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얼빈'은 '늙은 늑대 척결'이라는 하나의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독립군의 여정에서 그 의지를 끊임없이 시험받는 안중근의 고뇌를 담는다. 자신들의 전쟁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만국공법을 따라야 한다며 포로를 풀어줘 동료들의 질타를 받기도 하고, 일본군의 방해로 수많은 동료들을 눈앞에서 잃은 직후 괴로움에 몸부림치는 모습이 안타깝게 그려진다.
밀정들의 암약으로 동료들도 함부로 믿지 못하는 상황에서 목표를 위해서 전진하는 안중근과 동료들의 험난한 여정은 광활한 대지, 비장한 선율과 어우러져 비감을 더한다. 특히 동료들을 몰살당해 혼자서 흩날리는 눈발을 헤치며 꽁꽁 얼어붙은 두만강을 한 발 한 발 내딛는 안중근의 모습은 그 당시 독립군이 느꼈을 외로움과 괴로움, 불안감, 무력감을 시가적으로 표현해내며 웰메이드 프로덕션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무엇보다 이 영화의 가장 흥미로운 지점은, 현 시국을 예견한 것 같은 장면과 대사들이다.
나라에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이상한 힘'을 발휘한다면서 "백성들이 가장 골칫거리"라며 말하는 이토 히로부미의 대사나, 반복되는 희생과 실패에도 독립에 대한 의지를 되새기며 "불을 밝혀야 한다"는 안중근의 대사는 현 시국을 상기시키며 가슴에 와닿아 깊이 박힌다.
나라의 주권을 회복하기 위해 하얼빈으로 달려간 안중근과 이름 없는 수많은 독립군에게서 국민의 주권을 회복하기 위해 광장으로 달려나간 오늘날의 국민들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면 지나칠까. 안중근의 '그 불'이 107년 뒤 광화문 광장을 밝혔고, 115년 뒤 여의도 광장으로 이어져 또 한 번의 커다란 변화를 이끌고 있다.
내년은 을사늑약이 체결된 지 120주년이 되는 해다. 다시 돌아오는 을사년을 맞이하는 이 시점에 관객과 만나게 된 '하얼빈'의 운명이 의미심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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