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이토록 친밀하고 배신적인 공간
미디어스=김기중 칼럼] 지난주 TV드라마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이친자)>의 최종회가 방영되었다. 최근에 이렇게나 몰입해서 봤던 드라마는 없었을 것 같다. 내가 이렇게나 몰입해서 볼 수 있었던 데는 몇가지 요소가 있었을 것이다. 당연히 시나리오, 연출, 배우들의 연기가 그것일 테지만, 내가 건축가이다 보니 건축적인 혹은 공간적인 부분도 특별해 보였다. 아마도 그렇기 때문에 밀도 있는 몰입감을 유지할 수 있었을 것이다.
건축적인 부분을 눈여겨보니 자연스럽게 에드워드 호퍼의 회화에서 나타나는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의 감독은 추측컨대 의식적으로 혹은 무의식적으로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 생각된다. 이번 글은 에드워드 호퍼의 회화와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를 비교하면서 건축 공간과 인간 심리와의 관계에 대해서 이야기 해보고자 한다.
‘에드워드 호퍼’(Edward Hopper, 1882~1967)의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Nighthawks 1942)>은 일상생활 속에서 인간의 외로움과 고립감에 대처하는 모습을 표현한 회화의 걸작이다. 여기서 ‘에드워드 호퍼’는 인간 심리와 현대적 고독을 깊이 탐구한다. 이 작품에는 건축적인 특징이 인간 심리와 연관되어 표현된다.
에드워드 호퍼’(Edward Hopper, 1882~1967)의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Nighthawks 1942)” (artvee 저작권무료이미지)
넓은 유리창으로 인간의 고립감을 표현한다. 식당을 둘러싼 거대한 유리창은 내부와 외부를 물리적으로 구분하면서도 시각적으로 연결한다. 즉 내부의 인물들을 외부세계로부터 고립시키는 동시에 노출된 상태로 남겨둔다. 의자 높이에서 시작하는 거대한 창은 외부세계가 내부 사람들을 바라보는 구조를 형성한다. 이는 현대 도시에서 타인과 물리적으로 가까이 있지만, 심리적으로 단절된 상태를 나탸낸다. 즉 관찰되지만 소통하지 않는 상황은 고독과 소외감을 암시한다.
실내의 강렬한 인공 조명은 외부 거리의 어둠과 뚜렷한 대비를 이루며, 따뜻함보다는 차갑고 냉정한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비인간성으로 상징되는 인공 조명 아래서 인물들이 따뜻한 교류 없이 형식적인 인공 조명 속에 앉아 있는 모습은 인간의 내면적 고독을 더 강화한다. 동시에 인공 조명이 만들어내는 외부와 내부의 강렬한 명암 대비는 긴장감과 불안을 암시한다.
극도로 간결하고 기능적으로 묘사된 식당 내부는 특별한 장식 없이 단조롭게 표현되어 있다. 이런 단조로움과 무기력하고 지루한 인물들의 표정과 자세가 서로 연결된다. 이는 현대 도시인이 느끼는 감정적인 공허함과 지루하고 반복적인 일상을 상징한다. 밀폐된 공간에서 네 인물은 한 공간에 있지만 서로 거의 소통하지 않는다. 이는 현대 도시에서 같은 공간에 있지만 정서적 교류가 부족한 현대인의 고립감을 표현한다.
식당 밖 거리에는 사람이 없고, 주변 건물은 닫힌 창문과 텅 빈 벽으로 묘사되어 있다. 이렇게 외부의 텅 빈 도시 풍경은 현대사회에서 느껴지는 실존적 고독과 소외감을 상징한다. 이는 거대 도시 안에서 인간이 느끼는 물리적 공간으로부터의 외로움, 즉 존재론적 외로움을 표현한다.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에서도 건축적 공간이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인물들의 심리적 상태와 관계의 긴장감을 암시하고 표현하는 중요한 장치로 사용된다. 우선 여기서는 등장인물들이 밀폐된 실내 공간에 배치된다. 방, 복도, 지하공간 또는 외부와 단절된 사무실 등에 배치함으로써 인물들을 외부세계와 격리된 상태로 표현한다. 이런 밀폐된 공간은 등장인물들의 심리적 고립감을 반영하고 비밀, 불안, 숨겨진 동기를 상징한다. 또한 긴장감과 억압된 감정을 강조하기도 한다.
드라마에서는 유리창이 자주 등장한다. 특히 취조실의 유리창이 자주 등장한다. 이를 통해 외부와 내부가 시각적으로 연결되는 듯하지만 실제로는 완전히 단절된 느낌을 준다. 유리창을 통해 인물들이 바깥세계를 바라보지만 상호작용하는 장면은 보기 힘들다. 유리창은 현대사회에서 인간관계의 단절과 타인으로부터 소외된 심리를 나타낸다. ‘바라보지만 닿을 수 없는’ 거리감은 등장인물들의 내적 고립과 외로움을 표현한다.
주요 장면에서 모퉁이나 경계공간-복도, 건물의 교차점 등이 자주 등장한다. 특히 딸 ‘장하빈’의 방 앞의 막다른 복도는 방문이 열렸을 때와 닫혔을 때의 상반된 장면을 통해 극의 심리적 긴장감을 표현한다. 즉 경계공간은 인물들이 갈등 속에 처해 있음을 나타내며, 선택의 기로 또는 관계의 변화 가능성을 암시한다. 특히 모퉁이는 긴박한 심리적 상황과 갈등의 전환점을 시각적으로 상징한다.
또한 차가운 색조(회색, 푸른빛)와 인공적인 조명을 사용하여 도시적 공간의 차갑고 무미건조한 분위기를 강조한다. 차가운 색감은 등장인물 간의 감정적 거리감과 관계의 소외를 상징한다. 인공 조명은 현실의 따뜻함보다는 인위적으로 불안정한 심리를 나타낸다. 어두운 그림자와 빛의 대비는 비밀, 의심 그리고 인간 심리의 이중성을 반영한다.
드라마를 보다 보면 도시의 거리, 카페 혹은 대중이 이용하는 공간이 텅 비어 있어서 기능적으로나 심리적으로 차가운 느낌으로 묘사된다. 비어 있는 공간은 등장인물들이 외로움을 느끼고 있음과 관계에서 단절감을 느끼고 있음을 표현한다. 그리고 공공공간이 비어 있음은 도시적 환경에서의 익명성과 소외감을 상징한다.
드라마의 몇 장면에서는 복잡하게 얽힌 계단과 좁은 복도가 나오고 이런 공간이 다층적 구조로 펼쳐진다. 특히 경찰서 장면에서 볼 수 있다. 이런 구조는 폐쇄적이면서도 혼란스러운 느낌을 준다. 공간의 복잡함은 인물들의 혼란스러운 내면 상태, 그리고 관계 속에서 갈등과 불신이 점점 증폭되는 과정을 상징한다. 그리고 공간의 구조적 얽힘은 해결되지 않은 문제와 비밀스러운 상황을 암시한다.
드라마를 보면서 특별히 인상적이었던 부분이 있었는데, 그것은 대칭적인 구도의 사용이다. 아버지 ‘장태수’와 딸 ‘장하빈’은 집안 식당에서 테이블의 길이 방향으로 서로 마주보는 대칭적인 구도로 대화를 나눈다. 이런 대칭적인 구조는 관계의 표면적 균형을 상징하는 동시에, 그 균형 뒤에 숨겨진 긴장과 불안정을 암시한다. 즉 대칭은 갈등이 억눌려 있지만 곧 폭발한 가능성을 암시한다.
이렇듯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는 건축적 공간을 인물들의 심리적 갈등, 고립, 불안, 관계의 긴장감을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중요한 장치로 사용한다. 공간의 밀폐성, 차가운 색감, 복잡한 구조와 대칭성을 통해서 현대사회에서의 인간 심리와 관계의 단절을 암시하고 드라마의 주요 테마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도록 분위기를 만드는 역할을 한다.
건축가 김기중(가로건축)이 설계한 ‘꼬르메움’-베이커리 카페 실내 전경 (사진:박명래)
위 사진의 건축물은 필자가 설계하고 2021년에 준공한 베이커리 카페 ‘꼬르메움’이다. ‘꼬르메움’도 건축적 공간을 통해서 인간의 심리를 표현하려고 시도한 건축물이다. 이 건축물에는 인간의 심리를 유도하고 암시하는 건축적 공간과 빛의 사용 등이 설계되어 있다. 지상3층 규모의 이 건축물은 외부에서 연결되는 수직 동선과 내부에서 연결되는 또 다른 수직 동선이 있는 건축물이다.
건축물의 입구 앞에 서면, 얕은 수공간이 이용자를 맞이한다. 이 수공간을 건너서 건축물의 메인 출입구를 항하며 삐뚤어진 사각형 형태의 콘크리트 통을 만나게 된다. 이용자는 빛의 사용이 절제된 이 콘크리트 통을 지나서 내부로 진입하게 된다. 이렇게 시작되어 내외부의 수직동선을 이용하게 된다. 수직 동선을 이동하는 여정에서 이용자는 막히고 열리는 등의 다양한 공간 상황을 경험하도록 하였다.
사진에서 보이는 공간은 3개층 오픈된 내부 공간으로 중복된 구조로 형성되어 있다. 또한 이 오픈된 공간에 계단이 매달려 있으면서 팽팽한 긴장감을 더한다. 이런 여정을 거치고 올라가면 옥상의 야외정원에 도착하게 되고 여기서는 수평으로 펼쳐진 안성의 평야가 눈에 들어온다. 그러면서 이용자는 극대화된 안식과 평화를 경험하게 된다.
건축가는 단순히 아름다운 건물을 짓는 사람이 아니라, 공간을 통해 인간의 삶과 심리를 개선하고 설계하는 사회적인 책임을 가진 전문가라고 할 수 있다. 기능 중심의 건축과 도시설계는 공동체의 붕괴를 초래할 수도 있고, 자연환경을 고려하지 않은 설계는 기후위기를 가속화할 수도 있다. 그리고 계층에 대한 배려 없는 설계는 사회적 갈등을 초래할 수도 있다. 하지만 여러 가지 좋은 의도를 모두 담기 위한 설계를 하다 보면, 한 가지 의도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상황이 되기도 한다. 오늘도 설계의 어려움과 책임감을 다시 느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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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분이 이친자의 건물 구도들 하나하나도 의도한 거같이 차갑다 비밀스럽게 만든 듯하다는 칼럼글인데 흥미로워서 가져와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