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리를 다치고, 내 인생에서 수영이란 걸 떠나보내고,
나는 할 수 있는게 없었다.
그저, 이제는 제대로 움직이지 못할 다리를 붙잡고,
이불 속에 누워서
수족관을 자유롭게 헤엄치는 물고기를 바라보며,
다음 생에는 저 물고기로 태어났으면 좋겠다.
그럼 죽을 때까지 수영할 수 있을텐데.
지금 수영을 하지 못해서,
뭍에서도 숨쉬지 못할 거 같은 이런 고통은 겪지 않았을 텐데.
그런데 밤도둑처럼 내 방 창문을 넘어 온 너는
무표정과 침묵 속에서 속으로 삭이고 있던 이런 나의 고통, 분노를
한 방에 껍질을 깨고 날뛰게 한다.
온갖 욕설들을 너에게 던지고, 또다시 그 욕설들이 나에게 튕겨나오고
그 날것의 감정들을 온 몸으로 받아내고 났더니,
웃기게도, 속이 좀 시원해지는 거 같다.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표정이 점점 일그러지고,
그런데 그러면 그럴수록 오히려,
좀 숨을 쉬는 거 같고,
살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건 왜일까.
-왜 와가지고 지랄이냐고 지랄은!! 네가 지금 내 맘을 알기는 해? 네가 지금 내 상황을 제대로 알기냐 하냐고!
-…이제 속 좀 후련하냐.
그애의 입에서 새어나오는 안도의 한숨.
아. 모를 리가 없다. 배석류가. 나를 모를 리가 없지.
-나 니 목소리 한 달만에 처음 듣는다.
-…뭐 어쩌라고. 그래서.
대답없이 가방에서 그 애가 꺼내드는 건.
...도끼?
저거 미친 거 아냐?
-뭐야, 왜 그런 걸 가방에 갖고 다녀.
-문 또 잠가라. 부순다.
마치 공포영화의 엔딩 같은 대사를 치며 너는 이번에는 당당하게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간다.
그렇게 니가 나가고 난 뒤, 나는 깁스한 다리를 이번엔 피하지 않고 똑바로 바라본다.
그래. 이제 수영선수 최승효는 없어.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난 최승효였다.
웃음이 나왔다.
나도 이제 나가야지.
니가 열어준 이 문을 열고.
다음을 향해.
수영이 없어도, 헤엄칠 수 있는 세상을 향해 가볼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