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호야
무인도 가기 전에 니가 해준 말,
지금 생각해보니 달리 들리네.
예전엔 '간절히 바라면 언젠가 어떻게든 이뤄진다'란 말이 좋았는데.. 이제는 '생각도 못한 방식으로'란 말이 참 좋네.
겪어보니까 바란다고 바로 이뤄지지 않더라.
원하는 때 이뤄지지는 않아.
아주 천천히.. 잊고 있다 보면 어느새.. 이뤄져있더라.
그러니 밉다고 자르지 말고..
힘들다 포기하지 말고..
그렇게 지치지 말고 버티고 견디다 보면..
어느 날 이뤄지는 날들이 오더라.
생각도 못한 방식으로...
기호야
무인도에서 돌아와 가장 감사했던 건..
니가 살아있다는 것.
너에게 기댈 가족이 있다는 것
나에게 악몽 같았던 단어 '아버지'를 세상에서 가장 다정한 단어로 바꿔줬다는 것..
가장 부르고 싶은 단어로 만들어줬다는 것...
기호야..
나는 아침에 눈을 뜰 때마다..
아부지 없는 날을.. 바랬었거든
근데 니 말이 진짜 맞드라.
바라면.. 언젠가.. 어떻게든 이루어지더라고
생각도 못한 방식으로
기호야.
15년을 헤맨 끝에 오늘에야 약속을 지키게 됐어.
언니가 내 이름을 부르더라. 서목하..
기호야.
나는 다음 따위는 모르겠어.
확실한 것은 나는 이 순간을 평생 후회 안 해.
이 순간으로 나의 허무했던 15년에 의미가 생겨버렸어.
기호야
정말 봤니? 들었니?
내 목소리였어..
기호야..
무인도에선 가끔 끝을 알 수 없는 안개가 깔려..
그 때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목이 터져라 노래를 부르는 것 뿐이야..
안개가 걷힐 때까지 노래를 부르면 마치 내 노래 때문에 안개가 사라진 것 같은 착각이 들어.
기호야
사람이 왜 우는지..
왜 힘든지 짐작조차 안될땐..
어떤 위로를 하면 좋을지 망설이게 돼.
고민 끝에 힘겹게 내뱉은 위로의 말.. '괜찮아'
그 말이 부디 작은 위로라도 되기를..
기호야.
태풍이 지나가고 나면 무슨 생각을 제일 먼저 하는 줄 알아?
눈을 감고 평온을 느껴. 그 순간을 즐겨.
그리고 다짐해.
잊자. 그리고 웃자.
앞으로 올 태풍을 걱정하면 내 인생 대부분은 걱정과 두려움이 차지할거야.
난 내 인생을 두려움에 뺏기고 싶지 않아.
그래서 태풍이 지나가면 난 잊어. 억지로라도 웃어.
기호야.
난 무인도의 노을이 참 좋았어.
마치 신이 오늘 하루를 위로하기 위해 촛불을 켜준 것 같았거든.
촛불이 꺼지면 어두웠던 하늘에 별들이 피어나 나를 비춰줘.
오늘 하루 수고했다고 속삭이는 것 같아.
기호야.
너희 아버지를 보니까 말야.
니가 왜 형한테 과거를 숨겼는지 알겠어.
니 아버지는 자격이 없어.
기억해 줄 자격도 행복할 자격도..
아무것도 없어.
남보다도 한참을 못한 사람이니까...
이제 너 아버지한테 어떤 감정도 시간도 쓰지마.
분노조차도 가치가 없으니까.
그냥 잊어버려.
형한테 아버지 기억 지웠듯이, 너도 싹 다 지워버려.
여기에 나레이션으로 깔렸던 두세개 더 있는데 흐릿해서 안적음 그건 나레이션으로 나왔던 거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