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에 때가 있냐는 리뷰보고 생각하는데
사실 구씨를 극단적으로 저렇게 설정한 점에서
개인적으로 죄수의 인권 같은게 떠올랐었어
예전에 헌법 강의에서 교수가 해준 얘기중에,
교도소에서 인권 보장해주려는 것에 반대론자들도 있지만
결국엔 죄수들(사형수)의 인권이 보장되면 그 수준을 기본으로 삼아
적어도 우리사회의 그 어떤 구성원도 그 이상의 인권을 보장받을 수 있는거기때문에 그런 상징적 의미를 위해서라도 찬성하는거라고.
작가는 교도소에 수감될만한 죄인의 상징으로 구씨를 설정한 것 같아.
행복에 무슨 자격이 필요하고, 그럴만한 때가 따로있는거냐...
구씨조차도 행복해질수 있다면,
드라마보면서 구씨조차도 행복해지기를 응원하는(추앙하는) 시청자가 단 한명이라도 있다면,
그보다 반듯하고 평범하게 살아온 우리는 더 행복해질수 있고, 더 응원받을만한 존재라고.
그걸 말하고 싶어서 이렇게 이렇게 돌고 돌아 어렵게 어렵게 이야기를 쓴게 아닐까 싶음.
미정이가 그러잖아, 나를 온전히 사랑하는 누군가가 있다고 생각하면 이 지긋지긋한 일들도 견딜만한 일이 된다고.
그래서 드라마를 보면서 곱씹어보다가 적어도 구씨보다는 나은 내가 저렇게 응원받을 수 있다는걸 깨달으면, 결국 견딜만해지고 나 자신이 사랑스러워지는 지경까지 이르게 된달까..
그렇게 자기혐오를 멈추고 비로소 나자신을 온전히 받아들이게 되면 그게 해방이 아닌가 싶기도 하고 말야
사실 구씨를 극단적으로 저렇게 설정한 점에서
개인적으로 죄수의 인권 같은게 떠올랐었어
예전에 헌법 강의에서 교수가 해준 얘기중에,
교도소에서 인권 보장해주려는 것에 반대론자들도 있지만
결국엔 죄수들(사형수)의 인권이 보장되면 그 수준을 기본으로 삼아
적어도 우리사회의 그 어떤 구성원도 그 이상의 인권을 보장받을 수 있는거기때문에 그런 상징적 의미를 위해서라도 찬성하는거라고.
작가는 교도소에 수감될만한 죄인의 상징으로 구씨를 설정한 것 같아.
행복에 무슨 자격이 필요하고, 그럴만한 때가 따로있는거냐...
구씨조차도 행복해질수 있다면,
드라마보면서 구씨조차도 행복해지기를 응원하는(추앙하는) 시청자가 단 한명이라도 있다면,
그보다 반듯하고 평범하게 살아온 우리는 더 행복해질수 있고, 더 응원받을만한 존재라고.
그걸 말하고 싶어서 이렇게 이렇게 돌고 돌아 어렵게 어렵게 이야기를 쓴게 아닐까 싶음.
미정이가 그러잖아, 나를 온전히 사랑하는 누군가가 있다고 생각하면 이 지긋지긋한 일들도 견딜만한 일이 된다고.
그래서 드라마를 보면서 곱씹어보다가 적어도 구씨보다는 나은 내가 저렇게 응원받을 수 있다는걸 깨달으면, 결국 견딜만해지고 나 자신이 사랑스러워지는 지경까지 이르게 된달까..
그렇게 자기혐오를 멈추고 비로소 나자신을 온전히 받아들이게 되면 그게 해방이 아닌가 싶기도 하고 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