 저의 부끄러움을 제대로 꾸짖네요.

Neutrality helps the oppressor, never the victim.
Silence encourages the tormentor, never the tormented. - Elie Wiesel.
(중립은 압제자를 도울 뿐 결코 피해자를 돕지 않는다.
침묵은 박해자를 북돋울 뿐 결코 고통받는 자를 일으켜주지 않는다. -엘리 비젤)"

이야기를 나눈 그 분은 어머니와 함께 영화관을 찾았다. 비슷한 연배의 나는 딸을 데리고 갔다. 그렇게 영화 한 편을 통해 정을 나눴고 인연이 됐다. 위기의 순간엔 서로 믿음을 주는 동지가 될지도 모르겠다. 사실 우리 민족은 내내 그래왔던 것 같다. 길을 잃어도, 나아갈 길을 만들어 가며.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096561&CMPT_CD=P0010&utm_source=naver&utm_medium=newsearch&utm_campaign=naver_news

 

해외에서도 다 같은맘 같아

같이 읽어 보면 좋을 듯해서 가져와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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