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전적으로 원덬이의 뇌내 망상임.. 반박시 니네 말이 다 맞음..
어머니는 어느 추운 저녁에 조용히 돌아가셨다. 아직 손님과 화해하지 못한 채로, 나와 손님이 함께 찾아가 볼 기회도 주지 않으시고, 그렇게 멀리 떠나셨다.
어머니의 죽음을 실감하지 못하던 손님은, 잠든 나를 흔들어 깨우고는 다급하게 엄마에게 가야 한다는 말만 했다. 어딘가 혼이 나간 사람처럼 구는 모습에 놀란 내가 손님의 이름을 몇 번 부르고 나서야 정신이 든 손님은, 아이처럼 엉엉 울기 시작했다. 그 모습이 안타까웠던 나는 손님을 꼭 안고 등을 쓸어주는 수밖에 없었다.
슬픔도 잠시, 손님은 매우 바빠졌다. 장례식에 필요한 물품을 고르고 빈소를 차리기가 무섭게 사람들이 들이닥쳤다. 어머니의 손님도 많았고, 손님의 손님들도 많았다. 우리 할머니 때와는 달리, 많은 사람이 북적대는 빈소는 쓸쓸하지 않아서 좋았다. 특히 손님의 집에 머물다 갔던 위탁아들이 모두 함께 있어 주었다. 그것도 3일 내내. 말은 안 해도 손님은 굉장히 든든한 눈치였다.
조문이 뜸해진 사이, 손님은 상주 명단을 보며 쓸쓸히 서 있었다. 잠시 고민하던 나는 펜과 종이를 들고 손님에게 갔다.
“가짜 신랑이랑 가짜 결혼도 했는데, 가짜 상주는 안돼요?”
곧 손님은 빼곡히 이름을 적어서 들고 왔다. 내가 마지막에 있는 걸 보니, 그 집에 머물렀던 위탁아들의 이름이었던 것 같았다.
“내가 막내 아들이네요?”
“널 사위 김지욱으로 올리고 싶진 않았어. 내가 알기 전부터 너는 이은옥의 아들이었을 테니까."
"고마워 지욱아. 엄마 옆에 있어줘서.”
손님은 물기어린 눈으로 웃으며 내게 고맙다고 말했다.
“고마워요. 그렇게 말해줘서.”
숨기는 것 없냐는 질문에 대답을 피하고, 끝까지 어머니와 한 약속을 들키지 않으려고, 손님을 속이려 했던 날 용서해줘서, 고마워요.
나는 손님을 안고, 손님의 용서를 얻게 되면 하려고 했던 말을 했다.
“이제, 손님 속이는 일은 없을 거예요. 약속할 게요.”
어머니는 우리 할머니의 맞은편, 그리고 어머니의 남편의 옆자리에 안치되었다. 어머니 앞에서 도란도란 담소를 나누고 떠나는 길에, 나는 어머니께 약속했다.
‘약속 못 지켜서 죄송해요. 대신 손님 옆에 있을 게요. 손님 손 놓지 않을 게요.’
그래서, 손님이 외롭지 않도록 할 게요.
납골당을 나와, 손님과 나란히 걸었다. 짧지 않은 기간 동안 장례를 치르느라, 손님은 많이 지쳐 보였다. 조심스레 손님의 손을 잡으니, 손님이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어머니하고 약속해서요. 손님 손 꼭 잡아주겠다고."
잠시 후, 갑자기 손님이 걸음을 멈추고 말간 얼굴로 담담하게 말했다.
"지욱아. 이제 아무 약속 안 지켜도 돼."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바라보자, 손님이 말을 이었다.
"너는 자유야. 이제는 지켜야 할 사람, 지켜야 할 약속 없이 너만 지켜봐."
"그게 무슨 말이에요?"
"너는 평생 엄마, 할머니, 우리 엄마를 위해서 살았잖아. 캐나다에 있는 엄마 보고 싶은 것도 참고, 내가 좋은 것도 참으면서.”
손님은, 시골집에서 내게 했던 말을 하고 있었다. 갑자기 불안해졌다.
“그리고 이제는 나겠지. 나를 지키고, 나하고의 약속을 지키느라, 너는 또 어떤 감정들을 참아낼까?"
"그건, 누구나 사랑하면 다.."
"미안한데, 나는 너의 삶의 이유, 존재의 이유까지 되고 싶진 않아."
그치만 손님. 할머니의 유언, 엄마를 지키는 것을 포기하고 손님 옆에 남기로 결정했던 그 밤, 내가 처음으로 소리 내어 사랑을 고백했던 그 밤, 우리가 함께 보낸 그 밤부터, 이미 손님은 내게 그런 존재였는 걸. 손해영 너는, 내가 사랑하는 내 아내는, 이미 나의 삶의 이유이고, 존재의 이유인 걸.
"그거는.. 너무 버거워, 지욱아. 너무 무거워. 그러니까,"
아무것도 안해도 되고, 그냥 곁에 있게만 해주면 되는데도? 예상치 못한 말들에 어느새 정신이 아득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갑자기 손에서 무언가가 빠져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고개를 내려보니 손님이 반지를 빼고 있었다. 난 황급히 손님의 손을 잡았다.
안돼요. 싫어. 나한테 이러지마.
감히 소리내어 애원하지는 못하고, 절박한 눈으로 손님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손님이 울기 시작했다.
그리고 손님이 떨리는 목소리로 부탁했다.
"지욱아, 한번만, 마지막으로 한번만, 나를 지켜줘. 내가 나일 수 있게."
불현듯 가짜 결혼식을 준비하던 어떤 날이 떠올랐다.
‘내가 걱정되요?’
‘응.’
‘사람들이 널 기억할까봐. 나는 손해보는 것도, 주는 것도 싫어하거든.’
잊고 있었다.
사실 손님은 손해보는 것도 싫지만, 주는 건 더 싫어한다는 걸.
그리고 내 마음만 생각하느라, 간과했다.
손님이 상대방의 희생을 담보로 하는 애정을 부담스러워 할 수도 있다는 것을.
이런 애정은 손해영 식 손익계산으로는 탈락일 수도 있다는 것을.
손에 힘이 쭉 빠졌고, 결국 내가 처음으로 욕심냈던 관계를 의미하는 징표가 내 손에서 사라졌다.
손님은 나를 등지고 떠났고, 나는 그 자리에 홀로 남겨졌다.
정신을 차려보니 할머니 앞에 서 있었다. 할머니의 얼굴을 보니 서러워져서 다시 눈물이 났다.
할머니, 나는 필요한 존재가 되고 싶었어. 나를 사랑하는 사람에게 아픔을 주기보다는, 도움을 주고, 그렇다고 이용당하지도 않는. 태어날 때는 내 맘과는 다르게 엄마와 할머니의 가슴에 못을 박았지만, 그래도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사람은 되지 않겠다고 다짐했어.
그래서 나는 할 수 있는 한 내 주변 사람들에게 많이 주고, 약속한 건 지키려고 했어. 이런 날 다들 날 천사라고 하고, 의인이라고 했어. 그래서 나는 이렇게 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어. 그런데 이런 내가 손님은 부담스럽대. 이제는 누굴 지키거나 약속을 지키려고 하지 말고 나를 돌아 보래.
그런데 사실, 그게 뭔지 잘 모르겠어. 난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한참동안, 할머니 앞에서 눈물을 쏟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