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vior2
서로의 기억 너머에 있는 너, 없는 나
네 기억 한구석에 내 자리가 없길
그동안 바라왔던 소원을 뒤집었다
언젠가 만나게 되는 그때 기적이 있다면 날 떠올려주길
어리석은 소원이었음을 깨달았다
난 솔의 기억 창고 어느 구석에도 있어선 안된다
작은 먼지로라도 남아있으면 안된다
상처투성이라서가 아니다
내 상처를 보이고 싶지 않다는 것조차 이기적이다
그건 온전히 내 사정이다
내가 감당해야 할 몫의 가시밭길이다
솔을 가시밭길 가운데로 밀어 넣을 수는 없다
충분히 겪어왔을 길이므로
기억의 파편 조각이 맞물리는 순간 다시 절망의 구렁으로 빠져들지도 모른다
과거 속에 묶여 억눌린 삶이 나를 갉아먹는 걸 알면서도 털어내지 못했던 나에게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한줄기 빛이 내리고 있다
그날은 아쉬웠다
나만 그리워했던 시간
허무하기도 허탈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내
너를 향해 걸어갈 때 환하게 미소 짓는 네게
머리 속
고요했던 마음이 튀어올라
나는 현재여야한다
미래여야한다
우린 백지여야한다
처음이여야한다
까만 폰 화면에 깜빡 불을 비친다
<어디쯤 오고 계셔요? 주차장에서 기다릴게요>
<천천히 내려와요>
약속 한 시간 전부터 주차장에 차를 세워 놓고 솔의 집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럴리는 없겠지만 길이 엇갈릴까
1분도 나를 기다리게 하고 싶지않았다
내 15년의 기다림이 어땠는지 알기에
"언제 오셨어요? 전화 주셨으면 일찍 나왔을텐데"
"그건 약속 시간을 안 지킨 제 사정이죠 솔이씨는 마음 쓸 필요 없어요 나와줘서 고마워요"
솔을 조수석에 앉히고 간이 휠체어를 접어 트렁크에 넣는 찰나에도 솔이 보고 싶다
"연습한다고 했는데 아직 서툴어요 이따 내릴 땐 더 잘해볼게요"
휠체어 차에 싣는 법이며 솔이 같은 상황엔 차에 태우는 방법이 다를테니 나름 준비한다고 했지만 우왕좌왕하는 모습만 보였다
"너무 신경 안 쓰셨으면 해요 부담이 되요"
"미안해요 미쳐 거기까진 생각 못했어요"
"익숙해질만도 한데 이유 없는 친절 동정 연민은 싫어요 저 스스로도 잘해요 그래도 고마운 건 고마운 거니까 이따 가도 잘 부탁드려요"
예전처럼 넌 네 자신보다 남을 , 나를 더 우선시하는구나
"저도 배울 건 배우고 혼날 땐 혼나야죠 누군가에게 잔소리라고 해야 하나
너무 오랜만에 들었어요 정신 바짝차릴게요"
반달처럼 접히는 눈 웃음이 언뜻 보인다
내가 반했던 미소
숨 쉬는 법을 잊게 만든
다시 숨 쉬고 싶게 만든 웃음
미팅 내내 솔은 빛났다
좋아하는 일을 열심히 하는 솔의 모습에 반하고 실력에 감동했다
다들 반기는 모양새였다
은퇴를 공표한 내가 컨텐츠를 만든다고 하니 의아함보단 안도하는 분위기였다
솔이 내 맘을 바꾼 사람인 걸 아는지 더 신경 써주는 것이 눈에 보였다
"첫미팅이라 대략적인 틀만 잡았어요 더 구체적인 건 담당자와 상의해서 진행할게요"
너무나 빨리 끝나버린 회의가 야속하다
천천히 가길 바라는 내 맘과 다르게 힘차게 달리는 시계바늘만 쳐다보며 발 동동 거리는 내게 동석이가 말했다
" 형님 회의 마무리는 저희가 할테니 먼저 가실래요?"
"아냐 아냐 회의 천천히 해 난 괜찮아"
"안괜찮아 보여요 제가 모셔다 드릴게요"
"밥. 밥 먹어야 해 오늘 솔씨랑 밥 먹기로 했어 그쵸?"
회사 사람들 모두 휘둥그레진 눈으로 나를 훑어보기 시작했다
"형님 지금 밥이랬어요? 밥이요?"
"그래 밥. 사람이 밥심으로 사는 거야 "
놀라는 것도 당연
두 달 넘도록 음식을 제대로 먹지 못하고 링거로 버티는 중이였으니
영문을 모르는 솔만 어리둥절 고개를 갸우뚱거릴뿐이었다
"배고프다 뭐 먹고 싶어요? 뭐든 말해요 다 사줄게요"
"좋은 일도 소개해 주셨는데 제가 살게요"
"그래요 그럼 맛난 거 사줘요"
익숙하게 들어가는 식당
자주 오는 곳인지 주인 아주머니도 테이블 의자 두 개를 빼어 옆으로 치우면서 주방에 주문을 넣는다
"이곳 음식이 맛있어요 그리고 휠체어 타고 온다고 눈치도 안 주시구요"
식탁 가득 차려진 소박하지만 정이 듬뿍 들어간 음식들
꼬르륵
뱃속이 요동치기 시작한다
내 위라는 것이 움직이기는 하는 구나 싶은 순간
내 밥 숟갈 위로 반찬 하나가 올라온다
해사하게 웃으면서 맛있게 먹으라는 네게 실망 주고 싶지 않았다
열심히 정말 열심히 먹었다
맛이라는 것이 혀끝에서 느껴지지 않았지만
마음에서 눈에서 귀에서는 느껴졌다
솔이라는 달콤함이
두 달 만에 먹어선가 체하고 말았다
밤새 화장실을 들락거리고 더이상 나올 것도 없는 퍼런 위액을 보면서도 웃음이 났다
아직 내가 살아 있어도 괜찮을 이유가 생긴 것 같다
아무런 스케줄도 없이 시간을 보내본 적이 없어서인지 무엇을 해야할 지 모르겠다
대표님의 만류로 은퇴 발표를 미루었고 그 핑계로 쉬는 중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솔을 보고 싶어서
솔이 웃는 모습을 보고싶어서
연예인 선재를 보며 행복하게 웃는 모습이 보고싶어서
<뭐해요?>
<지금 막 일어났어요>
<지금이 몇신데?>
시계를 보니 새벽 4시 ...내가 잠을 안 자니 남들도 그런 줄
<자는 거 깨웠나보네 미안해요>
<아니예요 덕분에 일찍 일어나는 새의 삶도 살아보고 좋죠>
<오늘 뭐해요?>
<음.. 별일 없어요. 아 선재씨 지난번 컨텐츠 수정 기다리는 중?>
<별일 없다는거죠? 그럼 우리 소풍가요>
한 3일만에 샤워를 하고 단장을 했다
우울증에 걸린 사람들이 가장 하기 힘든 일이 씻는 일이라고
마음 먹기까지가 가장 어렵다고
씻는 것이 이뤄지면 모든 것은 다 순탄하게 진행 된다더니
그말이 맞는가보다
욕실과 화장대 앞에서 한 시간 째 머리 감고 말리고 다듬고를 반복하고 있다
솔의 집 앞 아파트 복도를 쳐다보며 히죽히죽 웃음이 배어나온다
솔의 집 문이 열리고 보이지는 않지만 바퀴 굴러가는 소리가 드르륵 들린다
점점 커지는 바퀴소리
나에게 살아보라고 계속 삶을 돌려보라고 드르륵거리며 심장을 울린다
1 https://theqoo.net/dyb/3288541535
2 https://theqoo.net/dyb/32895411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