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티빙 오리지널 <러닝메이트>는 <기생충>(2019)의 공동 각본가였던 한진원 작가의 연출 데뷔작이다. 촬영 전부터 콘텐츠 산업 안팎에서 큰 화제가 됐던 것도 각본가로서 인정받은 그에 대한 기대감이 크기 때문일 것이다. 9부작 시리즈인 이 작품은 서울 소재의 한 명문 고등학교에서 벌어지는 학생회장 선거를 소재로 한다. 불미스러운 일에 휘말려 ‘발기남’이라는 별명이 붙게 된 모범생 세훈(윤현수)이 합창부장 원대(최우성)로부터 학생회장 선거에 함께 출마할 것을 제안받으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마침 촬영 마지막 날인 지난 9월 12일에 만난 한진원 감독은 이 작품을 두고 “단순한 선거 드라마가 아니다. 선거는 이야기의 소재일 뿐이고, 주인공 세훈이 욕망을 가지기 시작한 뒤로 겪게 될 대가에 대한 이야기가 될 듯”이라고 안내했다.
Q. 촬영 마지막 날(9월 12일)인데 어떤가.
A. 지난 3월부터 지금까지 약 5개월 동안 100여 회차 정도 촬영을 진행했다. 선거 유세 장면을 마무리했던 게 96회차였던가, 97회차였는데 그때 촬영이 곧 끝날 거라는 느낌이 되게 세게 왔었다. 정작 촬영 마지막 날인 오늘은 담담한 것 같다.
Q. 공동 각본가이자 스크립터로 참여했던 <기생충> 이후 거의 5년 만에 겪는 촬영현장이 아닌가.
A. 촬영하는 동안 시간이 정말 안 가더라. 5개월이 꽤 길다고 생각했었는데 막상 끝나니까 몇 년 뒤에 다시 촬영현장을 경험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도 들고. 상업 영화, 시리즈는 누군가로부터 투자를 받아야 하고, 배우 캐스팅을 해야 하는 등 제작 진행 과정이 얼마나 복잡하고 어려운지 이번 작품을 통해 느낄 수 있었다. 지난 5개월 동안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었고, 앞으로 남은 후반작업을 잘해서 잘 마무리하고 싶은 마음이다. 그리고 다음 작품을 빨리 준비해서 촬영현장에 또 나가고 싶다.
Q. <러닝메이트>의 시나리오를 직접 쓴 것으로 알고 있다.
A. 명문 고등학교를 무대로 한 선거 이야기를 해야겠다고 생각한 계기가 무엇인가. 설명을 드리면 좀 긴데, 처음부터 이런 이야기를 만들어야겠다는 의도를 가지고 쓴 건 아니었다. 2014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그때 모 작품의 연출부를 하고 있었는데, 일을 하다가 촬영 3회차 만에 도망쳐 나왔다. (웃음) 패잔병처럼 집에 있다가 가만히 있어선 안 되겠다, 뭐라도 해야겠다는 마음으로 집 근처 카페에 매일 출근하다시피 해서 무언가를 쓰기 시작했다. 개인적으로 꽤 힘든 시기였는데, 당시 인기를 구가했던 드라마 <미생>을 보면서 나만 힘든 게 아니라 모든 사람이 힘들게 살아가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을 괜히 그만뒀나, 계속 버틸 걸 그랬나 이런 생각을 하게 됐다. 그때 <미생>에 많은 영향을 받았고, 예전부터 소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도 되게 좋아했었다. 박종원 감독님이 연출한 영화도 되게 좋아했고. 이러한 작품들을 접목시켜서 중고등학생 시절 겪었던 일화들을 떠올리며 글을 써봐야겠다 싶었다.
Q. 그게 <러닝메이트>의 출발인가.
A. 마냥 글을 쓰면 의미가 없잖나. 관객이, 독자가 있어야 글이 의미가 생기는 거니까. 당시 직장인이던 친구에게 이메일로 연재해주던 소설 형식의 글이 있었다. 그 글은 지금의 <러닝메이트>와 이야기는 많이 다르지만, 선거물이었다. 그러다가 <기생충>의 시나리오 자료조사를 하고 있었을 때인 지난 2016, 2017년쯤 봉준호 감독님께서 습작 같은 거 있냐고 물어보셔서 소설 형식으로 쓴 글이 있다고 말씀드렸었다. 그때 봉 감독님이 보여달라고 하셔서 그때 써둔 글을 처음 보여드렸었다. 평소 봉준호 감독님은 항상 후배들에게 ‘뭐든지 써놔라, 항상 써놔라’라고 말씀해주시곤 한다. 그때 소설 형식의 글을 포함해 2, 3편을 보여드렸는데 봉 감독님께서 이 선거물을 각본으로 쓸 생각이 없냐고 하시더라. 그래서 <기생충> 일을 하는 틈틈이 생각날 때마다 이 글을 매만졌다. <기생충>이 끝난 뒤 어떻게 기회가 생겨서 이 각본을 시리즈물로 제안받았고, 그러면서 지금의 <러닝메이트>로 작업을 시작했다. 그게 재작년 3월부터였다.
Q. 소설 형식의 글을 9부작짜리 시리즈물로 각색하는 작업도 만만치 않았을 것 같다.
A. 그때부터 여기에 집중해서 쓰기 시작했다. 홍지수 작가가 원안을 가지고 초고로 옮기는 작업을 했었다. 원안은 현재의 이야기보다 더 어둡고, 내면적이었으며 열린 결말이었다. 각색을 하면서 가장 많이 바뀐 부분은 이야기 전체적인 톤이었다. 10대 특유의 명랑하고 직선적인 면들을 더 살렸다.
Q. 보통 선거하면 ‘여의도 정치’ 내지는 총선, 대선 등 어른들의 선거를 떠올리곤 하는데, 10대들의 선거를 다루기로 한 특별한 이유는 무엇인가.
A. 나 또한 어른이지만, 어른들의 세계는 속내를 많이 감추지 않나. 반대로 10대들은 그렇지 않으니까. 그리고 극적인 사건은 일상에서 잘 벌어지지 않는다. 극적인 사건이나 감정을 직설적으로 드러내고, 캐릭터를 통해 과감하게 표현하고 싶어 10대 물로 풀어내려고 했다.
Q. 10대의 선거를 통해 이들의 욕망과 기대를 생생하게 그려내는 이야기라고 보면 되겠다.
A. 자세한 이야기는 나중에 티빙에 공개된 뒤 직접 보시면 되는데, 선거의 승패와 관계없이 이 선거를 거치면서 주요 등장인물들이 변화를 겪게 된다. 선거를 다룬다고 해서 민주주의 같은 거대한 단어를 쓰기보다는, 보통 사람들이 선거를 ‘우리를 위한 것’, ‘나를 위한 것’ 혹은 ‘너를 위한 것’이라고 말하곤 하는데, 그게 궁극적으로 우리를 위한 것인가. 정말로 그럴까. 선거에서 이긴 사람은 정말로 이긴 걸까, 아니면 진 사람은 정말로 진 걸까. 시나리오를 쓰는 과정에서 그런 질문들을 스스로 많이 던졌다. 이 작품은 현실 정치와 맞닿은 이야기는 아니지만, 국회의원 초선을 하고 정치판을 떠난 사람들이 많지 않나. 풍운의 꿈을 안고 무언가를 바꿔볼 수 있을 거라고 여의도 정치판에 달려들었지만, 나중에 그만두는 국회의원들을 시나리오를 쓰는 내내 많이 떠올렸다.

Q. <기생충> 때도 방대한 자료조사와 꼼꼼한 취재를 바탕으로 시나리오를 쓴 것으로 아는데, 이번 작품 시나리오를 쓸 때 어떤 취재를 했는지 궁금하다.
A. 사람마다 10대 때 경험했던 선거에 대한 기억이나 감흥이 다르다. 그런데 선거에 직접 후보자로 뛰어들거나 후보를 지원하는 쪽에 있었던 사람들은 여전히 뜨겁게 기억하고 있었다. 오도건 공동 작가 겸 조감독(<러닝메이트>의 각본은 한진원, 홍지수, 오도건 -편집자)과 요즘 10대들의 선거는 어떻게 진행되는지 직접 보러 가기도 했고, 영상 취재도 했었다. 학교마다 룰은 조금씩 달라도 선거에 대한 열정은 여전하더라. 다만, 우리가 취재한 그들의 선거 풍경은 학생들이 즐기고 열심히 하는 외피만 가져온 것이고, 그 안에 어떤 서사나 욕망이 있는지는 자세히 알 순 없으니 그건 저희 드라마에 맞게 창작을 해야 했다.
Q.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공개하는 회차는 전체 이야기에서 어떤 부분에 해당하나.
A. 영화제에서 공개되는 회차는 전체 이야기의 1/3 정도다. 본격적인 선거 이야기는 후반부에 배치되어 있다. 다만, 중요한 건 <러닝메이트>는 선거 드라마가 아니다. 선거가 이야기의 소재이고, 주인공이 선거에 뛰어들 뿐이다. 이 작품은 주인공 소년이 욕망을 가지기 시작한 뒤로 겪게 될 대가에 대한 이야기다.
Q. 주인공 세훈을 포함해 원대, 상현 등 주요 등장인물은 어떤 캐릭터인가.
A. 세훈은 보통의 인물. 내 어린 시절의 모습이기도 하고, 또 누군가의 어린 시절 모습이기도 한 평범한 인물. 주인공이 매력적이어야 하기에 세훈은 보통 사람인데 좀 귀여운 캐릭터다. 그리고 외부 자극에 많이 휘둘리는 인물이다. 학생회장 후보로 선거에 뛰어드는 형들이 픽업을 하지 않으면 선거전에 뛰어들 수 없는 인물인데, 드라마를 보면 회장 후보들이 세훈에게 러닝메이트를 제안하는 정치적인 이유가 제각각 있다.
Q. 원대는 합창부장으로, 세훈에게 학생회장 선거에 함께 출마할 것을 권유하는 인물인데.
A. 원대는 다혈질적인 정치꾼 같은 인물이다. 두뇌도 정무적으로 잘 돌아가고. 사악한 독재자들의 어떤 면모들을 많이 참조해 반영했다. 배우도 원대를 잘 살리려고 노력했고. 원대가 세훈에게 접근하는 것도 원대의 두뇌가 그런 방면으로 잘 발달했기 때문이고, 세훈에게 그런 제안을 하면 거절하지 못할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Q. 또 다른 학생회장 후보로 나서는 상현은 어떤 캐릭터인가.
A. 원대가 정치꾼이라면 상현은 한마디로 ‘핵인싸’. 원대가 출마한다는 사실에 자극을 받는 인물이다. 원대가 친구들을 밀어붙이는 스타일이라면 상현은 친구들을 휘감는 인물. 어떤 면에서 무섭다.
Q. 윤현수, 이정식, 최우성, 홍화연 등 신인배우들이 대거 출연하는데 이들에게 특별히 주문한 건 뭔가.
A. 프리 프로덕션 때부터 배우들과 사무실에서 모여서 리딩을 수개월 동안 주기적으로 진행했다. 선거 진영을 그룹으로 지어서 한번 할 때 서너 시간씩 열심히, 길게 했다. 같이 밥도 먹고, 다른 인물 대사도 읽어보게 하고. 첫 연출작이라 준비를 철저하지 않게 해서 현장에 가면 감당이 안 될 것 같아서. 배우들이 이미 인물에 체화된 채로 현장에 갔다. 현장에서도 뭔가 더하고 싶은 게 있으면 자유롭게 할 수 있게 했고. 이미 배우들이 캐릭터에 대해 다 알고 있으니까 믿고 맡길 수 있었다.
Q. 첫 연출작을 만든 소감이 어떤가.
A. 단순히 촬영을 마친 소회보다 크게 느낀 건, 작품 하나 직접 만드는 게 정말 쉬운 일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정말 어려운 거구나. 조감독으로 일할 때보다 책임의 둘레가 완전히 다르더라. 한국 감독, 제작자들이 참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이제 나도 평가를 받아야 하는 입장이 됐고, 그래서 앞으로 더 겸손하고 초심을 잃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다음 현장을 다시, 빨리 가고 싶다.

가장 주목해야 할 에피소드는 몇 화?
"6화. 5화까지는 인물이 목격자 내지는 수동적으로 끌려가는 형국이라면 6화부터는 주인공이 능동적으로 움직이는 계기가 시작된다. 선과 악의 경계를 넘나드는 욕망이 발동한다. 어쨌거나 <러닝메이트>는 9화 끝까지 봐야 하는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