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에서 구씨 사정을 알게 된 후
이 드라마에서 유난히 구씨가 말이 없던게 이제야 설명이 되더라고
1화부터 다시 보면서
구씨가 속으로 삼켰을 마음일 것 같은 이야기들 중에
다른 건 다 배제하고 염미정에게 전하는 마음만 정리해봤어
스압주의 ㅎㅎ
우연히 흘러들어온,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조그만 시골구석에서
구씨는 하루 종일 스스로에게 욕을 해
자기가 하는 말은 이제 스스로에게 지껄이는 욕이 전부이도록
삶을 최소한으로 잘라내서
지워낼 수 없는 죄책감을 그렇게 안고 살아가기로 마음먹어
짙은 상처를 욕과 술로 소독만 겨우 하며 하루하루를 구겨내던 중
사장님의 막내 딸은
그런 자기 속도 모르고 추앙인가 뭔가를 하재
뭐라는거야.
가만, 개새끼? 아무렇게나 뱉어내는 말?
이거 나한테 하는 말인가? 얘 뭐 알고 이러는 건가?
마른 세수 하며 추앙을 사전에서 찾아보던 구씨는 그날
무슨 생각을 했을까
—
추앙? 그거 나같은 새끼가 감히 해도 되는 건가?
그 사람을 벼랑끝에서 밀어버린 내가
자기를 가득 채워달라는 저 아이의 말에 맞장구쳐주는게 맞는건가?
이런 생각 조차 지금 나에겐 사치같다.
아, 쓸데없는 고민 하느라 머릿속이 잠시나마 가벼워졌다.
이걸로 됐다.
—
없었던 일로 뭉개고 그냥 조용히 지내고 싶은데
저 아이는 왜 자꾸 저런 동그란 눈으로 나를 쳐다보냐.
—
이 빗속에서 이대로 모든게 끝나면
나는 이렇게 모든 것을 끝내준 이 장대비에 감사하게 될까
움직일 수가 없다
이제는 나도 이렇게 끝이라고 하늘이 벌하는 건가
…
염미정, 나를 두 번이나 살렸네.
고맙다는 말은 하면 안될 것 같다.
그럼 살고 싶었던 내 마음을 인정하게 되는 거니까.
억지로 살아내는 척, 처음 구겨진 그대로 그렇게 남아 있어야만 할 것 같다.
—
인사하고 지내자는 그 말에 결국 못 이기는 척 대꾸해버렸다.
너도 참 끈질기다.
니가 하도 끈질기게 구니까 어쩔 수 없었던 거야.
절대 내 진심은 아니니까. 절대 아니니까.. 이번 한 번만.
너 저 버스 놓치면 안되잖아.
—
등신같이 그 큰 돈을 남자새끼한테 꼴아박아놓고
내 문자가 월급날 통장에 돈 꽂히는 소리 같다고?
염미정, 너를 어쩜 좋냐.
—
나보고 아무 말이나 해보라고 한다.
말하는 순간 진짜가 된다고?
염미정, 그렇게 말간 얼굴을 하고서는 그런 잔인한 말을 잘도 하네.
기억에서 지워버리고 싶은 말 속에 갇혀 하루종일 허우적대는 내가
그 와중에 너에게 하고 싶은 말들은 점점 많아지는데 삼켜야만 하는 내가
니 눈에는 어떻게 보일까 궁금하면서도 두려워
—
추앙하고 추앙받는 하루
웃기지도 않은 말장난인줄만 알았는데
술로 짓이겨내지 않고는 견딜 수 없던 하루 속에서
다 망가져 버린 채로 어둠 속에 버려져 있던 내가
너를 추앙하면서 살아있음이 느껴져
호수같은 그 깊은 눈으로 나를 가만히 바라보는 너는
더 이상 무서울 것 없이 닥치는 대로 살아왔던 나를 긴장하게 해
—
말하는 순간 현실이 되지
현실은 니가 좋아하는 아이스크림처럼 마냥 달콤하지 않고
말은 내뱉는 순간 영원히 남아서 지금도 나를 이렇게 괴롭혀
근데도 나는 점점 너에게 하고 싶은 말이 많아져
에라 모르겠다. 이 정도는 해도 되겠지.
—
너는 너를 너무 몰라.
그래서 내가 좀 더 알려주고 싶어지게 해.
—
니가 알게 되면 소름끼쳐하며 도망가버릴 게 뻔한 내 잘못은
내가 너를 생각하는 마음을 죄스럽게 해
—
더 하고 싶은 말이 아직 많은데
이제는 그 호수같은 눈을 가만히 바라보며 너에게 듣고 싶은 말도 많은데
말하면 진짜가 돼 버리니까
진짜가 되어서는 안되는 마음
더 이상 해서도 들어서도 안되는 위험한 말들
근데 자꾸만 새어 나온다
니가 신경 쓰이고
너와 아흔까지 함께 하는 걸 상상해 본 내 마음을 감추지 못했어
—
너에게 나눠 들자고 하기엔 너무나 무거운 내 짐들
그런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너무 이기적인 거겠지.
그동안 잊고 지냈던 상처, 꽤 아문 줄 알았는데
그 자리에 남은 흉터는 영원히 날 따라다니는 거더라고.
오롯이 내 몫인 것을 나는 왜 건방지게 잊을 수 있다고 생각했을까.
고요한 호수에서 그동안 잠시나마 쉬어갈 수 있게 해줘서 고마웠다.
고맙다는 말은 이번에도 마음에서 삼킬게.
—
내가 간신히 부여잡고 있던 고삐 내던져버리고
걷잡을 수 없이 전부 무너져 내리기 전에
마지막으로 내 얘기 듣고 넌 이제 돌아서 가면 돼
더 늦기 전에
추앙은 여기까지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