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같이 더 욕심부리지 말고 거기서 멈췄어야 했는데
괜히 손댔다가 망쳐버렸어"
후반부-막회에서 보여진
정희주의 화실은 온통 행복한 가족, 아이들의 그림으로 가득해
평론가가 갑작스럽게 변했다고 말한,
해원이 언니답지 않고 가면을 쓴 것 같다고 말한 화풍의 그림들
과장된 미소, 밝은 색채, 캔버스를 꽉 채우는 행복의 기운
근심은 전혀 없는 듯한 그런 그림들
화목한 가정과 평온한 일상, 완전한 행복에 대한
희주의 강박적인 심리를 드러내듯 어느순간부터
이런 그림들이 화실을 온통 채웠음
그리고 그 화실에 마침내 서우재가 침입했지
이 드라마에서 서우재나 아일랜드,
그리고 과거부터 아일랜드까지
지긋지긋하게 누렸던 가난
이 모든 것은 정희주의 본질에 가까워
"듣지 않아도 되는 소리 듣는 거 정말 싫어
아귀 안 맞는 창문 소리 냉장고 덜덜거리는 소리
옆집에서 들리는 기침 소리"
"그런 소리들을 그려보는 건 어때?
그리다보면 애정이 생기잖아"
"싫어, 그런 소리에 애정 갖는 거 지긋지긋해"
우재 앞에서는 싫다고 했지만 결국 그 아일랜드를 떠나서도
정희주는 그 시절의 소리와 풍경을 그림에 담아낼만큼
자기 본질을 잊어본 적 없는 사람임
(선우와 과거일에 대해 이야기한다거나
집안배경을 비웃는 시어머니와 대화하는 장면에서도 확인할 수 있음)
희주는 과거로부터, 가난으로부터, 서우재로부터
끊임없이 도망치고싶어했지만
우재가 돌아왔다는 말을 해원에게 들은 순간
이 그림을 완성했었어
사실 사람이 다 그렇지 않나?
어떤 이상을 쫓는다한들 본질은 달라지지 않고
결코 부정하거나 지울 수 없다는 거
내가 되고싶고 내가 지키고싶은 모습도 나고,
내가 벗어나고싶고 진저리나게 싫은 모습도 나니까
그래서 나는 이 드라마 속 희주우재의 사랑이
단순히 불륜, 혹은 치정 이런 의미로만 그려진 건
아니라고 생각해
내 자신이 나를 찾아와 "진짜 넌 어떤 사람이니?"하고
질문을 하듯 희주가 스스로를 마주보게 하는
이야기의 장치같았다..고 생각함
다시 막회 화실 얘기로 돌아오자면
볼펜이 목에 꽂힌 우재는 비틀비틀대며 화실의 그림들을
모두 쓰러트리며 부수게 돼
이 모습은 마치 가면을 쓰고 있던 희주의 일상이나
심리가 우재와 다시 만나면서 걷잡을 수 없이 무너졌음을
상징하는 것 같았어
특히 볼펜을 빼고 우재의 피가 그림에 튀었던 장면은
더이상 다른 사람들 앞에서 진짜 정희주를
감출 수 없다는 의미로도 읽혔음
더 나아가 우재의 죽음은 정희주가 그토록 도망가고싶고
버리고싶던 하지만 그래서 더 잊을 수 없고 가여웠던
진짜 '나'의 죽음을 상징하는 것 같다 생각함
한편 희주 스스로 가족의 그림을 찢고 태우는 장면으로는
그동안 그토록 붙들고 있던 욕망, 이상적인 삶도
돌이킬 수 없이, 완전히 끝났음을 의미한다 생각했음
이후 희주가 사라진 화실은 어떤 그림도 흔적도 온기도 없이
어둡고 황폐해진 모습인데 이게 희주의 결말같았어
눈 앞에는 핸드폰 너머 가족도,
(우재와 함께했던 아일랜드가 떠오르는,
우재가 어딘가로 가라앉았을) 호수도 보이지만
현재 희주는 아무 것도 가질 수 없고
그저 눈으로 쫓을 수 밖에 없는 결말로 읽혀서
마음이 공허했고 조금은 쓰렸어
드라마를 다 보고 난 느낌은
물론 정희주가 도덕적으로 완전무결한 인간은 아니었지만
누구나 살면서 한번쯤 겪는 치열한 감정, 고민을 보여줘서 좋았어
드라마 속 모든 인물, 풍경이
정희주라는 사람의 내적 갈등, 상실을
그려줘서 더 깊이 들여다보고 곱씹어볼 맛이 있었음