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을 보는 눈높이가 전 세계적으로 까다로워진 한국 시청자들이 유일무이하게 관용을 베푸는 작가가 있다면 아마 김순옥 작가일 테다. ‘순옥적 허용’,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듯 ‘김순옥 월드’에선 김순옥을 따르라”라는 말을 지어내며 특의 비논리성을 옹호해 왔다.
개연성이 부족하지만 시청자들은 그 이상의 자극과 재미를 선호했다. 평단에서 김순옥 작가의 무논리를 지적해도, 작가가 쌓은 세계를 즐겁게 받아들이는 대중은 시청률로 화답해왔다.
그러나 이번 SBS 금토드라마 ‘7인의 탈출’은 앞선 ‘펜트하우스’와 제법 다른 분위기다. 초반부터 지나치게 몰아붙인 탓일까, “정신이 피폐해진다”라는 시청자가 속출하고 있다. ‘7인의 탈출’은 가짜뉴스·원조교제·10대 학교 출산·가정폭력·납치·고문·살인 교사까지 상상을 초월하는 온갖 범죄가 넘쳐난다. 그 과정에 사회와 타인에 대한 존중이나 배려는 보이지 않는다.
아무리 ‘김순옥 드라마’라고 해도 조금은 진중히 다룰 필요가 있는 소재를 마구잡이로 갖다 쓰는 바람에 보는 내내 불편함이 전달된다. 어차피 개연성은 없을 드라마라고 하지만, 돌아서 생각해보면 문제가 되는 현실적인 의문이 산적하다. 시청률은 상승 곡선이지만, 불편하다는 반응이 너무 많아 안정권에 들기까지 추이를 지켜볼 필요가 있다.
‘7인의 탈출’은 악인을 주인공으로 이들을 복수하는 ‘피카레스크’다. 스페인에서 유래한 문학 장르다. 주요 인물이 도덕적 결함을 갖춘 악인들로 등장해 이야기를 이끈다. 애초 공언했던 것처럼 ‘7인의 탈출’에는 악인들만 등장한다. 하나같이 말도 안 되는 거짓말로 중무장했다.
어릴 적 버린 친딸 방다미(정라엘 분)을 데려온 뒤 할아버지 방 회장(이덕화 분)에게 돈을 뜯어낼 용도로만 쓰는 금라희(황정음 분), 온갖 거짓말로 방 회장의 돈을 받을 계획인 차주란(신은경 분), 자기 잘못을 친구에게 뒤집어씌울 뿐 아니라 인생 자체를 파멸로 몰고 가는 한모네(이유비 분), 진실을 애써 감추며 학생에게 뇌물을 받는 교사 고명지(조윤희 분), 문어발식 나쁜 짓을 일삼는 양진모(윤종훈 분), 죄를 짓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경찰 남철우(조재윤 분)까지, 방다미를 괴롭히는 인간들은 현실에서 보기 힘들 정도로 나쁜 면모를 갖추고 있다.
청을 조금 더 많이 넣었다고 손녀에게 성질을 부리는 방회장이나 돈 때문에 가짜뉴스를 마음껏 퍼뜨리는 주용주(김기두 분), 한모네를 위해 죄를 짓는데 서슴지 않는 유진(엄지윤 분)과 소연(장하경 분)도 마음을 줄 수 없는 캐릭터다.
너무 많은 사람에게 치이는 방다미와 그의 양부모인 이휘소(민영기 분), 박난영(서영희 분), 어딘가 비밀을 가진 것 같은 강기탁(윤태영 분)이 그나마 마음을 줄 선한 캐릭터인데, 반대편이 너무 비인격적이라 이들을 본다고 쉽게 힐링이 되지 않는다.
4화까지는 악들이 선인들을 무차별적으로 괴롭히는 모습이 나온다. 방다미가 괴로운 상황에서 벗어날 것 같으면, 더 나쁜 놈이 더더욱 나쁜 짓을 하는 것으로 방다미의 괴로움이 가중됐다. 덕분에 방다미는 완전히 코너에 몰렸다. 그나마 힘이 될 것 같았던 방 회장마저 목숨을 잃었다. 상황은 완전히 최악으로 흘렀다.
뿐만 아니다. 10대의 나이에 아이를 출산한 한모네가 저지른 거짓말이, 너무 쉽게 받아들여졌다. 진실을 말하는 방다미를 믿어주는 이는 아무도 없다. 의학이나 경찰 수사가 전 세계적인 반열에 오른 한국임에도, 이야기를 이어가기 위해 억지로 짜 맞췄다. 별다른 이견 없이 방다미의 퇴학은 신속하게 처리됐다.
심지어 실제 교사들은 화가 잔뜩 났다. 교사 역의 고명지의 행태가 현실과 너무 동떨어졌다는 것이다. 학교 일선에선 학생들이 주는 케이크조차 문제가 될까 받지도 않는데, 고명지가 학생에게 고가의 액세서리 뇌물을 받는 게 너무 말이 안 된다는 것이다.
최근 사회적으로 교사 인권이 민감한 가운데 이러한 갈등을 고려하지 않고 자극적인 요소만 넣은 것에 반감이 크다. 일각에서는 이 드라마 제작진을 고발할 것이라고 암시하기도 했다.
이 외에도 한모네의 출산 과정이 마치 대변을 보는 듯 황당무계하게 연출된 대목이나, 시시때때로 악을 질러대며 상황에 비해 너무 감정이 과잉된 배우들의 연기도 비판 포인트다. 다른 작품에서 뛰어난 연기를 보여준 배우들임에도 이번만큼은 과하게 감정을 써서 연기가 못마땅하다는 지적이 많다.
언제나 자극적인 상황을 만들고 뒷부분에선 언제 그랬냐는 듯 가볍게 수습하는 방식을 고수해온 김순옥 작가라는 점에서 더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는 크지 않다. 오히려 이미 죽은 것으로 알려진 인물이 언제 살아 돌아올지를 예견하는 게 심적으로 편하다.
“부검을 하기 전까진 죽음을 믿지 말라”는 속설이 있을 정도니, 계속 의심하면서 봐야 한다. 아마 허탈감을 느끼는 건 또 시청자가 될 테다.
4화까지 제작진이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쉽게 보이지 않는다. 드라마가 꼭 교훈적인 메시지를 던질 필요는 없지만, 사회 현실에 대한 진지한 고찰과 인간에 대한 공감과 존중은 꼭 따라야 한다. 하지만 ‘7인의 탈출’은 오락성으로만 용납할 수 없는 비상식적 악행이 즐비하다. 또 김순옥의 펜대에 놀아나야 할지, 이번만큼은 제동을 걸 필요가 있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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