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거란전쟁'은 어떻게 출연하게 됐나.
▶전우성 감독과 인연이 깊다. '고려거란전쟁' 기획 단계에서 저보고 같이 하자고 했었다. 그때 전 감독이 "형님은 오랑캐 안 시킨다, 고려 장수시키겠다"라고 얘기했다. 그러고 실제로 드라마 들어가게 됐을 때 최수종 형님이 강감찬이 되는 거 기사 보고 며칠 지나서 연락이 왔다. "같이 하시죠" 하면서 "죄송한데 오랑캐 하셔야 할 거 같다"라고 하더라. 순간 당황했지만 그렇죠 해야죠. 전 감독이 설명하기로는 "오랑캐인데 우리가 알고 있는 오랑캐가 아니라 노련한 정치가이면서도 백성들을 노련하게 다루기도 했고 거란 전쟁 영웅이다, 또 역할이 최고위직이다"라고 하시더라. 왜 고려 장수를 안 시켰는지 납득하면서 제가 고려장수하기에는 나이가 많더라. 그래도 재밌었다. 내가 해본 역할 중에 최고위직이고 이때까지 맡은 역할은 내가 가진 힘을 사적으로 행사했는데, 같은 악역이라도 이번에는 또 느낌이 달랐다.
-소배압은 어떻게 분석하려고 했나.
▶소배압이라는 인물은 지금도 잘 모르겠다. 일단 진중해야 하는 거는 맞다. 진중하고 예의 바르고 사람의 품격이 있어야 하는데 그걸 보여주면서 야만족이라는 선입견을 버려야 했다. 소배압은 거친 거란의 기병들 수십만명을 지휘하는 장수다. 장수들 안에도 성격이 거친 친구들이 있을 거고 그런 사람들을 한 번에 휘어잡을 수 있는 내면의 야수성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유목민족들은 우두머리가 중요하다. 합의로 움직이는 집단이 아니기에 힘 있는 우두머리가 있어야 한다. 현명한 정치가의 면모도 있지만 야수성이 한 번씩 드러나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거를 찾아서 보여주려고 신경을 썼다.
-김혁, 최수종과의 연기 호흡은 어땠나.
▶김혁 배우와는 얘기를 많이 했다. 작품에 대해서도 분석을 많이 했는데, 촬영 전 하루 전쯤에 거란 진영 배우들을 불러서 리딩도 해보고 인물에 대해서 분석도 서로 나눴다. 근데 초반에는 서로의 톤을 맞추는 게 어려워서 그걸 맞춰보고는 했다. 그리고 혁이가 농담을 잘했기 때문에 현장에서 분위기 풀어주려고 노력했다. 저 같은 경우는 계속 졸았다. 몽골 막사 안에서 촬영하는데 막사 안에 배우 열몇명이랑 스태프들 수십명이 있으면 공기가 부족하다. 하루 종일 촬영할 때는 막판에 계속 졸았다.(웃음)
-최수종은 사극의 대가이기도 한데, 노하우 같은 걸 느낀 게 있나.
▶장문의 대사들이 있다. 몇 페이지 되는 대사들. 그때 작가님이 같은 뜻인데 단어를 살짝살짝 다르게 써놓으셨는데, 그거 때문에 배우들이 헷갈려서 고민했다. 뜻은 같은데 대사를 살리려고 단어들을 여러 개 쓰셔서 대사를 주시더라. 그게 또 서로 대사를 주고받으면 안 헷갈릴 텐데 한 호흡에 하려니 너무 헷갈리더라. 최수종 형님에게 '그때는 어떻게 합니까' 하니 '아무 방법 없이 무조건 외운다'고 하시더라. 정말로 형님은 황제를 설득하러 강감찬이 거란 진영에 혼자 온 장면에서 3페이지짜리 대사를 토씨 하나 안 틀리고 하시더라. 중간에 저희가 들어가야 하는데 저희가 헷갈려서 NG가 나서 죄송하더라. 그때 너무 미안하고 정신 바짝 차려야겠다 싶었다.
-지승현, 김동준의 연기는 어떻게 바라봤나.
▶지승현 씨 같은 경우는 첫날 리딩하는데 목소리가 너무 좋더라. 이런 배우를 내가 왜 이때까지 내가 못봤지 싶을을 정도로 너무 좋았다. 김동준씨 같은 경우는 모든 대사 이런 것들에 진정성을 담으려고 했다. 거짓말을 하거나 또는 '내가 연기합니다'라고 꾸며서 하는 게 아니라 온전하게 그 사람의 모습으로 보이려고 자기를 던져서 연기하더라. 그래서 너무 좋았다. 또 황보유의 역의 장인섭 배우, 장연우 역의 이지훈 배우도 너무 좋았다. 후배들 연기력이 너무 좋으니까 분발해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고려거란전쟁'은 본인에게 어떤 작품으로 남을 것 같나.
▶알을 깨는 작품이다. 내가 이때까지 알속에 갇혀있다가 깰 힘을 준 작품이다. 다른 영역에서 연기할 수 있는 날개를 펼 수 있는 시발점이 된 작품이 아닌가 싶다. 그런 징조는 '카지노'도 있지만 진정으로 알을 깼다고 생각했다.
-어떤 다른 영역인가.
▶다른 영역이라고 하면 이때까지는 우악스러운 역할로 많이 나왔다. 사적인 이익을 위해 자기 힘을 행사하는. 그런 게 아니라 이제는 공적인 영역으로 들어가도 되지 않나 싶다. 정치인이나, 장군이나, 동네 아저씨나, 학교 선생님도 가능하지 않을까. 그리고 이번에 보니 중년 아주머니 팬들도 많더라. 멜로도 가능하지 않을까. 바보 같이 순수한 멜로도 해보고 싶다.
-앞으로의 계획은.
▶다음 작품 찍어야 한다. 짧게 나오는 건데 이해영 감독님 작품에 잠깐 나오는 게 있다. 이번에는 공권력을 가지고 그걸 사적으로 쓰는 인물이다.(웃음) 역할이 도전해 볼 만한 거라 재밌을 것 같다. 이해영 감독님이 어떻게 디렉션할지도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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