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잡담 탈주 씨네21 이거 한번 읽어봐
1,013 3
2024.07.05 19:22
1,013 3

현상은 단순히 무자비한 추격자로 요약되지 않는 캐릭터다. 현상과 규남의 대비가 작품을 이끌어가는 주요한 기제지만 자신과 대비되는 규남을 쫓는 현상조차 두 속성으로 분열된 캐릭터다. 현상의 추격에 물음표를 몇개 달고 싶은 이유는 그가 규남을 쫓다가도 구하고, 구하다가도 쫓는 모순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현상은 규남을 처벌할 수 있는 상황에서 규남을 빼돌린다. 이후 현상은 총정치국장의 연회에 규남을 데려간 후 그를 반동분자를 체포한 영웅으로 둔갑시킨다. 이에 그치지 않고 규남에게 사단장 직속 보좌 자리까지 알선한다. 현상의 시혜에 굴하지 않고 규남이 탈출을 일삼자 현상은 그때서야 자신이 지닌 권력을 규남과 동혁을 해하기 위해 사용한다. 현상은 추격을 못한 것이 아니라 안 한 것이다. 규남과 있을 때와 달리 현상은 동혁이나 후임을 대하는 모습에서 피도 눈물도 없는 군인의 냉혹함을 드러낸다.


정작 <탈주>는 규남의 탈주와 현상의 추격에 명확한 사유를 부여하지 않는다. 관객이 두 캐릭터의 도주 경로를 함께 추적하도록 만드는 힘은 사건간의 연관관계인 속칭 개연성일 텐데, 영화는 두 인물이 왜 쫓고 쫓기는지를 설명하길 의도적으로 거부한다. 하지만 설명하지 않는다고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규남의 탈주는 현상으로부터, 현상의 추격은 규남으로부터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규남의 탈주엔 사연이 없다. 이는 먼저 탈북한 어머니와 동생이 잘 사는지 궁금해하는 동혁과 상반된다. 규남을 구성하는 키워드는 그의 계급이다. 규남은 후임 병사들로부터 대놓고 “규남이 형은 출신성분이 3등급이라 제대하면 농장 아니면 탄광으로 가야 해 미래가 캄캄하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사단장 직속 보좌로 군 복무를 이어갈 위기에 처한 규남은 왜 자신의 앞길을 마음대로 정하냐고 현상에게 묻는다. 이어 현상은 규남을 조소한다. “그럼 네 앞길을 네가 정하니?” 탐험가가 되길 꿈꿨던 규남은 유년기부터 위인전 <집념의 아문센>을 끼고 살며 제 앞길을 개척하려 하지만 북한 사회에서 그가 자신의 능력만으로 지위 상승을 이루는 일은 불가능하다. 반면 규남이 믿는 남한은 능력만 있다면 꿈을 실현할 수 있는 기회의 땅이다. (남한에서도 규남의 희망이 금방 좌절될 걸 아는 남녘 관객의 공연한 염려는 나중이다.) 규남에게 현상은 단순히 자신을 쫓는 숙적이라기보다 이상의 실현을 위해 끝내 넘어서고 도망쳐야 할 장벽이다. 복귀하면 처벌만은 최소화해주겠다는 현상의 마지막 자비에 규남은 단도직입적으로 고백한다. “내 앞길 내가 정했습니다.”

현상이 규남을 맹렬히 뒤쫓는 건 그가 직업 윤리에 충실한 군인이기 때문일까? 탈주범 한명 사살하거나 규남 한 사람쯤 눈감아주는 건 현상에게 일도 아니다. 그런데 현상은 가진 게 많은 만큼 잃을 것 또한 많은 남자다. 현상은 자신이 누리는 모든 삶을 지키기 위해 포기를 거듭해왔다. 현상은 러시아 체류 시절 국제 콩쿠르를 모두 휘어잡던 피아니스트였고 확신컨대 민(송강)과 무척 내밀한 관계였을 것이다. 지금 현상은 규율과 통제 속에 살아가는 군 간부다. 자신의 장인어른에게 잘 보이기 위한 연회에서 현상은 피아노 그리고 민과 재회한다. 와중에 잃을 것이 없어 마구 달음질하는 규남은 “그래도 실패는 해볼 수 있지 않”냐며 목숨을 걸고 집념을 불사른다. 이종필 감독은 “규남의 활개가 ‘이렇게 사는 게 맞나’ 혹은 ‘내가 놓친 것은 없나’ 번뇌해온 현상에게 역린이 되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신념을 꺾지 않는 규남을 본 후 현상 역시 더이상 포기하지 않는다. 그래서 현상은 규남을 ‘생포’하길 포기하지 않는다. 요컨대 규남과 현상은 서로에게 칡과 등나무처럼 서로 얽혀 있는 존재다. 현상의 계급적 우월함이 규남의 탈주에 불씨를 지피고, 규남의 거칠 것 없는 계급의식의 전복이 현상의 추격에 박차를 가한다.


http://m.cine21.com/news/view/?mag_id=105416

목록 스크랩 (1)
댓글 3
댓글 더 보기
새 댓글 확인하기

번호 카테고리 제목 날짜 조회
이벤트 공지 [잇츠스킨] 난 대학시절 감초를 전공했단 사실! #감초줄렌 패드 2종 체험 이벤트💙 483 10.01 38,482
공지 ▀▄▀▄▀【필독】 비밀번호 변경 권장 공지 ▀▄▀▄▀ 04.09 2,893,686
공지 공지가 길다면 한번씩 눌러서 읽어주시면 됩니다. 23.11.01 6,574,927
공지 ◤더쿠 이용 규칙◢ [스퀘어/핫게 중계 공지 주의] 20.04.29 24,521,392
공지 ◤성별 관련 공지◢ [언금단어 사용 시 📢무📢통📢보📢차📢단📢] 16.05.21 25,878,941
공지 알림/결과 📺 2024 방영 예정 드라마📱 96 02.08 1,583,296
공지 잡담 (핫게나 슼 대상으로) 저런기사 왜끌고오냐 저런글 왜올리냐 댓글 정병천국이다 댓글 썅내난다 12 23.10.14 1,693,764
공지 알림/결과 한국 드라마 시청 가능 플랫폼 현황 (1971~2014년 / 2023.03.25 update) 15 22.12.07 2,810,068
공지 알림/결과 ゚・* 【:.。. ⭐️ (੭ ᐕ)੭*⁾⁾ 뎡 배 카 테 진 입 문 🎟 ⭐️ .。.:】 *・゚ 158 22.03.12 3,812,275
공지 알림/결과 블루레이&디비디 Q&A 총정리 (21.04.26.) 6 21.04.26 3,009,110
공지 스퀘어 차기작 2개 이상인 배우들 정리 (7/1 ver.) 168 21.01.19 3,079,583
공지 알림/결과 OTT 플랫폼 한드 목록 (웨이브, 왓챠, 넷플릭스, 티빙) -2022.05.09 238 20.10.01 3,120,513
공지 알림/결과 만능 남여주 나이별 정리 251 19.02.22 3,146,003
공지 알림/결과 작품내 여성캐릭터 도구화/수동적/소모적/여캐민폐 타령 및 관련 언급 금지, 언급시 차단 주의 103 17.08.24 3,038,446
공지 알림/결과 한국 드영배방(국내 드라마 / 영화/ 배우 및 연예계 토크방 : 드영배) 62 15.04.06 3,357,784
모든 공지 확인하기()
13474501 onair 수지맞은우리 동주엄마가 누구야? 20:47 11
13474500 onair 사랑후 칸나 선 넘네..? 20:47 36
13474499 onair 파친코 요셉이랑 경희는 서로 사랑해서 결혼한건 아녔나봐 20:47 8
13474498 잡담 이번주 삼세 김고은 나와?? 1 20:46 22
13474497 잡담 파친코 고한수 장인이 하는말보니 지하철 사업권 따려고 2 20:46 10
13474496 잡담 솔직히 지금 이선균추모 남초에서 반응 좋은것도 아니야 머글한테도 그렇고 20:46 48
13474495 잡담 드연인 파트2티저 공개 됐을때 최애 장면 뭐엿어? 1 20:46 8
13474494 잡담 서인국 안재현 마카오 간 거 보는데 둘이 진짜 존나 달라 20:45 41
13474493 onair 사랑후 검정 목폴라 준고 유죄 2 20:45 53
13474492 잡담 해리에게 주은호 아무리 세계관이라지만 이런 사람이 무명이라니 인정이 안된다 20:45 33
13474491 잡담 엥 헐 폭싹에 ㄱㅅㅎ 특출이구나... 3 20:45 208
13474490 onair 사랑후 민준이 어케 아는겨??? 1 20:45 58
13474489 잡담 내가 생각하던 폭싹이랑 지금 저 추모 감성이랑 결이 너무 정반대라 못볼듯ㅋㅋㅜ 20:45 31
13474488 잡담 난 요새 그냥 연예계 판이 너무 웃김.... 20:44 69
13474487 onair 파친코 근데 고한수 차 너무 눈에 띄는데 3 20:44 23
13474486 잡담 ㅇㅅㄱ 추모 짜치는게 지금도 검경탓은 절대 안함ㅋㅋㅋㅋ 20:44 65
13474485 잡담 백종원 유튜브 다음주에 우승자 나올듯 20:44 60
13474484 잡담 빠스가 무슨 요리더라 2 20:44 92
13474483 스퀘어 박보영 인스타 업뎃 20:43 146
13474482 잡담 파친코 모자수가 노아랑 놀러간 파친코가게 주인이 선자네 국수집 단골손님이네 3 20:43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