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말고, 할 일 줘요?
여전히 술병을 든 사내는, 들을 필요가 없다는 듯이 나에게서 고개를 돌린다.
그런 사내의 귓전에, 말을 꽂아넣는다.
-날 추앙해요.
비로소, 그의 시선이 올곧이 나를 향한다.
무슨 말이냐는 듯이,
처음으로 그의 눈에 감정이 담긴다.
혼란. 궁금함.
당신이 나에게 처음 보여주는 감정이다.
-난 한번도 채워진 적이 없어.
개새끼...개새끼...
내가 만났던 놈들은 다 개새끼...
내 바닥을 토해낸다.
그에게.
사람을 만나면 만날수록, 알 수 없어졌다.
내가 만난 건 개새끼들.
그런 개새끼들만 만난 나는. 뭐였을까.
걔들은, 나를 사람으로 본 걸까.
아니면, 그냥 쉬운 것으로 봤을까.
꽁꽁 숨겨놓았던 20점짜리 시험지를,
남김없이 펼쳐낸다.
-그러니까 날 추앙해요. 가득 채워지게.
나와 그는 시선을 맞춘다.
말만으로는 다 전할 수 없는 어떤 생각을, 마음을
말하고 있는 나를,
듣고 있는 그를 알기 위해
서로를, 그저 바라본다.
-조금 있으면 겨울이 와요.
겨울이 오면 살아있는 건 아무 것도 없어요.
그렇게 앉아서 보고 있을 것도 없어요.
공장에 일도 없고!
낮부터 마시면서 쓰레기같은 기분 견디는거.
지옥같을 거예요.
난 알아.
당신이 무슨 기분으로 술을 마시는지.
하지만 그게 술로 잊혀질 기분일까.
깨고 나면 또 몰려오는 감정의 지옥.
끊임없이 길고 긴 낮과 밤을 보내다보면,
당신은, 피투성이가 되있는 어느 아침처럼.
그렇게 만신창이가 되어 있겠지.
근데, 그거 알아?
당신과 나는 닮았어.
우린 마른 우물같지.
찰랑이는 물소리 한 번 내본 적 없는.
고요하게 메마른 우물.
바닥이 쩍쩍 갈라져서 아픈데,
아프다는 소리도 제대로 못내본,
그런 우물.
하지만,
구정물이라도 채워진다면,
그렇게 내 우물에 물이 차오르면
난, 다 담을거야.
내가 닿을 수 없었던 것들을.
밤하늘의 달을, 별을, 푸른 하늘을,
그리고 언젠가,
이 찰랑이는 마음을 퍼내마실 누군가를.
끊임없이 퍼내도, 줄지 않을 만큼 꽉꽉 채워져서.
다 주고, 다 담을 거야.
당신의 눈동자에서, 닫혀있는 목소리에서,
나는 끊임없이 나를 봐.
그러니까.
날 추앙해요.
가득 채워지게.
-당신은 어떤 일이든 해야 돼요.
난 한 번은 채워지고 싶어.
그러니까 날 추앙해요.
풀벌레 소리가 고요하게 나와 그의 사이를 유영한다.
온 힘을 다해서, 그에게 내 마음을 토해낸다.
-사랑으론 안돼.
그래, 사랑으론 안돼.
계절이 지나면 당연하다는 듯이 지고 떨어져버릴.
그 감정으론 난 채워지지 않아.
당신도 그 감정으로는 살 수 없어.
우리에게 필요한 건, 좀 더 다른 거야 .
절대적인 애정. 존중.
그 감정만으로도
이 지긋지긋한 중력이 끌어당기는 세상에서
우리를 똑바로 설 수 있게 하는 그런 것.
그러니까.
나를.
-추앙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