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에 새삼스럽지만 분명히 밝히고 들어가야 하는 <LTNS>의 공적이 있다. <LTNS>는 한국 드라마 최초로 제목에 섹스를 명시(LTNS, Long Time No Sex)한 작품이다. 이와 같은 시도는 여전히 발칙하기 그지없고, 관례를 깨뜨린 만큼 자연히 드라마의 내용에 거는 기대도 남다르게 만든다. 다행히 <LTNS>의 파격은 제목에 국한하지 않는다. <소공녀>의 전고운 감독, <윤희에게>의 임대형 감독이 합심해 쓰고 연출한 <LTNS>엔 서로를 아끼고 원하지만 육체까진 바라지 않게 된 섹스리스 부부, 우진(이솜)과 임박사무엘(안재홍)이 등장한다. 이들은 가지각색의 불륜 커플을 미행하고 협박하며 수완을 올린다. 추리물에서 범죄극으로, 와중에 섹스 코미디까지. <LTNS>가 단행하는 여러 시도들은 눈여겨볼 만하고 제안하는 여러 논의들은 이야기될 만하다. 1월19일 티빙에서 1, 2화를 공개하고 3주에 걸쳐 6부작을 공개할 예정인 <LTNS>의 매력과 관전 포인트를 정리해보았다. 그리고 그칠 기미 없이 타오르는 <LTNS>의 자극을 체화한 두 배우 이솜과 안재홍을 만나 작품의 이모저모에 대해 물었다.
“뒤로 갈수록 더 재밌어요. 전 6화를 가장 좋아합니다.” <LTNS>의 일부 회차를 감상한 후기를 전하자 이솜이 확신에 찬 목소리로 이어질 작품의 재미와 완성도를 예고했다. 호텔 프런트 직원인 우진은 불륜 남녀를 미행하고 협박하러 다니는 계획을 주도하는 캐릭터다. 설득력, 발표력, 기획력, 조직력. 만약 회사가 신입사원을 뽑는다면 우진은 쌍수를 들고 환영할 역량을 갖췄다. 이솜 또한 우진이 지닌 역량을 모두 가진 배우다. 이솜은 남다른 아이디어와 확신을 가지고 전에 없던 드라마에 완벽하게 융화돼 마찬가지로 전에 없던 캐릭터인 우진을 천연덕스럽게 연기해낸다.
- <소공녀> 이후 6년 만에 전고운 감독과 재회했다. <소공녀> 때의 디렉팅과 달라진 점이 있던가.
= 여전한 부분이 훨씬 많았다. 리허설을 통해 장면을 만들어가는 방식도 그대로였고 신과 대사에 대해 본능적인 느낌을 찾아가는 방식도 전과 같았다. 그리고 여전히 지독한 디렉팅을 하신다. 더 독해지셨지. (웃음) 그래서 감독님에게 나를 포기하지 말아달라고 부탁드렸고, 감독님도 나를 끝의 끝까지 몰아붙이셨다. 아무리 현장이 고돼도 결과물이 잘 나오는 것이 최선이라는 걸 서로 느꼈기 때문이다.
- 확실히 우진은 보통이 아니다. “우리 이제 이렇게 살지 말자”고 먼저 선언하는 것도 우진이고, “잃을 게 없다”며 나서는 것도 우진이다. 무엇보다 임박사무엘이 누나가 셋인데도 우진은 결혼을 감행한다. (웃음)
= 우진의 성격을 짐작하기에 가장 적합한 대사가 또 있다. “나도 원래는 그러지 않았어, 이렇게 살다보니 독해진 거지.” 이 대사가 우진의 지난 삶을 함축한다고 할 수 있다. 결혼 생활의 여러 설정은 별다른 의문 없이 바로 수용했다. 안재홍 배우도 나도 결혼 경험은 없다 보니 기혼자인 전고운 감독님에게 많은 자문을 구했다.
- 현장에서 캐릭터의 외양이나 대사 등 작품이 풍성해질 수 있는 아이디어를 적극적으로 내는 배우라고 알고 있다. 이번 작품에서도 욕조에서 제모하는 장면을 포함해 여러 아이디어를 제안했다고 들었는데.
= 리허설 때부터 샘솟는 아이디어를 연출진에 전부 전했다. 너무 많이 전해서 감독님들이 나를 “워워~” 해야 하는 순간도 있었다. 우진이 검은 슬립을 입고 사무엘과 관계를 시도하는 장면이 있다. 원래는 다른 슬립이 준비돼 있었는데 슬립도 슬립을 입은 우진도 짠해 보였으면 했다. 그래서 촬영 전날 새벽 배송이 되는 쇼핑 웹사이트에 들어가 직접 검은 슬립을 골라 배송시켰다. 하나 더 있다. 촬영 중 대역 배우가 필요한 신이 있었다. 나와 키도, 머리 길이도 같아야 했다. 그래서 해외에 사는 친언니를 불렀다. 언니가 한번도 현장에 와본 적이 없고 늘 궁금해했던 터라 흔쾌히 합류해 재밌게 촬영하고 돌아갔다.
- 떠오른 아이디어는 바로 기록해두는 편인가.
= 그날 촬영을 복기하는 일지를 쓴다. <소공녀> 때 처음 생긴 습관을 여태 이어오고 있다. <소공녀>는 작은 규모의 독립영화라 현장에 스틸 기사가 상주하기 어려운 여건이었다. 당시 이 소중한 현장을 잘 담아두고 싶어 우리끼리 사진도 많이 찍고 매일의 회차를 자주 기록해두었다.
- 우진과 사무엘이 모텔에서 섹슈얼한 분위기를 내기 위해 서로의 장점을 열거하는 2화의 신이 인상적이다. <결혼 이야기>에서 찰리(아담 드라이버)와 니콜(스칼릿 조핸슨)이 상담소에서 각자의 좋은 점을 읊던 오프닝 시퀀스도 겹쳐 보인다.
= 감독님들이 생각해온 그림에 우리의 애드리브가 더해져 탄생한 장면이다. “졸려, 잠이 오네” “ASMR 같아” 같은 대사는 전부 애드리브였다.
- 두 배우의 리액션숏이나 대사를 주고받는 호흡도 유독 자연스럽더라.
= 그 장면이 진짜 좋으셨나 보네. 나도 우진과 사무엘이 관계 개선을 시도하는 장면들을 사랑한다. (웃음)
- 서로에게 친밀한 부부라는 설정하에 소화해야 하는 ‘몸의 연기’도 많았으리라 생각한다.
= 우진과 사무엘의 스킨십 장면들은 액션영화를 방붙게 할 정도로 체력 소모가 엄청났다. 부끄러울 수 있는 장면들은 안재홍 배우와 서로 괜찮냐고 물어보며 완성해갔다. 감독님들도 배우들이 현장에서 당황하지 않도록 충분히 배려해주셨다. 촬영 후반으로 갈수록 감정 소모가 심한 연기를 해야 해서 촬영이 끝나면 늘 너덜너덜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갔다. 안재홍 배우와 몸에 좋은 음식이 있으면 같이 나눠먹기도 하고. (웃음)
이솜이 꼽은 <LTNS>의 명장면
“우진과 사무엘이 싸우는 장면이 있다. 물론 우진과 사무엘은 자주 싸우지만 그 장면에선 정말 격하게 싸운다. 작품에서 가장 감정이 치닫고 치솟는 순간이기도 하다. 너무 고생하면서 찍었는데 정말 잘 나왔다. (기자가 다시 한번 <결혼 이야기>를 언급하며 “벽도 부수는 거 아니냐”고 묻자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글쎄~ 아마 그 이상일 텐데!”
복잡한 생각과 착잡한 심경을 먼 데 보는 눈짓에 일순 담아낸다. 배우 안재홍이 연기하는 사무엘의 얼굴에는 할 말을 하지 못해 삼키는 체념이 간혹 스친다. 연애도, 사랑도 가진 것에 은유되는 시대. 스타트업 사업이 망하고 택시 운전사로서의 삶까지 위태로워진 사무엘에게 남은 것은 일상을 메우는 가사와 직업 노동, 그 피로를 풀 수 있는 혼자만의 시간뿐이다. 남들보다 사랑을 더 많이 가진 불륜 커플을 뒤쫓는 섹스리스 5년차 부부의 이야기를 6부작 드라마 <LTNS>는 적나라한 듯하면서 적절하게 감추는 묘미로 다룬다. 남의 집 거실을 훔쳐보는 듯한 자연스러움으로 부부의 생활을 표현하려 노력했다는 그의 말에서 우리가 영화와 드라마를 보는 단순한 이유를 다시금 떠올렸다. 어떤 타인의 삶을 엿보는 일은 때로 이렇게나 즐겁고 가끔 애잔하다.
- 출연 제안은 어떻게 이뤄졌고 작품에 합류하기까지 어떤 고민이 있었나.
= 언제인지 기억나지 않는데 전고운 감독님이 전화를 주셨다. 수위가 높아서 출연을 고민했다기보다 작품이 가진 가치를 내가 잘 표현할 수 있을지 의구심이 있었다. 어떻게 하면 사무엘이라는 캐릭터를 재미있게 보여드릴 수 있을지도 고민이었다. <LTNS>가 가진 독창적인 이야기에 많이 끌렸다. 각본이 어떤 작품과도 닮지 않아서 더 매력적으로 다가왔고 무엇보다 두 감독님(전고운, 임대형)을 향한 믿음이 컸다. 이 작업에 함께하고 싶다는 순수한 마음으로 참여했다.
- 첫 부부 연기다. 이솜 배우와 <소공녀> <울렁울렁 울렁대는 가슴안고> 이후 <LTNS>까지 세 번째 만남은 작품 안에서 연인 관계가 진화한 것처럼 보인다. 특별히 주의를 기울여 논의한 부분이 있다면.
= 이솜 배우와는 늘 연인 역할이었다는 공통점이 있어서인지 그렇게 여겨주시는 게 재미있다. 우리 둘 다 연기로 토론하는 스타일은 아니다. 서로 많은 말을 주고받지 않아도 무엇을 원하는지 안다고 할까. 특히 신경 쓴 건 누군가의 거실을 엿보는 듯한 자연스러움을 전달하는 부분이었다. 그리고 부부 사이에서는 한마디 말에 천차만별의 감정이 드러날 때가 있으니까 사소한 뉘앙스도 고려하며 연기했다. 시리즈 후반에 부부가 서로 날카로운 대사를 무덤덤하게 주고받는 장면이 있는데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럴 수가 있나 싶었다. 그런데 전고운 감독님이 “부부는 그럴 수 있어”라고 하더라. (웃음) 연인이 아니라 부부의 감정으로 접근하니 미지였던 영역이 해소되는 지점이 있었다.
- <리바운드>의 강 코치, <마스크걸>의 주오남, 직접 연출한 단편 <울렁울렁 울렁대는 가슴안고>와 <LTNS>를 포함하면 장르와 연기 스펙트럼은 물론 캐릭터가 구사하는 언어와 말씨까지도 확장하고 있는 것 같다.
=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캐릭터만의 언어는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같은 표준어라도 쓰는 사람마다 다르듯 지역과 사람에 따라 말도 다양해지기 마련이다. 고향이 부산이라 부산 사투리로 연기할 때 매체에서 보이는 전형적인 모습을 따라 할 마음은 애초부터 없었고, 요즘 사람들이 쓰는 생활감 있는 말을 역할에 가져오고 싶었다. <LTNS>의 사무엘은 다른 사람들과 말할 때와 달리 가족과 대화할 때 충청도 말씨를 사용한다. 이런 설정도 속내가 잘 드러나지 않는 사무엘이란 인물을 구축하는 데 도움이 됐다. 충청도 방언 대사는 원래부터 대본에도 있었고 또 임대형 감독님의 고향이 충청도라 교정도 받았다.
- 1화에서 사무엘을 짓궂게 놀리며 즐거워하는 우진(이솜)에게서 약간 사디스트적 면모가 보인다. 사무엘은 우진을 살뜰히 보살피는 편이고. 그런데 막상 관계를 거부하는 쪽은 사무엘이다. 의외의 관계성이 흥미롭다.
= 개인적으로는 이제 막 연애를 시작한 연인들의 뜨거웠던 순간에 일어난 짓궂은 해프닝이라고 생각했다. 결혼 후에 확 식어버린 현실적 부부 관계와 뜨거운 연인의 간극이 커질수록 재미도 커질 테니까. 우진에게 양말을 신겨주고 시계를 채워주는 모습은 사무엘이라는 인물의 일부다. 우진보다 사무엘이 조금 더 가정을 돌보는 편이랄까. 당연히 이들 사이에 숨은 사연은 서서히 밝혀진다. 불륜 커플을 추적하면서 우진과 사무엘이 서로의 관계를 돌아보는데 그 안에서 감정이 요동친다. 무심히 던지는 짧은 대사 안에 함축된 몇겹의 의미가 있다. 그래서 한신을 찍어도 관계에서 드러나는 굉장한 에너지가 저변에 깔려 있다. 이렇게 밀도 높은 장면을 만들어내고 조금의 부자연스러움도 허용하지 않기 위한 과정에 모두가 충실했다.

안재홍이 꼽은 <LTNS>의 명장면
“장면을 하나만 고르기 어렵다. 회차가 더해지면서 각양각색의 불륜 커플들이 등장하는데 그 인물들이 정말 기상천외하다. 무엇보다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예측을 벗어난다.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담고 있는 이야기의 끝, 각본의 힘이 이 드라마가 가진 강점이다. 그리고 이 부부는 정말로 끝까지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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