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장편 <킬리만자로> 이후 15년 만에 복귀한 영화 <무뢰한>(2015)을 떠올려 보면, 오승욱 감독은 본인의 장기와 감성이 무엇인지 분명히 깨달은 듯 보인다. 마치 세기말을 연상시키는 듯한 배경 설정에 종말로 향해가는 인물들의 처연한 선택들은 한국 누아르 장르의 또 다른 지평을 가늠하게 해줬고, 그의 차기작에 새삼 호기심을 갖게 만들기 충분했다.
약 9년 만에 선보이는 <리볼버>는 이야기의 규모나 사건의 스케일 면에서 보다 소소해졌다. 클럽 운영권을 놓고 뒷돈을 챙기던 비리 경찰이 출소 후 약속받은 7억 원을 되찾기 위해 일종의 추격전을 벌인다는 설정이다.
전면에 내세운 여성 서사
사수인 임 과장(이정재)에게 뒤통수를 맞았다고 생각한 수영(전도연)은 자신이 모든 죄를 뒤집어쓴 대가로 혜택을 본 범죄 조직을 찾아다니는데, 그 과정에서 거칠고 격정적인 액션신보다는 캐릭터별로 쌓인 긴장감을 이용해 박진감을 더하는 식이다. 영화 제목만 놓고 보면 총격전 혹은 난타전을 떠올리기 쉽다. 결과적으론 맥거핀 효과(관객들의 주의를 분산시키기 위해 사용하는 극적 장치 혹은 속임수 - 기자 말)인 셈.
악인들의 활극이라는 점에서 피카레스크 성격 또한 다분하다. 한국 영화에서 특히 누아르 장르에서 이런 피카레스크 구성의 작품이 꽤 있었는데, <리볼버>는 여성 서사를 전면에 내세움과 동시에 감독 특유의 섬세한 연출력이 세공된 결과물이었다. 특히 임 과장과의 관계성을 설명하는 회상 및 과거 장면을 교차시키며 단순한 소품을 활용해 컷을 전환하는 등 감독의 장기를 십분 선보인다. 이야기의 속도감을 죽이지 않으면서 관객으로 하여금 충분히 각 인물의 과거를 연결 짓게 하는 영리한 선택이다.
특기할 또 하나의 요소는 배우들의 합이다. 단순히 각자가 캐릭터를 잘 소화한 것을 넘어 서로 다른 개성들이 해당 배우와 잘 맞아떨어진다. 드라마 <더 글로리>에 이어 악역을 소화한 임지연은 의리도 정도 없어 보이는 교활한 마담을 연기했는데, 묘하게 수영에게 동질감을 느끼며 의도치 않은 조력자가 되기도 한다. 이 미묘한 관계성이 대사가 아닌 사건과 캐릭터적 개성으로 잘 표현된 건 배우의 해석력도 한몫했기 때문일 것이다.
배우 전도연이 액션으로 전면에 나선 경우가 최근 꽤 있었다. 특히 최근작인 <길복순>(2023)이 있기에 이번 작품 속 캐릭터와 비교될 여지가 크다. 차이가 있다면 <길복순> 속 복순은 배우의 신체 능력과 장르적 특성을 십분 활용한 결과라면, <리볼버>는 캐릭터 그 자체가 지닌 입체감과 분위기를 적극 활용했다. 같은 액션이라도 전혀 다르게 보이는 이유다.
큰 갈등이나 추격전 등이 없기에 단순 액션 영화로 생각한다면 마치 평양냉면처럼 심심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야기가 흐르는 내내 긴장감을 놓을 수 없다. 분명한 사실은 오승욱 감독의 성공적인 복귀작으로 차고 넘친다는 것. 흥행 여부와 상관없이 <무뢰한> 근래 개봉하는 한국영화 중에서 제법 오래 기억될 작품이 될 것이다.
한줄평: 섬세한 연출과 배우의 앙상블이 잘 녹아든 수작
평점: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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