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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퀘어 퀸메이커 [씨네21] '퀸메이커' 김희애X문소리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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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4.20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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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애와 문소리, 문소리와 김희애. 두 이름이 서로를 끌고 밀어주면서 검은돈으로 물든 대한민국 정치판에 역전의 드라마를 쓴다. 이 이야기, 어떻게 흥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퀸메이커>의 모든 것이라 할 수 있는 두 배우가 작품 공개를 앞두고 나란히 앉아 환담을 나눴다. 기획과 캐스팅을 향한 대중의 뜨거운 환영 속에서 여성배우 주연작에 대한 달라진 바로미터를 살피고, 6부까지 미리 확인한 작품 내용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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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14일 공개되는 넷플릭스 11부작 시리즈 <퀸메이커>는 선거판으로 걸어들어간 <델마와 루이스>의 이야기다. 이번에도 여자들은 자기 알을 깨고 나왔고, 어딘가로 달려가고 있다. <퀸메이커>의 두 여걸 주인공이 뛰어든 곳은 모뉴먼트 밸리보다 험난한 대한민국 선거판. <퀸메이커>의 결정적 재미는 사실 ‘김희애가 문소리를 서울시장 만드는 드라마’라고 다소 부박하게 압축해도 좋을 만큼 적나라하게 짜릿한 데가 있다.


<퀸메이커>는 각성과 메이크오버의 서사다. 평사원에서 은성그룹 전략기획실 실장까지 올라간 황도희(김희애)는 재벌가 인사들의 온갖 추문과 비리를 덮는 데 써온 이미지 메이킹의 귀재로, <퀸메이커>의 서두는 그 재능을 증명하는 데 쓰인다. 갑질 논란에 휩싸인 상무 은채령(김새벽)을 위해 그가 준비한 카드는 철저하고 다채롭다. 우선 갓 출시된 명품으로 치장한 ‘블레임룩’으로 주의를 분산시키고, 검찰 앞 취재진을 향해 고개 숙여 인사하는 순간을 노려 출산 후 탈모의 흔적을 보여준 뒤, 이윽고 조사실에서 모유 수유 중인 장면을 노출시켜 육아 커뮤니티의 동정 여론을 이끌어낸다. 필요하다면 재벌가 실세들에게도 난감한 주문을 할 수 있을 만큼, 황도희는 유능한 해결사로서 권력을 쥔 것처럼 보이며 때때로 그들과 동등해 보이기까지 한다.


착각은, 오경숙이라는 ‘정의의 코뿔소’와 부딪치면서 깨진다. 백화점에서 부당 해고된 노동자들을 위해 고공 농성 중인 오경숙을 황도희가 저지하러 간 자리에서 둘은 처음 만난다. 후줄근한 거리의 변호사와 킬 힐 위에 올라탄 전략기획실 실장의 만남을 계기로 황도희에겐 운명처럼 외면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난다. 은성그룹의 사위이자 차기 서울시장 후보인 백재민(류수영)이 저지른 성범죄를 알지 못한 채 자신 또한 어느 젊은 여성을 죽음으로 내모는 데 기여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각성하게 되는 것이 도화선을 이룬다. 그렇다면 누구를 또 다른 서울시장 후보로 내세워 재벌가와 싸울 것인가? 도희는 경숙의 스타성을 알아보고 그를 탈바꿈시키는 데 자신의 모든 재능을 쏟기로 한다. 자본주의의 첨탑에서 쫓겨난 여자가 높은 구두에서 내려오고, 퀴퀴한 재야의 스타는 세련된 쇼트커트를 하고 정치라는 쇼 비즈니스에 뛰어드는 순간, <퀸메이커>의 쇼도 비로소 시작된다.

수많은 킹메이커 서사는 있었지만 퀸메이커는 드물었다. 상징적 의미가 아니라 한국 정치판을 무대로 한다면 더더욱 그랬다. 사실 일종의 버디물로서 이어질 수순을 예측하기란 쉽다. 삿대질하던 두 사람은 점점 더 가까이 다가설 것이고 언젠가는 끌어안고 말 것이다. 퀸과 퀸메이커의 관계는 필연적인 실망과 배반도 동반할 것이다. <퀸메이커>는 이처럼 관계가 흘러갈 명확한 방향성을 애써 가리지 않되 초반의 딜레마를 끈기 있게 묘사해 감정적 토대를 다지는 편을 택한다. 약간의 기다림으로 더 큰 불꽃을 틔우려는 초반 전개 속에서 드라마의 전반적인 톤 앤드 매너도 확실히 감지할 수 있는데, 캐릭터 구성 면에서는 도전적인 시도를 추구하는 한편 대사와 리듬감, 감수성적 측면에서는 재벌가를 둘러싸고 욕망과 복수의 화신들이 대결하는 한국 드라마의 전통을 잇는다. 어떤 면에서는 안정이고, 어떤 면에서는 ‘첨단의 여성 서사’라기엔 다소 괴리가 있는 이 결과물을 마냥 냉정히 비판하기는 어렵다. 4050 중년 여성배우의 투톱 주연물이 희귀하다시피한 상황에서(여전히 30년 전의 <델마와 루이스>가 좋은 사례로 비교되는), 여성 투톱 드라마 중 독창적 시도로 상찬받는 <구경이>가 평단과 마니아들의 열렬한 지지에도 불구하고 2%대의 저조한 시청률을 기록했다는 점을 떠올린다면 말이다.

<퀸메이커>는 말하자면 광범위한 시청자층을 향한 설득력을 염두에 둔 드라마이고, 이미 영리하게 홍보하고 있는 대로, 김희애와 문소리라는 두 거대한 기둥이 만들어내는 그림만으로도 충분한 자극과 깊이를 발생시킨다. 배우 김희애가 이번 <씨네21>과의 만남에서 “시청자들이 의지를 갖고 클릭해서 보아야만 하는 OTT 오리지널 작품에 배우로서 여전히 호출받을 수 있다는 건 행복한 일”이라고 대답한 것은 그래서 꽤나 의미심장하다. 1984년 영화 <스무해 첫째날>로 데뷔해 올해 데뷔 40년차. 그사이 한국 드라마 시장의 지형도가 변화하는 과정의 선두에 있었던 배우인 김희애는 KBS 특채 탤런트에서 MBC의 간판 스타로, 지상파에서 종편으로, 그리고 이제 첫 OTT 오리지널 시리즈에도 이름을 올린 셈이 되었고, 그가 한 작품에서 호흡을 맞추는 동료 여성배우들은 더이상 가족 관계의 범주가 아니라 정재계 요직의 걸출한 얼굴들로 만나게 됐다. <퀸메이커>에서 전형이 개성으로 변모하는 많은 순간들은, 김희애와 문소리 그리고 서이숙, 진경, 옥자연, 김새벽, 윤지혜, 김호정, 김선영이라는 이름들이 저마다의 권력을 쥐고 휘두를 때 완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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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사람이 나란히 앉은 그림, 약간 비현실적이다. 캐스팅 발표 단계부터 쏟아진 호응을 실감했는지.
= 김희애_몰라요 잘…. (웃음) 일 없으면 주로 집에 있고, 기대감에 들뜨는 걸 잘 못하는 성격이기도 하고. 그래도 우리 모두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이런 반응 보이는 걸 선물로 생각하고 있다. 옆에 있는 (문)소리씨만 해도 그렇다. 엄청나게, 열정적으로 쏟아붓는 모습을 보았다.
= 문소리_아이, 참 선배님 또….


- 오진석 감독이 제작보고회에서 이야기의 뼈대를 세울 때 우선 <델마와 루이스>(1991) 같은 여성 버디물을 떠올렸다고 말했다. 정치 드라마가 된 건 이후 살이 붙으면서라고.
= 김희애_안 그래도 아까 대기실에서 우리끼리 이어서 ‘스몰토크’를 했는데, <델마와 루이스>가 마지막에 어떤 미지수를 남겨놓았다면 <퀸메이커>는 그보다 선명하고 통쾌한 면을 살린 게 아닌가 싶다.
= 문소리_시작은 <델마와 루이스>였으나 끝은 다르게 갔달까.
= 김희애_맞아. 우리 드라마는 더 경쾌해. 요즘 말로 뭐라고 하지, 속 시원한 사이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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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벌가의 각종 위기를 관리하는 전략기획실 수장 황도희와 ‘우먼 파워’를 외치는 인권 변호사 오경숙. 두 사람의 캐릭터 이야기를 해보자. 극 초반부에 두 캐릭터가 첫인상과 다른 의외의 면모를 속속 보여준다. 캐릭터 구축에 공을 들인다는 인상을 받는 전개다.
= 김희애_황도희는 부족함 없이 살아온 사람일 것 같지만 밑바닥부터 시작한 사람이다. 처음엔 내게도 굉장히 강단 있고 노련하고 스마트한 사람이라는 인상으로 자리 잡았다. 그런데 연기를 할수록 감정적이게 됐달까, 나도 모르게 도희에게 빠져들어서 자꾸 살을 붙이고 감정을 섞는 일들이 이어졌다. 이런 경험은 또 새로워서 황도희를 통해 배우로서 성장했다고 느낀다.


- 차기 서울시장 후보가 저지른 범죄와 부하 직원의 비극적 사건으로 인해 황도희는 각성의 순간을 거친다. 인생의 행로를 바꿀 정도의 변화를 어떻게 해석했나.
= 김희애_특정 사건의 영향도 있지만 근본적으로 황도희란 여자가 살아온 배경과 성향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열정 넘치는 일반 신입 사원에서 시작해 재벌가의 내부자가 된 이후에는 은성그룹이 잘돼야 직원과 노조가 잘사는 길이라고 생각해서 일에 맹목적으로 투신했다. 최선을 다해 살다보니 자기도 모르게 어떤 지경에 이르러버렸지만, 오경숙을 만나서 옛날의 자기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 황도희는 오경숙의 어떤 매력에 끌렸을까.
= 김희애_(문소리를 지그시 바라보며) 이런 사람이 있을까 싶을 정도지. 정말 너무 의리의 여자! 인권 변호사에서 시장 후보가 된 후에도 눈앞에 성공이 보일 때 의리를 위해 자기 것을 포기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 문소리_어머 그건 6화 지나고 나와서….
= 김희애_아 참, 나 좀 봐. (웃음) 오경숙의 그런 모습에 반해 말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퀸메이커>를 찍는 동안 ‘그래, 세상에 이런 사람도 있지’ 싶더라. 이렇게 진심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는 믿음이 생겼고 나도 도희로서 점점 더 마음을 열고 인간적으로 변해갈 수 있었다.


- 오경숙은 일종의 영웅 캐릭터지만 빈틈도 많이 보여준다. 도희를 만나기 전까지 수년간 노동운동을 하다 어느덧 지쳐버린 사람이기도 하다. 남몰래 회의감도 느끼고 있는데 연기하는 배우 입장에서는 이 인물에게서 어떤 레이어를 봤나.
= 문소리_많이 흔들리고 중간에 포기하려고도 하고… 그렇지만 끝내 자기 가치관은 포기하고 싶지 않고. (웃음) 그런 내적 갈등이 있기 때문에 두 여자가 더 진심으로 엮이고 싸움도 흥미진진해지는 게 아닐까 싶다. 준비 단계에서 경숙이 어떤 삶을 살아왔기에 인권 변호사로서 헌신하게 되었을지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있었다. 어머니와 관련된 전사가 있었는데, 엄마를 위해 고등학생 때부터 1인 시위를 하다가 변호사가 되기로 결심하는 과정이었다. 오경숙은 말하자면 그때부터 자기 삶의 퀸이 아니었을까?

= 김희애_(감탄) 아….
= 문소리_세상을 바라보는 자기만의 눈을 가지고 세상과 맞서는 사람들, 그런 여자들이 ‘퀸’ 아닌가? 경숙은 시장 상인들, 여성 해고 노동자를 자기가 돕는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이 곧 자기 세상의 중심이라고 생각하면서 이끌어왔기 때문에 지도자적 인물이 될 수 있다고 봤다. <퀸메이커>는 퀸을 계급적 의미가 아니라 자기 세상의 주체를 가리키는 말로 본다면 경숙은 도희를 만나서 더 넓은 세상에서, 전과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퀸이 된다.


- 웹소설·웹툰에서 팬덤 용어로 ‘혐관’이란 말이 쓰인다. 표면적으로는 ‘혐오 관계’의 줄임말이지만 속뜻은 혐오하는 사이로 만나서 결국에는 서로 스며들고 나중에는 사랑하게 되는 관계성을 말하는데 <퀸메이커>에도 이를 적용하는 온라인 반응들이 관찰된다.
= 문소리_우리네! 우리 혐관이었구나.
= 김희애_아니, 그런 관계가 인기가 많나봐? 용어까지 나오는 거 보면.
= 문소리_(속닥이며) 주변에 보면 그런 사람들이 결혼해서도 잘 살더라고.
= 김희애_(맞장구) 음, 그게 낫겠네. 좋아해서 결혼했는데 나중에 혐관되느니. (일동 폭소)
= 문소리_하하하, 정말 그게 훨씬 낫지.


- 앙숙처럼 굴던 <살인의 추억> 속 시골 형사와 도시 형사가 어느새 서로의 수사법을 바꿔 사용하는 지경에 이르는 것처럼, <퀸메이커>의 두 여자도 절묘하게 스며드는 포인트가 있나. 마케팅에선 ‘워맨스’라는 수식도 곧잘 보이는데.
= 김희애_우린 좀더 쿨한 관계인데 난 그게 더 좋은 것 같다. 서로를 엄청나게 아끼고 사랑한다기보다 묵묵히 상대를 완전히 받아들인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이해하고 인정하는 관계다. 거대한 파도를 함께 헤쳐나간 뒤에는 다시 적당한 거리를 두고 도희는 도희의 삶을 살 거다. 무엇이든 영원한 것은 없으니까 또 다가올 날들을 살아야지. 현실에서도 비슷한 것 같다. 그 사람 본연의 가치를 정확히 알아주고 잘되기를 힘껏 박수쳐주는 게 최고의 사이 아닐까. 그리고 도희가 퀸메이커이긴 하지만 경숙에게 덕 보려고 하는 인물은 아니다. 퀸이 탄생하는 순간 퀸메이커의 성취도 끝난다. 그 이후의 무언가에 대한 기대 없이 깨끗한 감정으로 남는 게 중요했다. 그게 훨씬 매력적이기도 하고
= 문소리_경숙은 사람을 아주 중요하게 여기는 인물이라 자신이 도희와 관계를 맺기로 결심하는 순간부터 그에 걸맞은 책임감을 중요하게 생각했을 것이다. 이 여잔 자기 안에 누군가를 들이면 절대 내치지 못하는 성격이다. 도희의 인간적인 면을 알면 알수록 경숙 혼자서 남몰래 속으로 인정했을 것 같다. ‘나는 이 관계를 절대 끝내지 못하겠구나’라고. (웃음)


- <퀸메이커>의 황도희는 드라마 <밀회>(2014)의 예술재단 기획실장인 오혜원도 떠올리게 한다. 지적인 전략가들이면서 스타일과 몸가짐이 중요한 잔상으로 남는 인물들이다.
= 김희애_우선 사람의 전반적인 실루엣을 갖추는 것. 어느 배우든 중요하게 생각할 것이다. 옷은 무엇을, 머리는 어떻게, 말투는 어떻고 목소리나 표정의 톤 앤드 매너는 어떨까를 아주 구체적으로 이미지화해서 나만의 모범답안을 만들어두는 편이다. 카메라 테스트 전부터 최대한 구체적으로 구축해놓는다.


- 마니아들을 생산한 오피스 드라마 <미치지 않고서야>(2019), 5월에 공개될 또 다른 오피스 드라마 <레이스> 사이에 <퀸메이커>의 인권 변호사 경숙이 있다. 회사 소속이든 아니든 다들 대단한 워커홀릭이라는 공통점이 있는데.
= 문소리_그러니까. 나 일복 많게 생겼나보다. (웃음)
= 김희애_일하는 여성이 가장 매력적이잖아. 자기 자신도 더 과감히 드러낼 수 있고.
= 문소리_어느 정도 범주가 정해진 오피스룩을 과감히 벗어날 수 있다는 점에서도 <퀸메이커>의 경숙이 재미있었다. 특히 초반에 백화점 여성 노동자들 위해 고공 농성 중일 땐 메이크업을 전혀 하지 않은 모습이면 좋을 것 같아서 한동안 그게 고민거리였다. 내겐 어려운 일이 아니지만 드라마 시청자들이 보시기엔 어떨까, 싶었거든. 내가 하고 싶었던 건 <메어 오브 이스트타운>의 케이트 윈슬렛 같은 느낌이었다. 첫 장면부터 약간 부은 맨얼굴에 머리 질끈 묶고 나오는 모습을 캡처해서 친구들한테 돌렸다. “이거 정말 맨얼굴 같지 않니? 우리도 이렇게 할 수 있을까?” 하면서. (웃음) 나는 케이트 윈슬렛이 아니고 문소리인데 어디까지 할 수 있을까, 반겨주실까, 불편해하실까 머리 싸매고 난관에 봉착하기도 했다. 그런 고민을 하고 있다보니 또 어느 날은 ‘내가 너무 옛날 사람이어서 이런 고민을 하나’ 싶기도 하고.
= 김희애_깊이 이해한다. 상황에 맞지 않게 화장을 하고 있는 것도 비판을 받지만 최소한의 화장도 배우의 자기 관리 덕목으로 보는 시선도 있기 때문에 드라마 내용과 전혀 관계없이 얼굴에 관한 내용으로 댓글들이 오가기도 한다. 특히 여성배우들에겐 꽤나 딜레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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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장에서 서로의 연기 스타일을 보면서 받은 인상은 어땠나. 극 중 인물들만큼 각기 뚜렷한 개성이 있지 않았을까 예상되는데.
= 문소리_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희애 선배님은 정말로 완벽하게 준비해 오신다. 그리고 현장에서 한치의 흔들림이 없다. 존경스럽다.
= 김희애_그건 내가 그렇게밖에 못해서지. 일하러 왔으면 일을 잘해내는 게 상대를 위한 최선의 배려이기도 하잖나. 내가 잘해야 스탭들에게도 피해가 안 간다고 생각하면서 그런 방식이 몸에 뱄다. 어떤 면에선 현장에서 중간중간 수다 떨거나 여유 부리는 유형이 못 된다. 그에 비하면 소리씨는 IQ가 정말 높은 사람 같다. (웃음) 놀라울 때가 한두번이 아니었다. 현장에서 즉흥적으로 대처하는 부분이라든가, 팀원들을 아우르는 리더십이라든가. 여러모로 자기 자신을 조율하는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다. 우린 연기할 땐 무척 다르지만 또 재밌는 게 자연인으로선 교집합이 많다.
= 문소리_맞다. 서로 집중하는 방식은 확연히 다르다. 그런데 사적인 성향은 비슷한 구석들이 많다. 사는 얘기를 들어보면 특히 그렇다. 예를 들어 조그맣게라도 일을 그냥 다 내 손으로 처리해야 마음이 편하다든지.
= 김희애_게다가 소리씨는 행동대장이다. 나름대로 자기 커리어가 있는 사람이 그러기도 쉽지 않은데, 여러 배우들에게 연락해 모임도 추진해줬다. 우리 현장의 분위기 메이커였다.


- 한쪽은 퀸메이커, 한쪽은 분위기 메이커였던 현장인 건가. (웃음) 함께 호흡을 맞춘 첫 촬영날도 기억나는지.
= 김희애_물론. 초반 고공 농성 장면에서 처음 만났다. 경숙이 고공 농성 중인 건물 옥상에 도희가 찾아가는 장면이었다. 엊그제 일도 잘 기억나지 않을 때가 있는데 그날은 너무도 생생히 떠오른다. 46층의 옥상은 춥고 바람 부는 힘든 현장이었지만 중요한 신이라 잘해내야 했다. 길이도 길어 마음 한편에 걱정이 있었다. 그런데 첫 촬영이 시작된 순간 일사천리로 끝이 났다.
= 문소리_<퀸메이커>는 리허설을 많이 하지 않았다. 내 경우는 그래서 그 신을 찍으면서 모든 게 명확해졌던 것 같다. 대본에서 경숙은 좀더 터프했다고 할까. 정작 옥상 신에서 선배의 강단 있는 존재감을 보고 나니 경숙은 오히려 치고 빠지는 재치 있는 플레이를 해줘야 재밌는 대비감이 생기겠더라고. 뿌리가 강하니까 흔들릴 수도 있겠구나, 생각했다.그렇게 황도희와 대비시키면 우리의 콤비 플레이가 더 재밌겠다 싶더라고. 도희가 꿋꿋하게 버티는 인물이라면 경숙은 그보다 훨씬 잘 휘청거리고 곧잘 넘어질 것 같으면서도 절대 꺾이지 않는다.


-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
= 문소리_중꺾마! (웃음)
= 김희애_?

문소리 월드컵 때 나왔잖나 선배!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이라고. ‘혐관’은 몰라도 ‘중꺾마’는 안다.
= 김희애_그렇구나….
= 문소리_<문명특급>에서 선배가 남긴 “독한 게 딴 게 없어. 오래 버틴 사람이 독한 거야”라는 말도 비슷한 데가 있다.
= 김희애_<퀸메이커>의 이야기가 정말 그렇기도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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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치 드라마는 결국 정치를 쇼 비즈니스로 해석하고 접근하는 연출을 통해 스릴과 카타르시스를 만든다.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 오래 버텨온 배우들이기에 공감할 수 있는 대목이 있었다면.
= 김희애_아, 그게… 우리 <퀸메이커> 포스터에 “연기력이 권력이다”라고 쓰여 있길래 처음엔 우리 두 사람이 연기 잘한다는 소리인 줄 알았다. (웃음)
= 문소리_하하하하.
= 김희애_두번 생각하니까 그게 아니더라고. 어찌보면 배우의 세계가 훨씬 심플하다. 닮은 데도 있지만 정치적 지형도의 복잡함은 또 다른 차원이다. 그래서 감정적인 접근이 필요할 땐 황도희, 오경숙의 성장 서사라는 점에 집중한 측면이 더 크다. 둘의 관계가 점차 발전해나가는 드라마라는 점이 내게는 중요했다.
= 문소리_대본을 보면서 ‘세상이 뭐 이래?’ 싶다가도 실은 현실이 더하다는 생각이 든 건 사실이다. 뉴스를 보면 우리가 잘 모르고 지나가는 세상의 무서운 일들이 너무 많다. 배우로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용감한 마음을 지키는 일 같다. 연극하고 영화하는 사람들, 그림 그리고 연주하는 사람들, 다 각자 엄혹한 자기 시대를 통과하면서 용기를 지켜온 것 아닌가. 일을 계속 하다보면 마음이 무뎌질 때가 오는 건 사실이다. 알면 알수록 겁도 많아지고 세월에 물들어가기도 하고, 뭣보다 기운도 딸린다. 그래서 휘청할 때도 있지만 처음에 품은 용감한 씨앗이 썩지 않도록 가끔 볕도 쐬어주고 물도 주면서 들여다보려고 한다. 그렇게 세상도 작품도 계속 바라볼 수 있으면 좋겠다.
= 김희애_용감해지려면 고민도 많아지지.
= 문소리_맞다. 나만 해도 아직 겁이 많다. 당장 아침에 일어나면 ‘내가 이래야 되나 저래야 되나’ 늘 이런저런 일로 혼자 머뭇대고.


- <퀸메이커>는 여성들의 커리어 전환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야망과 야심, 진취성을 자극하면서 고무시키는 요소가 있다. 두 사람에겐 그동안의 긴 배우 생활 중 두렵지만 자기 일에 강력한 시동을 걸어야만 하는 순간이 언제였을까.
= 김희애_아무래도 여성배우들은 결혼하고 출산까지 하고 나서 한동안 아이를 키우게 되면 배우로서 제2의 출발을 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예전엔 더 그랬다. 내게는 그때가 인생의 큰 터닝포인트였던 게 사실이다. 공백기에 자연스럽게 멀어지는 인연도 또 새롭게 다가오는 인연도 있었다. 숙고하고 단련하는 시기였던 셈인데 그 시간을 견디고 나자 진취적으로 다시 뛰쳐나갈 수 있는 힘이 생겼다. 내가 배운 건 살면서 앞으로만 나아갈 게 아니라 몇 걸음 다시 뒤로 물러나는 시기가 꼭 필요하다는 거였다.
= 문소리_나는 커리어 초반에 특히 힘들었다. 지금도 종종 생각한다. 그때 내 안에 뭐가 있었길래 사범대 다니다가 배우 하겠다고 뛰어들었는지. 그냥 욱하는 마음은 아니었다. 존경하는 선배들에게서 엿본 용기 같은 것이 분명 내 안에도 있지 않았을까. 그리고 <오아시스> 이후에도 근 몇년이 줄곧 긴 데뷔 기간 같았다. 내가 지금껏 살아온 세계를, 내 알을 스스로 깨트려야만 했다. 그게 일적으로 강하게 시동 걸 수 있는 트리거가 됐다. 그때가 어쩌면 살면서 필요한 거의 모든 욕심과 야심과 심지어 전략 같은 것들이 가장 필요한 시기였다고 볼 수 있는데 정작 내겐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그 시간 덕분에 이후에도 일하는 게 자신 없고 두려워질 때도 ‘불안하더라도 계속 한번 해보자’라고 쉬지 않고 이어갈 수 있었다.
= 김희애_열정을 갖고 불태우겠다고 해서 삶이 그렇게 마음처럼 불태워지지가 않더라. 모두들 시간이 필요하다. 우리 양자경 언니도 말했잖아.
= 문소리_레이디스, 돈 렛 애니바디 텔 유 아 에버 페스트 유어 프라임!(여성들이여, 누구도 여러분에게 ‘전성기는 지났다’고 말하게 내버려두지 마세요/ Ladies, Don’t let anybody tell you are ever past your prime.)


- 두 사람 모두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아시아 최초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양자경 배우의 수상 소감을 인상적으로 기억한다는 사실 자체가 많은 것을 말해준다. 게다가 이렇게 정확한 인용이라니.
= 문소리_몇번이나 반복해서 봤으니까. 영상도 따로 저장해둘 만큼.
= 김희애_우리에게 그런 이야기를 들려줄 자격이 충분한 사람 아닌가. 깊이 공감한 이들이 정말로 많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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