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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퀘어 [씨네21] 평론가 4인의 2023년 여름 한국영화 BIG4 대담 (스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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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9.03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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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경원_한국영화 빅4의 흥행 성적이 대략 나온 상황이다. <밀수> <콘크리트 유토피아>가 좋은 반응을 얻었고 <비공식작전> <더 문>이 아쉬운 결과를 남겼다. 올여름 시장에 대한 총평부터 해보자.


김병규_우선 네 영화를 왜 묶어 이야기해야 하는지부터 짚어봐야 할 것 같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개봉 시기가 비슷할 뿐 만들어진 시기도 다르고, 대중적인 선택을 받은 것도 아니다, 모든 작품이 유의미한 담론을 형성한 작품인 것 또한 아니다. 몇몇 텐트폴 영화를 소위 ‘빅4’라고 부르는 관습이 정확한 맥락인지 회의가 든다. 아주 인위적인 마케팅 용어다. 그런데 영화 잡지나 비평가들이 이런 무기력한 관습을 따라야 하는지 의문이다.


송경원_왜 굳이 빅4로 묶어야 하냐는 질문부터 해결해야겠다. <범죄도시> 시리즈가 여름 전에 천만 관객을 동원하는 새로운 패턴이 만들어지면서 오히려 여름 시장이 축소되는 모양새다. 사실 텐트폴 영화는 배급, 마케팅뿐 아니라 이후 만들어질 영화들의 퀄리티와 관객 경험에도 큰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는데 그런 힘이 남아 있는지 의문이다. 그럼에도 빅4를 이야기할 수밖에 없는 건 올해 상반기를 되돌아볼 때 <범죄도시>라는 특수한 사례를 제외하곤 언급할 만한 한국영화가 아예 씨가 마른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따져보면 양적으로 크게 줄어든 건 아닌데 질적으로 심각하다. 올 상반기 박스오피스 10위 중 한국영화가 세편(<범죄도시3> <밀수> <콘크리트 유토피아>)뿐이라는 건 의미심장하다. 단순히 시장이 축소됐다는 걸로 변명할 수 없는 상황이다.


송형국_동의한다. 대체로 1년 중 관객의 3분의 1이 여름 시장에 모이는 만큼 여름 시장은 실패하면 실패하는 대로 향후 흐름을 판단하는 중요한 장이다. 우선 기존에 한국영화를 견인하던 중견감독, 그리고 개성이 뚜렷해서 충분히 기대할 만했던 감독들이 부정적인 의미로 대단히 매끈해졌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여기서 매끈해졌다는 건 <피로사회>의 저자 한병철 교수가 <아름다움의 구원>에서 강조한 현대사회의 속성 중 하나다. 예컨대 우리는 세계 대도시 어딜 가든 스타벅스에 들어가면 매뉴얼에 정해진 매끈한 서비스를 받고, 낯익은 메뉴를 골라 마신다. 신자유주의의 거대한 흐름은 불편함도, 의외의 발견도, 예기치 않은 인연도 제거한다. 현대사회 전반의 다양성이 납작해지는 징후가 한국영화에서도 나타난다. 예술의 본질은 부정성에 있다. 의문을 제기하고 경보를 날리고 낯선 자극을 줘야 한다. 이런 것들을 통속적으로 좋은 예술이라 말한다면, 매끈함의 감각은 정반대다. 우리가 주목해온 감독들 내지는 자기 색깔과 인장이 있던 감독들, 흔히 한국영화의 힘이라고 했던 감독들의 작품이 놀라울 정도로 매끈해졌다. 특히 <더 문>은 매끄러움의 정수 같은 작품이다. 낯익은 것들만 쭉 이어놓은 느낌이다. 많이 본 우주영화의 장면들, 유사 부자의 관계, 신파 서사들이 매끄럽게 연결만 돼 있다. 보면서 어떤 불편함도 느낄 수 없어 심심한 상업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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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경원_관객의 선택과 반응을 하나의 징후로 본다면 어떤 이야기를 이어갈 수 있을지 궁금하다. 각 영화의 내적 분석과 더불어 2023년 여름 한국영화의 풍경을 살펴보고 싶다. 우선 제시된 키워드는 매끈함이다.


송형국_빅4를 먼저 이야기해야겠지만 상반기 영화 대부분이 비슷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어떤 식으로든 선명한 메시지를 발언해온 임순례 감독의 <교섭>은 왜 이리 매끈해졌나. 다소 이상한 얘기를 영화에 곧잘 끌어오던 이해영 감독의 <유령>은 왜 이렇게 장르적인가. 남성성을 성찰하던 윤종빈은 왜 ‘성찰’만 빼고 남성성만 남아 있는 <수리남>을 만들었나. <D.P.>에서 악의 평범성을 얘기하던 한준희 감독은 왜 ‘평범성’을 빼고 악만 남은 <D.P.> 시즌2를 내놓았나. 전체적으로 이런 불편함을 뺀 매끈함들만 퍼지는 것이 아닌가 싶다. 23년 동안 기자 생활을 하면서 이렇게까지 꼽을 영화가 없는 1년이 있었나 싶더라.


김소희_<밀수>와 <콘크리트 유토피아>의 경우 거대 서사가 개인의 이야기에 잘 녹아든 반면, <더 문>과 <비공식작전>은 거대 서사와 개인의 이야기가 충분한 설득력으로 묶이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규모가 큰 만큼, 더 세심한 작전이 필요했다고 본다. 방금 말한 매끄러움에 대해서는 각자의 생각이 다를 수도 있겠다. 난 <더 문>이 매끄럽기보다는 덜컹거리고 불편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제작자의 매끄러움과 관객의 매끄러움은 다르다고 생각한다. 두 가지 매끄러움이 서로 불일치한 문제일 수 있다.


김병규_<더 문>은 매끄러움이라고 말할 만한 영화 문법조차 없다. 네편의 영화를 보며 국가의 질서가 아예 방치돼 있거나 거의 화면 바깥으로 배제돼 있다고 느꼈다. <콘크리트 유토피아>의 오프닝 시퀀스는 80~90년대 한국 아파트 역사의 기원을 이야기의 원점으로 삼는다. <밀수>는 70년대로 돌아가서 동네 공무원과 갱스터가 결탁한 질서를 보여준다. <비공식작전> 역시 국가의 역할이 배제되고 그 틈을 시민사회나 관료들이 채우는 서사다. 국가 질서의 부재, 그 반대급부로 어떤 엘리트주의적인 각자도생이 공통으로 감지된다. 결국 지금 한국영화의 이미지를 하나로 말하면 각자도생의 전문가주의가 아닐까.


송경원_김병규 평론가의 지적처럼 네편의 영화는 제작 시기가 다르고 우연히 이 자리에 도착한 것뿐인데 연결된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한국영화의 상상력과 역사적 맥락에서 꿰어볼 수 있겠다. <밀수>부터 얘기하면 김소희, 김병규 평론가의 ‘프런트 라인’ 비평을 둘 다 재밌게 읽었다. 개인적으론 <밀수>를 처음 보곤 과연 할 얘기가 있을까 싶었다. 내 시야는 단순하게 ‘레트로하고 재밌네’ , ‘류승완 감독 본인이 사랑하는 70년대의 것들을 들고 왔네’ 정도에 그쳤다. 김소희 평론가가 <이어도>와 연결한 것을, 김병규 평론가가 활극의 성질과 연결한 것을 읽으며 해석의 폭이 넓어진 느낌을 받았다. 이런 역사적 맥락화는 류승완 감독이기에 가능했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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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희_빅4 영화에서 의외의 공통점을 느꼈다. 네 영화가 각자 점하는 시간대가 다르긴 하나 여기가 아닌 다른 시간대를 선택했다는 점은 흥미롭다. 이를테면 <밀수>는 70년대, <비공식작전>은 80년대,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설정상 동시대라고 봐야 하겠지만, 한편으로 아파트 산업이 부흥하던 90년대의 풍경이 연상된다. <더 문>은 2029년을 배경으로 하지만 끊임없이 아버지의 실패를 얘기하며 2000년대를 환기한다.


송경원_‘지금, 여기’가 아닌 어딘가로 도피한다는 건 2020년 영화의 경향을 이야기할 때도 언급된 특징 중 하나다. 그런 경향성이 점점 심화되는 중이라고 봐도 좋을까.

 

김소희_달라진 게 있다면 각자의 시간대를 선택했는데 그것들이 딱히 묶이진 않는다는 점이다. 경향이 있지만 경향이 없는 것 같은 상황이다. 도피의 서사에서 한발 더 나아간 변화를 읽어본다면 일종의 귀환 서사가 아닐까 싶다. 어떤 이들이 꼭 돌아온다. <밀수>는 월남에서 돌아온 권 상사(조인성)로 인해 춘자(김혜수)가 군천으로 돌아가는 이야기다.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사라진 혜원(박지후)이 황궁 아파트로 돌아오면서 과거에 죽은 남자의 이야기가 돌아오는 형태다. <더 문>에선 황선우(도경수)를 돌아오게 만들기 위해 전임 센터장인 재국(설경구)이 우주센터로 돌아온다, <비공식작전>은 납치된 서기관을 데려오기 위해 민준(하정우)이 그 자리를 대체하면서 다시 위기에 오르고, 판수(주지훈)까지 생각하면 삼중의 귀환처럼 보이기도 한다.


송형국_‘저개발국 또는 불모지에서 고초를 겪는 인물, 그리고 그의 귀환’을 그리려는 흐름이 보인다. <모가디슈> <교섭> <비공식작전> <더 문> 이 그런 예다. 군부독재가 남아 있던 시절을 배경 삼는 방식으로 당시를 낭만화하면서, 현재의 관객에게 우월감 또는 안정감을 부여하는 방식이다. 최근 다수의 범죄액션작이 남아시아 개발도상국으로 향하는 이유와 맥이 닿아 있다.


김병규_일련의 귀환 속에 인물들이 처한 상황은 달라졌다. 되돌아온 인물들은 전문가가 아님에도 어쩔 수 없이 그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10여년 전 한국영화, 이를테면 <아저씨>나 <악마를 보았다>를 보더라도 주인공들은 국정원, 특수요원 출신이다. 이런 전제가 장르적 알리바이를 형성한다. 시민처럼 보이지만 사실 굉장한 능력을 갖춘 주인공의 전문가주의가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성실한 관료주의자가 탁월한 전문가도 돼야 한다. 예를 들어 <비공식작전>의 민준은 공무원인데 아프리카에서 카 체이싱과 총격전을 수행한다. <밀수>의 춘자는 생존형 사업가에서 범죄영화의 설계자가 된다. <콘크리트 유토피아>의 영탁(이병헌) 역시 하루아침에 닥친 재난으로 인해 시스템의 대표로 추대된다. 아이러니한 건 <더 문>이다. 가장 고도의 전문가성을 요구하는 이야기인데, 실제 일어나는 일들은 잘 봐줘야 고등학생 수준의 행동으로 전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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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경원_<밀수>부터 해결해보자. 모든 영화를 ‘레트로’란 키워드로 수렴할 순 없겠지만 필사적으로 지금 현재의 한국 사회가 아닌 다른 시공간을 찾아야 한다는 강박은 엿보인다. ‘매끈함’을 기준으로 삼는다면 <밀수>랑 <비공식작전>의 경우 감독들의 전작에 비해 얌전해졌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는다. 오히려 여러 고민 끝에 다음 걸음을 조심스럽게 내딛는다는 인상을 받았다. <밀수>는 <군함도>의 실패를 바탕으로 역사적 맥락에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거리를 조정한 결과물이란 느낌이다. 류승완 감독은 활극을 만들어도 무언가 한국적인 것, 한국적인 의식들을 반영한다. 목적과 의식이 지나치게 표면까지 올라온 경우가 <군함도>였다. 이번엔 그런 부분을 경계하면서도 여전히 삐져나오는 부분들이 있어서 재미있었다.


김병규_<밀수>가 임권택 감독의 <하류인생> 같은 영화는 아니다. <밀수>는 70년대의 역사가 돌아온다기보다 70년대의 한국영화가 돌아온 느낌이다. 오히려 실제 역사는 철저히 배제했다. 아주 장르적인 무대를 설정하고자 하는 욕망이 느껴진다. 하지만 그렇기에 현실의 역사적인 사건을 영화화했을 때 보이지 않던 것들을 끌고 들어오는 계기가 됐다. 이런 면모는 특히 조춘자라는 캐릭터에서 발견된다. 춘자에게는 완벽하게 활극의 쾌감으로만 소화할 수 없는 연민과 드라마가 있다. 마치 70년대 한국의 호스티스 멜로드라마에서 걸어나온 것 같다. 어린 시절부터 식모살이하고, 성폭행당할 뻔했다는 춘자의 전사는 70년대 호스티스 멜로드라마 주인공을 떠올리게 만든다. <밀수>는 그 당시 한국의 도시에서 실천되지 못한 비전이 군천이라는 가상 공간에 틈입할 때 어떤 화학작용이 일어나는지 지켜보는 영화처럼 보이기도 한다. 류승완이 선택한 70년대란 시기는 당대 장르영화들을 소환하는 선택이었을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철저하게 장르영화에 머무르려는 강박이 또 다른 역사성을 발생시킨다.


송경원_맞다. 갈등의 해결사로 상어를 등장시킨 것도 그런 이유가 아닐까. <죠스>는 70년대라는 시대는 공유하되 한국영화적 맥락의 바깥에 있는 존재니까. 오히려 관객 류승완의 체험에 가까운데, 의외로 지금 젊은 관객들에겐 이 부분이 신선하게 다가가는 것 같기도 하다.


김병규_그 지점이 바로 <밀수>의 불균형이다. 동시대 한국 사회가 아닌 가상의 70년대, 완벽히 장르적 무대에서 영화를 만들려고 했는데, 70년대 호스티스 멜로라는 역사적 그림자가 개입하는 문제가 생긴다. 이런 충돌을 끌어안고 해결하는 과정을 담아냈다면 의외의 결과물이 나왔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끌어온 건 70년대 할리우드 장르를 표상하는 스티븐 스필버그식 상어다. 70년대 한국영화와 대결하는 긴장을 놓아버린 손쉬운 결정이 아니었나 싶다.


김소희_<밀수>를 <이어도>와 비교하는 비평을 썼지만, 그것은 영화의 의도라기보다는 영화를 들여다보고 싶은 내 의지가 더 컸다. <밀수>에 관해 할리우드 장르영화나 쿠엔틴 타란티노, 홍콩영화나 스필버그 영화 등의 레퍼런스가 연상되기도 하고, CG임이 분명한 장면도 보이는데 이것이 결함이기보다는 허용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세계를 만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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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규_류승완은 타란티노처럼 사슬을 풀고 장르적 쾌감에 몰두하는 감독은 아니다. 그의 인물들은 너저분한 감정의 닻에 걸려 있다. 말했듯이 류승완은 연민의 감정과 드라마를 포기하지 않는 감독이다. 장도리(박정민)라는 악인이 진숙(염정아)의 시선을 피하는 후반부 장면이 대표적이다. 이러한 시선의 문제는 올여름 빅4의 일관된 이미지이기도 하다. <콘크리트 유토피아>의 민성(박서준)은 자동차에 깔려 죽어가는 사람의 시선을 피한다. 연민과 감상주의를 불러일으키고, 이런 감정들이 한국영화 캐릭터의 내면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한국영화가 온전한 장르적 무대와 쾌감에만 속할 수 없게 하는 기제이기도 하다. 이를 피하기 위해선 <비공식작전>처럼 타자화된 국외로 떠나야 한다. 민준은 탈출 과정에서 두 사람을 죽이지만 아무런 죄의식과 두려움이 없다.


김소희_감정 문제를 넓게 보자면, <밀수> 속 춘자와 진숙의 관계에 관객이 감정적으로 이입하거나 하지 않는 게 영화의 수용에 크게 중요한 역할을 하진 않는 것 같다. 서로의 뺨을 때리는 장면이 보여주듯, 감정 역시 액션의 합을 맞추는 것과 비슷한 방식으로 조율되어 있어 부담스럽지 않았다.


송경원_반대로 말하면 감정적 밀착이 없어도 영화를 즐기는 데 큰 장애가 없다는 말이기도 할까. 시선의 문제를 언급하니 장도리가 옥분(고민시)을 처음 만날 때 눈을 마주치지 않고 윙크하는 장면이 떠오른다. 단지 캐릭터의 개성을 잘 보여주는 재치 있는 연기라고 생각했는데 이야기를 듣고 보니 부끄러움, 수치심이라는 테마와 연결되는 것 같기도 하다. 캐릭터가 종종 영화 바깥에 존재한다는 측면에서 권 상사가 살아나는 마지막 장면은 어떻게 생각하나.


김병규_그게 <밀수>가 지닌 불화의 지점 같다. 외팔이, 애꾸눈처럼 장르적 기호를 지닌 존재는 액션 장면에서 언제나 죽을 수 있는 이들이다. 반대로 류승완적 인물은 붕대를 두른 인간들이다. <주먹이 운다>의 복서, <다찌마와 리>에서 붕대를 감고 살아 돌아오는 인물들이야말로 류승완 감독이 배우에게 건네주는 인물상인 것이다. 그게 아닌 인물은 류승완 감독 본인이 연기할 때다. 직접 연기하는 인물들은 눈알이 뽑히거나 손가락이 잘린다. 반대로 류승완 감독이 배우에게 주는 건 회복의 가능성이 열린 인물이다. 한편으로는 언제든 잘려나가고 쾌감의 일부로 소화되는 액션영화의 몸이 있고, 다른 한편엔 붕대에 감겨 살아나는 조인성의 몸이 있다. 이 두 가지의 몸이 부딪치는 게 <밀수>의 공간이다.


송경원_종합해보면 <밀수>는 70년대 한국, 한국영화의 레퍼런스 위에 서 있지만 동시에 바깥에 서 있다. 군천이라는 가상의 공간을 창조한 게 그렇고, ‘죠스’라는 할리우드의 영화 기호를 해결사로 제시한 것도 그렇다. 김소희 평론가의 표현대로 귀환이라고 부른다면, 여기가 아닌 어딘가로의 귀환이라고 해야 할까. 나는 차라리 도피를 택했던 한국영화가 길을 잃고 미아가 된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지금 현재 한국 사회에서는 더이상 현실을 반영한 이야기를 허용하지 않는다는, 항복 선언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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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경원_<밀수>와 <콘트리트 유토피아>가 나름 유의미한 얼룩들을 남겼다면 <더 문>과 <비공식작전>은 한국영화의 악습과 그림자를 증명한 사례가 되어버렸다.


송형국_<더 문>과 <비공식작전>은 국적과 언어만 다를 뿐 할리우드 장르영화의 문법과 똑같다. 빅4 영화의 홍보 포인트는 <비공식작전>의 자동차 추격 장면, <밀수>의 수중 액션 같은 것들이었고 이에 따라 기사가 생산됐다. <모가디슈>의 현지 프로덕션도 같은 예다. 분명 이런 지점은 성취가 맞다. 한국영화의 제작 역량은 이제 일정 수준을 넘어섰다. 상징적인 예가 <헌트>다. 연출 수업을 오래 받지 않은 신인감독이 영화계의 A급 제작진과 함께 정성껏 제작했을 때 도달할 수 있는 기술적 수준을 증명했다. 지난 20~30년간 한국영화가 쌓아온 자산이고 저력이다. 단 한컷의 완성도를 위해 제작진이 흘린 피땀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이와 함께 한국영화 제작 역량이 이 정도 단계에는 올라섰다는 점을 전제로, 완성도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요소는 다름 아닌 제작비다. 앞서 말한 영화의 홍보 포인트들은 제아무리 제작 역량과 장인정신이 있어도 돈이 없으면 못한다. 다시 말해 250억원을 들였으면 그만큼의 완성도를 내놓아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런 측면에서 나는 최근 한국 상업영화에 대한 주류 언론의 평가가 지나치게 관대하거나 무책임하다고 생각한다. 200억원, 300억원의 투자금을 가져다 게으른 이야기를 썼거나 미국영화에서 다 봤던 걸 따라하는 수준의 결과물을 내놓았다면 보다 준엄하게 평가할 필요가 있다.


김소희_<더 문>은 황선우가 아버지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서 엄청난 비용의 우주비행에 발탁되어 떠나는 이야기다. 그런 큰 규모의 이야기에서 인물이 성취하려는 것이 개인의 속죄뿐이다. 거기서부터 선우의 행동에 대한 의문이 생긴다. 선우의 죽음을 막기 위해 김재국이 자신의 과거를 고백할 때 감정이입이 되지 않는 것도 문제다. 영화의 감정적 수용을 방해하는 피로도가 있다. 신파란 기본적으로 관객이 정말 인물의 감정에 이입해서 공감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에서 <더 문>은 신파가 아닐 수도 있다.


송경원_신파조차 되지 못했다?


김소희_그보다는 김용화 감독이 <신과 함께> 시리즈의 성공에 아직 취해 있다는 느낌이다. <신과 함께>에서 주인공 차홍(차태현)의 사연은 그가 지옥에 가지 않고 환생하는 중요한 계기가 된다. <더 문>도 이와 비슷한 방식에서 인물 각자의 사연에 서사를 기댄다. <신과 함께>는 사연이 이야기의 흐름과 물리적인 동선에 조응했다면, <더 문>에는 이런 연결이 부족하다. 사연이 필요하지 않은 상황에서 사연에 매달린다고 할까. 사실 <더 문>의 선우는 이길 수 없는 경기에서 고군분투하는 스포츠영화의 주인공을 연상시킨다. 다만 오늘날엔 스포츠 선수나 아이돌 가수가 혹독하게 훈련받고 희생해서 무언가를 이룩한다는 이야기에 감동하기보다는 불편함을 느낀다. 아이돌 출신의 배우 도경수가 <더 문>에서 고난을 당하는 상황이 주는 불편함도 같이 생각해볼 지점이다. 더는 보편적인 사연이 기능하지 못하는 상황은 현실에서 엄청난 사건들이 일어나면서 전반적으로 무뎌지는 경향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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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규_<신과 함께> 시리즈 주인공 차홍에게는 차사들과 함께 다니고 각종 어트랙션을 통과하며 만들어지는 흡인력이 있었는데 <더 문>은 그럴 수 없는 구조다. 혼자 있는 선우를 지켜볼 수밖에 없는 세팅이다. ‘천만 영화’라는 목표치와 드라마의 크기가 한정되어 있는 서사적 기획이 엇박자를 내는 것 같다. 비슷한 맥락에서 <더 문>을 비롯한 빅4가 인물들에게 사연을 부여하는 건 알겠는데, 하지만 그런 사연들이 지금 공동체 안에서 어떤 역할로도 기능하지 못한다는 인상을 받는다. 어쩌면 그렇기에 영화들이 과거로 돌아갈 수밖에 없거나, 과거를 연상케 하는 재난의 상황으로 이동을 강요받는다.


김소희_덧붙이자면 <더 문>처럼 영화의 스케일이 커질수록 감정의 스케일을 키우면 그것들이 맞물린다기보다 관객을 더 멀리 떨어뜨리게 하는 경향이 있다. 반대로 <비공식작전>은 지나치게 쿨하다. 예를 들어 민준이 왜 판수에게 자신의 비행기 티켓을 넘겨주는지에 대한 민준의 감정이 필요할 텐데, 영화는 그저 쿨한 태도로 넘어가려 한다. 정리하자면 한국영화는 과도하게 진정성을 드러내거나 반대로 쿨하게 넘기려 하는 사이, 관객과 함께 공감하는 방법을 잊어버린 것 같다. 스포츠영화의 실패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드림>이나 <리바운드>에서 골인의 쾌감과 쿨한 유머가 통하지 않는 이유를 생각해봐야 한다.


송경원_명백한 실패이고 비판받을 지점이 있지만 두 영화 모두 각기 다른 방식으로 옹호해주고 싶은 면도 있다. <더 문>의 경우 기본적으로 짜깁기에 가깝지만 인물의 드라마에 집중해서 본다면 성취도 있다. 선우의 얼굴을 따라가는 힘이나 서사적인 얼개는 상투적일지언정 못 봐줄 정도는 아니다. 다만 결정적인 패착은 이게 인물 내면으로 들어가는 작은 이야기라는 거다. 만약 저예산 독립영화였다면 훨씬 조밀했을지도 모르겠다. 작은 이야기를 커다랗고 화려한 액자에 끼우려다 보니 마치 무시당하는 것 같은 불쾌함이 생기는 거다. <비공식작전>의 경우 만듦새 자체는 준수하다고 느꼈다. 김성훈 감독은 확실히 관객을 끌어당기는 편집을 한다. 다만 이 영화만의 개성이나 필연성이 보이지 않는다. 피랍 서사는 이미 <모가디슈>나 <교섭>을 통해 많이 소비됐고 로케이션의 볼거리도 마찬가지다. 버디 무디의 매력으로 밀어붙이기엔 하정우, 주지훈 배우의 조합이 신선한지도 잘 모르겠다. 영화 안팎으로 기시감이 너무 심해서 도리어 이거다 싶은 매력 포인트가 기억에 남지 않는다.


김병규_<더 문>이나 <비공식작전>은 천만 영화를 만드는 예산과 기획이 어긋난 결과물이다. 극장 관객은 분명 달라졌다. 빅4 영화는 꼭 네편 중 하나만 고르라는 얘기가 아니고, 동시대의 여러 영화를 연달아 보면서 그 시기의 분위기를 논하는 데 적합한 접근이다.


송경원_확실히 북미에서 <바비>와 <오펜하이머>가 ‘바벤하이머’로 마케팅한 결과 서로 시너지 효과를 일으킨 것과는 차이가 있다. 한국영화는 서로가 발목을 잡는 모양새였다. 경향성으로까지 말할 수 있을진 모르겠으나 인위적으로 편하게 가는 결말 탓도 있지 않을까 싶다. 어떤 문제를 해결하고 선택하는 게 아니라 쉽게 지우는 듯한 방식이 반복되고 있다. 특히 <비공식작전>의 결말은 그동안의 문제와 사건을 너무 깔끔하게 없던 일로 만든다. 조금의 얼룩도 없다.


송형국_<터널>은 관객의 마음을 해소해주는 상업적 장치로서 납득되는 결말이었다면, <비공식작전>의 결말은 무책임한 쪽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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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경원_<콘크리트 유토피아>는 네편 중 가장 성공적인 것처럼 보이는데.


송형국_포스트 아포칼립스물로서 <눈먼 자들의 도시> <설국열차> <미스트> <슬픔의 삼각형>의 테마들이 떠오른다. 이제는 많은 작가들의 관심이 재난 과정보다는 멸망 후로 옮겨가는 느낌이다. 지금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통제 불능의 자연재해와 관련한 외신 영상을 보면 지구 종말을 떠올리지 않기가 어려울 정도다. 또 <설국열차> <콰이어트 플레이스> <아바타: 물의 길> <혹성탈출: 종의 전쟁> 등의 결말을 생각하면 미래 세대에 바통을 넘기는 방향으로 작가들의 관심이 이동한다는 인상도 받는다. 포스트 아포칼립스물의 하위 장르로 염세적 리얼리즘의 경향성이 형성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

 

김병규_<콘크리트 유토피아>에는 비슷한 시기에 개봉했던 두편의 영화가 겹친다. 하나는 <드림팰리스>인데 <콘크리트 유토피아>에는 드림팰리스라는 이름이 직접적으로 언급되기도 한다. 김선영 배우가 출연한다는 점도 같다. 다른 작품은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다. 사회적인 재난 이후의 시간을 관측하거나 재난, 죽음, 사고가 발생한 이후의 시간을 다룬다는 점에서 세 작품이 비슷하다. 또 그 ‘이후’의 시간에서 인물들의 집은 안정적인 공간이 아니다. 누군가의 침입에 노출돼 있거나, 집에서 살 수 없어서 나가야 한다. <콘크리트 유토피아>가 한국영화의 주요한 공간을 아파트로 설정한 맥락에서, 이전 시대의 집이 인물들이 자리 잡을 수 있는 최후의 안정적 내부였다면, 이제는 그 질서가 흔들리고 있다는 신호로 보인다. 그래서 다른 시공간을 찾아야 하는 상황으로부터 출발하는 영화들로 세 작품이 묶인다.


김소희_<콘크리트 유토피아>를 보면서 아파트 부흥기에 소외된 사람들의 공동체를 보여주는 <행당동 사람들> 같은 다큐멘터리영화가 떠올랐다. 다큐멘터리에서 여성이 바깥과 안에서 각각의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 지점이 드러나기도 하는데, 그런 의미에서 <콘크리트 유토피아>의 역할 구분에 관해서도 영화의 시대상과 지향이 어디를 향하는가와 함께 생각해야 한다고 본다.


김병규_약간 다른 맥락을 이야기해보고 싶다. 앞서 전문성의 부재와 각자도생의 시대라는 관점에서 네 영화가 공통적으로 젊은 세대를 학대한다고 느꼈다. <더 문>은 황선우가 학대당하는 순간을 스크린에 전시한다. <더 문>을 보며 <태극기 휘날리며>가 돌아왔다는 느낌을 받았다. 앳된 소년병이 주인공이고, 전시의 폭탄은 우주의 유성우로 대체됐다. 유성우를 피하는 학대의 얼굴이 스크린에 비치면서 그것을 지구의 어른들이 보는 모양새다. <밀수>에서도 옥분이 가장 많은 학대를 당하고 상처 입는다. 이런 관점에서 <콘크리트 유토피아>의 혜원은 가장 흥미로우면서 아쉬운 캐릭터다. 하필이면 잃어버린 집을 찾아서 돌아온 앳된 인물이 아파트 밑으로 떨어져서 죽는다.


송형국_혜원이 살아 있을 여지도 있지 않나. 시신을 확인시키지 않았으니까. 사실 캐릭터의 기능을 따진다면 죽어선 안되는 인물이다. 그냥 죽음으로 처리하는 것은 너무 손쉬운 결말이다.


김병규_그럼 다르게 표현해보자. 혜원은 왜 명화(박보영)와 함께 결말로 향하지 못할까. 가장 적극적으로 영탁에게 저항한 인물이 왜 아파트 밑으로 추락해야 했을까. <콘크리트 유토피아> <밀수> <비공식작전> 뒤로 한국영화의 그림자가 엿보인다. <콘크리트 유토피아>처럼 90년대를 원점으로 둔 영화가 혜원을 추락시킬 때 느끼는 감정은 마치 <벌새>의 은희(박지후)가 떨어져 죽었다는 뜻으로도 보인다. 한국영화의 모더니즘은 아파트의 모더니티와 함께한다. <초록물고기>에서 막둥이의 시체 위에 아파트가 생기고,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의 엔딩에선 여인이 시체를 목격한 후에 아파트 베란다로 향한다. <플란다스의 개>는 복도식 아파트의 옥상, 복도, 지하실을 배경 삼아 연쇄 실종사건의 상상력을 개입시킨다. 이처럼 아파트 공간이 출현하면서 한국영화가 당시의 다른 표정을 만들게 됐다면, 그 질서가 무너진 폐허에서 ‘<벌새>의 은희’가 떨어져 죽는다고 느껴졌다. 90년대를 원점으로 두는 역사적 맥락, 동시에 그간의 한국영화가 역사를 마주해온 방식이 <콘크리트 유토피아> 속 혜원의 모순적인 사용에 녹아 있다.


김소희_같은 관점에서 다른 질문도 떠오른다. 명화가 살아남은 다음 세대라고 호명할 수 있을까. 왜 명화를 다음 세대라고 생각해야 하는지 궁금하다. 지금의 한국영화는 모두가 다음을 얘기하는데 아무도 현재를 얘기하진 않는 것처럼 느껴진다. 한국영화가 다른 시간대로 가는 건 현재에 있을 수 없기 때문일까. 올여름 한국영화에 현재 세대는 없고 오로지 이전 세대와 다음 세대만 존재한다. 현 세태와 영화가 비슷한 상황이다.


김병규_어린 여자아이가 죽어야 한다는 건 한국영화의 지난 시간을 돌이킬 때 반복되는 상상력이다. <기생충>을 끝으로 마무리될 줄 알았던, 가장 어린 여자가 희생하면서 다음 시간을 통과하는 구조다. 표면적으로 명화에게 주어진 것은 희망이지만 다른 한편으론 영화가 아파트의 모든 인간을 전멸시키는 뜻이기도 하다. 때문에 마지막에 등장한 희망의 공간이 무게감 있게 다가오진 않았다. 어떻게 그 공간이 형성됐고 시스템이 유지됐나를 따지기보다 수평으로 쓰러진 아파트의 이미지로 답해야 할 부분을 가볍게 처리했다는 느낌에 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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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희_정리해보니 <비공식작전>을 제외한 세편의 결말에서 약한 것이 살아남는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를테면 <밀수>의 가장 약한 존재였던 해녀들, 우주 산업계에서 소외됐던 <더 문> 속 한국의 우주비행사 황선우, <콘크리트 유토피아>의 명화까지. 최후엔 이타적이고 약한 존재가 살아남는 결말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다만 ‘약하다’는 의미를 복합적으로 사유한다는 전제에서 말이다.


송경원_<콘크리트 유토피아>의 결말에 대해서는 여러 버전이 있었다. 민성이 죽지 않는 버전도 있고. 시나리오엔 명화와 같이 손잡고 나가는 장면까지도 적혀 있다. 최종적으론 명화 혼자 살아남는데, 감독의 인터뷰에 따르면 회색빛 세계에서 살아남은 인물이 흰 쌀밥을 먹는 이미지를 원했다고 한다. 이야기를 듣고 보니 <콘크리트 유토피아>에서 인물들이 맞이하는 결말에 따라 다층적인 해석이 가능한 것처럼 보인다. 그게 올해 여름영화 중 유독 도드라지는 영화라는 증거인 셈이다.


송형국_<콘크리트 유토피아>는 보다 정치적으로 읽을 필요가 있는 영화다. 절차적 민주주의가 실현되는 사회에서 다수결로 중요한 의사결정을 내리는 것이 과연 어디까지 올바른 일인지, 흑과 백 아니면 설 자리를 내주지 않는 의사표현 방식이 얼마나 민주주의에 가까운지 등을 질문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금애(김선영) 캐릭터는 절차적 민주주의와 제도의 공정성을 전가의 보도처럼 믿고 행하다가 무너지는 인물이다. 투표와 규정 같은 것들을 앞세워 공동체를 이끌어가던 금애가 종반부에 이르러 산산이 부서지는 방식을 보라. 그런 점에서 극 중 투표 도구이자 흑백 논리를 상징하는 바둑돌이 영탁의 회상 장면에서 어떻게 쓰였는지를 보면 영화의 정치적 비유가 상당히 정교하게 배치돼 있음을 알 수 있다. 지금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세계 곳곳의 모양과 다를 것도 없다.


송경원_다음 세대에 대한 이야기로 마무리해보자. 앞서 김소희 평론가가 한국영화는 현재를 말하지 않는다는 말이 뇌리에 강렬하게 박혔다. 현재가 없으니 다음 세대도 마치 유령처럼 투명해지거나 퇴거를 강요당하는 거 같다. 여름영화 외 더 언급하고 기억해야 할 영화가 있을까.


송형국_사실 빅4의 부진이나 아쉬움보다 그게 더 큰 문제다. <다음 소희> <비밀의 언덕>을 제외하고 잘 기억나지 않는다. 10년 전에 어떤 식으로든 반가웠던 작품은 당장 떠오르는 것만 읊어봐도 <설국열차> <관상> <변호인> <베를린> <숨바꼭질> <더 테러 라이브> <감시자들> <신세계> 등이 있었다. 평단을 사로잡든지 흥행에 성공했든지 기록될 만한 영화들이다. 올해는 빅4 이외에 무엇이 더 있었는지 모르겠다. 그나마 변성현과 엄태화 감독 정도를 거론할 수 있겠다.


김병규_이제 독립영화 감독들은 상업영화로 올라가려는 욕망조차 거의 메말라버린 것 같다. 영화제 상영을 통해 화제작으로 반응을 모으고 개봉까지 이어지는 유의미한 경로가 희박해졌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그게 꼭 비관적인 것만은 아니다. 상업영화로 올라갈 수 있다는 기대가 아예 없으니 상업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영화적 실천들이 나오는 경향도 있다. 올해 전주국제영화제의 작품들을 예로 들면 극소수의 스탭으로 만든 신동민 감독의 <당신으로부터>, 유형준 감독의 <우리와 상관없이>, 1인 제작 시스템으로 만든 손구용 감독의 <밤산책>을 예로 들 수 있겠다. 포르투갈이나 필리핀 뉴웨이브처럼 상업적 시스템을 향한 눈짓과 아부가 없는 장편영화가 가능한 판도를 만들 필요가 있다.


김소희_‘사연’의 활용이라는 측면에서 <비밀의 언덕>을 말하고 싶다. 혜진(장재희) 자매가 오기 전까지 인물들의 글짓기는 레퍼런스 대결에 가깝다. 서점에서 명은(문승아)이 여러 책을 보는 것으로도 잘 드러난다. 그런데 혜진 자매가 오고 나서는 각자가 얼마나 기구한 사연을 지니고 있는지에 관한 대결로 전환된다. 어떻게 보면 레퍼런스 사용과 사연의 사용, 두 가지 방법 모두에서 실패해버린 2023년 한국영화의 상황이 의도치 않게 겹친다. <비밀의 언덕>은 주인공이 두 가지 길 모두 선택하지 않는 것으로 이야기를 끝내는데 한국영화는 어떤 길을 갈 수 있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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