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영은 머리를 부여잡고 고개를 숙였고, 지욱은 굳은 표정으로 그 옆에 앉아있었다. 두 사람의 핸드폰은 갑작스런 핫이슈로 인해 빠르게 쌓여가는 메시지로 불이 나고 있었다.
“사내 부부가 죄는 아니잖아. 그냥 순서만 바꼈을 뿐이지.”
한참동안 머리를 뜯던 해영이 결연하게 말했다.
“편. 쫄지마. 우리 그냥, 당당하게… 너 왜 그렇게 봐?”
해영의 입이 지욱의 표정을 발견하고 막혔다. 지욱은 해영을 노려보고 있었다.
“너 내가 쓴 신입평가 때문에 그래? 아, 그거야.. 그냥 네가 본사에 남을까봐…”
찔리는 구석이 있던 해영의 목소리가 조금씩 작아졌고, 마침내 닫혀있던 지욱이 입이 열렸다.
“어떻게 나라고 생각해? 내가 손님을 신고할 사람으로 보여요? 나한테 그정도 믿음도 없어요?”
많이 서운했었던 지욱이 차분한 말투로 다다다 쏘아붙였고 면목이 없는 해영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변명을 했다.
“아니, 나는 그냥 신고 내용상 피해자가 너니까 당연히 넌 줄..”
“난 손님이 징계받을까봐 퇴사를 각오하고 달려왔어. 그게 무슨 의미인지, 내가 뭘 포기했는 지 알아?”
“…월급?”
캐나다에 있는 엄마를 볼모로 회사 성실히 다니라고 협박받고 있는 입장에서 나름 큰 용기를 냈던 지욱은, 이어지는 해영의 대답에 맥이 탁 풀렸다. 그래, 알아줄 걸 기대한 내가 잘못이지. 지욱은 한숨을 푹 쉬었고, 이런 지욱의 마음을 알 리 없는 해영은 지욱을 안심시키기 위해 열심히 입을 놀렸다.
“편, 걱정하지 마. 이걸로 퇴사 못 시켜. 그냥 부서 재배치되고, 주 52시간만 부부인 척만 하면 돼.”
“할 수 있을까? 내가 배신하면 어떡해요? 불안하지 않겠어?”
“배신이라니~ 네가 그런 걸 할 애니? 나 하나도 안 불안해. 나, 너 믿는다. I trust you. I believe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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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영은 영어까지 섞어가면서 열심히 자신의 마음을 어필했지만, 이미 마음이 상할 대로 상한 지욱은 콧방귀를 뀔 따름이었다.
“믿음은 주는 만큼 생기는 거고, 받은 만큼 커지는 거거든. 근데 난 줬는데, 받은 게 없네.”
얘.. 얘가 왜 이러지? 싸늘한 지욱의 대답에 해영은 당황했다. 급기야 지욱이 일어나서 옥상 출입구로 향하자, 지욱의 협조를 얻지 못하면 승진이고 고과고 나발이고 다 날라가게 생긴 해영은 다급해졌다.
그리고 그 순간, 해영의 눈에 탁자가 들어왔다. 해영은 냉큼 탁자 위로 올라가 지욱을 불렀다.
“편!”
지욱이 돌아봤다.
“내가 너를 얼~마나 믿는지 증명할게.”
“뭐하는 거에요?”
갑자기 저긴 왜 올라갔대? 지욱이 의심스런 눈초리로 해영을 바라봤다.
“이, 이거 알지? 신뢰테스트. 나 이거 자연이, 희성이 하고도 안 해. 너니까 하는 거야. 나 이정도로 너, 믿는다.”
뭐하나 했더니.. 뭐... 신뢰테스트? 기가 막히다는 표정으로 해영을 보던 지욱은 등을 돌려 다시 옥상 출입구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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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나 간다!”
“잘가요~”
곧 옥상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는 정적이 흘렀다.
“갔니? 갔어?”
해영만 홀로 남은 옥상은 여전히 고요할 뿐, 해영의 말에 아무런 대답도 들려오지 않았다.
“갔구나. 보기보다 뒤끝이 기네.”
해영은 한숨을 푹 쉬었다. 지욱은 생각보다 화가 많이 난 듯했다. 아무도 없는데 이딴 거 해 봤자 뭐하냐. 해영은 울적한 얼굴을 하고 의자로 발을 내딛었고, 불안정했던 의자 때문에 그만 발을 헛딛고 말았다.
“어어!!”
소리를 지르며 허우적 대는데, 누군가가 떨어지는 해영을 받았다. 가 버린 줄로만 안 지욱이, 떨어지는 해영을 받아낸 것이었다. 지욱은 여전히 뚱한 얼굴이었고, 해영의 눈에 놀라움이 가득했다.
“이게 신뢰테스트야? 체력 테스트 아니고?”
지욱이 와줬다는 기쁨과, 그대로 바닥에 추락해 다칠 뻔한 위기를 넘겼다는 생각에 안도한 해영은 엄지를 들고 밝게 웃으며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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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겁게 믿는다, 편!”
그 익살스런 제스처에 지욱의 입가에도 미소가 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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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퀘 받았던 것. 나도 참 좋아하는 씬 중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