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해방일지에 대한 고찰]
MC 정준희
이종필 (건국대 교수, 물리학자)
박한선 (서울대 인류학 박사, 신경인류학자)
서유미 (작가, 소설가)
손정혜 (변호사, 법률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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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 해방, 추앙 같은 단어. 모르지는 않아도 평상시 잘 쓰진 않죠. 하지만 최근 유행처럼 번지는 이 표현은 단순히 드라마의 인기를 넘어서 어디론가로부터 해방되고 누군가를 열렬히 추앙하고 싶은 마음을 우리들 모두 가슴 한 켠에 숨겨두고 있었기 때문이겠죠. 나의 해방일지라는 드라마가 던진 잔잔한 파장 뒤로 우리들의 삶과 사람들 사이의 관계에 대해서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서 : 제가 이 드라마가 왜 좋을까. 그동안 사실 굉장히 장안에 화제가 된 드라마도 제가 1~2회를 잘 못 넘겼거든요. 근데 여러 가지 장점이 있지만 몇 가지를 꼽아보자면, 일단 이 드라마의 세계관이 되게 좋았던 것 같아요. 일단은 제목에 나오는 것처럼 지겨운 인간들에게서 해방되고 싶은 사람들이 나오지만, 그러면서도 또 결국 누군가에게 추앙을 받고 싶고 추앙을 하고 싶은, 그런 인간들의 이야기가 얽혀 있다는게 흥미로웠구요. 또 하나는 인물들 대사가 굉장히 재밌었어요. 사실은 요즘은 모든걸 다 줄여서 말하는 구어체 세계가 굉장히 강한데, 여기 인물들은 문어체를 맛깔나게 잘 쓰더라구요. 그러면서 일상에서 잘 안 쓰는 '추앙'이나 '해방'같은 것, 이건 되게 큰 개념으로만 우리한테 존재했는데 이걸 또 일상에서 쓰는 의미있는 활용도 좋았고. 그리고 사실은 로맨스가 되게 주되게 나오는데 이 드라마가 스킨쉽이 없어요. 그래서 저는 사실 그 부분이 되게 좋았었거든요. 그동안의 드라마는 대부분 로맨스가 주되면서 어떻게 키스하고 몇 회에 키스하고 이런게 굉장히 많았는데, 이 드라마는 거의 10회가 넘어갈 때까지 인물들끼리 손을 잡거나 만지거나 하는게 안 나와서 인물의 관계나 표정이나 대사에 굉장히 집중하게 만드는 힘이 있어서 여러 가지 좀 신선한 좋음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여러분들과 같이 해방과 추앙에 대해서 얘기하고 싶었어요.
정 : 예, 세팅 자체가 마음에 드셨고 인물에 주목하게 만드는 힘, 아마도 그 스토리가 인물의 힘과 함께 가는 거겠죠. 그리고 이 단어라고 하는게 아까 '문어체'라는 표현을 쓰셨는데, 일반적으로 잘 안 쓰는 단어들을 상당한 문어체적인 어투로 하는 것이 재밌어서 이런게 굉장히 마음에 드셨나봐요. 안그래도 이제 해방, 추앙 이런 단어들을 매개로 우리가 좀 얘기를 나눠볼텐데, 개인적으로 저는 별로 어색하지 않았거든요. 제가 이런 식으로 많이 살아서 되게 재수없다는 소리를 많이 듣는데, 우리 손정혜 변호사님은 법률 직역을 가지고 계신 분인데 일상 언어적이시잖아요. 그래서 이런 단어 잘 안 쓰실 것 같은데.
손 : 네, 되게 생경했어요. 드라마 딱 보자마자 초반에는 살짝 집중도가 떨어지는 시기였는데 '추앙하라'는 얘기를 딱 듣고, 응? 핸드폰을 꺼내서 제가 이제 검색하려는 찰나에 주인공이 검색을 하더라구요. 아, 이거는 나만 모르는 단어가 아니고, 나만 익숙하지 않은 단어가 아니고, 작가님이 의도적으로 이런 추앙이라는 단어를 끄집어내서 곱씹게 한다는 그런 생각이 들더라구요. 추앙하다라는 단어를 포털에 검색해서 봤는데, 그 뜻이 또 맞는가에 대한 고민이 되더라구요. 그런데 나중에 여주인공이 '응원하는 것'이라고 규명을 해줘서 오히려 그런 단어가 훨씬 더 저한텐 와닿더라구요. 뭔가 사랑으로 채워지지 않는 '추앙한다' 라는 표현은 젊은 세대들은 아마 처음 들어보지 않았을까 생각이 들었구요. 근데 굉장히 처음 들어봐서 뭔가 신비스러운 느낌으로 드라마를 접근할 수 있었고. 주인공들이 말이 없잖아요, 말이 없는데 몇 마디 툭툭 튀어나오는 단어들이 사전을 찾아보게 하니까 좀 더 몰입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정 : 예, 사실 뭐 언어는 굉장히 사유적인 거라 실제 사전에 있는 단어긴 하지만, 일반 언중들이 잘 쓰지 않으면 결국 죽은 말이 되잖아요. 좀 있으면 죽을 말이었는데 이게 되살아나긴 했습니다. 되살아난 맥락들도 좀 재미있구요. 이종필 교수님은 이런 성향은 좀 아니신 것 같긴 한데 누군가를 추앙하고 숭배하고.
이 : (생략) 이 드라마에서 정말 뜬금없는 단어가 이렇게 탁 튀어나와가지고, '사랑은 안 되고 추앙을 해야된다.' 그것도 이제 굉장히 초반에 나왔는데 저는 좀 그런 느낌이 들었어요. '사랑'은 뭔가 좀 이미 계산적인 어떤 의미로 퇴색됐다고 할까 손상을 입었다고 할까. 물론 이제 우리가 아주 지고지순한 사랑이라고 하면은 내 모든걸 다 빼주고 간 쓸개 다 떼주고 이럴 것 같은데, 그런데 염미정이 겪었던 어떤 사랑이나 그 주변에 보이는 사랑들, 아버지와 고모와의 관계 이런 걸 보면은 돈과도 얽혀있고 뭔가 좀 계산적이고 지금 우리 일상에서의 어떤 연애나 사랑이라고 하는 것이 그렇게 좀 주고 받는 쌍방향적인, 기브 앤 테이크가 만연해 있는 그런 개념으로 된 것 같아요, 받아들이기에. 그런데 '추앙'은 그냥 일방향이잖아요, 그 단어 자체가. '사랑'은 사랑에 대해서 오랜 세월 많은 사람들이 여러 가지 정의를 해왔고 그게 현실에서 연애할 때의 여러 가지 모습들이 중첩이 돼서 굉장히 많은 의미 스펙트럼이 쌓여있는데, '추앙'은 안 쓰는 단어다 보니까 그냥 한 방향으로 딱 굳어진, 영어로 respect 우리가 무슨 일에 대해서 정말 리스펙한다 이렇게 표현하듯이 그런 의미로 그냥 일방향으로 내 모든걸 쏟아주는 그런 거를 원하는 것 같아요. 어쩌면 옛날에도 그런 사랑이 있었을텐데 그런 사랑이 사라진 어떤 시대를 힘겹게 살아가야만 하는 염미정의 솔직한 속내가 드러난게 아닌가. 나를 떠받들고 정말 리스펙트하고 그런거라기보다도 그 정도로 모든 것을 다 내어줄 수 있을만큼 일방적인 또 절대적인 사랑을 해달 라 이런 의미가 아니었나 싶어요.
정 : 공부 많이 하셨네요. 인물 분석까지 하셨는데 지금. 사랑이라고 하는 것이 지나치게 확장 되면서 생기는 약간 이기적인 측면들, 약간 상처하고 결부되는 측면들에 대해서 '나는 상처받지 않은 채 그냥 추앙만 할래' 라고 하는 심리가 있는 것 같다. 어떠세요?
박 : 그 추앙은 사실 사전적인 의미에선 '우러러 본다'는 뜻인데요, 자주 쓰는 말이 아니기 때문에 추앙이라는 개념에 대해서는 사회적으로 중의적인 느낌들이 많이 없어요. 그냥 우러러본다 그거 하나거든요. 사랑, 돌봄, 애착, 존경, 공감, 이런 식으로 좋은 의미를 가지고 있는 인간관계에서의 여러 가지 개념어들이 있는데, 사실 이런 것들은 너무 널리 쓰이기 때문에 부정적인 의미도 같이 붙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랑은 통속적이구요, 존경은 꼰대가 연상이 되구요, 돌봄 하면 고생, 애착은 상실, 공감은 군중심리 이런 것들이 연상이 되기 때문에 사실 우리가 어떤 드라마 같은 것을 봤을 때 자신의 순수한 감정들을 완전히 오로지 부착시키기 좀 어려운 단점이 있는데 '추앙'이라는 단어는 안 쓰던 단어니까 아까 교수님께서 말씀하셨던 것처럼 시청자들이 느끼고 싶어하고 공감하고 싶어하는 것들만 온전히 부착될 수 있는 장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예전의 그 광고가 생각났어요. 커피 광고 중에 '탁월해, 탁월한 맛' 이거 기억나세요? 그 탁월하다는 말 잘 안 쓰는 단어였거든요 예전에는. 지금은 많이 쓰지만요. 그러니까 이게 그냥 좋아, 맛있어 이런 것과는 좀 다른 특별한 의미를 가지게 돼요 카피라이트로. 그래서 카피라이트를 따는 작가들은 사람들이 알면서도 잘 안 쓰는 그런 단어들을 찾으려고 노력을 많이 하죠. 그런데 왜 하필 '추앙'일까 그 수많은 단어 중에, 그 생각을 해봤습니다. 진화인류학에요, 사회적 관심 확보 능력이라고 하는 개념이 있어요, SAHP라고 하는데요. 그 동물의 세계와 달리 사람들은 사람들 사이의 관계에서 자원도 획득하고 번식 가능성도 생긴다는 거에요. 즉, 사람들한테서 내가 인정받고 소위 추앙받을 때 그게 돈도 되고 지위도 되고 또 삶의 만족도 되는 현상을 말합니다. 그래서 사실 유튜브에서 유명한 유튜버만 돼도 삶이 훨씬 행복해지거든요. 돈도 생기구요, 관심도 받으니까 행복한 거에요. 이 현대사회에 가장 슬픈 일은 사람들한테서 잊혀지는 거라고 할 수 있는데요. 그래서 드라마에 등장하는 여러 인물들은 사실 그렇게 추앙받는 인물들은 분명 아니에요. 사회에 주변화 되어있는, 경기도에 살면서 고생하면서 사는 그런 사람들인데, 그런데도 불구하고 특정한 사람 또는 나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한테는 추앙 받고 싶고 그래서 그렇게 관심을 받고 싶어 하는 마음, 일반 대중들의 강렬한 열망을 그런 식으로 잘 예쁘게 표현한 게 아닌가 전 그렇게 생각합니다.
정 : 예, 지금 또 굉장히 깊이 있게 해석을 해주셨는데, 우리 서유미 작가님 보시기에 단어 선택 이런건 작가의 어떤 굉장히 중요한 목지잖아요, 굉장히 중요한 역량이기도 하고. '내가 쓸 걸' 이런 생각은 안 하셨었나요?
서 : 아니 저는 깜짝 놀란게, 이 작가 분이 정말 굉장히 용기 있다고 생각한 게 이 표현이 2회에 나오거든요. 2회 끝에 엔딩 쯤에 '술 말고 할 일 줘요? 날 추앙해요' 라고 하는데 정말 깜짝 놀랐어요. 아니 이 분이 드라마를 말아 먹으려고 하나, 잘 나가다가 갑자기 저게 뭐야. 뭔가 새로운 관계를 맺을 것이다, 서로가 서로를 알아본다 여기까지는 되게 좋았는데 이걸 던지고서 사실 다음주로 넘어가야 되는데 깜짝 놀랐거든요. 근데 뒤에 붙혔던 그 말이 굉장히 신선했어요. '사랑으론 안 돼.' 그러면서 자기는 '한 번도 채워진 적이 없다' 라고 했는데, 염미정의 캐릭터를 잘 드러낸 것 같아요. 굉장히 염미정이 처음에 보면 뭔가 좀 둔한 것 같기도 하고, 말이 없는 것만이 아니라 둔하고 관심도 없는 것 같지만 극이 계속 진행이 되다 보면 알지만 '말하지 않는 인물'에 가깝거든요. 그래서 사실은 이 세계에 대해서, 관계에 대해서 굉장히 잘 알지만 자신이 원하는 것들이 정말 채워진 적이 없기 때문에 요구하지도 않았던 인물이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구씨를 보고 아마 알아보고 그런 얘기를 했을 것 같고 사랑보다 훨씬, 아까 교수님이 사랑이 손상되었다고 했는데 저는 좀 되게 공감을 하는데 진짜 현대 사회에서 사랑이라는 단어가 사실 좀 많이 훼손이 됐잖아요, 너무 남발하다 보니까. 작가 분에게는 아마 그 사랑이란 단어를 대체하거나 훨씬 더 크고 그리고 뭔가 로맨틱한 기운을 배제한, 훨씬 더 존재론적으로 주고 받는 것에 대한 응원을 얘기를 하고 싶어서 아마 고민하시다가 그런 '추앙'이란 단어를 찾으시지 않으셨을까 싶어요.
손 : (생략) 저는 사실은 이 드라마가 저한테 꽂히는 이유는 그런 것 같아요. 굉장히 사소하고 평범한 인물들이고 특별한 어떤 캐릭터로서 크게 주어지지 않는데, 특히 어머니 아버지로 나오는 염제호 씨라던가 동네에 보면 촌에 있는 어머니 아버지의 모습, 어떻게 저렇게 일상생활에 대한 연기가 훌륭하게 되실까 라고 생각이 들 정도로 굉장히 평범한 일상을 너무 디테일하게 콕콕 찝어서 전달해 주니까 약간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한 느낌 있잖아요. 드라마인데 다큐 같다. '그렇지, 경기도에 스물 아홉개 역으로 다니던 직원이 있었는데' 이렇게 들어오는 느낌들의 그런 문학적인 표현들 때문에 굉장히 몰입하지 않나 생각이 들구요. 제가 누군가를 진심으로 이렇게 조건없이 전폭적인 지원과 전폭적인 사랑과 존경과 이런걸 해본 적이 있는가 한 번 생각을 해봤는데, 쉬운 개념은 아니더라구요. 하물며 남편도. 하물며 아들도. 그래서 인간관계라는게 되게 쉽지 않은 걸 이 드라마를 통해서도 많이 느끼고, 전 되게 외향적인 사람이라서 염미정이라는 캐릭터랑은 좀 다른 사람이거든요. 근데 주변에 염미정처럼 만나면 기분을 다운시키는 친구들이 있었어요. 우울해 보이고 생각이 너무 많고 업 되어 있는 나에 비해서 약간 지쳐있고. 그래서 그 친구들이 어떤 마음을 가지고 생각을 할까 많이 생각해 봤었는데, 그 에너지에 대해서 설명을 하더라구요 염미정이. 나의 심리적인 상태, 나의 생각. 그래서 굉장히 공부하면서 봅니다, 인간에 대해서.
뒤에 해방이나 노른자흰자 같은 이야기들도 나오니까
흥미로운 덬들은 링크 참고해
https://m.youtu.be/kCTHuDyL4L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