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신의 의지에 따라 “괴물도, 영웅도 될 수 있는” 초능력자들의 서사가 마침내 공개됐다. 강풀 작가의 동명 웹툰을 원작으로 <킹덤> 시즌2의 박인제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무빙>은 초능력을 숨긴 채 살아가는 아이들, 상처를 안고 버텨온 어른들의 이야기를 다룬 시리즈물이다. 제작비 500억원에 배우 류승룡, 한효주, 조인성, 차태현, 류승범, 김성균, 김희원, 문성근 등이 합류한 소식이 전해지며 공개 전부터 크게 주목받았다. 8월9일 디즈니+에서 7화까지 공개된 <무빙>은 매주 2개의 에피소드가 차례로 공개될 예정이다. <무빙> 세계관의 한축을 담당한 고등학생 봉석, 희수, 강훈으로 분한 배우 이정하, 고윤정, 김도훈을 만났다.
봉석은 엄마 미현(한효주)이 가진 초인적인 오감과 아빠 두식(조인성)이 가진 비행능력을 모두 물려받은 초능력자다. 누군가를 헌신적으로 지키려는 성정 또한 부모와 닮았다. 하지만 봉석은 초능력을 겉으로 드러냈던 그들의 부모와 달리 무거운 가방을 메고 모래주머니를 차고 다니면서 몸도 마음도 붕 뜨지 않게 스스로를 억제해야 한다고 배운다. 그럼에도 봉석 특유의 순수함은 결국 삐져나오는 감정을 불가항력적으로 드러내고, 누군가를 위해 초능력을 발현하기로 각성하게끔 이끈다. 선의가 가득한 눈웃음을 지으며 작품과 자신의 캐릭터를 설명해가는 이정하는 이 캐릭터의 무구함을 즉각적으로 설득해낸다.
- 봉석 캐릭터와 실제 배우의 서글서글한 인상이 너무 닮아서 캐스팅을 잘했다고 생각했다.
= 강풀 작가님의 웹툰을 전부 봤다. 그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이 <무빙>이었고 가장 좋아한 캐릭터가 봉석이었다. 오디션을 앞두고 웹툰을 한번 더 봤는데, 읽으면 읽을수록 옛날 생각도 나고 역할에 욕심이 났다. 봉석이 마냥 다정하고 순수해 보일지 몰라도 내면은 단단한 친구다. 나도 힘들 때 누군가에게 의지하기보다는 스스로를 먼저 돌보자는 마인드여서 비슷한 점이 있었다. 다른 사람을 기분 좋게 해주고 싶고, 응원하고픈 마음도 닮았다. 그래서 나와 봉석의 공통점에서 먼저 출발해 오디션을 준비해나갔다.
- 그렇게 캐스팅이 결정된 후 조인성을 아빠로, 한효주를 엄마로 둔 소감은 어땠나.
= 솔직히 말씀드리면, 너무 잘생기고 훌륭한 부모 밑에서 태어난 자식이 나여도 괜찮을까 가끔 생각했다. (웃음) 그런데 실제 연기를 할 때는 원작을 너무 많이 봐서 그런지 조인성, 한효주 선배님보다는 두식 아빠와 미현 엄마의 아들이라는 의식이 강했다.
- 엄마 미현을 연기한 배우 한효주와는 11살 차이다.
= 선배님이 24살 때 드라마 <동이>에서 아기 같은 아들이 있었다면 지금은 다 큰 아들이 갑자기 생겨서 당황스럽다고 했다. (웃음) 당시 아이가 그대로 컸으면 봉석이 정도의 나이가 됐을 거라고 한다. 어릴 때부터 선배님의 작품을 보면서 자란 배우 지망생이었다. 나에게 엄청난 대선배님인데도 불구하고 처음부터 “선배님”이 아닌 “엄마”라고 불러줬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그래서 연락처도 ‘엄마’라고 저장했다. 지금도 ‘선배님’보다 ‘엄마’라는 호칭이 더 편할 정도로 선배님을 대하는 게 편안해졌다.
- 후배로서 배운 것도 많은 현장이었겠다.
= 내 감정 신을 찍고 있을 때 선배님이 같이 몰입해서 눈물 흘린 적이 있다. 그 순간을 잊지 못한다. 미현도 봉석에게 좋은 엄마였지만, 현실에서 선배님도 너무 감사한 게 많은 선배님이었다. 앞으로도 엄마라고 부르고 싶다.
- 봉석이 희수(고윤정)에게 갖는 감정은 어떤 종류라고 생각하며 연기했나.
= 봉석은 누가 봐도 무해한 사람이다. 누구든 편하게 대하고 응원해주려고 한다. 희수를 만나고 난 뒤 봉석은 내면에서 나오는 호의를 당연시하지 않고 진짜 마음이 무엇인지 고민하게 된다. 엄마의 가르침으로 숨기고 다녔던 초능력을 겉으로 드러내면서 봉석의 진가가 드러난다. 희수는 봉석에게 물음표를 갖게 한 후 무언가를 깨닫게 해주는 존재다.
- 부모 세대가 초능력을 대하는 태도와 자식 세대의 그것은 다를 수밖에 없다. 어떤 차이가 있다고 보나.
= 부모 세대는 누군가가 시켜서 그들의 초능력을 발휘하는 임무 수행의 목적이 있었다면, 우리는 스스로 발현하는 초능력이라는 차이가 있다. 비행능력을 숨기다가 스스로 드러내고 싶다고 각성한 후 하늘을 날게 된다. 화려하고 멋지기보다는 다소 소박하게 보일 수 있지만 그 안에 따뜻함이 좀더 녹아 있다. 선배님들이 전문적인 액션을 선보인다면, 10대들은 10대이기에 할 수 있는 액션을 보여줄 것이다.
- 마음을 드러내면 초능력이 발현되기 때문에 봉석은 끊임없이 감정을 억제하려고 노력한다. 그런데 감정을 보여주지 않는 모습을 연기하는 방식도 다양하지 않나. 봉석의 경우 너무 순수해서 적극적으로 표현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 감정을 감춰야 한다고 의식하지만 어쩔 수 없이 감정이 드러나는 것을 신경 쓰지 않았던 것 같다. 워낙 무해하고 솔직한 캐릭터라 참아낸다는 마음 자체에만, 내면에만 집중했다. 이정하로서는 초능력을 실감할 수 없으니 작가, 감독님과 대화를 많이 나누며 “나라면 어땠을까?”를 많이 고민했다.
- 봉석 역을 위해 30kg을 증량했다는 사실이 화제가 됐다.
= 눈사람 같지 않나. (웃음) 봉석은 내가 너무 좋아하는 캐릭터다. 그래서 살을 찌우면 찌울수록 봉석을 닮아가는 게 정말 즐거웠다. 나 자신이 좀 귀여워지는 것 같기도 하고. 나도 몰랐던 새로운 매력을 알게 돼서 재밌게 촬영했다. 감독님과 스탭들이 건강하게 살 찌울 수 있도록 신경을 써주셔서 안전하게 촬영에 임할 수 있었다.
- 후반부로 갈수록 액션 연기 비중이 높아진다. 고윤정 배우 말로는 무술감독이 “또래 배우 중 네가 와이어를 가장 잘 탄다”며 이정하 배우를 칭찬했다던데.
= 처음에는 초능력을 숨기는 게 중점이 되다 보니 서툴고 엉성한 모습을 보여주는 움직임을 표현해야 했다. 일부러 와이어를 더 흔들면서 팔을 휘저었다. 각성 이후에는 반대로 능숙하게 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데 그게 다소 어렵게 다가왔다. 액션팀에서 두려움보다는 용기를 준 덕분에 모니터링을 하니 내 모습이 생각보다 괜찮아 보여서(웃음) 재밌게 와이어를 탈 수 있었다. 잘 날기 위해서는 손가락이나 발의 움직임도 중요하기 때문에 현대무용도 따로 배웠다.
- 총 20화 중 7화가 공개됐다. 남은 회차에서 어떤 모습을 기대할 수 있나.
= 봉석은 다른 인물과의 관계도 다양한 양상을 띠고 기승전결이 뚜렷한 서사를 갖춘 캐릭터다. 초능력자들이 성장해가는 이야기일 뿐만 아니라 우리 일상에 대입해 대리 만족을 느낄 수 있는 스토리가 펼쳐진다. 누군가를 응원하는 마음, 챙겨주고 싶은 마음, 그리고 이를 지켜보는 사람도 행복해질 수 있는 따뜻함을 느꼈으면 좋겠다.

희수는 학교 폭력을 당하는 친구를 구해주기 위해 17:1로 싸우다가 아무리 맞아도 금방 회복하는 재생능력을 타고났다는 것을 깨닫는다. 또래 친구들과 자신이 조금 다르다는 것을 자각하고 정원고등학교에 전학 온 그는 자신처럼 초능력을 가진 친구들을 사귀면서 마음을 열기 시작한다. 학창 시절 늘 계주 대표로 나갔다는 고윤정은 체대 입시를 준비하는 희수와 닮은 점이 많다. 이를테면 인터뷰 중 눈앞에 날아다니는 모기를 한번에 잡을 만큼 털털하고, 옆에 앉아 있는 봉석 역의 이정하가 <무빙> 현장에서 와이어 연기를 하느라 얼마나 고생했는지 전해주는 사려 깊은 배려심에서 희수의 캐릭터가 겹친다.
- <무빙> 오디션을 볼 때는 어땠나.
= 원작 웹툰을 알고는 있었지만 보지는 않았다. 그래서 오디션장에서 준 대본을 준비 없이 그냥 읽었다. <헌트>를 준비하던 때라 앞머리를 내리고 머리를 짧게 자른 상태였는데, 마침 체대 입시를 준비하는 고등학생 역할이라 머리를 질끈 묶고 갔다. 감독님이 워낙 좋다, 별로다 같은 티를 안 내는 분이라 오디션 때도 별다른 반응이 없으셨지만, 왠지 오디션에 붙을 것 같았다. (웃음) 원래 준비가 안된 상태에서 즉석으로 리딩하는 것을 어려워하는데 실제 나와 말투도 성격도 비슷한 캐릭터라 대본이 술술 잘 읽혔다.
- 고통을 느끼지 않고 금방 재생하는 능력을 아빠 주원(류승룡)에게서 물려받았다. 하지만 성격 면에서는 다른 점이 많다.
= 초능력 외에는 일찍 돌아가신 엄마를 많이 닮았다. 아빠가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혼란스러워할 때, 이를 다잡아주던 엄마 역할을 대신하며 일찍 철이 들었다. 그래서 아빠를 다그치기도, 설득하기도, 이해하기도 하는 애어른 같은 모습을 보인다. 엄마의 빈자리가 느껴지지 않게끔 아빠와 함께 서로를 도우며 살아간다.
- 류승룡과의 호흡은 어땠나.
= 선배님이 워낙 딸바보 역할로 유명하지 않나. 나 역시 <7번방의 선물>을 통해 선배님을 알게 됐다. 선배님을 믿어 의심치 않았지만, 실제로 내가 아빠에게 딸 같은 딸이 아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선배님에게 누를 끼치지 않고 온전히 역할에 몰입하시도록 연기할 수 있을지 걱정했다. 그런데 막상 선배님의 눈을 보고 슛이 들어가면 대본 이외의 부수적인 것들이 저절로 막 생겨났다. 아빠가 좀더 잘 먹고 잘 살고 잘 자고 본인만 생각했으면 좋겠는데 왜 자신을 희생할까, 고맙지만 답답하고 속상했다. 사실 대사가 너무 많은 신은 촬영에 들어가기 전 세팅을 바꿀 때 리허설을 하고 싶었는데 선뜻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럴 때 선배님이 먼저 옆에 다가와서 다음 장면 리딩을 한번 맞춰보자고 했다. 내가 괜한 걱정을 하고 있었구나, 먼저 말을 꺼내도 됐을 텐데. 너무 감사한 마음으로 함께 촬영했다.
- 주원이 속한 기성세대가 활약했던 과거와 그들의 자녀가 고등학교에 다니는 현재, 사회가 초능력을 대하는 시각이 달라진 것으로 묘사된다.
= 영화 <왓치맨>을 보고 <무빙> 오디션장에 갔다. 초능력을 대하는 태도가 마침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마블 히어로 영화를 보면 초능력자는 사람들에게 칭송받는 멋있는 존재다. 부모 세대까지만 해도 초능력을 이용해 위험에 처한 사람들을 능숙하게 구했다면, 우리는 초능력의 이면을 보여준다. 초능력은 특별한 게 아니라 특이한 것으로 취급받기 때문에 이를 숨기고 살아가려고 하는 것이다. 때문에 평범한 아이들이 자신만의 비밀을 친구에게 공유하며 각박한 세상을 헤쳐나가는 힘을 나누는 이야기가 현실적으로 그려진다.
- 슈퍼히어로영화에서 재생능력은 대체로 CG를 통해 표현된다. 배우가 연기로 부여할 수 있는 디테일이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이 있었겠다.
= 희수가 비행능력을 가진 건 아니라서 크로마키 촬영을 할 일은 거의 없었다. 아예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연기는 없었지만 희수가 어느 정도 고통을 느끼는 건지 알아야 했다. 작가님에게 여쭤보니 희수가 총에 맞으면 남들이 주먹을 한대 맞았을 때 정도의 고통을 느낀다고 하더라. 누군가에게 맞아도 덤덤하게 참고 넘어가는 연기를 하는 건 예상보다 어렵지 않았다. 원래 몸에 상처가 나도 잘 알아차리지 못하고, 배가 아파서 병원에 가면 왜 이제 왔냐는 말을 들을 만큼 고통에 둔감한 편이다. 어찌 보면 연기를 할 때 활용할 수 있는 나의 장점이 될 수 있다. 정말 편안하게 실제 나처럼 연기했다. 다만 맞는 연기가 더 어렵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잘 받아줘야 때리는 쪽의 연기도 잘 나올 수 있다. 액션 합을 맞추면서 내가 어설프게 팔을 휘둘러도 멋있는 신이 나올 수 있게 연기해줬던 액션팀의 입장을 역지사지로 생각해볼 수 있었다. (웃음)
- 희수와 봉석 그리고 강훈(김도훈)의 관계를 어떻게 생각했나.
= 희수에게 봉석은 ‘처음’이다. 전학 와서 처음 사귀게 된 친구이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자신의 비밀을 털어놓는 친구다. 신뢰를 바탕으로 솔직하게 스스로를 드러내다 보니 로맨스적으로도 보이지 않을까 싶다. 강훈은 희수를 좋아해서 봉석을 질투하는 것이 아니다. 돌연변이라서 외롭게 지내고 있는 자신과 달리 저 둘은 다정하고 외롭지 않게 지내는 것 같아서 자신도 끼고 싶다고 생각하는 거다.
- 희수는 봉석과는 조금 다른 이유에서 자신의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자신의 정의감이 오히려 안 좋은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것을 목격한 후 정원고등학교에 전학 온다.
= 너무 어릴 때 엄마가 돌아가셨다. 엄마의 빈자리를 채워야겠다고 의식하기도 전에 자연스럽게 어리광도 못 부리며 자랐던 것 같다. 상대적으로 아빠가 더 살갑고 다정하고 말랑말랑한 성격이다 보니 습관처럼 자신의 감정을 숨기려고 한다. 하지만 봉석이 어쩔 수 없이 자신의 감정과 초능력을 드러내는 것처럼, 희수도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고 나서게 된다. 천성이 무척 따뜻한 친구다.
- 현재 10대 아이들의 이야기, 과거 부모들의 이야기 그리고 이들 모두가 등장하는 세 파트로 스토리가 나뉘어져 있다고 들었다. 앞으로 어떤 전개를 기대할 수 있나.
= 초반에 캐릭터들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며 고군분투하는 모습이 하이틴 장르에 가깝다면, 후반으로 갈수록 ‘무빙’이란 제목의 두 가지 의미가 잘 드러나는 이야기가 전개될 것이다. 무빙은 ‘움직이다’라는 뜻도 있지만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이라는 의미도 있지 않나. <무빙>에서 누군가를 위해 기꺼이 자신을 희생하는 가족과 친구의 따뜻한 모습을 만날 수 있다.
다른 학생들과 다르게 강훈은 정원고의 실체를 안다. 때문에 자신의 엄청난 스피드와 괴력을 드러내는 대신 학급 반장으로서의 소임을 다한다. 봉석(이정하)과 희수(고윤정) 역시 능력을 감추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그에게도 조금씩 변화가 인다. “비밀을 품고 있을 것 같고, 혼자 알아서 공부 잘하는 이미지”라는 박인제 감독의 말대로 강훈을 연기한 김도훈은 유독 표정에 따라 다양한 이미지를 내비친다. 영화 <최면>, 드라마 <다크홀> <목표가 생겼다> <오늘의 웹툰> <법대로 사랑하라> 등에 출연하며 내공을 다져온 덕일 테다. “의젓해 보여도 아직 순수함을 지닌 고등학생이란 점을 놓치려 하지 않았”기에 그는 강훈을 더욱 입체감 있게 그려낼 수 있었다.
- <무빙>의 배역을 따내고자 하는 의지가 강했다고.
= 오디션을 통해 합류했는데 4화까지의 대본을 먼저 받았다. 읽는데 너무 재밌는 거다. 액션, 판타지, 히어로…. 내가 좋아하는 요소들이 다 들어가 있었다. 정말 간절해서 오디션 때 대본을 넘기는 손이 덜덜 떨렸다. (웃음) 원작 웹툰을 봤을 때부터 강훈을 하고 싶었고 오디션장에서도 그렇게 말씀드렸는데, 실제로 역할이 주어져서 신기하고 감사했다.
- 왜 이강훈 캐릭터가 욕심났나.
= 강훈이네 부자 관계가 내게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강훈이라는 인물도 마찬가지였다. 생각은 많은 것 같은데 그게 겉으로 드러나질 않아서 그 속내가 궁금했다. 마침 차분한 인물을 연기해보고 싶던 차였는데 강훈이 지닌 에너지의 결이 내 바람과 잘 맞았다. 그리고 강훈이가 세서 좋았다.
- 말한 것처럼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아 표현하기 힘든 지점이 있었겠다.
= 캐스팅돼 너무 좋은데 막상 연기하려고 생각하니 어렵더라. 말이나 행동으로 설명되지 않는 인물이고 그만큼 많은 걸 숨기고 자제하는 친구다. 그래서 이 친구가 “네” 한마디를 하더라도, 기분이 어떻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 찾아내려 했다. 알맹이가 없는 친구처럼 표현되지 않았으면 했다. 그러다보니 머리가 복잡해지는 순간도 있었는데 그럴 때마다 선배님과 감독님이 도움을 주셨다.
- 체지방 6%까지 감량했다던데.
= 최종적으로 편집됐지만 원래 싸우다가 옷이 찢어지면서 상의가 노출되는 신이 있었다. 당시 감독님이 이 장면 때문에라도 이소룡 같은 몸을 만들어줬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이소룡의 몸이라 하면 슬림하면서도 근육이 잘 잡혀 있어야 할 텐데. 어쨌든 강훈이가 엄청난 스피드와 괴력을 가진 친구이니 몸이 가벼운 게 좋겠더라. 그래서 처음으로 매일 웨이트를 했다. 상의 탈의 신은 없어졌지만 몸을 만들어둔 게 다른 신을 촬영하는 데 도움이 많이 됐다.
- 극 중 강훈은 가공할 만한 스피드를 자랑한다. 실제로 학창 시절에 육상을 해서 그런지 간단한 동작에서도 각이 잡혀 있다고 느꼈다.
= 중학생 때 체육부장 선생님의 눈에 들어 수영, 농구, 육상, 검도 등 다양한 운동을 섭렵했다. 그래서인지 달리는 장면 자체가 어렵진 않았다. 전속력으로 질주하는 걸 좋아하기도 하고. 그런데 주먹을 휘두르고 다른 배우와 액션 합을 맞추는 건 쉽지 않았다. 재빠르게 움직여야 하는데 몸이 따라주지 않을 때가 있었다.
- 류성철 무술감독이 치타에 비유하며 액션을 칭찬하던데.
= 과찬이다. 그래도 기분은 좋다. (웃음) 액션영화를 좋아한다. 그래서 내 액션이 어떻게 구현될지 기대가 컸고 덕분에 힘들긴 해도 즐겁게 촬영할 수 있었다. 강훈이의 경우 와이어 액션보다 직접 달리고 구르는 액션이 많았는데 거의 모든 걸 대역 없이 직접 했다. 특히 2화에서 방기수(신재휘)와 다투는 신이 재밌었다. 전투적으로 임하기보다 자기 힘을 최대한 아끼면서 여유 있게 싸우는데 해보지 않은 유형의 액션이었다. 또 다른 재밌는 액션은 후반부에 몰려 있다.
- 강훈은 희수와 친해지고 싶어 하면서도 적극적으로 다가가지 못한다.
= 강훈이는 기본적으로 붙임성이 없는 친구다. 그리고 이 학교의 존재 목적에 대해 알고 있다. 비밀을 지켜야 하는 상황에서 다른 친구들과 가까이 지낸다는 게 쉽지 않았을 거다.
- 강훈이가 무척 외로웠을 것 같다.
= 너무. (웃음) 현장에서도 연기할 때 이상하게 서러울 때가 많았다. 봉석이랑 희수는 어느 순간부터 가까워져서 똘똘 뭉쳐 다니고 나는 그런 둘을 그저 바라본다. 강훈이가 질투하는 장면을 찍고 나면 실제로도 ‘그렇게까지 친하게 지내야 했나’ 싶은 생각이 들면서 묘하게 서운했다. “자율학습시간에 어딜 갔냐”고 묻는 장면에서도 봉석이랑 희수가 같이 “‘자율’ 학습인데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답했을 땐 정말… 말 그대로 ‘킹받았다’. (웃음)
- 아버지에 대한 강훈이의 마음은 무엇이었을까. 아버지를 아끼면서도 한편으론 어려워하는 것처럼 보였다.
= 어색함 그 자체다. 유년기 때 아버지랑 떨어져 있던 시간으로 인해 서먹해진 게 가장 클 테다. 그럼에도 아버지를 끔찍하게 챙긴다. 처음과 달리 점점 아버지를 자랑스러워하고 거리낌 없이 남들에게 소개하기 시작하는데 그렇게 변화해가는 모습이 좋았다. 아버지와 강훈이 슈퍼 앞에서 마주치는 장면이 매번 똑같다. 아버지는 기다리고 강훈이는 ‘다녀왔습니다’ 인사하며 같이 들어가고. 어떻게 차별화할지 고민하다 강훈이의 하루를 떠올렸다. 학교에서 뿌듯한 일이 있었을 때, 반대로 본인이 초라하게 느껴졌을 때의 기분을 생각하면서 아버지에게 인사를 드리려고 했다.
- 만약 실제로 초능력을 갖게 된다면 어떤 능력을 갖고 싶나.
= (손가락을 튕기며) 탁! 하면 모든 물건이 제자리로 돌아가는 거다. 정리하면서 스트레스를 푸는 편인데 그러다보니 쉬는 날에 집에서 계속 뭔가를 치우고 있더라. 이런 초능력을 가지면 제대로 휴식을 취할 수 있지 않을까.
- 이번 작품에서 새롭게 도전한 부분이 있다면.
= 생각을 없애는 것. 평소에 생각도, 걱정도 많은데 어느 날 감독님이 즉각적인 디렉팅을 주셨다. 원래 디렉팅을 받으면 한번 생각한 뒤 들어가는 편이라 당황스러웠다. 그런데 나중에 촬영이 끝나고 감독님이 오히려 바로 질렀을 때의 연기가 더 좋다고, 그래서 일부러 그렇게 디렉팅을 주셨다더라. 배우로서의 도전이었다. 더 일찍 깨달았으면 좋았을 텐데. 그래도 덕분에 시야가 넓어졌다. <무빙>을 찍고 나선 촬영 때 혼자 생각하기보다 현장을 살피며 주변을 관찰하려 노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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